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239화 (240/289)

<239화>

"갑자기...? 무슨 이유라도 있어?"

"따,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정아는 입을 꽉 다물더니, 딱히 그럴듯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뭔가 농담이나 욕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나름 명확한 이유 자체는 가지고 있는 모양새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에게 대답해줬다.

"뭐, 좋아. 이게 나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까, 다 같이 이야기는 해보자. 가능하면 너부터 하는 거로."

"가, 감사합니다."

"이번 작전이 잘 흘러가면 전부 네 덕이니까 당연히 해줘야지."

안 그래도 누구부터 먼저 0레벨에 도달시켜야 더 효율이 높을지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다만 당장 그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누굴 고를지 애매해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전에 한 번 양보했던 공주부터 진행하려 했는데, 당장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쪽부터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지.

"매니저님."

"응?"

"매니저님은 제가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야 그렇지 않을까. 뭐, 근데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요즘 정아는 착하게 잘하고 있잖아."

"예전에는 나쁜 아이였잖아요."

"그렇긴 한데, 바뀐 게 어디야."

정아가 이전에 설아를 괴롭히던 시절이 떠오르긴 하네.

정작 설아도 그때는 정상이 아니라서, 그거로 상처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학창 시절에는 따로 괴롭히던 애들이 있었던 모양이고....

그런 행위 자체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맞았다.

"혹시요. 혹시 제가 착한 아이였다면, 매니저님이 저를 강간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마 어지간해선 다른 성격 나쁜 애부터 건드렸을걸."

"그건 조금 다행이네요."

"...뭐?"

"저는 매니저님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나쁜 짓이 정당화되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추가적인 훈계를 했지만.

정아는 배시시 웃으면서,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면 여전히 나쁜 아이가 될 거라며 농을 했다.

요즘 정아가 은근히 장난을 잘 친단 말이지.

대회 직전만 아니었어도 마구 괴롭혀줬을 텐데....

"달링, 슬슬 준비해야 해."

"응, 갈게."

그렇게 정아와 여러모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회의 시작 시각에 도달해 있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노래와 연출 세팅을 주최 측에 넘기고, 혹시 각성자가 있는지 검사하는 곳에서 참가 자격을 인증받았다.

이건 그냥 검사할 때만 '나는 사회적 약자야'를 이용해 각성을 해제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렇게 풀메이크업에 드레스까지 입으니까, 진짜로 보이쉬한 여아이돌 같네."

"조용히 해라.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순수하게 칭찬이야. 솔직히 달링이 미남이니까 미녀에 가깝게 소화하는 거지."

"그렇긴 한데...."

당장 예선 단계를 넘어선 아이들의 외모는 전부 아름다웠다.

아마 자기가 갈아탈 몸인 만큼, 외모도 굉장히 신경을 써서 뽑았겠지.

거기 뽑혔으니 내 외모도 그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평가받은 셈이고.

"그래도 남자가 예쁘다는 말을 들어도, 그다지 기쁘진 않아서. 내가 괜히 타천사라는 별명을 싫어했겠어?"

"응, 싫어도 이미 늦었어. 어차피 오늘 이름도 루시퍼로 나간다며."

"...정아가 다 짜놓은 판이니까, 그냥 얌전히 받아들였을 뿐이야."

그런 세세한 부분에 태클을 걸기엔, 정아가 이번 일에 워낙 진심이라....

그리고 그런 것이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당장 대회까지 연습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연습에 모든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였으니까.

"다녀올게. 결국 마음 결정은 정아가 받기로 한 거지?"

"응. 공주도 굳이 급하게 받을 필요는 없다더라."

"오케이."

아영이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내 차례를 부르는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특성을 이용해서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 연습했던 만큼, 그다지 떨리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고.

연습을 해왔던 그대로 완벽하게 무대를 선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저 녀석이구나.'

무대가 끝난 이후 시끄러운 박수 소리 사이, 스크린을 통해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귀여운 컨셉의 아이돌이 눈에 들어온다.

마이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돌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래 몸 주인의 이름이고.

실제로 그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건, 오래전에 죽었어야 하는 '미코'라는 이름의 매계노.

겉으로는 다음 세대의 아이돌이 될 새싹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평가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가지게 될 새로운 몸을 품평하고 기대하는 중일 터지.

그 역겨운 마음가짐을 상상하니, 절로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뭔가 저한테 질문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존경하는 마이코님을 가까이서 뵈니 영광이라서요."

"후후, 엄청나게 멋진 무대였어요. 물론 그게 마음에 들어서 예선 통과를 드린 거지만, 아시다시피 최종 대회는 오로지 투표로 결정되니까요. 제 권한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에요."

"말씀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실제로 자신의 말이 가진 무게를 인지하고서 하는 말일 터다.

아마 그녀가 특히나 마음에 드는 '몸'의 무대에서만 저런 발언을 함으로써, 결과의 이변 가능성을 줄이려는 셈이다.

