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는 정확하게 건물을 관통하는 기둥 라인에 붙어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기둥 내부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여기겠지?"
나는 네무가 조작해서 만든, 고위 권한이 있는 카드를 꺼냈고.
그 카드를 변기 뒤쪽의 물통 안에 집에 넣어, 인식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삑 하는 인증 음과 함께, 변기 뒤쪽에 있던 벽이 천천히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엄청나네...."
그리고 그 벽 안쪽에는, 바닥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나는 대충 물기를 닦아낸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시 작은 소음과 함께 벽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엘리베이터 내부를 살폈다.
'특별한 건 없네.'
어차피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2개의 버튼만 존재하는 엘리베이터로.
도착하고 나면 카드를 인식해서 나가는 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있는 정도의 기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나저나 위쪽 말고 앞쪽에도 문이 있는 걸 보니, 지하에서는 앞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뭔가, 지하로 내려오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
이전에 아스카가 이곳에 갇혀있는 것이 찍힌 사진을 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껴지던 연구실 분위기가 벌써 보이는 느낌이다.
공기 관리를 잘하는지, 문이 열리고 들어간 지하의 느낌은 굉장히 쾌적했다.
'성적 학대나 이런 걸 생각할만한 연구소는 아니네.'
연구소라길래, 저번에 시리의 공장이나 니플이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연구소 같은 느낌을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정말 깔끔한 느낌의 제대로 된 연구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가혹한 인체 실험도 서슴지 않는다는 정도?
'여기가 연구 1동이라고 했지.'
솔직히 이곳의 출입하는 것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나 같은 딱 봐도 외부인인 사람이 들어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잖아?
나름 숨은 연구소지만, 권한만 있으면 자유롭게 들어오고 구경이 가능한 곳이다.
'문제는 연구 3동이지.'
연구 2동도 권한이 더 필요하긴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내가 들어가야 하는 연구 3동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곳은 오로지 아스카의 몸을 연구하기 위한 곳이니까.
'뭐, 어쩔 수 없지만..'
어느새 연구 2동으로 카드를 찍고 넘어오자, 조금 외부인을 신경 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예 없는 일은 아니기에, 나를 누군가가 제지하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아니면 내 얼굴을 알아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고.
'지금...!'
나는 그렇게 모두가 나를 무시하고 있을 때.
단숨에 몸을 가속해서 연구 3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연구 2동의 엘프들은 꽤 당황해했다.
'놀랄만하지. 제대로 된 연구원이 아니라면 들어가는 것조차 이상한 곳이니까.'
이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특이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 타면 연구 3동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2동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즉, 이곳에 들어가는 연구원은 모든 연구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이 엘리베이터에도 식량이나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서 보내는 용도로 쓰이는 게 일반적인 모양.
누가 봐도 연구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인간이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거다.
...뭐, 그렇다고 한번 오면 다시는 못 돌아가는 길을 쫓아오는 바보는 없었지만.
"...누구세요?"
"신입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런 복장은 아닌데요."
"그래요?"
으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바로 유림이에게 신호를 전달했고.
유림이는 곧바로 내 몸에 버프를 걸어, F급 헌터 수준의 화력을 깃들여줬다.
"정답입니다."
"윽!?"
단숨에 연구원을 날려 보낸 뒤, 연구 3동 중앙에 있는 아스카에게로 달렸다.
사진에 있던 모습 그대로긴 한대, 조금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좀 야위었다.
하긴, 고생이 많긴 했겠지.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상한 녀석이 와 있었네."
"루이코."
"음? 나를 알아?"
잘 알지.
엘프라 그런지 더 내가 알던 얼굴 그대로다.
공주를, 하늘이를 과거로 보내서 나를 죽이려고 했던 다른 회차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미코였나? 어째서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굳이 목표를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당장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속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아스카에 대한 방비가 강해지지 않을 테니까.
"친구가 죽어서 말이지. 이유를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
"친구?"
"네무."
"아하, 그 주제도 모르는 년 때문이었나."
음, 처음에는 아무래도 비주얼과 목소리 때문에 공주에 대한 화가 많이 났는데.
저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네무와 관련된 부분도 짜증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분명 네무도 그녀와 같은 엘프일 텐데도,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바로 전해진다.
'아니,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있나?'
그녀가 즐겁고 재밌어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성격이라는 느낌도 꽤 드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자신을 가르치는 듯한 그녀의 행동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고, 주제도 모른다는 표현을 했겠지.
