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는 마치 자궁이 코스프레를 하고 섹스를 했던 것처럼.
여러 컨셉을 가지고 즐기는 시간이었다면.
지금만큼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사랑하는 마음에 집중했다.
내 쾌감은 최대한 잊고, 상대의 쾌감을 끌어올리는 것만 생각하고.
그 감각이 최대가 되었을 때, 가장 좋은 위치에 가장 좋은 압력으로 사정한다.
사랑이 담긴 계산적인 사정이, 아스카의 자궁부를 때리는.
그런 시간이다.
그 배려들에 비례하여, 쾌감이 증폭한 아스카의 표정은 바보처럼 변해가고.
그 표정과 몸의 강렬한 반응만으로도, 나는 만족하게 된다.
...평소에도 사랑은 담지만, 이 정도로 쾌감 증폭에 올인하는 건 오랜만이네.
"흐그으윽...!?"
새하얀 빛이 아스카에게세 뿜어져 나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더니.
아스카는 실컷 분수를 뿜어가며, 나를 꼬옥 껴안았다.
예전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안지도 못했을 텐데.
엄청난 정신력이네.
"하아, 하아.... 역시, 다른 질내사정은 이것만큼 좋지는 않네."
"너를 위해 해준 게 최고지?"
"응.... 딱 나한테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야. 사랑이 전해져온다고 할까."
아스카라서 그런지, 따로 임신하는 듯한 감각이나.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임신했다는 직감이 전해져 와서, 꽤 신기한 기분이었다.
'하긴, 원래 임신했다고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이제까지 워낙 특별한 섹스만 했던 게 아닐까....
아무튼 방금은 빌린 자궁의 형태가 아니라, 아스카의 자궁이었으니.
제대로 임신했을 거다.
'뭐, 사실 임신했다는 증거는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아까 질내사정을 했던 뒤로.
내 몸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으니까.
...정확히는 시스템에 변화가 생겼다.
[페미니스트(Lv0)
"
당신(Feminist)에 의한 여성(Female)의 행복(Felicity)!
여성을 행복하게 만들 때마다 특성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특성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하위 특성이 개방되고, 마력이 강화됩니다.
"
내가 F급 헌터의 증거인 0레벨에 도달한다니.
솔직히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상상은 했지만, 정말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어찌 보면 아스카에게 감사해야겠네.
내가 달성할 수 없는 걸 이루게 해준 셈이니까.
"이제 엄마라고 불러야겠네."
"네?"
"아스카는 내 아이를 임신했으니까 말이야. 애엄마잖아?"
"...그, 그러게요. 뭔가 실감은 안 나지만요."
일단 임신한 건 확실하니까 아스카에 축하의 말부터 전했다.
그나저나 아스카랑 나를 닮은 아이는 조금 궁금하네.
종족이 달라서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예상이 잘 가지 않았다.
"...에헤헤, 너는 엄마처럼 너무 기구한 운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스카...."
평소에 아스카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왔지만.
사실 어찌 보면 굉장히 기구한 인생이다.
사람들은 공주를 꿈꾸는 것 같지만, 사실은 평범한 삶을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공주님이 되어서, 자신의 세상을 구하고.
잘 모르는 이세계의 땅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그 사람은 본인 이외의 부인이 정말 많고.
심지어 임신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모로 챙겨주지 못한 적도 많았으니까.
"미안해."
"용사님이 사과할 문제는 아니에요. 저는 용사님 말을 믿고 따른 모든 것에, 일말의 후회도 없거든요. 오히려 감사해야죠."
"......."
"그래도, 너무 가버려서 그런지 피곤하긴 하네요.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될까요?"
"응."
아스카는 매우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몸에서, 난장판이 된 정액을 간단히 닦아낸 뒤.
깔끔하게 옷을 입혀서 눕혀두었다.
솔직히 새로 얻은 특성이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아스카를 챙기는 쪽이 더 중요했으니까.
뭐 이따가 확인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정말 곤히 자네....'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니, 아까까지 보이던 음탕하고 난잡한 침대는 사라지고.
평범하게 예쁜 소녀가 잠들어 있는.
그런 광경으로 변화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예쁜 광경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트린 뒤,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제 천천히 특성이나 확인하면 되겠네.
[6페미니즘 강화9(FFF)
"
지닌 다른 특성들이 모두 진화합니다.
"
"FFF라고?"
어째서 등급이 F가 세 개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S급보다 높은 SSS급이 존재한다는 농담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일반적인 F급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하긴, 이제까지 있던 내 모든 스킬은 F급이었으니까.'
일반적으로 그것보다 등급이 높은 것이, 0레벨 특성의 특징이니까.
그나저나 이름이 묘하긴 해도, 효과만큼은 굉장히 평범했다.
채린이의 0레벨 특성이랑 좀 비슷한 것 같은데....
'아마, 다른 특성을 다시 확인하면 여러모로 바뀌어 있다고 했었지.'
[이거 나만 6불편9해?(FFF)
"
대상의 인식을 영구적으로 뒤튼다.
"
아, 이런 식이구나.
그냥 성능이 올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꽤 영향력이 있어 보인다.
영구적이라는 건, 추가적인 마력 소모 없이도 계속 적용할 수 있다는 거잖아?
[6해줘9(FFF)
"
대상은 시전자의 부탁을 기꺼이 이행하며, 그것을 강제로 이행하는 척해준다.
"
"이건 또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
강제로 이행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이행한다는 점에서 수준이 올라간 건 알겠는데.
왜 굳이 강제로 이행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예전에 혜은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혁아, 생각해봐. 최면 능력이랑 최면에 걸린 척을 해주게 하는 능력 중에 뭐가 더 좋은 걸까?」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냐.」 「생각해봐, 후자도 결과적으로는 최면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지녔잖아?」 「...그렇지?」 「하지만 후자는 강제인데도, 그걸 모르고 자기가 자의로 한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매력이 추가되니까. 더 좋지 않아?」
물론 전자도 그것대로의 매력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둘 중에 고른다면 후자라면서.
