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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레밸업-1화 (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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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시작합니다.

꿈을 꾸었다. 아주 달콤한 꿈을.

그 꿈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절대 깨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녀가 단지 내 옆에 있으며 함께 있는 것 뿐인 꿈이었건만 나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기에. 더 이상은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만질 수도, 그녀의 상냥한 미소도 볼 수 없었기에 말이다.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휘청거리며 화장실까지 걸어 불을 켠 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살폈다. 한창때의 다른 남자 대학생에 비해 수척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

무엇보다 텅 빈 동공이 나 자신에 대한 주제를 깨닫게 했다. 빈 동공은 허무와 절망만이 담긴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기랄."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눈가에 묻어 있는 물을 닦아냈다. 이미 1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그녀의 마지막 모습과 사고 장면이 오버랩되며 머리를 자극했다. 4년이나 사겨왔던 소꿉친구와 같은 대학을 가기로 했고, 나는 나보다 뛰어난 그녀와 같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가끔씩은 그녀가 직접 공부를 도와주기까지하며 공부와 데이트를 동시에 하기도 했고 주말에는 간단하게 같이 카페에 가거나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노력을 보답받기 위해 마지막 시험인 수능을 보는 그날 우리는 지망했던 대학에 충분히 붙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받아 기뻐했다.

그렇게 수능이 끝난 순간 나와 그녀는 기쁜 나머지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은 뒤, 다시 만나기로 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겠다고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그녀가 건널목의 바로 옆에 있던 우리 집에 오기 위해 신호등이 파란불로 변하는 순간 발을 뻗었고, 직후 빠른 속도로 골목을 돌아 나온 트럭이 그녀의 몸을 들이받았다.

즉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녀가 건너려 했던 신호등의 건너편에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3초도 채 되지 않는 상황동안 내가 본 것은 붉고, 붉은. 끔찍한 것들이었다.

"...웁."

그 순간이 떠오르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인간의 몸은 한없이 연약한 고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직후 나는 한동안 다리가 풀려 있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상당히 짓뭉개져 있었고 다른이들이 보기에는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시체를 안은 채 한참을 오열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신을 잃은 트럭기사를 끌어내 두들겨 패고 짓밟았던 기억뿐이다.

나중에 조사 결과를 듣고 안 것이었지만 그 기사는 음주 운전 단속을 피해 골목을 역주행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쯤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고 그 남자를 죽였어야 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

남자는 실형을 살게 됐지만 사람을 하나 죽인 것치고는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었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고 일주일 가까이를 식음을 전폐했다.

정확히 센 것은 아니지만 대충 체감상 그랬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나는 나중에는 '그냥 이대로 죽어도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날 발견한 건 다름 아니라 내 여동생이었다. 고3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수능이 끝난 뒤로 기숙사에서 나와 피시방과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멍하니 있었고, 외근이 잦은 부모님들은 연락을 잘 못 받으니 집에서 내가 등교를 안 한다는 연락을 받은 여동생은 그런 날 찾아다녔던 것이다.

평소엔 땡땡이 한 번 안치고, 야자도 빼 본 적 없는 그 범생이가 날 찾기 위해서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면서까지 동네를 다 뒤졌다고 한다.

그렇게 동네의 피시방에서 날 찾은 여동생은 날 보자마자 뺨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고, 그 때의 일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꼬맹이 주제에 말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평소엔 그렇게 으르렁거리면서도 일단 그 때 찾으러 와 준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정신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학교를 꼬박꼬박 출석했다.

아무리 여동생이 날 걱정해줘도 없는 그녀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적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는게 맞으리라. 물론 그때 있었던 일은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알아봤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 없이 혼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1년 동안 그럭저럭 레포트와 과제를 처리하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드물게 조별과제나 참석해야 하는 행사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에 나는 자취방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폐인같은 삶을 보냈고 그런 나를 말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동생은 그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녀석도 이제 고3이라 바빠서 내게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나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왔고 요즘에 들어서는 가끔씩 자살충동이 들곤한다. 아니, 기왕이면 이 불합리한 세상 자체가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쥔 채 '퍼엉'하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는 것을 자각하자 나는 나 자신이 한심해졌기에 가볍게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갈 준비를 했다.

딱히 갈데는 없지만 이렇게 집에만 있다간 정말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이 세상이 멸망할 일은 없으니 내가 자살을 해야 한단 소리인데 그랬다간 여동생이 정말로 날 두 번 죽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뭐지, 택밴가? 그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정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부모님이 나한테 물건을 보낼리가 없고, 여동생이 평일인 오늘 찾아올리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인터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기괴한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다. 키가 꽤 큰편인 나보다도 큰 덩치에 마술사같은 복장을 한 채로 그는 내 집 앞에서 서 있었다.

"누구세요?"

그렇게 묻는 순간 머릿속을 파고드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정신을 자극했다.

[이루지 못한 꿈을 되찾고 싶지 않습니까?]