"저는 죽은 친구를 위해서라도, 당신을 이곳에서 쓰러트려서 사과받아야겠습니다."
"그건 안타깝네. 절대로 사과할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이건 네가 이겨도 마찬가지야."
"......."
"왜냐면 나는 해야 할 걸 했을 뿐이거든."
"뭔...."
"그런 버러지를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드는 거야말로,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대체 누가 누구한테 버러지라고 하는 거야, 이 쓰레기가.
나는 이를 아득 깨물며, 곧바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군. 확실히 무슨 자신감으로 여기까지 도달했는지는 알겠어."
"......."
생각보다 루이코는 내 공격을 쉽게 피해냈다.
스펙에서는 내가 위지만, 실전 경험에서는 더 높다는 건가.
살아온 시간과 겪은 전투의 차이가, 스펙 차이를 어느 정도 메꿔주고 있었다.
아니지.
이제까지 그런 차이는 자주 겪었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루이코 본인의 재능이고 강함이 녹아든 것도 있을 거다.
"참 신기해. 한계 돌파라고 했던가? 그걸 하는 애들을 배신해서 자리를 잡은 네가. 정작 그 능력을 이용해서 나를 쓰러트리려 하다니."
"......."
"너에게 죽임을 당했던 네 동족에게는 사과하지 않는 건가? 엘프 친구는 중요하지만, 동족 친구는 중요하지 않은가 보군."
"닥쳐."
"하긴, 전제부터가 틀렸으니 그럴 만 한가."
그렇게 말한 루이코는 쥐고 있던 총을 내게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고.
나는 곧바로 자리를 이탈해 공격을 피해냈다.
그렇게 어렵진 않지만, 만약 실수로 스치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전제가 틀렸다고?"
"애초에 너는 미코가 아니니까."
"뭐?"
"내가 아는 미코와 행동 양상이 전혀 달라. 지금처럼 바깥에 연기하는 시기가 아닌데도, 이 정도 차이를 보인다면 타인이겠지."
가능하면 모르고 뒈져주길 원했는데.
하긴 루이코는 이쪽 침략 당시부터 있던 엘프인 모양이니.
내 행동만으로도 미코인지 아닌지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긴 했다.
"눈치가 빠르네."
"하지만 이상해, 아무리 봐도 뒤진 년에 대한 건 진심으로 화내는 것 같단 말이지. 넌 대체 누구지?"
"말했잖아. 친구라고."
"엘프의 친구가 미코를 사칭하는 한계 돌파 묘족이라.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말이 안 되겠지.
그럼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아니,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 같으니까 이럴 때는 진실로 받아치는 게 맞겠지.
"...네무의 선생님이다."
"선생님? 선생님이라.... 레지스탕스나 알법한 능력을 쓰는 선생님을 가진 엘프, 죽이질 잘한 것 같은데? 배신자였군."
"애초에 배신한 건 너희지. 우리한테 치명적일 수 있는 보안 정책을 그렇게 네무가 말해줘도 만들지 않았잖아?"
"...뭐?"
"감사 인사를 하는 거다. 이 멍청아. 그래, 나는 레지스탕스야. 너희가 네무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이미 이 세상에 없었겠지만."
전투는 솔직히 말해서 비등비등하다.
오히려 스택을 계속 소모하면서 싸워야 하는 내가, 저 녀석보다 더 장기전을 끌고 가기 힘드니.
전체적으로 보면 불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 내에 결착을 내지 못할 경우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녀석의 멘탈만 흔들어도 이길 수 있겠지.
물론 나이를 헛으로 처먹지는 않았을 테니, 쉽게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이해가 가지 않아. 그렇다면 왜 그녀는 배신했지? 네 말대로라면 누구보다 충성이 깊은 녀석일 텐데."
"그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너라면 자기 의견을 무시한 탓에 자신이 당했다면, 그 뒤에 배신하지 않고 순직하겠어?"
그럴 리가 없지.
끝까지 자기 의견을 무시한 벌을 받게 할 거다.
잔뜩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지.
"뭐, 본인은 조금 달랐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 예상은 그래. 그래서 유일하게 그녀가 대단하다는 걸 칭찬해준 내 가르침을 받아, 너희를 적대하게 된 거지."
"......."
"아군조차 무시하고 핍박하며 자리를 지키려 한 결과가, 가장 중요한 이 연구소까지 내가 들어와서 공격하게 된 지금인 셈이지."