평소에 그녀의 노래만 듣고, 그녀만 사랑하도록 세뇌된 이들의 투표이니.

그녀의 의견은 당연히 큰 폭으로 영향을 미치겠지.

'아마 지금 이 선택은 크게 후회하게 되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선택한 그녀를 비웃으며, 천천히 무대를 나가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아까까지 나처럼 무대를 선보였던 '예비 희생양'들이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불쌍하게도, 이 대회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이들이리라.

"루시퍼라고 하셨죠? 엄청난 무대였어요! 제가 참가자가 아니었으면 무조건 투표해드렸을 거예요!"

"...네? 본인도 참가자일 텐데, 그럼 본인을 찍는 게 정상적인 상황 아닌가요?"

"에헤헤.... 저도 오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여기서 무대를 쭉 보고 있으니까, 엄청 대단한 사람밖에 없더라고요. 루시퍼님처럼요."

아마 이 녀석은 다른 사람들의 무대를 보면서 기가 꺾인 모양이었다.

하긴 전세계에서 몰린, 아이돌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만 오는 대회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내 경우에도 각성자라는 신체적 이점과 몰래 사용해둔 특성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기량을 뽑아낸 것이니.

만약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했다면 절대로 우승할 수 없는 대회였다.

"그럼 아이돌이 되지 못해서 슬퍼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거야 슬프지만, 그래도 이곳에 예선전에 통과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거잖아요? 투표 순위로 비싼 값에 애완묘로 팔릴 예정이라니, 행복한 일이잖아요. 제가 슬퍼하면 대회에 오지도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 말에 공감하는 눈치의 몇 이들이 있는 걸 보며, 이 세상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엘프들의 애완동물이 되어, 평생을 그녀들에게 희롱당하며 사는 것을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것 자체가 모든 이들의 꿈과 목표가 되어 있다니.

물론 그런 세뇌가 진행된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되어 있을 터지만, 생각해보면 여기 있는 이 아이들만큼 세뇌의 강도가 강한 아이들이 없을 거다.

누구보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아이들인 만큼, 기존 아이돌의 노래를 엄청나게 들었을 거고.

그 노래의 세뇌 효과가 강하게 발전했겠지.

"저는 애완묘로 팔릴 생각이 없어요."

"네?"

"무조건 우승해서 아이돌이 된다. 그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거거든요."

솔직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서 연습했고, 이 자리에 서기로 했지만.

평범한 남자한테 여장하고 아이돌을 하라고 하면, 대체 누가 그걸 좋다고 하겠어.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곳의 아이들이 더는 이런 식으로 희생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 착한 아이들이 좀 더 평범하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보고 싶어졌다.

"무조건...."

"저 자리에 서서,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요."

미코의 특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분석이 끝났기에, 이제 미러링을 이용해서 충분히 복사도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미코의 자리를 빼앗아서 이 바보들한테 제대로 된 생각을 불어넣어 줄 힘이 있는 셈이고.

그렇다면 그 힘으로 이 녀석들을 구해주고 싶었다.

"와아...."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진 몰라도, 묘족 소녀는 마치 감동이라도 받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묘한 시선에 왠지 머쓱해져서 헛기침하는 순간, 대기실에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은 투표 시간이 종료되었다며 참가자 전원이 무대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역시, 순조롭게 최상위권에는 도달했네.'

결과는 아래 순위부터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탈락한 이들이 투표수를 기반으로 가격이 정해져, 실시간으로 팔려나가는 모습을 구경해야 했다.

이건 대회라기보다는 경매에 가까운 모습이라 기분이 나쁘네.

그 경매의 판매 물건 자리에 내가 나와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기분 나빠.

"그리고 대망의 차기 아이돌은...."

그리고 그 경매와 동시에 진행된 본선 투표의 결과가 나왔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내 승리로 끝이 났다.

의외였던 것은, 2위였던 녀석이 아까 나와 대화하던 그 묘족 소녀였다는 정도.

워낙 다들 쟁쟁해서 자기가 우승하기 힘들 거라더니, 아마 내가 없었으면 저 녀석이 우승했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깍듯이 할 것 없어요. 어차피 저희는 같은 아이돌이고, 이제 제가 인수인계를 하고 나면 이 자리는 당신 거니까요."

방송에 나가고 있다고, 저런 식으로 연기를 하는 모습이 참 역겨웠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에게 웃음으로 화답했고.

대회 방송은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에는 우승자를 제외한 참가자들의 경매가 엘프들을 상대로 시작되었고.

나는 미코의 손에 이끌려서 묘하게 보안이 심해 보이는 방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녀를 경호하는 인력도 사라지고, 안과 밖에 완전히 격리된 것으로 보이는 공간....

'넌 뒤졌다 시발년아.'

여기는 그녀가 내 몸을 빼앗는 작업을 하기 위해 완전히 바깥과 격리된 장소였고.

반대로 말하면 내가 그녀를 몰래 처리하기에 완벽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