열심히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느낌인가 보네.'
억지로 따르는 척해주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자의로 행동한다고 생각할 테니.
꽤나 재밌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6무섭긔9(FFF)
"
대상의 기억을 조작한다.
"
"이건 심플하게 고성능이 되어버렸고."
기존에는 봉인만 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내 마음대로 기억을 주무를 수 있다는 소리다.
...솔직히 장난 아니네.
[모르면 6공부9하세요(FFF)
"
대상에게 적용되는 새로운 법칙을 세운다.
"
신체라는 조건이 줄어든 것이 끝이긴 한데.
신체가 아닌 곳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꽤나 메리트인 것 같았다.
...지정 못 하던 것들도 꽤 많은 곳에 지정 가능한 것 같고.
"오랜만에 내 특성들 쭉 읽어보면서 비교하니까 재밌긴 하네."
너무 오랫동안 써왔던 특성이라.
굳이 특성 내용을 확인하거나 하지 않고, 별생각 없이 사용했었는데.
이렇게 하나씩 보니까 예전 생각도 나고 재밌었다.
[나 머리가 6띵9했어(FFF)
"
특정 집단이나 대상에게 새로운 상식이나 가치관을 심는다.
"
"이건 원래 하나씩 걸던 걸, 한 번에 걸 수 있게 된 것 같네."
내가 하나씩 수동으로 걸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더 편하고 안정적일 것 같다.
재미도 보기 좋을 것 같고.
특히 이런 건, 이상해진 집단 속에서 정상인 하나 정도 숨겨두면.
그 반응이 되게 재밌단 말이지.
그런 식으로 써먹으면 재밌을 터.
[나는 사회적 6약자9야(FFF)
"
시전자가 각성한 사실이나 마력의 유무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완벽하게 속인다.
"
"이건 굳이 능력을 봉인하지 않아도 비슷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거겠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하이 리턴만 남았다.
솔직히 어지간해서는 쓸 일이 잘 없는 특성이었는데.
이제는 좀 쓰겠네.
[6힘조9(FFF)
"
대상의 의식을 강제로 유지하게 하고, 그에 따른 쇼크사를 막아준다.
또한 마음 결정의 추출을 막아준다.]?
"
마음 결정은 솔직히 내가 항상 선을 넘지 못 하게 하는 녀석이었고.
그래서 그걸 어떻게 회피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고민도 필요 없을 것 같다.
[기울어진 6운동장9(FFF)
"
원하는 범위를 설정하고, 그 범위 내 여성의 특성 시스템과 마력을 봉인한다.
"
"뭔가 나한테 선택지를 많이 주네."
아까부터 계속 느꼈던 건데.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사실 기존의 특성만 하더라도, 내가 0레벨이 되면서 적 대부분에게 사용 가능해져서.
이전에 하던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느낌이라,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마치, 다 줄 테니까 쥐고 날뛰어 보라는 느낌 같다고 할까....'
물론 말로는 그럴듯해도.
실제 써보면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긴 할 거다.
내 특성들은 대부분 정신적인 부분에 제한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육체적이나 물리적인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고.
그건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까.
[웅, 완전 6공감9해(FFF)
"
대상의 생각을 원하는 만큼 읽어내고, 시전자가 공감하면 그 생각을 확신하게 한다.
"
'그렇다고 마력 소모가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신규 특성의 설명처럼, 확실하게 강화된 특성들의 설명을 읽고 있으니.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게임에서 편의성 패치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이야.
[6미러링9(FFF)
"
대상의 특성을 같은 수준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획득한다.
"
심지어 성장의 가능성까지 무한.
이런 특성들이 있어도 되나 싶다.
나에게 특성이 없어도, 다른 이의 특성을 다 가져다가 원래 효율로 사용한다는 거니까.
이러면 정말 마음대로 날뛰면서 엘프들에게 복수를....
"아니."
묘하게 올라오는 전능감을, 최대한 고개를 흔들면서 털어냈다.
확실히 강해진 건 맞지만, 적진 한복판에서 너무 방심하고 있다.
'당장, 이렇게만 해도 증발하는 힘이잖아.'
천천히 아스카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방금까지 느껴지던 강렬한 마력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했을 뿐이야.'
방심하지 말고, 완벽하게 내 사람들을 치료해 돌아간다.
그 목표만 생각하기로 했다.
"선생님?"
"어, 응?"
"이거요. 한 번 읽어보세요."
"응, 거기 올려놔. 고마워."
"아뇨.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요. 혼자 최종 검토해야 하는 선생님이 힘드시죠."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자료들을 하나씩 읽어내리는 과정은 꽤나 쉽지 않았다.
발전이 빠르고 인터넷에 정보 대부분이 정리된 세상이지만.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굉장히 얕은 것뿐이었기에.
지금 대부분 아날로그인 책으로 된 자료를 찾아야 했으니까.
'솔직히 상태가 별로라, 지구보다 더 발전된 건 아닌가 싶었는데.'
각성자로서 더 쉽게 강해질 수 있을 뿐이지.
엘프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딱 지구랑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더라고.
그래서 이미 아날로그로 작성된 것 중.
상당수가 디지털로 변경되지 못한 상태였고.
아날로그로만 존재하는 것들은, 도서관 등에서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편이 빨랐다.
'요청하면 스캔본을 떠주는 느낌이지만, 책을 하나하나 그렇게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
의심이 가는 책은 바로바로 열람해보면서 힌트를 찾는 게 맞다.
실제로 지금도 꽤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고.
이미 이쪽의 일반 상식 이상으로 정보를 획득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이상하네.'
