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260-24화 (284/289)

...오히려 종류별로 세 번이나 맞은 내가,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로.

'아니, 오히려 기적은 아스카인가.'

촉수 공격조차, 전부 마력으로 움직이는 저 적의 특성 때문인지.

아스카는 사실상 모든 공격에 면역인 수준이었다.

물론 지형지물을 붕괴시키는 식으로 공격하면 효과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초면에 거기까지 알아차리긴 어렵겠지.

"용사님. 지금 용사님의 몸은,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고 있어요."

"...들켰어?"

"그야, 저 적은 일종의 침식 비슷한 것으로 잠식해서 '동류'로 만들어나가는 것 같으니까요."

그렇기에 모든 공격이 비슷한 취급을 받아, 아스카에게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능'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셈이니까.

그리고 던전 브레이크로 나타났던 적들도.

지금은 어떤 원리인지 대충 이해가 갔다.

아마도 저 힘만이 일부 던전 브레이크로 흘러 들어가, 현실의 동물이나 식물들을 잠식해서 괴물로 만들었겠지.

하지만 그 적은 에너지로 만들어졌으니, 약해빠진 녀석들만 생겨났던 거고.

"솔직히 아무 능력도 없는 제가, 저 적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겠지."

"하지만 쓰러트리지 않으면, 이 던전을 부술 수도 없어요."

그렇기에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나에게 말했던 부분을 생각한다면, 그건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괜찮아. 해."

"하지만, 자칫하면 용사님이 죽어요."

"어차피 네가 구하지 못하면 죽잖아."

"그건...."

"자, 시작해."

그녀가 그대로 나를 안아버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능력이 내 몸과 연결되어 있던 촉수를 타고 올라가서.

저 망할 본체 녀석을 타격할 수 있을 테니까.

"빨리! 녀석이 네 약점을 눈치채서 천장을 부수려고 하고 있어!"

"네!"

따뜻한 온기가 반쯤 식어 있었던 내 몸을 감싸기 시작하고.

그 순간 아까 공격받았던 부위들이 간질거리며, 달라붙어 있던 것들이 천천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통스러운 줄 알았는데, 뭔가 묘하게 따뜻했다.

나를 안은 채로, 마치 기도하는 듯한 아스카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고.

그 빛은 점점 이 세계를 밝히기 시작한다.

"어...?"

이질적인 이능이 소멸한다고 생각했기에.

그저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주변으로 이어진 촉수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묘한 나무뿌리와 같은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찐득거리고 끔찍한 괴물 촉수의 집 같던 이 던전은.

어느새 커다란 나무와 꽃으로 이루어진, 묘하게 성스러운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슨 기적이라도 목도한 기분에, 나는 멍하니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혁아...!"

"주인님!"

혜은이와 혜미를 비롯해.

다들 던전이 사라지자마자, 우리들의 몸 상태부터 확인하며.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미안, 나 너무 무리했을지도."

"응, 푹 쉬어. 네 덕분에 이 세상은 지켜졌으니까."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다 같이 이야기를 해봐야지.

"...그래서,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그 던전에서 튀어나온 잔여물? 그것들을 연구하는 연구소야. 뭐 너랑 애들을 치료하는 병원이기도 하고."

"이런 건 또 언제...."

"어쩔 수 없잖아. 이런 이상한 게 출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시끄러워질 게 당연하니까."

우리끼리 조용히 조사한 다음에 넘어가자는 거구나.

딱히 그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이게 뭔지는 알았어?"

"...이 나무에서 엘프의 DNA가 확인되었어."

"뭐?"

"그래, 이 나무는 엘프와 같은 종족이거나. 흡사한 종족이라고 볼 수 있겠네."

확실히 괴물에서 나오는 마력이 엘프의 것과 닮긴 했지만.

어떻게 이런 식물이 엘프랑 같다는 거지.

...사람이 나무로 변했다?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엘프랑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명백해. 아, 그리고 무척이나 오래 산 생물이라는 것도 밝혀졌고. 엘프의 수명이 길다지만, 그것보다 몇 배는 오랜 시간이 지난 흔적이 있어."

"역시 엘프가 만든 키메라 같은 거려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오히려 이쪽이 원본이고, 엘프가 이걸 토대로 재구성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DNA였거든."

"야, 그게 무슨...."

그 순간.

엘프라는 종족이 가진 다른 유명한 특성 하나가 떠올랐다.

...엘프와 같은 DNA를 가진 나무?

"세계수, 라는 거야? 그 괴물이?"

"일단은, 그렇게 예측하는 중이야. 그래서 이능으로 더럽혀져 있던 몸이 아스카의 힘으로 정화된 거고."

"하긴, 키메라면 아스카 힘을 받아들이고 바로 망가졌겠지."

"응, 나도 비슷한 사고로 이 결과에 도달했어,"

혜은이는 자신이 이제까지 연구했던 결과를 서류로 정리해놓았는지.

아까까지 나에게 해준 설명과 관련된 서류를 건네줬다.

이따가 자세히 읽어봐야겠네.

"일단 기본적인 건 여기까지고.... 잠시, 이쪽으로 와봐. 단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어."

"둘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단 혜은이를 따라갔는데.

방문을 닫고, 특성까지 써서 소리를 차단해달라는 요청을 하길래.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본인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까."

"들을 수도 있다니?"

"하라, 내일, 소이. 이렇게 셋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어."