대놓고 짜증이 난 표정이다.
딱히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귀찮아졌다고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나만 처리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당연한가.
"그리고 조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주자면. 지금 내가 쓰는 건, 이전의 레지스탕스가 쓰던 한계 돌파랑은 달라. 훨씬 쉽게 양산할 수 있지."
10레벨만 있으면, 스택 박으면 잠시지만 지금 스펙으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가장 중요한 정보를 빼가면서 말하고 있지만.
말하는 것 자체는 진실이기에, 조금 혼란스러울 거다.
"양산이라...."
"애초에 불가능하지. 그게 무서워서 남자는 각성하지 못하도록 수술시키고 있잖아?"
"그건 그렇군."
"아무튼 이 양산법을 쓰면...."
나는 싸우는 척하면서 바지를 찢어 내 하반신을 노출했다.
남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뭣...!"
"남자도 한계 돌파 수준의 각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거든. 재밌지?"
그녀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처음 듣는 정보가 많으니, 아무래도 당황스럽겠지.
물론 지금 내가 말한 것이 전부 허풍에 가깝긴 하지만, 그걸 알아차릴 수 없다면 초조해질 거다.
'원군을 고려해야 하니까.'
남자 각성자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심지어 0레벨에 도달시킬 수 있는 양산법이 있다니.
지금 많이 어지러울 거다.
"...아니, 마치 한계 돌파 단계까지 비각성자였던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속임인 것 같네. 원래 각성자였겠어."
"의외로 눈치가 빠르네. 맞아. 우연히 수술에 실패한 채로 자라나서, 겉으로는 수술이 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용이 안 된 사례거든."
물론 애초에 묘족이 아니라 인간이긴 했지만.
결국 어느 쪽이든 수술로 각성자를 없애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난질해둔 자궁을 통해 임신시키는 것보다는 쉽지."
"...확실히 장난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군.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는 틀리지 않았어."
"......."
"솔직히 어찌 되든 좋은 일이야. 그런 귀찮은 곳에 힘쓰지 않아도. 너 같은 쓰레기들을 박멸할 힘은 개발했으니까."
그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총구를 나에게로 향한다.
네무를 죽게 만든 병기, 맞는 순간 모든 각성 능력과 마력이 소멸하고.
그 어떤 능력도 통하지 않는 몸이 되어, 총으로 치명상을 입으면 반드시 죽는 물건이다.
"아직은 연구가 부족해서 이런 형태만 가능하지만. 나중에는 훨씬 눈치채기 힘들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
"그럴 일은 없어. 그 전에 내가 아스카를 구해서 빠져나갈 거니까."
"재밌는 소리군."
잠시 대화하는 동안 멈췄던 싸움이,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시작된다.
나는 그녀보다 훨씬 강력한 마력을 기반으로 한, 능력적 우위로.
그녀는 한 번만 맞추면 나를 끝낼 수 있는, 장비적 우위로.
나름 밸런스가 적절했던 탓에, 싸움은 꽤 길어진다.
초반보다는 다급해진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데도 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혜은이의 능력을 빌려,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일부러 일부 틈을 케어하지 않고, 공격 쪽에 집중했다.
상대방도 기회를 엿보고 있는 데다, 초조해져서 마음이 급할 테니 일부러 만들어낸 이 틈에 낚일 거다.
물론 그 틈을 만들어내면서 생긴 내 여유는 고스란히 화력 강화에 들어갔고.
정확하게 맞춘다면, 확실하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필살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에 맞는다고 즉사할 정도는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을 맞는 것으로 나에게 총을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역시.'
그녀는 내 생각대로 움직여줬고.
내가 방금 만들어낸 필살기는 그녀의 몸에 적중했다.
다만 그것과 동시에 쏘아낸 총알 또한 내 팔을 관통한다.
일순간 나에게 쌓여있던 유림이의 버프 스택과 능력이 모두 증발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마력이 한 톨도 남김없이 증발한다.
겨우 왼손에 박혔을 뿐인데, 엄청난 효과다.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틀림없이 지겠지.'
제대로 타격이 들어간 탓에, 저 녀석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사실상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각성 상태가 남아있는 것과 지금 나처럼 일반인 상태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연구해 왔어.'
네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네무의 시체를 통해서 저 무기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를 마쳤고.
그에 따라서 만든 계획인 만큼, 탈출구는 있었다.
"끄으으윽...!"