일단 이상함을 느낀 것은, 이렇게 복잡한 조사를 하기 시작한 후가 아니다.
처음 인터넷으로 엘프라는 종족의 특징,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의 사람에 대한 '상식'과 역사를 배우면서부터 느낀 감정이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갈수록 그게 심해지고 있을 뿐이라고 할까.
"저희 세계에서는 침략자 그 자체였는데, 이곳에서는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네요."
"뭐, 이쪽에서는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였으니까."
우리는 이쪽에 오고 나서야.
가장 궁금했던 의문 하나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건 왜 엘프들이 다른 차원을 침략하냐는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잘 모르니까, 마냥 제국주의 비슷한 이유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확인하니까, 다른 차원을 침략한다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뭐, 그렇다고 침략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이쪽에서 영웅 취급받는 거야, 이해할만했다.
'해결 못 하면, 곧 멸망하는 세계라....'
이쪽 세계가 기술력이 그렇게 엄청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굉장히 SF 계열 세계처럼 메마른 느낌을 주는 원인은.
이 행성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세계수가 사라진 이후라고 간략하게 적혀 있었지.'
이 부분은 지금 조사하고 있는 부분인데.
과거 폭주했던 하이엘프 하나로 인해서, 세계수가 타락하여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그 세계수로 인해서 엘프가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그 당시에 개발되었던 차원 이동장치로 세계수를 잘라 날려 보냈단다.
그 덕분에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정작 이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어머니 같은 존재인 세계수가 사라지자.
급격하게 세상이 망가지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 죽어가는 별의 생명력을. 다른 차원에서 자원 파밍 하듯 가져오는 형태로 생존을 도모했고.
그게 바로 다른 차원을 침략해, 사실상 양분을 빨아먹어서 자신들이 살아남는 형태의 계획이었다.
이 방법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기술되어있지 않아서,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 할 것 같지만.
'아무튼, 이쪽에서 상식으로 퍼진 이야기는 그거라는 거지.'
엘프들에게 터전이라는 가치를 바치는 노예 차원.
뭐 그런 걸 확보해서, 자신들이 살아남게 해주는 것.
그게 이쪽에서 식민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녀석들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나쁜 짓인 건 확실하지.'
아마 이 행위는 해당 행성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주고 있을 거고.
그래서 식민지로 만든 이후에도 최대한 숨긴 것일 거다.
그런 상황이니 교류가 아닌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택한 이유도 이해가 간다.
물론 더러운 자신의 취향을 충족하겠다며.
노예 제대를 이용해서 질펀하게 놀던 놈들은 문제가 있지만.
그건 여기 꼬라지믈 보니까, 이쪽에서도 비슷하게 살아온 모양이고.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 새지 않을리 없지.
'그럼, 지난번에 나를 죽이려 하던 그 던전은. 이쪽에서 내다 버렸던 세계수의 일부라는 거겠지.'
봉인되어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 버려진 세계수를 누군가는 봉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된다.
생각해보면 엘프 이 새끼들은 민폐 덩어리네.
갑자기 오염된 세계수로 테러당한 세상도 있다는 거잖아.
'뭔가 느낌은 있네.'
사실 원래 조사하려던 건, 엘프들이 가진 임신 불가 시스템을 삭제하는 것인데.
이쪽도 알아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몸에 있는 것이 진짜 세계수라면,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과거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엘프 이야기에 엄청 가깝잖아?'
본래 엘프는 세계수의 열매 같은 존재로.
따로 부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수가 부모인 여성체 뿐인 종족이었다.
다만 세계수는 그냥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 그 뿌리가 전세계로 뻗어 있는 사실상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엘프들은 메인이 되는 오염 파트만 이세계에 가져다 버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자생할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결론적으로 세계수는 그대로 시들어 버렸고.
세계수에서 태어나기에 여성체만 존재하던 엘프들은, 같은 여성체가 다른 여성체를 범해서 아이를 가지도록 변해.
특수한 형태로 번식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평범하게 태어나는 엘프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장수의 힘도 잃어버린 모양이고.'
장수종이던 엘프는, 각성하지 못하면 단명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적혀 있는데.
인간인 내가 느끼기에는 그게 평범하고.
각성자 쪽의 긴 생존 기간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강하고 장수하며 소수의 성별을 차지한 각성자 엘프들은.
자신들이 씨를 뿌린 대상이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새 종족적 특징까지 활용해서.
그 소수의 인원으로 완벽하게 세상을 컨트롤하고 지배했다.
'저 시스템은 진짜....'
질내사정을 받으면, 마치 구 엘프들이 어미인 세계수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것처럼.
질내사정을 한 개체에 맹목적인 사랑을 하게 되어버리는.
그 무지막지한 시스템이, 사실상 소수의 엘프가 모든 결 결정하고 즐기게 만들어 놓았다.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서.
어린 애들을 강간하거나 죽여, 각성자가 늘어나지 않게 하는 건 물론이고.
이미 각성자인 서로를 죽이려고 이것저것 수를 쓴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끝에 나름 정립되고 정립되어.
지들 딴에는 윤리적이랍시고 정해둔 법이.
지금의 일정 이상 나이의 비각성자만 강간이 가능하다는 법이었다.
미친년들.
'어쩌면, 아스카는 그런 세계수의 정화 능력 비슷한 게 발현된 걸지도 모르겠네.'
이미 모든 세계수가 말라 죽어서.
전혀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지만.
뒤늦게나마 하프라는 특성으로 인해, 발현된 걸지도 모른다.
'아니지, 의미는 있어.'
나와 아이들의 몸에 남아 있는 세계수는 살아 있다.
이걸 어떻게든 이 세상에 뿌리내리게 한다면.
이쪽 세계의 뒤틀린 시스템을 싹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뭐, 그건 뒷전이긴 하지.'
지금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하는 건.
