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252화 (253/289)

<252화> 시야를 가리던 빛이 사라지고, 천천히 몸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뭔가 몬스터가 보이는 걸 보면, 던전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럼 채린이 때처럼 공간의 비틀림인가?

[대상에게 남아 있는 비틀림을 바로잡아, 당신의 맹세를 증명하십시오.]

[시간의 비틀림: 과거 시점에 당신이 간섭합니다. 비틀림과 관련된 사건을 찾아서 정상적으로 처리하십시오.]

"시간?"

설아의 비틀림을 해결할 때 본 적 있는 문구였다.

그때는 특성 사용이 금지되고 어릴 때로 돌아갔었지?

설아가 마음 결정을 잃게 된 사건을 경험하고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성인인 상태 그대로고, 특성 사용도 가능하네.'

그런데 옷차림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아까까지 입고 있었던 기존 옷차림이었다.

마치 최근 내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아이돌인 '루시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과거의 내 몸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몸 그대로 과거로 이동한 건가?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라서,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예측하기가 힘드네.

"그나저나, 왜 시간이지. 던전 내부라서 아닐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들리는 묘한 비명을 듣고, 애초에 처음부터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던전에서 싸우는 것은 대부분 전문가인 헌터들이다.

그런데 저런 비명을 지를 리가 없지.

'...던전 브레이크?'

그렇다면 애초에 던전 내부가 아니라, 던전 외부라고 하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럼 애초에 공간의 비틀림이라는 전제부터가 말이 안 되는 소리고.

저 비명은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린 일반인의 것이겠지.

"시간의 비틀림이라 이거지...."

나는 날개를 펼치고 비명이 난 쪽으로 날아가면서.

과거에 크게 터졌던 던전 브레이크 사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주먹구구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으면 유리할 테니까.

당장 채린이가 만들어낸 던전의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힌트를 얻어서 클리어했잖아?

이번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법을 찾을 가능성이 컸다.

근데 참 이상하네, 저렇게 대놓고 비명을 지르는 일반인이 있는데 헌터가 오지 않아?

"힉!?"

"괜찮아?"

"허, 헌터 언니...?"

비명의 주인공은 아주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다.

아, 내가 지금 여장하고 있으니까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긴 여기가 과거라면 일반적으로 헌터는 여자만 하던 시대니, 남자일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겠지.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른들은?"

"모, 모르겠어요...."

일단 아이를 목에 태우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던전과 반쯤 융합한 도시가, 완전히 부서지고 불타고 있는 끔찍한 참상과.

몬스터들에게 찢긴 시체들이 거리에 낭자해 있는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진 않아.'

그런데도 이렇게 도시가 망가질 때까지 방치되었다고?

아무리 헌터들이 일 제대로 안 한다고 욕을 먹는 집단이라지만, 내가 그곳에 속해있던 사람으로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 사태면 전투력이 낮은 헌터까지 죄다 투입하지 않나?

사실 거리에서 헌터가 저항한 듯한 흔적이라도 있으면 이상하지 않다고 느꼈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이, 정말 일반인만 잡아 뜯은 듯한 일방적인 학살이 자행된 흔적이었다.

이 아이가 살아있던 것이 신기할 정도네.

"부모님은?"

"나만 이쪽으로 뛰라고 하고...."

"응, 그만 말해도 괜찮아."

아까 그 근처는 다 둘러봤고, 남은 것은 시체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서 특성을 써서 살아 있는 사람을 조사해봤지만.

역시 이 근처에는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다.

즉, 이 아이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는 뜻인데....

어떻게든 이 아이를 살리려고 발악하셨다는 점이 굉장히 빛나는 분들이지만.

아 아이가 앞으로 부모님 없이 살아야 한다는 점은 조금 안타까웠다.

차라리 나처럼 처음부터 없었으면, 이렇게 부모님을 잃은 기억이 없었을 텐데.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었네."

아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내 탓이 아니라는 듯, 내 등에 얼굴을 묻었다.

이 나이에 꽤나 눈치도 있고 강단도 있네.

하긴 아까 소리를 지르면서도 끝까지 장애물을 이용하면서 도망치긴 하더라.

그러니까 이제까지 살아남은 건가?

"너도 쉬고 싶겠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혹시 다른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거든?"

"...네."

"그래서 조금 급하게 이 지역을 전부 둘러볼 거야.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알아볼 거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굉장히 말을 잘 들었다.

눈칫밥을 강하게 먹고 자란 고아원 애들이면 모를까, 일반 가정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건 신기했다.

