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256화 (257/289)

<256화>

"잘 잤어?"

"으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밥 먹자. 대충이지만 준비해놨어."

재료가 슬슬 선택지가 많이 없어졌다 보니, 그나마 그럴듯하게 이것저것 써서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통조림 햄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했으니 이 정도면 괜찮겠지.

물론 김치찌개는 라면스프를 넣어서 맛을 보완하긴 했지만.

"이거 엄마가 한 것보다 맛있는데요?"

"반칙을 썼거든."

"반칙이요?"

"라면스프 반 봉지 넣었어. 아마 이렇게 하면 어지간하면 맛있어질걸?"

"아하...."

가끔 김치찌개 먹고 싶으면 그냥 이런 식으로 해 먹곤 했다.

물론 그냥 김치찌개 즉석식품을 돌려먹어도 되는데, 굳이 안 사도 집에 있는 참치랑 김치에 라면만 추가하면 되는 걸 굳이 사두진 않았었다.

살짝 라면스프 맛이 나는 쪽이 나한테는 더 매력적이기도 했고.

"맛있어요!"

"그렇게 느꼈으면 다행이고."

후식으로는 유통기한이 긴 말린 과일류랑 차갑게 식혀둔 음료수를 꺼냈다.

솔직히 건강한 식습관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챙기려고 한 결과물이었다.

"후아.... 저 돼지 되겠어요. 배가 터질 것 같아요."

"어릴 땐 많이 먹어야 쭉쭉 크지."

"하으으...."

"밥 먹고 그렇게 누우면 안 좋아."

"언니는요?"

"나는 헌터라 몸이 튼튼해서 상관없거든. 꼬우면 너도 각성하렴."

"히잉...."

그나저나 슬슬 송도에 있는 마력의 흐름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을 봉인하고 있던 벽이 사라지겠지.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한테 달라붙어서 실실거리는 정아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슬슬 장소 이동할까?"

"엄청 오랜만에 이동하는 것 같아요."

"여기가 지내기 되게 괜찮았으니까. 그래도 슬슬 물자가 떨어져 가니까 보충할 겸 이동해야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딱히 이동하지 않아도, 내가 잠깐 날아갔다 오면 물자 보급은 어렵지 않다.

그것보다는 방어막이 사라지는 순간 이동하기 위해, 그 주변으로 베이스캠프를 옮겨두기 위해서지.

"그나저나 언니는 왜 이렇게 이동하기 전에 흔적을 다 없애요?"

"내가 확인하기엔 없었지만, 혹시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인간을 제일 조심해야 하는 거야. 심지어 몬스터들도 이런 흔적 정도는 따라다닐 수 있고."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로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정아를 최대한 몰래 밖으로 내보내서, 이 사고의 생존자가 아닌 것으로 포장해야 했다.

그런데 안쪽에 생존자들이 생활한 흔적이 있으면 안 돼서 지워내고 있는 거였다.

'처음에는 정아가 그런 식으로 나가서 생활할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이 사고로 부모가 죽은 만큼, 기본적인 나라의 지원이나 보험금 같은 것은 보장이 될 거고.

생존자로 취급받는 것보다는 적겠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다.

특히 정아는 나중에 특성을 각성할 테니, 그때부터는 정말 모든 것을 지원받으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테고 말이지.

"와아, 이렇게 날아다니는 거 오랜만이에요."

"안 무서워? 첫날부터 조금 궁금했는데."

"엄청 시원하고 기분 좋아요...!"

원래 애들은 겁이 없다던데, 그래서 저런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건가?

하여튼 좋아하니까 별것 아닌 이동에도 꺄르르 웃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새로 지낼 베이스캠프를 골라야 하는데....

'마력이 통하지 않아서, 인기척 같은 걸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제 슬슬 방어막이 흐려져서 바깥이 조금이지만 비치기 시작해서.

특성을 이용한 카메라 비슷한 것으로,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지 않은 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최대한 주변이 사람이 없는 곳을 찾기 위해, 사실상 모든 범위를 확인해야 했지만.

그거야 마력이 넘치는 이상 시간만 쓰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충 이쯤이면 되겠다."

"와, 바다다."

"바다 옆에서 살면서 뭘."

"평소에는 엄마 아빠랑 자주 놀러 오는데, 요즘은 오질 않았더니 반가워서요."

"뭐야, 그런 거라면 말하지.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저도 잊고 있었어요. 워낙 그 무대 쪽이 마음에 들어서...."

"뭐, 그런 거면 괜찮고. 하여튼 이런 상황이니까.... 주변 백화점에서 수영복이나 고를래?"

"수영해도 괜찮아요?"

"응, 물 온도는 맞춰줄게. 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양할게. 혼자 놀아."

"그건 좀 그런데...."

"그럼 수영복은 입지 않고 놀게. 정확히는 노출이 심한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실 수영복이나 노출이 싫은 게 아니라, 그랬다간 남자라는 걸 들켜서 그런 거지만.

하여튼 마술도구로 옷 위에 막을 만들면 젖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럼 굳이 수영복을 입지 않고도 물장난을 칠 수 있으니까, 얘랑 노는 것은 충분할 거다.