"본인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거야?"

"응, 이건 일단 너에게만 전해줘야 할 것 같아서."

...뭐야, 무섭게 왜 그래?

"세계수라고 부를게? 이 세계수는 일단 지금 죽은 상태야. 시체 같은 거라는 거지."

"확실히, 정화된 직후에는 괜찮다가. 금방 시들어버렸지."

"응, 맞아. 정화된 직후까지는 살아 있었지만, 현재는 죽었어. 정확히는 애초에 죽은 걸 그 침식이 억지로 되살리고 있었다고 할까?"

여기까지는 뭔가 평범한 내용 같은데.

나한테만 비밀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왜 이런 환경을 만들고....

"뭐, 이건 사전 지식 같은 부분이야. 방금 준 그 서류에도 적혀 있고."

"그래서, 본론은?"

"이능이 남아있을 때는, 이 세계수를 침식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가 되어 있었던 걸로 추측되거든?"

"응."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침식된 세계수는 침식 능력을 갖춘 몬스터가 되었겠지."

그리고 모든 공격은 그 침식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

아스카가 간단히 막아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잠시만, 굳이 이 이야기를 한다는 건?

"너를 포함해서 4명 전부, 그 침식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

"...그야, 유효타를 맞았으니까."

"그래.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는 거야."

혜은이는 엑스레이 비슷해 보이는 자료를 4개 건네줬다.

뭔가 싶어서 확인해보는데.

맨 앞장은 내 몸에, 묘한 것이 3개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이건.... 세계수...?"

"응, 심지어 살아있어."

세계수 자체가 내 몸에 침식된 상태에서.

이능 침식만 해결하면서, 세계수가 몸에 남았다는 소리다.

다만 내 몸과 완전히 연계되면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거고.

"지금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제거하고 다시 되살리면 되잖아?"

"수술로 제거하려 했지만. 불가능해. 이미 DNA 단계로 융합이 되어버려서. 세계수 자체가 원래 몸이나 마찬가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것이, 은하의 능력으로 아예 새로 창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수 자체에 무언가 힘이 있는지.

창조하는 것에 제한이 걸린 것처럼 세계수 상태로만 되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큰 문제는 없어. 적당히 에너지를 빨아먹고 있지만. 딱 그것뿐이야. 오히려 원래 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구성되고 있으니까."

"그건 다행이네."

"응, 어디까지나 너는 그런 상태야."

"...잠시만, 뭐?"

나는 괜찮다는 건.

다른 애들은 괜찮지 않다는 거잖아.

당황한 나는 급하게 받았던 엑스레이 자료를 넘겨봤다.

"...이건."

"어떻게 보여?"

"위험해 보이네...."

"내장 중 상당수가 사라진 상황이야.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나무로 바뀐 상태지."

내 경우에는 정말 작은 부분만 바뀐 것이라서.

그다지 신경 쓸 정도는 아닌 느낌이었지만.

다른 애들은 몸의 상당 부분이 세계수로 침식된 상태였다.

"아스카씨의 힘으로 네 몸에 있는 것부터 정화되었잖아?"

"응."

"정화되는 순간이라서 네 몸은 괜찮았지만. 나머지는 본체부터 정화한 뒤에, 마지막에 정화되었을 거야."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괴물은 생존을 위해서 침식의 속도를 끌어올렸고.

그 순간 셋의 몸은 이 정도로 많은 부분이 침식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정화 후에 세계수가 자리잡은 부위도 많은 거고.

"기능 자체는 없어진 부위의 모든 걸 해주고 있는데. 빨아들이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에너지?"

"응,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상시로 연산력을 빼앗긴다고 할까...?"

"연산력이라니. 세계수 자체가 사고를 한다는 거야?"

"응, 이것 때문에 자고 있어도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거야."

일단 자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건 당연하고.

그렇다고 해도 계속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건 당장은 괜찮아 보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건강에 큰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해서 잠을 못 자는 거랑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영원히 깨어 있는 것과 같은 정도의 데미지가 몸에 들어가는 건데.

과거 인체실험 결과 등을 기록한 데이터를 통해.

잠을 자지 못하면 죽는다는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죽는다고?"

"응. 확신해.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 상황상 1년 이내에 죽어."

"...1년?"

"일단 최대한 수면제를 사용해서 잠들게 하는 식으로, 연산 소모를 줄이고 있으니까. 1년보다는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일반적으로 방치했을 때 1년이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지?"

"응, 기껏해야 2년."

이런 식으로 애들의 시한부 선고를 받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저 이번 일도 잘 해결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몸 안에 그런 게 자리 잡았다니.

"해결 방법은 없어?"

"그나마 해결할 방법은 몸이 생성하는 연산력의 수준 자체를 늘리는 건데. 그건 0레벨에 도달해야 해."

"아, 그런 거라면."

"사진 다시 볼래?"

"......."

세 명 전부 자궁 부분이 나무로 대체된 상태였다.

즉, 자궁의 메인 메커니즘 자체가 세계수로 대체된 느낌.

...이게 대체 뭐지?

"시험해봤는데. 자궁의 맹약 시스템 자체가 먹히지 않아. 즉, 임신과 관련된 시스템 자체가 대체된 거야."

"그럼 임신으로 구할 수도 없다는 거야?"

"그렇게 되겠네."

"하아.... 방법은 하나도 없어?"