우리 애들이 임신해서, 몸이 세계수를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니.
어디까지나 저건 이곳에 온 김에 해결할 서브 과제 정도였다.
'다만 중요한 일이긴 해. 원흉 자체를 제거하면, 더는 침략 걱정도 필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꽤 큰 문제로 보고 있긴 하지만.
당장 집착할 필요는 없다.
세계수를 되살리는 거야, 돌아가서 연구하는 것도 방법이니까.
"확실히 예전 기록이 더 많네."
"인터넷 정보는 틀린 것도 꽤나 있네요."
"그렇게 되기 마련이지. 아무래도 뇌피셜이 섞이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래도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마련된 것 같다.
법이나 일반적인 분위기 같은 것도 공부를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원래는 초식만 하는 종족이었다는 게 참 신기하네.'
엘프는 원래 초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졌기에.
내가 아는 한식에 가까운 초식 요리들이 보일 정도로, 꽤 예쁘게 발달해 있었는데.
문제는 세상이 황폐해지면서, 채소를 구하기가 극도로 힘들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동물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던전을 이용해서 수급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구한 동물을 먹고 있으니.
나름대로 수급이 되니, 그걸 기반으로 먹고사는 느낌.
채소의 경우에는 각성자들이나 비싼 돈을 주고 먹는 고급품이고.
일반적인 식사는 고기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노예나 마찬가지인 미각성자들은, 마킹 후에 음식물 찌꺼기나 받아먹는 게 일반적인 느낌.
"수고하셨어요."
"후우, 이 정도면 도서관은 전부 섭렵한 건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 여기부터는 꽤나 기밀에 가까운 정보들일 테니.
이런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알고 있을 법한 녀석들을 하나씩 잡아다가.
특성을 이용해서 불게 만드는 것이 나을 거다.
'으음, 아니지. 이런 오래된 도서관이면 뭐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혹시 대출이 금지된 서적 따위가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도서관의 직원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했다.
'물론, 특성을 이용해서 강제로 토해내게 만든 거지만.'
물론 그런데도, 절대로 내뱉지 않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직 신입에 가까운 녀석 하나는, 그런 마음까지는 없었는지.
손쉽게 그런 책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음, 별건 없네.'
다만 금서고에 있는 책은 수도 적고, 별로 대단한 것이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수준 같은데.
우리가 원하는 정보도 딱히 없는 것 같고.
"응?"
그런데 책들만 있는 금서고에, 이질적인 물건이 하나 있어서 꺼내 봤더니.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자필로 적은 일기장이었다.
이런 게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응...?"
일기가 아니라 연구 일지였다.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니라 세계수랑 관련된.
"흐음...."
일단 연구 일지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자료를 조사해서 모아 놓은 것에 가까워서.
도대체 이게 뭔지, 뭘 위해서 만든 것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살피는 데 시간이 걸렸다.
'금서고에 대체 왜 이런 게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꽤 내용이 길어서, 천천히 정독해보며 깨달은 건데.
이 녀석은 일단,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 자료를 만들고 있었고.
그 조심의 상황들을 보면, 각성자가 아닌 것 같았다.
연구일지긴 한데, 일기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각성자가 아니라는 건, 이쪽 세상에서는 핍박의 대상이라는 소리니까.'
잘못 질내사정 당하는 순간.
완전히 정신적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데다.
법적으로도 일정 나이 이상이면, 강간당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아니니까.
그것으로 생기는 불안들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연구 일지를 쓴 당사자는, 본인이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다고 생각했고.
그 혈통은 대부분 연속으로 각성자로 이어져 왔기에.
그래서 당연히 자신도 각성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정작 나이를 먹고 보니까 각성하지 못했던 것 같다.
'흐음....'
그렇다고 그것이 억울해서 연구한 내용은 아니고.
본래부터 자신의 혈통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 혈통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발견한 고문서에서, 하이엘프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시작한 모양인데....
'하이엘프라.'
하이엘프에 관한 내용은 정확히 나와 있는 경우가 잘 없어서.
가지고 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애초에 지금은 찾기 힘든, 세계수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정치인이나, 왕족 같은 느낌이긴 했는데.'
폭주한 하이엘프로 인해서 세계수가 오염되게 되어서.
그 세계수와 하이엘프를 다른 세계로 추방했고.
그 이후에 세계수가 시들면서, 하이엘프라는 개념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다.
'애초에 그때는 일반 엘프들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힘들을 잃게 되었다 했었고.'
뭐, 그런 내용까지는 알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하이엘프에 대한 내용은 잘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지는, 초반부가 하이엘프에 대한 조사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엘프라는 종의 근본이나. 지금의 상황이 왜 초래되었는지도 적혀 있네.'
엘프란, 본래 세계수라고 불리는 미지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 존재.
그리고 하이엘프는, 본래 그 세계수와 엘프를 이어주는....
중간 연락책 같은 것이라고 한다.
"아."
즉, 하이엘프라는 존재는.
자신의 몸의 상당수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그렇기에 세계수와 더 짙게 교감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괜히 빠져서 연구한 건 아니네.'
그리고 그 하이엘프의 후손들은, 나름대로 그 당시의 기록들을 잘 보존해왔다.
물론 중간에 꽤 많은 것들이 유실되긴 했지만.
그 유실된 원인까지 기록되어 있기에, 그걸 기점으로 찾아낼 가능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니.
이 일지의 주인은 푹 빠져들었던 거다.
큰 관심 없이 물려주기만 하던 선대들과는 달랐던 거지.
'그런데 하필이면, 본인이 각성하지 못했고.'
그렇다 보니, 자신이 목표하던 이 '하이엘프'의 규명에 걸림돌이 생겼고.
그것에 저항한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었다.
이런 구석 도서관이나 연구실에 박혀서, 자신에 대한 것을 최대한 숨겼던 모양.
