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사실 이렇게 활동을 하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최근에는 꾸준히 했던 것이 아이돌 활동이다.
물론 내 특성을 활용해서 망가진 연출 장비까지 죄다 대체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바쁜 것과는 별개로 뭔가 이쪽을 바라보는 정아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신경 쓰인다고 할까.
'...어라?'
그리고 나도 모르게 평소에 잘만 부르던 파트가 힘겨워지거나, 반대로 어렵던 파트가 수월하게 쏟아져나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고 큰 차이는 아니고 오차에 가깝지만, 그것이 계속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내가 느끼는 묘한 감정이, 노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당장 내가 이 활동을 하는 건, 모두가 세뇌를 풀고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고.
당연히 희망이라는 감정과 모두를 구하고 싶다는 감정을 지닌 채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노래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결국 노래에 감정을 넣는다는 것이 뭔지는 알지 못하고 끝을 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물론 나는 지금 정아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좀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감정을 품긴 했지만.
그게 노래에 담기는 것 자체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정아가 내가 감정을 담지 못하는 부분에 실망했었지.'
내가 당연히 감정을 담을 줄 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확실히 나는 지금 조금이지만 '감정'을 노래에 담고 있었으니까.
정아가 오랜만에 기대하면서 들은 노래가, 그런 상태였으니 당황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방금까지 내가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전부 미래의 정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 셈이네.'
굳이 루시퍼라는 이름이나 컨셉을 밀어붙인 이유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도대체 이런 처음 듣는 노래나 안무를 어디서 가져왔나 싶었는데.
어찌 보면 그녀도 이때 나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던 것이겠지.
괜히 신이 나서 나를 힘껏 도와줬던 것이 아니었구나.
처음에는 그냥 이런 것도 있다면서 도와준다는 느낌이다가.
내가 옷을 입고 완전히 여장까지 마친 후에는, 눈을 반짝이면서 도왔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후우. 괜찮았어? 나름대로 열심히 해봤는데."
"...사실 루시퍼 언니는 아이돌이죠?"
"그래, 나는 무명의 아이돌 헌터거든."
아니라고 하면 아이돌을 데뷔시킬 기세길래, 그냥 얌전히 사실을 말했다.
뭐, 이쪽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 아이돌이라는 건 사실이잖아?
"하여튼, 마음에 드냐니까?"
"당연하죠...! 제가 이제까지 봤던 무대 중에 가장 멋진 무대였어요."
"실물 무대를 처음 본 게 아니고?"
"에헤헤...."
다만 그녀는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내 공연이 좋았다면서 띄워주려고 했다.
하긴 이래 봬도 방금 보여준 공연만큼은 내가 자신 있게 선보일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고.
이미 우승으로 증명이 된 것이기도 하니까.
"그럼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저를 생각해주시는 부분?"
"뭐?"
"아니에요?"
"아니, 맞긴 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심지어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감정이 잘 담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노래에 감정을 담는 것이 서툰 것을 넘어서, 아예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도 우연히 감정이 묻어난 정도였는데, 그걸 저렇게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고?
"...루시퍼 언니는 대단해요."
"뭐?"
"그렇잖아요. 사실 저를 구해주기만 하고, 대충 먹이기만 해도 될 텐데. 엄청나게 신경 써주시잖아요."
"......."
네가 정아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사실 다른 아이가 이렇게 혼자 남아 있었다면, 그것대로 열심히 도와주려고 했을 것 같긴 했다.
이렇게 꿈을 꾸는 착한 아이가, 희망을 잃고 추락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고.
그러니 조금이나마 밝게 자라길 희망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방금 부른 노래에서처럼, 나도 모르게 노래에 감정을 싣게 될 정도였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거기까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이 아이가 미래의 정아가 아니라고 해도, 감정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대로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저도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요?"
"뭐?"
"언니 같은 아이돌이, 아니 헌터가 될 수 있을까요."
"글쎄, 헌터는 각성해야만 할 수 있으니까."
"하긴 그렇네요."
"그래도, 정아라면 되게 멋진 헌터가 될 것 같네."
하지만 굳이 정론으로 어렵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정아는 분명할 정도로 좋은 헌터가, 아니 영웅이 되었다.
희망 고문이 되지도 않을 테니, 조금은 좋은 말을 해줄 수 있겠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무대에 서면서 집중한 탓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솔직히 그런 세세한 것까지 고민하지 말고, 최대한 정아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겠지.
"다만 헌터라는 자리가 꼭 좋은 건 아닌 거 알지? 아이돌도 쉽진 않지만, 헌터는 아이돌보다 더 위험한 직업이야."
"알고 있어요."
"하긴, 누구보다 위험한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씩씩한데. 당연히 가능하겠지. 장하다 배정아."
"에헤헤...."