"그나마 하나 있긴 해. 확신은 없지만."

"...하긴, 있으니까 나한테 이야기했겠지."

"응, 아예 없으면 아마 본인들에게 시한부라고 말해줬을 거야."

왜 굳이 나한테만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그 방법이라는 게 다른 애들이 선택할 부분이 아니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거구나.

"이 자궁은 지금 완벽하지 않아. 원래의 임신 제한이 걸린 몸이랑 섞여서 그런 것 같은데...."

"아, 그것도 엘프 기술이었지."

"응, 딱히 인간에 속한 기술은 아니니까. 세계수의 자궁이 된다고 바뀌지는 않는 거지."

따라서 이번에도 그걸 우회하고 싶지만.

종족 자체가 다르기에, 인간 전용인 자궁의 맹약은 불가능하다는 거다.

즉, 다른 우회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당연히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캐야 하는데....

"세계수는 엘프의 선조 같은 느낌이야. 즉, 엘프들에게 정보가 있다는 거지."

"잠시만, 그 말은...."

"엘프 차원에 가야 해. 아무리 우회한다고 하더라도, 임신 가능성 있는 건 똑같이 몸에 세계수를 품은 너니까 당연히 같이 가야하고."

지금 와서 엘프 차원이라니.

사실상 적진에 쳐들어가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심지어 차원을 넘어야 하는 거면, F급 헌터는 아무도 못 넘어가잖아.

"만약 우회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엘프 쪽에서 만든 기술을 찾아내서 역산하는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고."

"아. 그건 본토 개발이라서 아직 못 찾았었지."

"응, 우회보다 난이도가 높겠지만. 일단 최소한 무조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 맞으니까."

그렇기에 어느 방법이든 해결 자체는 가능하니.

간다는 선택만 한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아마 본인들에게 이야기했다면,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겠지.

"......."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

"역시 그렇지?"

"응, 너무 위험하니까. 아이들도 있는데 긴 출장이 되는 것도 문제고."

알고 있다.

나도 정말 잘 알고 있는데.

내가 한 선택으로 모두를 저런 상태로 만들었는데.

책임지지 않고 넘어간다니, 그건....

"후우, 어려운 문제네."

사실 내 책임을 떠나서.

그 아이들이 위험하다면 발 벗고 뛰어나가고 싶은 게 마음이다.

내 소중한 사람이 위험하다는데, 그걸 어떻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할 것 같긴 했어."

"......."

"당연하지. 응...."

혜은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나였어도, 배우자가 이런 소리 하면 한 대 때려서 말릴 것 같은데.

"알겠어. 말린다고 듣지도 않을 텐데."

"혜은아...."

그리고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에게 애초에 이야기해주지 않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나중에 내가 화내긴 했겠지만, 그럼 확실히 나를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신경 써줘서 고마워."

"나한테 그렇게 말해도 곤란해. 도와준 누구 씨가 부탁한 거니까."

"...응?"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우리 말이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던 힘이 깨져나갔다.

잠시만, 이게 이렇게 간단히 깨져나간다는 건....

"아스카?"

"저 너무 일찍 들어왔나요?

"아니에요. 적당한 타이밍이에요. 지금 부탁한 거 관련해서 이야기하려고 했거든요."

"네, 용사님 제가 설득했어요."

"설득...?"

아스카가 여기서 왜 나오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를 제외하고는 적에 대해서 가장 많이 봐서.

쓰러져 있는 우리 대신, 이번 조사에 협력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둘이서 내린 결론이, 결국 엘프 차원에 가서 구한다는 거였어."

"하지만, 혜은이 너는 반대였을 거고."

"아무래도 그렇지. 어지간하면 말도 안 하고 넘어갈 생각이었어. 그냥 방법이 없다고 하려고 했지."

"......."

그러던 와중에 아스카가 부탁했다고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그 바보 같은 짓이 자신들의 세계를 구했고, 자신을 구했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해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제까지 은혁이 너는 그걸 기적처럼 결과로 증명해왔으니까."

"그래서, 정말로 인정했다고?"

"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면 모르겠는데.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 하나 더 있잖아."

"...뭐?"

"따라간대."

내가 엘프 차원에 갈 수 있다는 건.

내 옆으로 이동할 수 있는 아스카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따라가겠다는 거구나?

"이번에 네 목숨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다름 아닌 아스카 씨야. 그 장본인이 널 목숨 걸고 지켜주겠다는데. 믿는 수밖에 없지."

"아스카, 정말 괜찮겠어?"

"용사님의 그 바보 같은 마음에 저는 구원받았으니까요. 오히려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으면서 말하는 아스카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무언가 답을 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안 돼."

"그러지 말고...."

물론 바로 몰매를 맞았다.

혜은이가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네.

"위험한 건 맞잖아? 아무리 그 아이에게 지켜진다고 하더라도. 언제 F급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태고."

공격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사실상 10레벨 헌터들로 이루어진 파티다.

묘족의 세상보다 엘프가 훨씬 많은, 엘프의 진짜 본진이잖아?

걱정되는 게 당연하긴 하지.

"알고는 있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가. 그런 무모한 급발진 출전은 허락할 수 없어."

"확실히, 너무 무모한 작전이야. 지금 이걸 검토하라고 가져온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

그런데도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해 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거 몰래 다녀오기라도 해야 하나?