나는 바로 옆에 있던 재단기로 달려가 왼팔을 통째로 넣은 뒤.
있는 힘껏 몸의 무게를 실어서 눌러, 단숨에 왼팔을 절단해냈다.
어떤 마취도 없이 행한 행위에, 강렬한 통증이 몰려왔지만.
그것과 동시에 돌아오기 시작하는 마력에 안도했다.
'녀석이 회복하기 전에....'
지금 그녀가 몸의 수복하기 위해 모든 마력을 쏟아붓고 있을 때가 찬스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사용해서 녀석의 마력 회복을 틀어막고.
마력이 없어져 무능력자에 가까워지는 순간, '해줘'를 써서 움직임을 막았다.
"어때, 패배한 기분은?"
"...놀랍군. 그런 단점이 있었을 줄이야."
물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총탄에 있던 성분이 몸에 퍼져나가서 영영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되지만.
나는 맞자마자 팔을 통째로 절단해 버렸으니, 아직 나머지 부위에는 문제가 없었다.
...팔 한쪽이 없는 거야, 돌아가면 은하가 다시 만들어 주겠지?
"나갈 방법이나 말해."
"하, 그것도 모르는 채로 온 건가?"
"애초에 너밖에 모르잖아. 개소리할 시간에 뱉어."
나는 특성을 이용해, 그녀가 알고 있을 법한 모든 중요 정보를 캐냈고.
그로 인해 모든 쓸모를 다한 그녀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빠졌다.
확실히 이대로 살려두면 쓸모가 많을지도 모르니까.
"아까 그렇게 말했지. 너는 틀리지 않았다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조금 늦었을 뿐."
"애초에 그 시간을 벌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 그 병신 같은 년이 올린 서류를 읽던 시간 동안 개발에 집중했으면 아마 이런 일도 없었겠지."
"......."
이 녀석은 그런 류의 인간이다.
절대로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다는 무서운 확신을 가지는.
절대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없는, 자기애의 괴물.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살"
StaticText
"『해줘』"
StaticText
"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모든 고민을 내려놓으며.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목적의 워딩을 내뱉었다.
내가 행한 행동의 결과를 빠짐없이 지켜본다.
이건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행동이니까.
절대로 눈을 돌릴 수는 없다.
"끄으으윽...!"
자기 목을 스스로 졸라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모습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장면이라.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릴 뻔했지만.
내가 밀어붙인 행동에 대한 것은 힘들더라도 제대로 감내해야 했다.
나는 그녀를 쾌감 속에 절게 해서 재사회화를 한다는 선택지를 버리고.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겠다는 선택지를 골랐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도망치면 안 된다.
"후...."
마침내 한 엘프가 모든 마력과 산소를 잃고, 움직임이 멈추고 나서야.
나는 깊게 참고 있던 숨을 들이마셨다.
사람을 죽였다는 실감이 강하게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소의 처리 방식보다는 찝찝하네.
"아, 다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연구원도 함께 보고 있었다.
무력으로는 최고 취급받는 루이코와 막상막하로 싸우다가, 결국은 치명상을 입히고.
마지막에는 내가 명령을 했을 뿐인데, 루이코가 자살했다.
아마 저 녀석들이 보기에, 나는 괴물이나 마찬가지겠지.
'실제로는 아니지만.'
현재 마력을 되찾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 마력뿐이다.
유림이의 스택은 증발한 상태라, 유림이의 특성을 원격 발현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즉, 지금 나는 이곳에 있는 저 녀석들보다 약할 가능성이 컸다.
전원은 아니겠지만, 10레벨이 꽤 있을 정도의 인원이니.
아마 진심으로 싸우면 내가 지겠지.
기껏해야 저기 있는 총을 주워서, 어떻게든 비비면서 버티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뭐,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것 때문에라도 루이코를 죽이지 않는 편이 옳은 선택이었다.
어지간하면 내 물건으로 만들어서, 내 말을 따르게 만든 뒤.
저 녀석의 명령을 이용해서 연구원들을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안정성을 위해서, 그때까지 저 녀석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아까 정보를 캐내는 것도, 필수적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냥 내 마음대로 행동한 거지만.
"제가 지금부터 아스카를 데리고 나갈 거거든요? 그 준비를 좀 도와주셔야겠는데요."
그래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녀석들이 보기에 지금의 나는 말 한마디로 10레벨 엘프를 죽이는 괴물인데.