사실 이런 상황이면 엄마를 찾을 법도 한데.
눈치가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정아는 나한테 애교를 부리면 부렸지, 아직도 그런 슬픈 이야기는 꺼내지조차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려고 흐름을 트면.
되게 당당하게 내가 있으니 괜찮다는 소리를 했다.
...최대한 잘해주려고 하긴 하는데, 정말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미안해서 그러는지를 모르겠네.
어린애치고 너무 애가 착하고 똑똑하니까 파악하기가 어려워.
'특성도 먹히질 않고.'
비틀림을 해결할 때 특성이 남아 있더라도, 정신을 건드는 특성은 상대한테 먹히지 않았다.
'웅, 완전 공감해'도 따지고 보면 정신 조작계열에 속하는 특성이니까 어쩔 수 없지.
본인이 말해주지 않으면, 그걸 내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아, 모르겠다. 네가 좋다고 하면 그거로 안심해야겠지."
"......?"
"아무것도 아니야. 실컷 움직였더니 배고프지? 밥이나 먹자."
"아, 네!"
원래 이렇게 땀을 흘린 뒤에는 컵라면이라는 생각에, 구해놨던 컵라면을 죄다 꺼내서 선택지를 가득 주려다가.
생각해보니까 평범한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내 기억에 애들이 좋아하고 나도 좋아했던 라면들을 골라서 몇 개만 꺼냈다.
...일종의 캠핑을 따라 한답시고 해놓고, 평범하지 않은 짓을 해주면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걸 잊고 행동할 뻔했다.
"후, 역시 컵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편해."
"헌터분들은 이런 거 안 먹을 것 같은데."
"귀찮으면 라면이지. 나는 애용했어."
최근까지 혜은이가 밥을 다 해줘서 먹지 않았던 데다.
저쪽에서도 최근에는 미코로 취급받으면서 먹는 것으로 불편해 본 적이 없었으니.
이렇게 라면을 먹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 있는 상황인데.
매니저 시절에 워낙 라면이나 즉석식품을 애용해서 그런지.
뭔가 그 시절로 돌아온 듯한 포근함이 느껴져서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매니저 시절에도 충분히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을 수 있긴 했다.
"밥에 낭비할 돈 있으면, 그거로 아이들 밥이나 더 먹이는 게 낫지."
"...결혼하셨어요?"
"아니, 고아원 아이들."
"아하. 언니답네요."
대체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길래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의외로 그런 게 외모로 드러나거나 하는 건가?
근데 내가 남자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애가, 그런 걸 알아차릴 수 있어?
"...아까는 엄마가 없어도 괜찮냐고 그러셨죠?"
"응. 아무래도 힘들지 않나 싶어서."
"언니가 있어서 괜찮은 것 같아요."
"아까도 그렇게 말했잖아."
"농담처럼 여기시니까 그렇죠. 정말, 지금도 엄마 곁에 있는 기분이라서.... 전혀 그립거나 하지 않은걸요?"
"다행이네. 혹시 내가 해주는 게 맞지 않으면 어쩌나 했거든."
"너무 완벽해서 큰일이에요. 어리광쟁이가 되어버릴 것 같거든요."
"애는 원래 어리광부리는 거야. 마음껏 그렇게 해."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 되니, 정아도 나름 많은 생각이 드는지 나에게 저런 소리를 했다.
배시시 웃는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 같다.
나는 그녀를 꼬옥 안아주며, 혹시 그녀가 느낄 수 있는 추위를 지워줬다.
"하지만 언니는 저랑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거기서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 잘해줘도 되는 거예요?"
"음, 정아가 착하게 살았으니까 언니를 만난 거 아닐까? 나름 정아가 쟁취한 행운 같은 거지."
"칫, 무슨 언니가 복권이에요?"
...일반적으로 네 나이대에서는 복권보다는 좀 더 판타지스러운 단어가 나오지 않니?
하여튼 나 정도면 복권보다 더 대단한 걸 뽑은 거지.
물론 나는 돈을 주진 않지만 말이야.
"정아야?"
"......."
자그마한 숨소리가 색색거리며 들려오고, 내 품에 안겨있는 정아가 꿈의 세계에 빠져든다.
오늘 피곤했으니까 금방 잠이 든 모양이네.
그래도 오늘 전체적으로 표정이 밝았기에 다행이었다.
"...가지, 마."
"응? 정아야?"
"...가지, 마요. 언니...."
"응, 옆에 있어. 괜찮아."
나는 정아의 잠꼬대에 그렇게 답하면서도.
결국 이번 비틀림이 해결되고 나면, 정아를 이 시대에 두고 혼자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했다.
결국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 되리라.
'미안해, 정아야.'
결국 나도 너를 두고 떠나야겠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너의 그 예쁜 웃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