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노미오에게 들었던 위치로 이동하자, 주변과 꽤나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박물관 하나가 있었다.
우리가 처음 나왔던 던전 감옥도, 이렇게 주변과 동떨어진 느낌이긴 했지.
아마 시골이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존 스타일 그대로인데, 그런 장소에 엘프들 취향으로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 이질적인 것 같았다.
"여인위 냄새가 굉장히 많이 나는 건물 스타일이지 않아?"
"아,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그 애들이 갇혀있던 시설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확실히 여인위가 각성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키우던 세뇌시설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물론 건물 종류 자체가 다르긴 한데, 기본적인 색감이나 건축 스타일이 닮아 있는 수준.
그럼 이걸 지을 때 일을 주도한 것이 엘프들이란 소린데, 그런 시설에 레지스탕스가 지낸다니....
"일단은 주의해. 우리는 서로 알고 접선하는 상황 같은 게 아니니까."
괜히 엘프로 오인되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어느 정도 경계는 해야 했다.
그렇다고 바로 엘프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도 애매한 것이, 만약 우리가 그냥 착각한 것이면 골치가 아파진다.
어느 쪽도 고르기엔 애매해서, 최대한 경계하면서 풀어나가기로 했다.
"아, 안녕하세요. 엘프님들.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 박물관을 담당하고 있는 히노데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현재 이쪽 세계에서 묘족의 대우는 매우 좋지 않다.
그나마 나은 편인 '로얄'들의 경우, 거의 엘프와 동등한 취급을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로얄 자체가 엘프를 섬기기 위한 직책인 만큼 차별은 존재하겠지.
그런 상황에, 상급자일 엘프가 존댓말을 쓰면 이상하게 여겨서 엘프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던진 거였는데....
"혹시 제가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아, 네. 괜찮습니다."
의외로 존댓말을 컨셉처럼 이용하는 엘프들이 꽤 존재하는지, 존댓말 정도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흠, 아니면 정말로 우리의 과도한 생각일 뿐인가?
여긴 그냥 평범한 박물관이고?
'...일단 미리 이야기 들은 것처럼, 평범하진 않네.'
엘프들한테는 평범한 박물관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인간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장소였다.
시작부터 알몸의 여체가 전시된 걸 보면, 누구나 이런 박물관이 어디 있냐고 놀라겠지.
심지어 저게 그냥 조각품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신체를 박제해서 보관 중이랬지.
"들어오시면서 보이는 건, 최초로 엘프님들에게 반기를 든 각성자입니다. 그 당시에는 처벌 자체가 목적이라 몸에 구멍을 뚫는 고문을 보여줬다고 해요. 그래서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최초? 그럼 꽤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 아닌가요? 왜 이런 시골에...."
"이런 종류의 박물관은 대부분, 그 시대 엘프님들의 미학을 퍼트리기 위해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 미학이 가장 적던 시절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거든요."
"그건 좀 그러네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오히려 그런 초창기니까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텐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더 많은 분이 찾아오시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일단은 그녀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것과 별개로 이곳에 전시된 시체를 보면서 느끼는 건, 만약 지구도 엘프한테 패배했다면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전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엘프 새끼들은 우리랑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게 돌아가는 건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
"여기 영상으로, 그 당시 처형 장면이 녹화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면 보실 수 있으세요."
"볼게요. 궁금하네요."
이런 장면을 자랑스러운 일처럼 포장해 선전하고 있고, 또 그게 먹힐 정도로 사회에 적용된 세뇌 효과가 강력하다니.
아니, 오히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세뇌가 더 강한 걸지도 모르겠다.
순수하던 시절부터 이런 것만 보고 자라면, 이게 당연한 줄 알게 될 테니까.
의외로 처형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것 이외에는 평범했다.
다만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건, 실제 고문에서 쓰인 도구보다 구멍이 넓다는 거였다.
이거 설마 한 번이 아니라, 그 뒤로 쭉 괴롭히면서 구멍을 늘린 건가?
잔인한 새끼들.
"영상에서 사용하는 창보다, 여기 전시되어있는 구멍이 훨씬 큰 것 같은데. 혹시 그 이유를 아시나요?"
"아, 저렇게 처벌된 이후에는 엘프님들의 장난감으로 전시되었거든요. 그때 저렇게 뚫린 구멍을 성기처럼 사용하면서 크기가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네?"
진짜 방심했다 하면 훅 치고 들어오는구나.
이젠 박을 구멍이 없는 곳까지 만들어서 박냐?
사실 엘프들은 누구보다 성욕에 미친 두려운 종족이 아닐까.
내가 어지간하면 이쪽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건 혜은이밖에 없는데, 요즘 엘프들 가치관을 보면 혜은이조차 뛰어넘는 것 같아.