나야 덕분에 설득하고 달랠 시간 없이, 빠르게 내가 취할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

그렇게 이 도시 전체를 날아다니면서 확인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까 그 근방만 돌았을 때는, 이상하긴 하지만 운이 나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도시 전체가 똑같은 상황이면 굉장히 이상하다.

'아니, 오히려 똑같다기보다는....'

아까 그 지역이 가장 양호한 편이었다.

다른 곳이 먼저 습격을 당해 무너지고, 그곳이 최후에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다.

당연히 그런 만큼 다른 지역에는 생존자는 없었고, 오히려 이쪽엔 시체조차 없을 정도였다.

몬스터가 피 한 방울까지 다 핥아먹은 모양이었으니까.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네...."

좀 부서지고 무너진 도시라곤 해도, 시체조차 없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더 적막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이쪽은 남은 먹을 것이 없다고 몬스터들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 보이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등급이 낮은 포식형들이네.'

헌터 등급시험에 사용할 정도로 약한 애들이지만, 한국은 총기 규제가 심해서 평범한 가정집에 총기를 보유하지 않는 데다.

하필이면 이 도시에 어떠한 헌터도 없었던 모양이라, 아예 대응 자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왜, 아무도 지원을 오지 않는 거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도시에 도우러 오는 인원이 없다.

솔직히 내가 도착한 이후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잖아?

좀 늦나 싶은 정도로 의문이 해결되는 상황을 아득하게 넘어있다.

'잠시만....'

내가 경험한 것도 아니고, 해결법이 나와서 신경을 쓰지도 않을만한 부분이라 잊고 있었는데.

결국 지금 나는 과거에 와 있고, 그 시점은 꽤 옛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정도로 심각한 피해가 있었다면, 기록에 남지 않았을 리가 없지.

"송도의 비극...?"

인천 송도에서 일어났던 대형 사고다.

물속에 있었던 던전 때문에, 제대로 탐지하지 못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던전 브레이크 사고였는데.

문제는 이 던전 브레이크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거지.

이 던전 브레이크는, 특이하게도 대부분 에너지가 둠의 형태로 도시를 둘러싸게 되어 있었고.

송도는 그대로 바깥과 격리된 상태로 던전 브레이크를 맞이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하필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것이 송도에 살던 헌터들까지 죄다 바깥에 나가 있던 타이밍이었다는 거다.

지금은 이것을 뚫을 수 있는 마력 장비도 개발이 되었고.

그 이외에도 물속의 던전 상태를 더 안정적으로 확인하는 기술도 적용이 끝났으며.

심지어 어느 정도 큰 도시에는 헌터가 하나 이상 자리를 지키는 법도 제정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만들어지는 계기가 있는 법이고.

그 계기가 바로 송도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이 끔찍한 사고였다.

당시에 도시에 살고 있던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전부 사망했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생존자는 0명이었다.

'그래서 도시가 이상할 정도로 어색했구나.'

워낙 불려가는 일도 많고, 던전 때문에 다양한 곳을 다니다 보니.

송도가 어떤 도시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송도는 송도의 비극 이후에, 완전히 싹 다 재건축한 곳이고.

나는 재건축 이후의 송도의 모습을 기억하니, 지금과 매칭이 되지 않았던 거겠지.

'꽤나 옛날로 돌아왔구나.'

그나저나 어쩐다.

나는 일단 이곳과 바깥을 단절하고 있는 차단벽까지 도달해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굉장히 다양한 특성을 쓸 수 있고, 화력도 강력한 편이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한 생각으로 깨부술 수 없다.

이걸 부수는 무기도, 취약점을 이용해서 약하게 만들어준 걸 S급 헌터가 타격해서 부수는 거였다.

즉, 일단 취약점을 이용할 줄 모르면 쓸 수 없다는 것.

심지어 이 던전은 보스 몬스터의 코어가 방어막으로 바뀐 형태라, 시간이 지나서 힘이 다해 자연사할 때까지 클리어도 불가능했다.

'그나저나 이상하네. 왜 정아의 비틀림을 해결하러 온 건데, 이런 곳에 가두어 둔 거지?'

지금까지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겨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지금 이 상황은 이상하잖아?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가, 하필이면 내 근처에 있다가 구해진 유일한 생존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격리되어있는 송도 내부.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생존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 말고는 없다.

"설마...."

"왜 그러세요?"

"너, 혹시 이름이 뭐야?"

"이름이요?"

"응."

"정아요. 배정아."

생각해보면 송도의 비극은 나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이고.

만약 지금이 그 시대라고 가정한다면, 정아는 아직 어린아이여야 한다.

그래, 마치 내 눈앞에 있는 이 꼬마애처럼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