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난감하네...."
일단 이 아이를 최대한 안정된 상황에서 지내도록 도와야겠다는 결심은 했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인 상황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곳이 방치되어 있던 기간이 꽤나 길어서, 이렇게 살아남기만 하면서 버티는 것은 절대로 좋은 방향성이 아니니까.
'음식도 슬슬 상태가 괜찮은 녀석이 없는 것 같고.'
일단 찾기만 하면 특성으로 얼려서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지만.
애초에 찾을 때부터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숙성을 하던 고기여도, 이미 전기가 먹통이 되면서 습도나 온도가 맞지 않아서 먹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고기보다는 상온 보관 즉석식품이나 통조림, 과자 같은 것을 위주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아가 이것에 큰 불만을 느끼지 않고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가 진정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걸 먹여주고 싶은데....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지금도 되게 맛있게 먹고 있어요. 오히려 소풍 온 것 같고 재밌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그래도 되게 심심하지 않아?"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내가 최대한 재밌는 마술을 해주거나 하면서 놀아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일단 정아도 처음에는 신기해했지만, 내가 헌터인 만큼 계속 보니까 싫증을 내는 느낌이고....
"정아는 뭐 좋아하는 거 없어? 아무래도 이제 내가 평범하게 놀아주는 건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춤이랑 노래요! 아이돌 같은 거 좋아해요."
"아하, 아이돌...."
생각해보니까 정아는 의외로 아이돌에 대해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
나랑 알게 된 이후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정말 아이돌을 좋아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어디 저장되어있는 아이돌 영상이나 음원을 틀어주는 편이 좋으려나?
'그걸 찾는 게 꽤나 어렵겠네.'
가정집들을 털어서 구한다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고.
사실 시간이야 투자하면 되는 부분이긴 한데.
아무래도 남의 사생활이 담긴 물건을 굳이 파헤치면서 해야 한다는 부분이 문제였다.
나야 솔직히 별생각 없지만, 그걸 봐야 하는 정아의 교육이 좋지 않다고 할까.
뭔가 확실하게 있을 법하면서, 정아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한 방법이 없으려나?
솔직히 요즘 애가 심심해하는 것이 너무 눈에 보이는데.
"저, 그러면 거기 가보고 싶어요. 송도에 커다란 콘서트장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콘서트는 없겠지만, 구경은 하고 싶어요."
확실히 송도 라이브 홀이라는 이름의 큰 건물을 지나가다 본 것 같았다.
내 기억에는 없는 건물인 걸 보면, 아마 이 사건으로 사라지는 곳이겠지.
...꽤 난장판으로 망가져 있긴 하겠지만, 본인이 원한다니까 한 번 가볼까.
"그래, 그럼 그거나 구경하러 가보자. 멀쩡했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우리의 기도가 통했는지, 외부는 부서졌어도 내부까지 심하게 파손된 상태는 아니었다.
아마 사건 당일에 큰 공연이 있진 않았던 모양이라, 대부분이 대피했고.
대피한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몬스터들의 침략을 받지 않은 느낌.
"와아...!"
"마음에 들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전부 정리해놓고,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는데.
확실히 정아가 크다고 말할만한 크기의 홀이었다.
아마 이 정도 크기면 뭔가 용도가 있어서 지었을 것 같은데, 정확한 것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위에 조명이 엄청 많아요. 와,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도 있구나. 이런 좌석은 엄청 비싸겠죠?"
"좌석이 가격이 쌔긴 하겠지만, 그것 이상으로 경쟁률이 높을걸."
"그렇겠네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라도 있어?"
"대부분의 여자 아이돌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의외네, 남자 아이돌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야, 저는 아이돌이 되고 싶거든요!"
"아하."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이기에, 오히려 여자 아이돌들을 선망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시절의 정아는 꿈이 아이돌이었구나.
장래 희망이 헌터였다고 들어서, 원래부터 그런 거였나 싶었는데.
중간에 한 번 바뀐 모양이다.
"왜, 이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고 춤이라도 추고 싶어?"
"제, 제가요?"
"그럴듯하게 도와줄 수 있는데, 해볼래?"
나쁜 경험은 아닐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마술도구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내 손으로 그럴듯한 무대를 재현할 수 있고.
아마 옷 정도만 갈아입으면 괜찮겠지.
"어차피 우리밖에 없는데, 이럴 때 해버려야지."
내가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장난을 치자.
정아는 웃음을 터트렸고, 곧 긴장을 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럴듯하게 예쁜 옷부터 찾아서 입어야겠네.
"...이렇게 옷 가져가면 나쁜 짓 아니에요?"
"괜찮아 돈은 놓고 갈 거니까."
"맞다. 헌터는 돈이 많았었죠."