가능하면 설득하고 싶은데, 정작 나도 방법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엘프 세계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잖아.

어지간하면 도착해서 뭔가 작전을 짜야 하는 느낌인데.

그런 평소 같은 주먹구구식 방법은,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주인님이 그곳에 가는 걸 허락해드렸던 건, 확실히 F급 헌터를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이었기 때문이에요."

"맞아. 최소한 비슷한 상황이 아니면 허락할 수 없어."

...하긴, 어쩌면 저렇게라도 말해줘서 다행일 수도 있다.

무작정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계획이 안정화되면 받아주겠다는 소리였으니까.

당장 지난번에 무모하게 던전에 돌입한 것도.

상황이 상황이었고, 대체할만한 선택이 적었기에.

다들 별말 없이 넘어갔으니까.

가족의 일인데도, 나름 헌터들이라 그런지.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이야기하고 있긴 했다.

...그 앞에서 무지성 떼쓰기를 한다고 해서, 무언가 해결되지는 않겠지.

"어쩌지."

"뭐, 우리가 너무 급발진한 느낌이긴 했지.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야."

"흐잉...."

아무래도 시한부라는 문제가 있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쪽에 간 이후로도 조사가 필요하니까.

"무슨 일이야?"

"아, 공주야."

생각해보면 아직 공주에게는 이번 일에 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전부 물어보긴 했는데....

어찌 보면 이동 쪽 기술을 가진 게 공주니까, 공주부터 설득했어야 할지도.

"그러니까, 여보는 엘프 차원에 가서.... 이 아이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는 거지?"

"응."

"뭐, 기술이 좋아졌으니까. 위험하면 퇴각할 수도 있고. 확실히 나은 상황이긴 한데."

"그래?"

"그래도 너무 위험해. 특히 여보는 괜찮아도, 아스카가 위험해."

"아스카가...?"

그야 나를 지켜주니까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히 그런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위험했다.

"이제 급하게 복귀하는 건 가능해. 4명에게 하나씩 쥐여줄 수 있겠지."

"그래?"

"응, 이제까지 내가 놀았던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모든 기술이 아스카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아스카는 자위를 통해, 아스카가 나와 같은 세상에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너무 오래 걸려. 급박한 상황에, 여보를 지키고 도망치게 할 수는 있지만. 본인이 잡혀서 실험체가 되겠지."

"으음...."

"저는 괜찮아요. 다 각오하고 임하는 거니까요."

"차라리 아스카가 없는 편이, 퇴각하기는 마음 편할 거라는 거지?"

"뭐, 그렇지."

그래도 본래 계획보다는 훨씬 안전해진 상황이긴 하다.

언제든 퇴각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니까.

"다만 아무리 돈을 박아도 가진 재료는 한계가 있고, 이 방법을 여러 번 사용할 수는 없어."

"희귀하긴 한가 보네."

"아무래도."

일단 이것도 선택지에 넣어둘 수는 있겠다.

1회지만 조금 마음 편하게 돌입할 수는 있는 거잖아?

"사실 이것도 선배들이 허락할 것 같지는 않지?"

"끄응...."

그렇다고 아스카를 빼면.

내가 본래 계획보다 무방비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정말 복잡한 상황이다.

"여보, 조금 기다릴 수 있어?"

"응?"

"당장 출발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건 그렇지. 시한부라서 조심스러운 거고."

"연구 중인 게 있는데, 이게 완성되면 모두의 허락을 구할 수도 있고. 나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슨 연구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아스카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여럿 가져오더니.

뭔가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혜은이랑 너랑 아스카 셋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라고?"

"응, 맞아."

아스카의 모든 신비를 지워내는 힘을.

내가 모르는 사이 셋이서 연구하고 있었나 보다.

물론 엘프들이 하던 것과 다르게, 자체적으로 힘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뭐, 소득은 거의 없었지만."

기껏해야 기존에 발동되었던 능력들의 세부 메커니즘만 파악하는 정도.

여전히 저 힘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 치고는, 꽤 열심히 했네?"

"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거든."

"본인이 원했던 소원이 있어서 말이야."

"...용사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녀와 내가 아무리 질내사정 섹스를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스카는 몰래 낳은 아이라서, 그 어떤 수술도 없기에 정상적인 자궁을 가지고 있다.

즉, 오로지 종족의 차이 때문에 아이가 가져지지 않는 상황.

"처음에는 어떻게든 우리 기술인 자궁의 맹약을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불가능했어."

"그야 종족이 다르니까...."

"아, 그 부분은 괜찮더라."

지금 문제가 된 애들은 세계수로 자궁이 대체되면서.

다른 법칙을 완전히 거부하는 중이지만.

아스카는 이미 반 정도는 묘족의 몸을 가지고 있고.

실험 결과 묘족의 특성이 인간과 비슷하기에, 자궁의 맹약 시스템을 일부 적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오히려, 이 자궁의 맹약조차 특성이라 판단하여 지워버리는 점.

"그러다가 조금 그럴듯한 연구에 성공했거든."

"그럴듯한 연구?"

"결국 기존 자궁의 맹약은, 자궁 자체를 네 정액을 임신하기 적절한 몸으로 만드는 거잖아?"

"응."

그렇기에 배꼽에 새로운 자궁을 만들어서 해결하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렇게 아스카의 몸을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 시점에서, 이 특성이 적용되는 대상을 다르게 잡으면 어떨까 싶었다고 한다.