'그나마, 부모가 꽤나 권력자라서 다행이었네.'
이런 경우 부모도 최대한 아이를 강간당하지 않도록 숨기는 모양이다.
그게 딱히 비각성자를 보호하려는 것 보다는.
우리 애가 각성자가 될 수 있는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는 느낌.
아무튼 그렇게 도와주더라도 강간당한다면.
애초에 각성자가 될만한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실망하여.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정란 비슷한 걸로 취급한다는 모양.
'솔직히 뒷 마인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에게는 비상식적인 그 시스템이.
이 세계에서는 세대를 걸쳐서 인식되어 온 '상식'이다보니.
상황을 파악할 때만큼은, 그걸 고려하고 보는 것이 맞겠지.
아무튼 부모가 도와주긴 해서, 열심히 버티며 조사를 이어간 모양이다.
저런 부분에 있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만 생각하면 되겠지.
그 덕에 조사 속도에 약간 제한을 받았던 부분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나야 그냥 페이지를 넘기면 끝이니까.
"어?"
그리고 조사하던 텍스트 부분이, 당황한 듯 이리저리 덧칠하고 난장판이 된 부분이 있다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나도 일지의 내용에 집중했다, 뭐길래 저러는 거지?
「세계수의 시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발견하여, 이 일지에 자세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세계수의 시작...."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진 세계수에는, 사실 시작점이 있다는 뜻.
하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어.
세계수에서 태어난 존재가 엘프라기엔, 너무 인간처럼 생겼잖아.
애초에 세계수에서 태어난 존재인데.
어째서 그 중간의 연락책인 하이엘프가 존재해야 하는 거지?
솔직히 이상했다.
「세계수가 나타나기 전 선조는, 지금 비각성자의 모습과 아주 비슷한 형태로 살아갔다고 한다. 다만, 다른 동물들처럼 수컷과 교미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모양.」
"역시, 그렇구나."
본래 인류랑 큰 차이가 없는 종족이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다른 세상의 '사람'에 해당하는 종족과 닮아있는 거겠지.
「그러나, 과학 문명을 발전시키던 도중. 사고로 인해서 자신들의 행성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히게 되고. 자신들의 정자 시스템에도 타격을 입으면서, 모든 수컷이 불임이 되며 종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사라졌어야 하는 멸망의 종족이었으나.
그 죽어가는 행성에서, 오히려 생명의 빛을 틔운 유일한 잡초가 있었고.
그 잡초는 의지를 갖추고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작이 잡초라니...."
아주 작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였기에.
그 잡초는 행성 전체를 품어줄 수 있게 커졌고.
그것이 세계를 유지해주는 신, 세계수로써 동작하게 된 셈이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자손을 남겨, 자신들 종의 끝을 막아내고 싶었기에.
남은 기술력을 총동원해, 자신들의 DNA를 세계수에 맡겨버렸고.
그 이후로 세계수는 꾸준히 '엘프'라는 종족을 열매로 맺게 된다.
본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지식을 탐구하는 종족은.
그렇게 인위적인 형태로 시작되었다.
'다만, 조금 문제가 있었고.'
세계수는 나무인데, 그곳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동물이었으니.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엘프의 선조들은 최대한 자신을 닮은 존재가 튀어나오길 바랐고, 실제로 엘프들은 나무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서 그사이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중간책이 필요했고.
엘프와 세계수를 절반씩 닮은, 하이엘프라는 종이 소수 유지되었다.
그렇게 세계수와 엘프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엘프는 세계수가 없으면 종이 소멸하는 만큼. 세계수를 마음 깊게 사랑하도록, 태어나는 시점에서 DNA에 새겨지게 되어 있었다. 이는 엘프가 지닌 종을 유지하는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엘프들이 오염 사건에서 세계수를 가져다 버린 것도.
그 일부분 때문에 모든 세계수에 문제가 생길 것을 '몰라서' 생긴 일이지.
세계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시스템은...."
유일하게 남은 하이엘프는 세계수를 잃은 엘프들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 세계는 세계수의 뿌리도 꽃도 열매도 모두 잃어버렸지만, 소량의 가지는 아직 생명을 잃지 않고 있었고.
하이엘프는 그 힘을 쥐어짜서 일부 엘프들에게 부여했다.
「그것이 각성이라고 부르는 미지의 힘. 세계수의 가지가, 클리토리스에 깃들어. 엘프를 임신시킬 수 있는 '정자'를 만드는 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자를 엘프의 자궁에 쏟아붓는 순간.
엘프는 그 대상을 '세계수'로 인식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사랑에 푹 빠져서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랑을 넘어, 강제된 신앙의 대상 같은 것이 세계수였으니.
그것이 어떤 개인을 향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하이엘프를 탓하기엔, 그 반대편이 종의 멸망이었다.
'뭐, 애초에 예상도 못 했겠지만.'
애초에 급하게 만든 패치인 만큼.
그런 버그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리고 버그를 알아차렸을 때는....
"미치겠네."
그녀가 이미 각성자와 관계한 후였고.
그 하이엘프는 그 각성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버그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궤변을 적어, 그대로 후손에게 남겨버리는 미친 결말에 도달했다.
정작 그 각성자는 아무것도 몰랐던 모양이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고.
점점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인가....'
시스템이 그렇더라도, 윤리상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하면 끝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사람이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니까.
이런 지옥은 결국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끝나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 시스템이 저항을 제거해버린다는 거다.
당하는 쪽이 행복하다고 세뇌된 상태인데, 뭐가 일어날 수 있겠어.
초대 하이엘프가 그랬듯이.
범해진 사람들은 오히려 범해진 후가 행복하다며.
자신이 착취 받는 것에 그 어떤 불만도 표하지 않았으니까.