"뭐, 꼭 그렇지는 않은데. 수준이 높은 헌터면 많이 벌지."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하면야 낮은 수준이어도 꽤 괜찮은 벌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 같은 개념이다.
그것도 없으면 누가 목숨 걸면서 세상을 지키겠어.
"오, 괜찮은데?"
"정말요?"
물론 마냥 귀엽다는 느낌이지, 아이돌처럼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그건 뭘 입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프릴이 잔뜩 달린, 그나마 아이돌에 가까운 옷이니까 본인이 기분을 낼 수 있으면 되는 거지.
"내가 아는 음악이면 MR을 틀어줄 수 있긴 한데. 혹시 좋아하는 곡들 말해줄래?"
"잠시만요."
아무리 내가 이쪽에 관심이 적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상식이라는 게 있는 법이고.
기본적으로 정아가 나보다 어린 만큼,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몇 노래는 나도 알고 있었다.
잘 아는 노래라면 내 특성을 이용해서 틀어줄 수 있으니까 충분하겠지.
"응, 이건 나도 알고 있어. 이거로 틀어주면 될 것 같아?"
"네!"
어느새 정아가 커다란 무대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최대한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많은 관객 앞에서 무대를 서는 것처럼 꾸며줬고.
그 때문에 긴장해 보이던 정아는, 조금씩 긴장을 풀면서 열심히 무대를 진행해 나갔다.
'...이게 애들 학예회 같은 거 보는 기분인가?'
솔직히 객관적으로 정아의 움직임은 나이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엄청나게 유명해질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득히 넘었지.
정해진 노래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아이돌을 굉장히 좋아하고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다만 그것과 별개로 정아가 워낙 귀여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굉장히 정확한 안무조차, 내 입꼬리가 씰룩거리게 할 정도로 굉장히 귀여웠고.
부르는 노래도 아직 앳된 목소리 때문인지 잘 부르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우선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땀방울을 흘리는데.
이 부분은 그냥 순수하게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좋아하던 아이돌을 왜 포기했는지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후아...."
"수고했어. 엄청 멋지던데?"
"감사합니다. 진짜 무대에 선 것 같았어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갑작스럽게 떠오른 것을 계기로 밀어붙인 계획이었지만.
저렇게 즐거워하는 정아의 표정을 보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나름대로 추억도 생긴 것일 테니, 이 사건이 지옥도로만 기억되지는 않겠지.
"정아 너는 왜 아이돌을 하고 싶어진 거야?"
"애들이랑 싸우고 돌아와서 울적해 있을 때, 우연히 TV에서 나오는 아이돌을 봤거든요."
"응."
"근데 그 노래랑 춤을 보다 보니까, 뭔가 위안이 되더라고요. 원래 아빠랑 엄마가 그런 노래를 좋아했는데, 그 영향도 있겠죠?"
그리고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이돌 덕질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꼬마애의 꿈치고는 아주 진지한 이유라 신기했다.
"정아는 대단하네. 착하기도 하고."
"그, 그래요?"
"남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게 행복하다는 거잖아. 그것 자체가 네가 착하다는 증거지."
자기가 인정받고 싶고 빛나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짓밟아가면서 성장한 아이돌도 있으니까.
그녀와는 굉장히 대비되는 듯한 느낌이라, 더 정아가 반짝거렸다.
이런 애가 진짜 아이돌을 해야 하는 건데.
"아, 루시퍼 언니도 할 줄 아는 거 있어요?"
"뭐?"
"그냥요. 왠지 되게 예쁜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어울릴 것 같아서요."
처음 만날 떄 본 아이돌 복장 때문일 거다.
그렇다고 S급 헌터들의 전용장비는 수영복 형태다 보니, 이게 그런 용도라는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거고.
결국 내 이미지는 그 부분에서 이미 늦긴 했겠지.
"쪽팔려서 싫은데."
"어차피 둘밖에 없잖아요."
내가 나름 정아한테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던 말이, 오히려 나한테 나쁜 방향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네.
사실 이 나이에도 어느 정도 악질적인 성격은 있었던 건가?
"그렇게 보고 싶어?"
"네!"
하긴 이제까지 정아가 즐거워할 만한 것을 열심히 찾는 중이었잖아?
이제 내가 찾지 않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걸 말해주고 있는데, 이걸 해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미 저쪽 세계에서는 유일한 아이돌로 활동까지 하는 와중에, 이게 부끄러우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 해줄게."
다만 이걸 할거라면 장난치는 수준으로 하면 오히려 쪽팔려서 힘들 거다.
그러니까 최대한 진심으로, 내가 이제까지 저쪽 세상에서 무대에 설 때 했던 것처럼.
내가 판단하기에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여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