"잠깐만, 나한테 임신시키려는 건 아니지?"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혜은아!?"

"크흠, 아무튼.... 자지 안쪽에 작은 정액 구멍을 만들 생각이었지."

"응...?"

"배꼽 자궁처럼, 자지 안쪽에 새로운 불알을 품는다고 생각하면 돼."

뭔가 그렇게 설명하니까 끔찍한데...?

물론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그냥 어떤 지점에서 특수한 정액이 생산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액 자체를 아스카 전용으로 맞춘다는 소리구나.

아스카의 자궁은 그것만으로도 임신할 수 있을 거고.

이건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

"나머지 시스템은 자궁의 맹약이랑 완전히 같은 느낌이야. 뭐, 그걸 베이스로 잡았으니까."

"잠시만, 그런데 아스카는 어떻게 맹약에 참여가 가능한 거야?"

"아스카의 힘은, 10레벨은커녕 0레벨보다 강한 우선도를 지녔잖아?"

"그렇지?"

그렇기에 그 부분은 10레벨 이상으로 오인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따로 뭘 하지 않아도 시스템을 속일 수는 있다고.

"...그래서, 이 임신에 관해서 이야기한 이유가 뭐야?"

이 타이밍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임신을 하는 것에 엄청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원래 기술을 대충 변환하다가 생긴 문제? 같은 건데."

"응."

"아무래도 그 불알이, 시스템적으로 일종의 자궁처럼 인식되는 모양이거든."

"잠시만, 뭐?"

"그리고 그 불알이 만든 정액이 수정된다면. 자궁에 아이를 만들어낸 느낌으로 오인되고."

"응,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네가 임신했다고 시스템이 인식하더라."

"잠시만, 이야기를 못 따라가겠어."

내가 자궁은 없지만, 시스템은 임신한 자궁을 가졌다고 판단한다고?

...임신한 자궁이 있으면, F급 헌터가 되는 거잖아.

어라?

"맞아. 이 기술이 완성만 되면, 여보 본인이 F급 헌터가 될 수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기술이었다.

내가 0레벨로 각성할 수 있으면.

엘프 차원에 도착하는 동시에 0레벨이 되어, 그걸 기반으로 상황을 진행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아, 다들 F급 헌터가 없어서 위험하다는 거였으니까. 내가 직접 되면 된다는 거구나."

"응. 그래서 이야기를 해봤어.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허어...."

다만 이 부분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았다고 한다.

아까 설명할 때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일단 내가 아스카에 닿는 순간, 그녀의 능력으로 맹약이 증발할 테니까.

맹약의 주체를 나로 바꾸어서, 영향을 줄인다고 하지만.

닿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게 되니까.

"그랬었지...."

"그러네, 그런 기술이 있었지."

"혜은아?"

"그 문제점이라면, 아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듣고 있던 혜은이는 자료를 몇 개 꺼내더니, 공주에게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내 사진들 같은데?

"은혁이의 몸에 있는 세계수는, 에너지를 흡수해서 장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

"그렇지?"

"그걸 이용해서, 이 녀석이 아공간 불알의 역할을 하도록 능력을 유도한다면?"

"어?"

"이 세계수 자체는 몸의 일부라서, 이능으로 취급되지 않거든. 그래서 남아있는 거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뭔가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이 모든 원흉에게서 해결법을 찾게 된다니.

참 아이러니하네.

"확실히, 이거라면...."

"바로 적용해보면서 시뮬레이션 돌려보자. 가능하면 빨리 준비될수록 좋은 상황이니까."

"네, 지금부터 '자지의 맹약'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내가 방금 뭘 잘못 들은 거겠지?

"흐암...."

"수고했어. 거의 매일 같이 철야라니. 조금은 쉬면서 해도 괜찮은데."

"한시라도 급하잖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고."

혜은이와 공주는 잠을 줄여가면서 '자지의 맹약'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 헌터라서 그런지 마음가짐 자체가 남달랐다.

"그래도, 너희도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 끝났는데 뭐. 아스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전부 준비해놨으니까. 이제는 출발만 하면 될 거야."

"응, 푹 쉬어."

나는 피곤으로 뻗은 둘의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주다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제 슬슬 정말로 떠날 준비를 해야겠네.

"애들은?"

"다들 잠들었지. 너무 고생한 거 아니야?"

"이 정도는 해야 애들한테 덜 미안하지."

한동안 아빠가 자리를 비우는 셈이니.

최근에는 애들한테 집중하면서, 애들이 원하는 곳에서 실컷 놀아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 같이 여행도 다녀왔고.

"애들이랑 마지막 인사도 했고, 자지의 맹약 프로젝트도 완성되었으니까...."

"이제 떠나는 것만 남았네요.

"그래. 아스카 너도 최대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

"네."

아무래도 타이밍이 엇갈리지 않으려면.

우리가 떠난 뒤에, 최대한 빨리 자위해서 이동해야 하니까.

아스카는 미리 예열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 그 전에. 자지의 맹약 관련해서는 전부 교육받았지?"

"네, 이제 언제든 용사님의 아이를 밸 준비가 되었다고요?"

음, 그나저나 내가 아스카랑 아이를 만들면.

어떤 외모가 탄생하게 되는 거지?

이제 내 몸에 세계수도 깃들어 있으니, 아무래도 엘프 쪽이 강하려나?