「하이엘프에 대한 연구 일지는 여기까지. 나는 앞으로, 이 고장 난 굴레를 끊어내는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선조가 마무리하지 못한, 하이엘프가 지닌 의무니까.」
그리고 그 모든 진실을 알아낸 그녀는.
그 버그를 고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히 새로운 연구로 접어들었다.
오, 그런 거면 우리 애들을 구할 때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을 것 같은데?
"...잠시만."
다만, 그 새 연구의 내용이 담겨 있기에는 남는 페이지가 너무 적었다.
아까 훑어볼 때, 여기서 조금 지나간 다음에 백지였던 것 같은데?
이거 존나 불안하다??
"
"일단 읽자."
불안하긴 한데, 지금은 내용을 정독하는 게 먼저다.
이 일지에 담긴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그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정해야겠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최근 찾으려고 했던 하이엘프와 관련된 던전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는 거다.」
그녀는 하이엘프 연구를 마친 뒤.
엘프에게 생긴 버그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 여러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냥 아무것도 없이 그런 수정을 하는 건, 모든 세계수가 사라진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시점에서 포기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정보 자체는 얻게 되면서 마음을 다잡게 되는데.
이전에 가져다 버린 세계수가 만들어낸 구멍 때문에 던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던전이, 세계수의 조각을 지닌 채 만들어졌으며.
그 조각에 살아있는 세계수의 힘을 이용한다면.
하이엘프의 혈통인 자신이라면,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발견했다.
「나쁜 소식은, 그 정보를 알아내던 가운데. 내 연구를 각성자 하나에게 들켰다는 것.」
"아, 미치겠네."
가장 무서웠던 그게 실제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것만 아니길 빌었는데.
하필이면 이게 딱 걸려버리네.
「내가 연구하는 것이,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여러모로 참견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녀석이다. 다만, 아직 비각성자라는 사실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런 식으로 일지는 계속 이어졌다.
일단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어찌 보면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 있으니.
방해하려고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느낌으로 움직였겠지.
'문제는, 그게 진짜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거고.'
일반적인 각성자라면, 이런 부분에서 탄압을 받으면.
그냥 저항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쪽도 법이 있는 만큼, 범죄자라도 각성자를 함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다만, 이 집필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지.'
그녀는 비각성자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자신을 들키지 않도록.
여러 부분에서 신경 써서 자신을 숨기고 다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주변에 관심이 없기에 들키지 않았을 뿐.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해서 살피는 순간.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되어버린다.
「결국은 내가 각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켰다. 어떻게 하지? 나는, 난.... 숨어야 해. 그래, 그 던전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 던전으로 숨는거야.」
"하.... 이런."
글자에 떨림이 보일 정도로, 무서워하는 것이 전해져온다.
강간이 합법인 세상이라니,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엄청나게 무서울 테니까.
심지어 그걸 당하는 순간, 지금의 자신의 지워지는 정도의 인격 차이가 발생한다면?
직접 악용한 적도 있었기에, 그 무서움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당신에게 강간당하고 말았다.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시스템에 의한 강제적인 애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꽤나 견디기 힘든 물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바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찾고 있던 던전에 대한 힌트를 많이 찾아낸 상황이었고.
조금만 더 진행하면, 해당 던전을 직접 찾아내서 조사할 수 있었을 거다.
「원하던 정보를 당신 몰래 찾아냈다. 나를 복속시켰다고 생각해서인지, 방해가 줄어서 일이 쉬웠다. 아마 곧 던전의 위치는 확보된다. 이제 그 던전을 클리어할 용병만 구해두면 된다.」 「억지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불쾌감을 앞세워. 당신을 볼 때마다 밀려오는 애정을 밀어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감정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는지, 배덕감 비슷한 쾌감이 나를 잠식하려고 한다.」 「정신 차려, 자드. 앞으로 이 쪽지를 매일 새 일지를 쓰기 전에 읽는 거야. 지금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은 적이야. 제발. 정신을 차려. 사랑하지 않아. 거짓이야. 전부 시스템이야. 행복이 아니라고.」 「자드, 정말 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면. 이 일지만큼은 이 도서관의 금서고에 숨기는 거야. 응, 내 마지막 부탁이야. 애초에 이런 걸 들키면 주인님한테 혼날걸?」
"......."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강간당한 이후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느껴졌다.
그나마 처음에는 그 감정을 극복하는 것 같았지만.
갈수록 자신의 감정에 굴복해 나가는 것이, 무슨 침식이라도 당하는 것 같아서 괴이했다.
그 와중에 어째서 이 일지가 이곳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혹시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그녀는 패배한 자신이, 이 일지만큼은 이곳에 남기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패배했다는 소리겠지만.
"제발 던전 위치만 적어놓고 사라지면 안 되겠니."
「드디어 던전을 찾았다. 용병은 구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들키면서, 모든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당신께 들킨 것 같다. 몰래 용병을 찾으려다가, 누군가가 일러바친 모양인데.... 일지는 급하게 남긴다. 아마도 긴 시간 동안 벌을 받겠지.」
"아니...."
나도 모르게 나쁜 상상이 떠오르는 내가 밉다.
아니지 애초에 강간으로 시작한 엘프 새끼면, 벌이라는 명목으로 그럴 확률이 높긴 하잖아.
...나 억울해.
「...이건 뭐죠? 일기? 아, 그래. 저 이런 걸 쓰고 있었죠.」 「으음, 과거의 저는 참 멍청했네요. 당신께서 주신 행복한 시간을 벌이라고 쓴다거나. 당신이 싫다거나....」 「하이엘프의 의무라니, 그런 재미 없는 걸 챙기려고 했었군요. 그저 당신께 복종하고, 사랑받는 게 더 행복할 텐데 말이죠. 선조 하이엘프님이 옳았어요.」
"결국 장소 안 쓰고 맛이 갔잖아...."
돌아버리겠네.
이러면 일지를 남긴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냐?