"
"아마 그때부터 유행했을 거예요. 엘프님들이 자기가 잡은 각성자들을 장난감으로 개조하고, 서로 공유하고.... 뭐 그런 유행이 퍼졌다고 해요. 모르시나요?"
"그때는 여기 없어서, 전혀 모릅니다."
"그중에서 범용적으로 유행한 것이 바로 이 형태입니다. 팔다리를 자르고, 섹스를 위한 도구로 바꾼.... 육변기라고 불리는 형태죠. 이때 시체에는 가슴을 잘라냈다가 다시 붙여서,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마력을 분리하는 시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저렇게 봉긋하게 붙여놓는구나.
지구에서는 각성 제거 시술을 하면, 각성자로 착각할 수 있기에 최대한 축소해서 붙여준다.
엘프들은 각성자였던 레지스탕스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을 테니, 각성자였던 증거인 가슴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겠지.
"이런 전시품이 꽤 되네요."
"네, 나이대도 다양하죠? 적지만 가끔 수컷 전시품도 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엘프들이 지구에서 했던 남자 각성자 말살 정책은, 어디까지나 지구에서 시행한 것이었다.
즉, 이곳은 그 정책을 시행하기 전이라 남자 각성자들도 존재하는 곳이라는 건데.
그렇다 보니, 이런 피해자는 성별을 따지지 않고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좀 많이 힘든데?'
육변기로 쓰인 건 남성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은지, 끔찍한 모습으로 망가진 남자들의 모습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 정도의 상태였다.
자세히 보기에는 너무 역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절로 돋네.
"어, 이쪽 방은 똑같은 형태인 것 같은데 따로 나뉘어 있네요. 이유가 있나요?"
"여긴 특별 전시관입니다. 말씀대로 동시대에, 비슷한 이유로 처형당한 반역자라서 받은 처벌 방식이 똑같습니다."
"그럼 다른 이유로 이렇게 나뉘어 있는 건가요?"
"여명의 호랑이단, 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어.... 이쪽엔 문외한이라서요."
"최초로 0레벨 헌터라 불리는 괴물을 만들어낸 집단이자, 그 당시 처음으로 제대로 기능한 레지스탕스 기관입니다."
나는 그 순간 반짝이는 마력의 빛을 놓치지 않고, 날개를 펼쳐 공격을 막아냈다.
이제까지 반역자 집단이라고 부르던 걸, 굳이 레지스탕스라고 바꿔서 부른다?
앞으로는 이곳에 도달한 이들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역시, 이 여자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네.
"예상하셨나 보네요."
"네, 애초에 다 알고 왔으니까요."
"...어디서 비밀이 샌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주셔서 고맙네요. 지금 당장이라도 나머지를 피난시키고 당신을 죽이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겠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들을 적대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요."
엘프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그래봐야 그녀의 수준은 나와 비슷한 10레벨이었기에, 최선을 다한다면 시간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설득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아마, 상황을 봐서는 당신이 여명의 호랑이단의 현 멤버겠네요. 맞습니까?"
"그렇다면요? 흡...!"
"매니저님!"
"괜찮아. 거기서 그냥 대기하고 있어."
"흥, 그렇게 다른 엘프들이랑 대화할 여유는...."
"일단 당신이 뭘 착각하고 있나 본대요. 제가 의외로 잘 버티지 않나요? 그렇다고 제가 당신보다 강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말이죠."
상대가 엘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레벨이 높다면야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레벨이 같으면 엘프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니까.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인지 조용히 나를 압박하며 몰아세웠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가짜 엘프 귀를 뗐어 냈다.
"왜냐면 저는 엘프가 아니거든요."
"...설마, 10레벨의 로얄!?"
그래, 확실히 이 세계에는 그런 애매한 위치의 녀석이 있었지.
엘프로 변장한 로얄, 확실히 그녀 관점에서 떠올릴만한 것은 그 정도가 한계리라.
"그것도 틀렸어요. 10레벨까진 맞는데.... 우린 여러분을 도와주러 왔어요. 원군인 셈이죠."
"도와줘? 믿을 수 없어. 그런 식으로 잠입해서 우리를...."
"그런 거 아닙니다. 뭐, 확실히 그런 위치에 있으면 의심부터 하는 게 정상이지만요."
솔직히 이 부분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를 확실하게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낸 상태였다.
솔직히, 이걸 보면 아군이라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을 거다.
"자, 이게 그 증거입니다."
"히익!?"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앞에서 옷을 다 벗어 알몸이 되었고.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그녀는 당황했는지 행동을 멈추고, 내 사타구니에 매달려 흔들리는 자지에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