'엘프인 딸이 각성해서 후타나리로 자라는 꼬라지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데....'

그건 남자아이로 키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여자아이로 키워야 하는 걸까.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주인님, 준비 끝났어요."

"선생님!"

"응. 얘들아, 준비하자."

하라, 내일, 소이.

이 셋은 자신들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번 일도 엘프들의 새 위험이 파악되어서, 그것을 확인하러 파견되는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임무라니까,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것을 바로 승낙했다.

...이 착한 아이들이, 내 실수로 죽는다면 역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위험하더라도, 이 아이들을 살리려는 도전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더라.

"주인님, 다치지 말고 다녀오세요."

"응."

지금은 포탈을 생성해주기로 했던 혜미만 배웅을 해주고 있지만.

이미 어제 다들 울면서 껴안고 배웅을 해줬기에.

이렇게 진짜 떠나려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고민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문제지.

이런 기분 없이, 다치지 않고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하고 떠나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포탈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경계부터.'

포탈을 통해서 도착하는 장소가 어디일지는 모르니.

우리는 포탈을 넘어오자마자,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다행히, 도착하자마자 무언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도심 느낌이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돌아다니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주변을 조용히 둘러보며.

곧바로 자위를 통해 따라올 아스카의 보호를 하기 위해 경계를 시작했다.

"흐우웃...♡"

곧이어 숨을 헐떡이는 아스카가 도착했고.

아스카는 내 쪽을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확실히 가버린 직후에는 집중하기 힘들겠지.

지난번에 나를 구해줄 때가 초인적인 정신을 발휘한 느낌이겠지.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가버리는 순간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법이니까.

귀엽긴 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상황에 대응해야 했기에.

나는 그대로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껴안았다.

"에헤헤...."

"수고했어. 이제 지낼 곳부터 찾자."

일단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앞으로 지낼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엘프도 발전된 사회일 테니, 어디 숙박업소에 들어가면 끝이겠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다면, 현재 우리는 이쪽 문화권의 화폐가 없다는 거였다.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챙겨오긴 했지만, 이게 의미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고.'

애초에 경비 시스템이 우리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는 이상.

평범하게 돈이 있더라도, 당장 숙소를 잡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알아보며, 이쪽 세계의 시스템을 알아두는 편이 낫겠지.

"저기 편의점이 있는 것 같은데, 가서 물어보자."

일단 전당포에 관해 물어보면서.

은근슬쩍 상식에 대한 것들도 알아보면 좋겠지.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이쪽 세상의 비각성자가 차별받는다는 점이다.

각성자는 후타나리가 되어, 남성의 역할을 하고.

비각성자는 여성의 역할을 하는 모양인데.

그 부분 때문에 성별이라는 것 자체가, 힘의 논리로 지배될 거고.

엘프들의 조작으로 인해, 남성이 각성하지 못하던 지구처럼.

두 성별이 극단적으로 나뉘어서 대립할 가능성이 컸다.

"네? 전당포요?"

"놀러 왔다가 현금이 떨어져서요. 통장에 안 넣어두고 돌아다니니까, 이런 사고가 생기네요."

"저, 그...."

"왜 그러세요?"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근처의 전당포는...."

별생각 없이 편의점의 직원에게 상황을 묻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굉음이 들리더니, 어느새 편의점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누군가가 들어오고.

방금까지 우리가 대화하던 직원을 납치하려고 했다.

"잠깐, 뭐 하시는 거죠?"

"...이런, 선객이 있었나 보네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시발 편의점 알바는 왜 조지는 거야.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더 어렵네.

"으음, 표정을 보아하니 몰랐던 모양이네요."

그렇게 말한 여성은, 묘한 디자인의 막대기를 꺼내더니.

편의점 직원의 자궁 근처에 가져다 댔고.

그러자마자 막대기에서 시끄러운 알림음이 울리면서 붉은빛이 점멸했다.

"보세요. 이 여자 주인이 없는 노예거든요."

"노예...?"

"아, 타지역 사람이라 단어가 좀 다른가요? 각성하지 않은 미각성자? 암컷? 미물? 뭐, 어떻게 표현하던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요."

...비각성자는 이쪽 세계에서 거의 노예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다른 차원에 넘어와서도.

다른 종족을 그따위로 대하고 있지.

당장 자기 종족한테도 그런 식으로 행동했으니, 그 행동이 밖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간 것이리라.

"그래서요?"

"강간할 생각이었죠. 제 취향이라서요."

"...강간?"

"강간해서 제 정액으로 마킹 한다면, 평생 저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잖아요? 후후, 최근에는 괜찮은 녀석이 없어서 무료한 삶이었는데 잘 되었죠."

...잠시만.

왜 갑자기 강간이라는 말이 나오나 했는데.

정액 마킹을 통해, 평생 복종하는 노예가 된다고?

그건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임과 동시에.

이제까지 왜 세뇌 따위의 시스템에 엘프들이 익숙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여긴 원래 종족 시스템 자체가 그딴 식이었구나?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당장은 내가 힘이 없다.

상대는 가슴이 저렇게 심하게 출렁거릴 정도니, 아마 높은 확률로 레벨 10일 거고.

엘프 레벨 10이라면, 당장 우리 전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제압 가능한 9레벨이더라도.

지금 우리는 최대한 조심하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최소한 내가 0레벨이 되기 전까지는 그래야겠지.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과격하게 잡아서 따먹는 건 처음 봐서요."