굳이 명을 재촉하는 미친 짓거리를 하지는 않겠지.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이 장비를 조작하자, 아스카가 내 눈앞까지 내려왔고.
그 뒤에는 문이 열리면서, 내부의 가득 차 있던 액체를 쏟아냈다.
물론 안에 들어 있던 아스카까지.
"닦아서, 옷까지 입혀."
솔직히 내가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스카는 내가 건드리면 내 능력이 사라질 테니.
그걸 빌미로 공격하는 미친놈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연구원들을 시켜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용사님?"
천천히 눈을 뜬 아스카는 첫마디부터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저런, 오랜 실험 때문에 머리가 망가진 모양이다.
불쌍하긴.
"아스카, 맞지?"
"그야 당연히....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 용사님에게 구해졌겠네요."
"음."
진짜 정신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무서워졌다.
이곳에 있는 엘프들을 몰아내는 것에 아스카는 꼭 필요하다.
그것도 망가지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로.
"아, 아니에요. 당황하시게 했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갑자기 아주 부드럽게 치마를 양옆을 들추더니.
나에게 몸을 숙이며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아니, 깨어나자마자 왜 내가 구해줬다는 걸 아는 거지?
'하긴, 이곳에 와서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낸 건 이 녀석이었지.'
다른 회차나 뭐 그런 특수한 형태로 나와 만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는 점이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뭐, 이야기가 빠른 건 좋다고 생각한다.
"따라와, 이제 이 연구소를 나갈 거야. 몸은 어디 불편한 곳 없고?"
"네, 괜찮아요."
의외로 몸에 큰 문제가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 녀석들이니까 세뇌나 약물 등 별 짓거리를 다 했을 줄 알았는데.
워낙 귀중한 샘플이라 조심스럽게 다뤘나 보다.
'하긴, 세뇌할 수준으로 강한 약물은 위험하니까.'
대단해 보여도, 아스카는 결국 연약한 미각성자다.
그런 미각성자를 일반 약물로 세뇌한다면, 영구적으로 뇌가 고장이 날 거고.
그랬다가 능력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이 녀석들 처지에서도 큰일이다.
"헤에, 맨날 물 안에서만 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생겼었군요."
꽤 자그마한 몸체에, 머리카락 사이로 튀어나온 고양이 귀.
그리고 추가로 있는 엘프의 귀까지.
평범함이라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굉장히 천진난만한 모습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옷 제대로 입으세요. 특히 묘족 귀는 제대로 가리고요."
"아, 넵!"
일부러 그녀의 엘프 귀는 드러내면서, 묘족의 귀는 보이지 않는 느낌으로 외형을 설정했다.
이 지하실에서 바깥으로 바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아까 그 기둥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내려오게 해서.
그걸 타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지.
근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대사관이니.
결국 아예 바깥으로 나가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사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 그런 가능성도 고려해서 그녀의 외모를 숨겼다.
'근데 확실히 던전을 개조해서 만들어서 그런가, 어떤 연락도 연결이 안 되네.'
아마 지금쯤 내가 총에 맞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굉장히 당황했을 텐데.
이러다가 내가 돌아가기도 전에 구하겠다며 쳐들어오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겠군.
"윽."
"용사님? 왜 그래요?"
"너무 예상 그대로라서."
당장이라도 이곳을 급습할 것 같은 분위기로, 거의 포위를 한 4명의 여자가 기척으로 느껴진다.
나는 간단하게 신호를 준 뒤, 최대한 빠르게 숙소 쪽으로 이동했고.
따라오는 수상한 사람이 없는 것까지 확인한 후, 천천히 진입했다.
"후우,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네."
"무사히? 달링은 지금 팔 한쪽을 그렇게 날려 먹고 와서 무사히 왔다고 말하는 거야!?"
"으음, 안 죽었으면 된 거지."
원래 팔 그대로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구로 되돌아가면 팔 자체는 복구할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맞아. 이건 자지가 잘못했어. 엄청 무모한 행동이었던 거 알지?"
"크흠...."
"여보, 팔 줘봐. 으음.... 역시 안 되나."
"괜찮아. 이미 내 특성으로 지혈해놔서 아프진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하, 하으.... 제발 언니, 위험한 짓 좀 하지 마세요."
그걸 정아 네가 말하면 어떻게 하냐.
평소에 위험한 짓은 네가 제일 많이 하면서.
...물론 그런 장난이랑, 이렇게 진짜로 위험한 전투는 다르지만.