가장 중요한 던전 위치는 패배해버린 본인 머릿속에 있다는 거잖아.
「그냥 재미없는 걸 했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정말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군요. 이런 걸 해버리면 제가 주인님을 사랑하지 못하잖아요. 정말 미쳤었던 걸까요?」 「그 이상한 던전의 위치는, 역시 주인님과 저의 미래를 위해.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그래도, 이 일지 정도는 남겨도 되겠죠? 과거의 제가 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걸로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강간당해서 주인님이 생기는 건, 무척이나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거요!」
"당신으로 존칭하는 걸 넘어서 주인님이 되어버렸네."
일지는 여기가 끝이었다.
일단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얻게 해준 물건은 맞았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가 빠져 있어서 굉장히 찝찝했다.
'그나저나, 참 웃기네.'
본인은 이걸 자신이 행복해지는 과정이랍시고, 이곳에 가져다 둔 모양인데.
나 같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보는 순간, 그저 공포물이 될 뿐이다.
시스템에 엘프가 어떻게 굴복하는지를 보여준, 패배 일기에 가까웠다.
'결국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인가....'
사람을 저리 망가트리다 보니, 이런 사회가 되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그렇더라도, 윤리상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하면 끝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지성체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뭐든지 하는 자들이니까.
이런 지옥은 결국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끝나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 시스템은 해당 인원의 저항을 제거해버린다는 거다.
당하는 쪽이 행복하다고 세뇌된 상태인데, 뭐가 일어날 수 있겠어.
예를 들어서, 레지스탕스가 있다고 한다 치면.
그중 한 명만 강간당하더라도, 갑자기 그 사람이 온 힘을 다해서 배신하게 되어버리니.
그런 저항이 제대로 굴러갈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펫 느낌으로 조심은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소유물이기에.
오히려 애정을 가지고 아끼는 분위기는 생겨났다.
그래서 양지에서의 취급 자체는 꽤나 깨끗하게 관리하려는 느낌은 있다.
그래봐야 반려동물을 다루는 느낌이지만.
'...문제는, 그런 거 전부 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거라는 거지.'
아무리 때리고 괴롭혀도, 사랑이라는 마음 때문에.
당신이 즐겁다면 그것도 행복하다며 웃어주는 인형 같은 존재가, 자신에게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는데.
그걸 이용할 사람들은 널려 있는 법이지.
아예 그게 나쁜 거라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예도 있을 수 있다.
정말 그 상대가 싫을 만한 고통을 계속해서 줘서, 죽기 직전까지 괴롭더라도.
그저 웃어주기만 해도 괜찮다며 미소로 화답하니.
그냥 상대가 이런 취향이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겠고.
"하, 머리 아파지네."
차라리 저렇게 당했던 애들이 각성이라도 해서, 뭔가 반격의 화살이라도 펼치면 좋겠는데.
처녀막이 사라진 엘프는 각성하지 못한다는 시스템도 존재해서.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
"일지에서 말해준 던전, 진짜 탐스러웠는데."
무려 세계수와 관련이 있는 던전이라고 했으니.
우리 애들을 구할 방법에, 꽤나 도움이 되었을 것 같고.
심지어 그게 아니어도, 그 질내사정 시스템은 기분 나쁜 게 맞아서.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느낌 왔는데. 진짜 도움 될 것 같은데.'
이런 촉은 빗나간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정말 너무 아쉬운 상황이었다.
"어쩌겠어,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야지."
"똑같이 연구해서 위치 찾아내시게요?"
"아니?"
"그럼요?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당연히 있지."
자, 일단 이 일지에는 후반부에 작성자 본인의 이름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을 굉장히 잦게 들락거린 흔적도 있고.
심지어 상태를 보면, 일지는 그리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건, 본인한테 들어보는 것 아니겠어?"
결국 시스템으로 인해 세뇌되어서 주인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비슷한 정신 조작 능력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빼돌리면 되는 거잖아??
"
"하아...."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니고. 갈수록 여기 식사 버티기 힘들다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리라 생각했던, 고기 위주로 된 식사였지만.
여러모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버티기 힘들었다.
차라리 맨 처음 먹었을 때는 외식 기분이라도 났지.
"탄수화물 계열도 제대로 못 챙겨주니까요."
"엘프는 신기해. 이런 걸 먹고도 몸 상태를 유지하잖아."
이런 것만 먹고 살아도 대부분 선남선녀란 말이지.
우리도 각성자라 비슷하게 해결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아닌 것 같아.
'괜히 이쪽 부자들이 비싼 채식을 구해다 먹는 게 아니네.'
일단 몸에 문제가 없어도.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아니, 사실 나라고 그렇게까지 채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뭔가 중간에 껴 있는 게 없으니까 많이 허전해.'
심지어 탄수화물 같은 곡물도 나름 그쪽이라서.
당연하게 먹던 주식인 쌀이나 빵 따위가 증발해버려서.
여러모로 식사에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소스들도 대부분 설탕과 비교해 단맛이 강한 대체재를 사용해서.
확실히 내가 아는 원초적 단맛에서 굉장히 멀었고.
미묘하게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후우, 좀 낫네."
"더 드릴까요?"
"고마워."
소이가 따라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금 니글거리는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이런 차 종류는 엄청나게 비싸서, 초반엔 살 생각도 안 했는데.
가끔 이런 거라도 마셔야 살 것 같아서 좀 사다 놓았다.
"선생님. 계세요?"
"응? 어, 밥 먹고 조금 쉬고 있었어."
"찾았어요."
"...자드 이야기지?"
"네."
저번에 발견했던 연구 일지의 주인인 자드.
그녀가 결국 질내사정 당하면서, 각성자에게 온전히 굴복해버렸다는 부분을 일지로 알게 된 후로.
우리는 자드가 그 이후로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는 것에 집중했다.