"뭐, 도시에 따라 이런 걸 지양하는 분위기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쪽은 이렇다 보니. 조금 지저분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저는 방금 그 비각성자한테 묻던 게 있거든요. 대신 답해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전당포의 위치를 찾고 있습니다. 갑자기 급전이 떨어져서요."

"아하.... 블랙 마켓을 찾으시는군요."

블랙 마켓...?

전당포를 찾는데 블랙 마켓 이야기가 나온 것 보면.

그곳에 전당포가 있는 게 상식인 모양이다.

"네, 이 지역은 처음이라."

"나가셔서 우측으로 쭉 가시다 보면, 표지판이 보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후후, 좋은 여행 되시길."

곧 강간하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하다.

애초에 강간할 대상인 비각성자 자체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에게는 친절해도, 인간이 아닌 '물건'에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

"응,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들이 알려준 길로 가는 도중.

내일이는 잠시 내 손을 붙잡으면서 바르르 떨었다.

엘프 마스터에게 복종하기 위한 세뇌 교육 때문에 고통받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

"가능하다면, 저들도 구하자는 거지?"

"...네."

질내사정을 받는 것만으로도 복종하게 되는, 그런 자율성 하나 없는 삶이라니.

확실히 끔찍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면 구원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복부 노출해주세요."

"...네."

그리고 우리가 블랙 마켓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는 철저하게 각성자 검사를 하고 나서야 들여보내 줬다.

각성자와 주인이 있는 비각성자만 받아주는 곳이었으니까.

아스카는 비각성자긴 하지만, 장비를 배에 가져가는 순간 장치의 능력이 무효화 되어.

다른 의미로 알림음이 울리지 않아, 전원 각성자로 취급되어 안전하게 돌입할 수 있었다.

...한국이랑 다르게 이런 식으로 간편하게 인증을 한다니, 앞으로 활동하기는 편하겠네.

하긴, 빡빡하게 본인 인증을 하는 나라가 더 적긴 하다.

한국이 특이한 거지.

"일단, 전당포에 가서 물건 몇 개 맡기고 돈부터 구하자."

방금 힘이 없어서 짜증이 났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힘을 가지는 부분에 대해, 약간 조급함이 생겨났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요."

"응?"

"엘프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해서, 사실 좀 특이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겉보기에는 지구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지?

확실히 그런 느낌이긴 했다.

분명 내 몸에도 박혀 있을 세계수 같은 나무조차 보이지 않으니까.

본래 엘프라는 것은, 자연과 함께하는 그런 종족일 텐데.

심지어 세계수라는 개념이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아는 그런 느낌이 맞을 텐데.

어째서 이리 평범한 도시 느낌인지 모르겠다.

"너무 황폐한 도시 느낌이잖아."

"어떻게 보면, 지구보다 심할지도."

확실히, 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는 느낌이긴 했다.

지구에서도 나무를 최대한 심어서, 너무 회색의 도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추세인데.

이건 그런 게 없는 느낌이네.

"나중에 한 번 알아보자. 뭔가 이유가 있겠지."

어떤 현상이든 원인이 있기에 성립하는 법이니.

이쪽에도 이런 상황이 된 원인이 있을 거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겠지.

"여기 전당포 맞죠?"

"네, 돈도 빌려드리고. 아예 매입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들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이쪽에서도 가치가 있을 법한 보석이나.

최상급 마력석 등의 재료들을 꺼냈다.

물론 당연히 가치의 판단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름 애매한 것부터 다 가져왔으니까 하나쯤은 걸리겠지.

"꽤 양이 많군요.... 몇 개는 식민지 쪽이 출처인 걸로 보이는데요?"

"네, 이전에 매입한 적이 있어서요. 되팔 생각이 없던 것들이라, 어느새 증명서를 잃어버려서.... 아마 정품일 겁니다."

"그래도 샀던 가격은 못 받으실 겁니다. 아무래도 출처 증명에서 붙는 가치도 있으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팔 생각은 없습니다. 금방 자금이 정상화되면 되찾을 생각이고요."

"그런 경우가 많죠. 대강 감정해 봤는데, 이 정도까지는 드릴 수 있겠는데요?"

계산기를 찍어서 모니터에 띄워주는 걸 보고.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3천 500만 닢으로 괜찮으신 거죠?"

"네, 믿고 맡기겠습니다."

솔직히 좀 호구 당하는 거여도 상관없다.

당장 지낼 정도의 자금만 확보되면.

그 뒤로는 아무 문제 없으니까.

"마력 패턴 인식해주시고요. 네, 나중에 찾으러 오시면 돈이랑 마력 패턴 인증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기한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물건은 경매로 넘어간다.

뭐, 사실 그냥 팔려다가 의심 가지 않도록 빌리는 것으로 했으니.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의외로 평범하네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전당포 주인은 각성자였고.

그 직원들은 전부 비각성자였다.

...주인의 말을 행복한 표정으로 척척 따르는 걸 보면, 종속된 걸로 의심되었지만.

여기선 그게 당연한 거라서,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여기가 괜찮겠네."

숙소의 1박 비용이 10만 닢 정도였으니.

아까 받은 금액이 그리 작지는 않은 것 같다.

하긴, 이쪽에서는 희귀한 것들도 조금 있었던 것 같으니까.