"......."

지릿. 지릿. 머리가 마비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고 사고가 정지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단 한 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오로지 당신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저 미친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다단계? 그게 아니라면 신규 범죄의 일종인가? 확실한 것은 저 놈은 정상이 아니었다. 미쳤거나 미치기 직전이거나 둘 중 하나인게 분명했다.

[당신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이 순간을 잡고싶다면 1분 안에 문을 열어주십시오.]

웃기지 마라. 이런 되도 않는 개수작을 부리고, 수상해보이는 놈한테 문을 열어줄리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그 순간 녀석이 잊었던걸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설화'씨가 전해달라 하더군요. '보고싶다'라고.]

설화. 죽어버린 내 소꿉친구의 이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

나는 잠시 침묵했다. 도대체 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설화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도, 설화가 내게 '보고싶다'라고 했다는 말이 믿어지질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만나자고 한 것도 나고, 신호등 너머에서 그녀를 무력하게 바라봤던 것도 나였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복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버러지가 나였는데도 그녀가 날 보고싶어 할 리가 없었다.

이때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15초 남았습니다.]

저 말이 진실이라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거지? 아니, 어쩌면 단순한 미친놈일지도 모르지 않나? 우연히 대충 찍어서 맞춘걸지도 모르고.

그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휘감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떻게보면 당연했다.

'다단계든, 신종 범죄든 알게 뭐냐.'

어차피 죽지 못해 사는 몸이었다. 이미 밑바닥을 본 이상 더 이상 손해볼 것도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현관을 향해 걸어갔고,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렇게 문 너머에는 아까 인터폰으로 확인했던 가면을 쓴 남자가 과장스러운 액션을 취하며 만화에서나 봤던 영국신사나 할 법한 포즈를 취하며 인사했다.

[소중한 용기를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플레이어(PLAYER)님.]

역시 이 남자의 목소리는 입이 아니라 다른 수단을 통해서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증거로 그의 가면은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플레이어?"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최태훈'님. 당신은 이 세계의 유일한 플레이어가 되는겁니다. 멸망 직전의 이 세계에서 말이죠.]

"플레이어가 대체 뭘 의미하는거지?"

내 말에 내 앞의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바로, 당신같은 사람들을 위한 용어 입니다. 혹시 평행세계라는 단어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본 적이야 있지."

똑같은 세계가 한없이 많이 있다는 이론이었던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이 세계는 '수명'이 다했습니다. 정상적인 세계의 역할을 다른 세계가 맡게 되고, 한낱 유희거리로 전락했다는 소리죠.]

[저희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릅니다만, 저희가 정해놓은 룰에 합당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중간에 일부분 틀어질 때마다 세계를 바꿔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수명을 다한 세계가 바로 이 세계입니다. 그리고 망가진 이 세계를 어떻게 할지 권한이 마침 저에게 주어졌구요.]

"그래서 대체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건데?"

[성격이 급하시군요. 뭐 좋습니다. 조바심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으니. 쉽게 풀어드리면 게임입니다.]

"...게임?"

[말씀드렸듯이 이 세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제게 있습니다. 그 말은 이 세계가 어떤 규칙이 깨지든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온다'라던가 말이죠.]

"......."

[어떻습니까. 구미가 동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뭘 하면 되는거지?"

[이 세계의 여자들과 섹스를 해주십시오.]

"...뭐?"

[못 들으셨습니까? SEX입니다. 성행위라고 해야 알아들으시나요?]

"못 알아들은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왜 그걸 해야하는건지 묻는거다!"

[흠... 태훈님. 혹시 당신은 영웅이나 히어로가 나오는 소설을 읽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 이야기의 엔딩은 늘 그렇듯이 헤피엔딩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무지막지한 힘을 줘서 세계를 제패해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칼빵 맞고 죽어버리거나, 재산을 노린 쓰레기에게 독약을 먹고 죽어버리거나.]

"......."

[아무튼 힘과 지력, 하다못해 운까지 저는 제가 받았던 버려진 세계들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만들어봤지만 그들의 결말은 늘 비참했습니다. 대부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한 배신 때문이었죠.]

[그래서 생각한겁니다. 이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테크닉을 가진 남자라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매력적인 남자라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개소리다. 내 앞의 남자. 아니 신은 진지하게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한 번쯤은 괜찮지 않습니까? 이건 그저 게임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되찾을 수 있는 게임 말이죠.]

물론, 제가 어느정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짜고짜 자식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사자같은 짓은 하지 않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라고 녀석이 덧붙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침묵하다가 그 녀석에게 말했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면 설화를 돌려주는건가?"

[물론입니다. 저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으니까요.]

"좋아. 네 멋대로 하라고."

[좋아요, 이걸로 계약 성립이로군요.]

그렇게 말한 남자의 가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럼, 게임을 시작합니다.]

============================ 작품 후기 ============================

처음이라 필력과 전개가 미숙합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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