"그래도 성공했잖아? 다 될 것 같으니까 걸었던 거지."
"진짜 혼날래?"
"죄송합니다."
솔직히 할 말이 없긴 해.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맞고, 대가로 팔을 영구적으로 잃은 것도 맞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그것 말고 괜찮은 방도가 없었거든, 괜히 더 끌었다가 졌으면 이미 죽었을 거라니까.
"다들 용사님을 엄청나게 걱정하셨군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뭐야, 귀여워. 얘가 아스카였지?"
"응."
"용사님? 오호, 그럼 자신은 공주님이다. 이건가?"
"호, 혹시 주제넘었나요!?"
"농담이니까 너무 놀라지 마. 원래 얘는 여러 신기한 칭호로 많이 불리니까. 그렇지 자지야?"
"자, 자지?"
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런 별명을 들키면 아주 부끄러운데.
물론 저게 유림이한테 어떤 의미인지는 아니까, 딱히 싫지는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른 문제가 있다고 할까....
"윽...!"
"너무하네, 대충 지혈만 해놔서 상태 엄청 나쁘잖아."
"하하.... 괜히 여기 많은 마력을 쓰면, 유사시에 대응을 못 하니까?"
"아무 각성 상태도 아닌 상태로 팔 자르는 건 대응이 되고? 마취도 없이? 쇼크사하고 싶어?"
뭐....
확실히 힘조도 발동 중이지 않은 상태로 시행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는 행위긴 했지.
방금 치료를 끝냈는데도, 여전히 굉장한 통증이 밀려 들어오고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이렇게 걱정시키니까 기분은 좋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 걸리면 엄청나게 혼나겠지만.
"아무튼, 수고했어. 그래도 제대로 작전은 완수했고, 죽지도 않았으니까 용서해줄게."
"그건 다행이네."
"그래서, 이제 그쪽으로 갈 거야?"
"바로 가야지.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간다니요?"
"여명의 호랑이단."
"아."
내가 목적지를 말해주고 나서야,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여명의 호랑이단의 구심점이었던 아스카였으니.
빨리 동료들과 만나고 싶을 거다.
"언니?"
"아스카...!"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회포를 푸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뭔가 팔 하나 날려 먹으면서 싸울만한 가치는 있었던 것 같네.
물론 어디까지나 아스카가 가진 힘 때문에 구한 거긴 하지만.
"아, 이럴 때가 아니었죠. 언니, 늦기 전에 우리가 하고 있던 그 프로젝트를 다시...."
"응, 알고 있어."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은 항상 기밀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제 바로 발동할 시기라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와 함께.
"제가 필요하다고요?"
"네. 당신이 편지를 받은.... 그러니까 아스카의 용사님인 거잖아요?"
"그런 모양인데요."
아스카가 이 세상에 있는 엘프들을 내쫓는,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그냥 그녀가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힘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려면, 평범하지 않은 아주 강렬한....
"절정에 이르러야 하거든요."
"...네?"
잘 못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스카의 능력은, 닿은 사람의 '마력'과 관계된 것을 지워버리는 능력이다.
만약 저주가 걸린 사람이 있다면, 아스카가 만지는 것만으로도 해제되고.
각성자도, 닿아 있는 동안에는 비각성자인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한다.
"다만 치유 능력이 있는 건 아니라서, 이미 망가진 건 돌이킬 수 없지만요."
남자는 각성하지 못하게 하는 포경 수술이나.
각성자 정액은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자궁 수술 같은.
이미 저질러진 끔찍한 행위를 돌이키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저것들은 엘프의 종족 특성을 이용해서 만든 수술이랬으니까.'
마력을 쓰는 게 아니라, 신체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라.
그런 방법으로 지우는 건 어렵다고 했다.
"사실 처음에는 저희도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엘프들도 이 능력을 이용해, 총에 맞으면 몸 안에 아스카의 능력을 퍼트려.
영구적인 능력 제거를 당하도록 무기를 만들었고.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가장 가시적인 능력이 이거였다.
"하지만 이 능력은, 마력을 이질적이라고 인식해서 없애는 거거든요?"
"이질적인 것...."
"엘프도 이 세상에서 이질적인 존재라서, 없앨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물론 없앤다는 건, 당연히 자기들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게이트까지 없애겠지.
물론 언젠간 다시 쳐들어올 수 있지만, 그 전에 미리 0레벨 헌터를 만들어서 대비하면.