"일단 간단히 짐 풀고.... 저녁이나 먹을까?"

"그러고 보니, 여기 오고 나서 밥을 안 먹었었죠...."

"응, 다들 많이 허기질 거 아냐. 룸서비스라도 시킬까?"

"오.... 저 그런 거 처음 해봐요."

헌터라 돈도 많을 텐데, 이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니.

...하긴, 나도 맨날 돈 생기면 복지 시설 짓는 데다가 때려 박느라 돈이 없더라.

그나마 요즘에는 우리 아들딸 선물 비용에 투자를 많이 하긴 하는데....

"뭔가 음식이 다르네요."

"아무래도 문화권이 다르니까. 음식 스타일도 다르겠지."

솔직히 음식 중 상당수가 고기에.

채소라고는 찾기 힘든데다.

아주 비싼 메뉴만 약간의 채소로 이루어져 있고,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 계열도 굉장히 부족해 보였다.

"흐음...."

"선생님? 안 드세요?"

"아, 먹고 있어."

저 가격으로 풀때기를 파는 걸 보면 채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엘프라는 종족이, 이렇게까지 기름진 음식이 발전했다는 게 좀 이상했다.

좋아하지만 제한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식물 자체가 사치품이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고기도 우리가 아는 평범한 고기보다는, 몬스터 고기를 개선한 것에 가까워 보였고.

'...몬스터를 식용으로 만드는 문화가 발전한 건가?'

어째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그런 의문들이 조금 떠올랐다.

"설마...."

생각해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차원 침략을 하진 않았을 거다.

차원 침략 같은 걸 개발하고, 전쟁을 준비하려면.

그것 자체가 엄청난 재화를 요구하는 일이니까.

사실 어떤 증거가 있거나, 특별히 기록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묘한 확신이 차오르는, 그런 상황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세계수라는 건 엘프의 생명줄이나 신화 같은 걸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세계수의 파편 비슷한 건.

이상한 괴물의 일부가 되어 타락해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 원본의 상태는 어떠할까.

만약, 엘프들이 세계수를 잃은 뒤로 차근차근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면?

그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서, 지금처럼 던전의 몬스터에 기생하는 식습관이 만들어졌다면?

그럼 모든 것들이 설명된다.

이쪽 세계는 아까 보니까, 던전과 헌터 시스템도 발달한 모양이던데.

아마도 이제까지 침략당할 때 나타났던 강력한 던전들은.

이쪽에 나타나는 것을 슬쩍 짬처리 한 것으로 보이니, 그런 부분에서도 멸망은 다가오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죽음이 확정된 세계에서.

다른 세상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해서라도, 자신들이 살아남고자 하는 명분이라면.

아마 전 세계가 동의해서 그딴 계획을 세워도, 통과해서 돌아갔을 거다.

'극비 프로젝트라, 알려진 것 자체가 없었지만. 식민지에서 무언가 빼내려는 것 같긴 했었지.'

꽤 어려운 것이고, 장기 프로젝트인 것 같았지만.

아마 그걸 이쪽으로 가져와서, 이 세계를 살리는 게 목표였던 모양이네, ...물론 그것으로 인해 피해 보는, 다른 세계에 대한 의견 고려는 전혀 없었겠지만.

옳냐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어떤 사고와 사건들로 이 자리에 도달했는지.

그 흐름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이건 차차 맞는지 증명을 해보도록 하고."

아무래도 궁금해져서 이쪽으로 노선이 바뀌어버렸지만.

사실 오늘 저녁 식사 후에 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것 때문에 따로 방을 나눈 거예요?"

"그렇지 뭐."

다 같이 잠을 자기 위한 커다란 방 하나와.

'자지의 맹약'을 통해....

아스카와 내가 진심 임신 섹스를 하기 위한, 섹스 전용 방까지.

"오히려, 아까 그 방보다는 야한 분위기 없이 평범하네."

"그러게요. 대신, 저랑 용사님뿐이고요."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우리끼리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지잖아.

나는 조금 황당해져서,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 섹스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당부할 게 있어."

"네?"

"자지의 맹약 말이야, 혜은이랑 공주는 그냥 방법에 대해서만 말해줬지?"

"뭐, 그렇죠?"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항상 조용히 넘어갔다.

자궁의 맹약을 진행할 때, 어지간해서는 그걸 해결하는 주체가 나였기에.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중요했던 거지.

...하지만 오늘은 성별을 바꾸어 만들어낸 특별한 맹약으로, 이번에 시도하는 것이 처음이다.

따라서 그런 세부적인 것들에 어떤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변화요?"

"응."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성별이 역전되는 것으로 인해.

그 해결의 주체까지 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거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 맹약은 아스카에게 전부 맡기는 것이 되어버린다.

나야 이미 9번의 경험이 있지만.

아스카에게는 처음인 셈이니까.

내가 아는 것들을 미리 설명해줄 필요성을 느꼈다.

"용사님은 역시 철저하시네요."

"가볍게 준비했다가, 소중한 사람이 다치는 건 싫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스카는 내 말에 금방 설득되더니.

내가 불러주는 상황이나 해결법들에 대해서, 열심히 받아적으며 공부해줬다.

아마 아스카는 똑똑하니까, 저 정도 벼락치기면 퍙서에 충분히 비슷한 상황에서 떠올리겠지.

"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긴 하네. 이제 슬슬 시작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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