몇몇 관련자들을 내 특성을 이용해서 정보를 불게 하거나.
권한을 얻어내서, 조사에 도움을 주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었다.
"아스타라는 이름, 기억하시나요?"
"아스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아마 이쪽에서 좀 이름값 있는 녀석들을 뒤져볼 때.
지나가듯 들어본 느낌의 이름이야.
"좀 유명합니다. 그 누구보다 비각성자의 실력을 인정하고, 오히려 각성자를 믿지 않는 거로 유명하거든요."
"...뭐?"
그 말이랑 행동은 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머리를 뒤흔들었다.
아니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다.
그 누구보다 상대를 대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사람.
'네무가 그랬지.'
누구보다 레지스탕스의 가능성을 알고 두려워했기에.
좀 더 안전과 보안을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엘프.
...그때 생각하니까 살짝 우울해지네.
"비각성자 중에서, 실력이나 가능성이 있다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찾아내서 강간하는 편이고. 그렇게 강간해서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 주요 역할을 맡긴다네요."
오히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각성자는 믿지 않고.
자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비각성자만 중책을 맡긴다.
그리고 비각성자라고 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효율까지 제대로 잡을 수 있고.
'대부분은 비각성자는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런 편견이 없구나.'
그렇기에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금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자드의 연구도 위험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 이상으로 자드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일석이조의 선택인 강간을 택했겠지.
"잘못된 건 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걸 잘 악용하는 스타일이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저렇게 악용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로 압박당할 수 있다면.
똑같이 당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좀 짓눌러도 되겠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억지로 얻긴 했지만,
어찌 보면 잘 선별된 소중한 '자기 것'을 빼앗긴다거나.
그게 아니면 본인 자체를 이용한다거나 해도.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다음 목표는 거기가 되네."
"어떻게 하시게요?"
"딱히 큰 계획은 없어."
하나씩 테스트를 해보는 식으로 만들면 될 것 같다.
뭐가 어디까지 먹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내 특성이 강해진 덕분에, 적들이 10레벨이어도 충분히 먹히고.
범위도 훨씬 넓어져서 사용하기 좋아졌으니.
그게 엘프들에게는 어느 수준까지 적용될지는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특히 이번엔 대상이 비각성자 엘프인 거니까.'
각성을 취소해서 비각성자를 만든 적은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 질내사정을 받아서 복속이 되어버린 엘프의 경우에는
"
어떻게 효과가 발동할지는 알 수 없다.
'딱히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테스트 정도는 해보면서.
어떤 게 유리할지 하나씩 써보는 재미는 있을 거다.
"그런데, 저희 때처럼 하는 건 불가능 한 건가요?"
"응?"
"선생님은, 저희를 세뇌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셨었잖아요."
"아, 그 이야기구나."
그 부분이라면 이미 구조 경험이 있었기에.
혹시 이곳에서도 비슷한 방법이 가능할까 싶긴 했고.
그래서 테스트 비슷한 걸 시험해본 상태였다.
'다만, 이건 불가능했지.'
이전에 내가 아이들을 구할 때도, 기억을 지워서 세뇌를 지우는 건 불가능했기에.
나를 마스터로 착각하게 해서, 교육한 다음.
마스터라는 기존 세뇌 대신 나를 덮어씌우거나.
애초에 마스터를 배신하는 걸 쾌감처럼 느끼게 해서.
알아서 타락하고 나에게 푹 빠지도록 유도하는.
뭐 그런 방법들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기억들.
즉, 세뇌된 내용을 덮어씌울 수 있는 더 강한 기억이 있어서 가능한 거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결국 기억으로 조작해도 기억으로 고칠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세계수의 시스템 때문에 종속되는 건 조금 달라.'
어찌 보면 세뇌나 최면 같은 정신 조작계열이라는 것은 다를 게 없지만.
그 방향성이 너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면,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를 '좋아하고 추종하게' 만드는 효과니까.
생리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몸에 코딩이 되어 있는 것이라.
그 어떤 싫어하는 부분을 심어 놓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상대를 좋아하게 되어버린다.
'아니, 오히려 그걸 바꿔버리지.'
자신의 취향 자체를 상대에게 맞춰버린다.
취향을 조작하더라도, 취향을 뛰어넘는 의지로 상대에게 맞춰준다.
내가 아무리 수정해도, 받아들여지는 최종 단계에서 한 번 더 조작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라서.
이 방향성은 먹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었지.
아무리 쾌락을 늘리고, 비교적 더 대단한 행복감을 만들어주더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힘이 이겨내 버리기 때문에.
그 근본인 '사랑' 자체를 강제로 만드는 해당 시스템을 이기는 건 어려웠다.
"따라서,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그 녀석을 구할 수는 없어."
"그런 테스트를 하셨었군요."
"그러니까, 그건 조금 뒤로 미뤄둬야겠지."
만약 그 녀석이 연구하고 찾았던 것이 옳은 방향성이라면.
내가 그 정보를 찾아서, 우리 애들을 구하기 위해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언젠간 그녀를 포함한 이쪽의 비각성자들도 구할 수 있게 될 거다.
그걸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 지금 하는 건 어디까지나 정보만 빼내는 거군요."
"그렇지."
일단은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 그 녀석에 대한 정보도 알았으니.
그대로 가서 속이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다.
만약 잘 속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주인을 속여서 시키면 되는 거고.
"선생님?"
"응?"
"정말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되는 거 맞아요?"
"아마도?"
내 시야를 공유하며, 아이들이 이건 좀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이게 가장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혼자 가시는 건...."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임신하기 전까지의 너희는 짐이야."
0레벨과 10레벨의 차이는 크다.
아무리 경험의 차이나 무기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겠지.
그래서 다른 애들은 정보와 상황 분석의 서포트를 맡도록 준비해두고, 혼자서 이곳에 잠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