기존보다는 더 쉽게 막을 수 있을 거다.
"아스카가 죽기 전까지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네요."
"그렇죠. 문제는 그 방법이에요."
마력을 없애는 거야, 자연스럽게 행하는 거라서 상관없지만.
다른 것을 하는 것은, 그 수준에 따라서 꽤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물 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내보내는 정도야, 조금 집중하는 걸로 가능하지만....
"지금 저희가 원하는 건, 마력보다 어려운. 종족 하나를 통째로 내보내는 거니까요."
집중이라는 건, 능력이 나아갈 길을 열어주는 다림질 과정이라서.
딱히 그 주제 자체에 집중할 필요 없이, 그건 생각만 하는 걸로 충분하고.
집중 자체는 다른 걸로 해도 된다는 것까지 연구해서 알아냈다고 한다.
'추방 가능성을 본 이후로,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내려고 했구나.'
"그리고 그렇게 실험한 결과, 가장 집중하기 좋은 것이 절정이었어요."
"그게 왜 그렇게...."
"절정하는 순간은, 쾌감의 강렬함에 비례해 쾌감에 집중되는 수준이 쭉쭉 올라가니.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녀가 더 기분 좋게 가버릴 수 있도록 연구했다고 한다.
수많은 자위 방법도 시도해보고, 스스로 성감 개발도 해왔지만.
아무리 해도 그 녀석들을 내보낼 정도의 절정은 맞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는데요."
계속 연구해서 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내 특성으로 감도를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왜 필요한지를 모르겠어.
"용사님.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성감대가 어딘지."
"...뇌죠?"
뇌만 잘 건드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몸이 마구 가버릴 수 있을 거다.
애초에 감도 증가라는 것도, 뇌에 전달되는 감각 신호를 증폭하는 셈이니까.
"맞아요. 뇌에요. 그리고 제가 뇌의 성감대로 느끼고 있는 게, 바로 용사님이구요."
"...네?"
"제, 제가 용사님을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아.
그러니까 아스카는 나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나를 이용해서 더 강렬한 쾌감을 느껴, 사랑의 감정을 이용한 최고 절정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거다.
'미친 소리 같지만, 나름 논리적이야.'
다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왜 나를 좋아한다는 건지, 아직도 모른다는 거다.
도대체 왜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거지?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는데요?"
"엣."
"멋있잖아요."
"음...."
내가 좀 생기긴 했지.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개연성을 써먹을 줄은 몰랐네.
근데 요즘 나는 잘생겼다고 하기엔, 여장하고 다니잖아.
설마 그런 걸 좋아하는 건가?
"아, 아니요. 그게.... 사실 용사님은 처음이시겠지만, 저는 용사님을 처음 보는 게 아니거든요."
"그거야, 어렴풋이 예상은 가는데요."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편지에서 우리 쪽 기술이 사용되었던 것도 그렇고.
구해주자마자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했으니, 어지간한 가능성은 다 품어두고 있었다.
"저도 정확한 건 몰라요. 다만 제가 잡히기 전에, 용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도와주셨어요."
"제가요?"
"...네."
아스카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일단 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지금 시간대에서 겪은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다른 회차인가?'
워낙 그런 가능성을 많이 봤다 보니, 그런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자궁의 맹약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자궁의 맹약이 먹히나?'
그것도 일종의 인공 특성 같은 거라.
모든 특성을 무효로 하는 아스카에게 먹힐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만.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리하면, 제가 아스카랑 야한 짓을 해서. 아스카가 이제까지 느낀 적 없는, 엄청나게 행복한 절정을 느끼면 된다는 거죠?"
"네, 그 수준에 도달하면 바로 발동할 수 있게 훈련은 되어 있으니까요."
정말 급하면 약물을 써서라도 시도할 거지만.
아무래도 처음 내쫓은 이후에도 게이트는 꾸준히 생기면서 침략할 거고.
그걸 장기적으로 막으려면, 우리가 직접 그걸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약물은 정말 최후의 방법으로 여기는 중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제 동생이 망가지는 걸 각오하면서까지 약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죠."
나도 그런 식으로 소중한 사람이 희생해서 만든 세상을 살아가는 건, 좋아하는 방향성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바보 같은 해피엔딩이 좋다.
...그런 꿈이라도 꿔볼 수 있는 거잖아?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아요. 저도 동의하고요."
"그, 그럼."
"해보죠. 그 절정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