"노출이 적은 수영복도 있지 않아요?"

"그런 건 몸에 달라붙잖아. 그런 감각 자체가 싫어."

"아하."

정아는 신이 나서 수영복을 고르고, 나한테 괜찮냐면서 확인을 받았는데.

뭐, 애가 입는 귀여운 수영복이야 뻔한 느낌이긴 했다.

다만 저번에 무대에 서는 옷을 고를 때도 느꼈지만, 옷에 대한 센스 자체는 되게 타고난 느낌이야.

'진짜, 저런 애가 어쩌다가 그런 전용 장비 디자인을....'

미래에 정아가 하고 다니는 꼬라지를 생각하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 디자인도 내가 모를 뿐이고, 엄청난 디자인적 가치가 있는 건가?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얌마...!"

그래도 이제까지 같이 생활하고, 놀아주고 하면서 많이 친해지긴 했나 보다.

헌터인 내가 불편할 법도 한데, 이렇게 바로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을 치다니.

나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숨기며, 가볍게 물장구의 복수를 해줬다.

"후아...."

"오늘 재밌었어?"

"네!"

씩씩해서 좋다니까.

하여튼 이쪽은 바다라서 그런지 어떠한 감시도 존재하지 않는 구역이었다.

아마 방어막이 사라질 때, 바로 날아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도 들키지 않겠지.

"우리 산책하러 갈까?"

"산책이요? 아, 바닷가 걸으면서요?"

"비슷해."

이제 송도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는 기쁜 이야기니, 거기까지는 미리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아서 마력의 벽까지 갈 생각이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정아를 안고 그 위치까지 갔었는데.

아무래도 천천히 설명하고 그러려면 산책의 형식을 빌려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건 적합한 방향성이 아니겠지.

"자, 따라와."

"거, 거긴 바다인.... 와아!?"

"이러면 걸을 수 있잖아? 미끄럽지 않게 바닥에 칼집 비슷한 것도 만들어놨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우리가 내디뎌야 하는 바닥을 실시간으로 얼려가면서 가면, 바다 위를 직접 걸을 수 있다.

이러면 충분히 산책의 형식을 빌려서 마력 벽에 닿을 수 있겠지.

...좋은 기억을 남겨야 했던 거니까, 조금은 이런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도 괜찮을 거고.

"엄청 신기해요. 바다를 걸어 다닌다니."

"날아도 다니는데, 인제 와서?"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데, 왠지 날아다니는 건 언니랑 만난 첫날에 정신없이 날다가 익숙해져 버려서...."

"하긴, 그렇긴 하겠다."

그렇게 정아는 이제 완전히 나와 지내는 것에 적응했는지.

어떤 불편함 없이 편하게 말하며, 나에게 장난을 치거나 서슴없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렇게 애들이 의지해주면 힘이 난다니까.

"음, 여기서 끝이네."

"여기부터는 막힌 거죠?"

"맞아. 꽤 오래 걸어서 슬슬 지쳤겠네. 여기 좀 앉아서 쉬자."

얼음으로 어느 정도 널찍하게 바닥을 만들고, 의자를 올려놓고 대화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자리를 잡으니까 꽤나 장관이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얼음 섬 같은 곳에 놀러 온 기분이다.

"저번에 설명해줬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서 만들어진 이 마력으로 만들어진 막 때문에 나갈 수가 없고, 들어올 수도 없다고."

"네."

"그런데 슬슬 이 막이 흐려지고 있어. 원래는 거의 바깥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반쯤 보이잖아?"

"...그러네요?"

따라서 곧 이곳의 봉인은 해제되고, 우리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이곳에서 내가 최대한 돌본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한정된 장소, 한정된 자원에서 지내는 것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정아도 나갈 수 있는 것 자체는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좀 아쉽기도 하네요. 나가면 언니는 헌터 활동으로 바쁜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렇지."

아예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몰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종일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역시 이 나이 아이치고는 똑똑하다니까.

심지어 떼를 쓰지 않고 그냥 아쉬워만 하는 것이 참 착하고.

"그리고 하나 말해둘 게 있어. 나가면 아마 나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해줄 시간이 없을 것 같거든."

"말해둘 거요?"

"이곳에서 나가면, 여기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겨. 내가 근처 다른 마을에 데려다줄 테니까, 그곳에서 엄마랑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

"그건...."

"이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마 모든 사람의 이목이 너한테 집중될 거야. 그럼 엄청 골치 아플 거고."

"...역시 언니는 상냥하네요. 그걸 알려야 언니의 실적이 오르는 거 아니에요?"

"실적 올리려고 헌터 하는 게 아니라서."

내 말에 정아는 슬슬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추가로 무언가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바로 옆에 있던 벽에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아야, 미안.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된 모양이야. 꽉 잡아."

"...네!"

나는 그렇게 앞으로 정아와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숨긴 채로, 송도를 벗어나 정아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줬고.

그것과 동시에 비틀림이 해결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로 그녀와 헤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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