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도시에는, 엘프 분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엘프 분들을 모시는 애완묘도 많고요."
"그렇지?"
"하지만 저희는 기본적으로 지역을 굴리려면 스스로 할 일을 정해서 일을 해야 하는 비율이 높아요."
"호오?"
"물론, 대부분은 도시에 가서 애완묘가 되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그게 공짜로 되는 건 아니니, 엘프 님들께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죠."
노력하는 자리라는 건, 그녀가 젖 등급을 부여받아 젖묘로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지금 식민지에 굴복하고 적응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양인데....
저런 걸 되게 당연하다시피 말하는 것이, 마치 세뇌의 영향인 것 같아서 조금 기분 나쁘게 들렸다.
"뭐, 도시에서는 더 좋은 주인님을 만나기 위한 스펙 정도로만 여기는 모양이지만.... 저희한테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 달라요."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구나. 하지만, 카페에 손님이 거의 없다면서."
"아시다시피 젖묘가 하는 일은 카페뿐만이 아니에요. 시중에 파는 우유의 원유를 생산하는 일도 하죠."
"응?"
"카페는 어디까지나 제 우유를 브랜드화하는 역할이고, 실제로는 제 카페 일 하는 모습 같은 걸 촬영해서 신선한 산지 직송 밀크로 팔아서 수익을 얻는답니다."
"...아하."
이거 말만 엘프가 주인님이지, 호구 잡고 비싸게 우유 팔아먹는 거 아니야...?
뭐, 정작 저 수익금도 온전히 본인 것이 아닐 테니 의미는 없지만.
결국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에서 생존에 필요한 걸 넘어선 것은 나라가 가져간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기여할 수록, 저를 구매할 때 필요한 가격이 비싸지잖아요. 비싸게 팔리는 애완묘라니,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에요."
"어...."
그러니까 나라 입장에서는, 자기가 알아서 노력해서 돈을 벌어오는데.
심지어 돈을 잘 벌면 팔려 갈 때도 더 비싼 값에 팔리는 미친 효율의 상품이라는 거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굴러간다는 게 어이가 없네.
"뭐, 젖 등급이 낮으면 그런 것도 어렵지만요. 아마 우유 공장에 취직해서, 온종일 우유만 짜내는 일을 할걸요. 그거라도 해야 밥을 주니까, 젖 등급이 낮은 젖묘들은 어쩔 수 없죠."
"젖묘라서 그런지, 젖묘쪽 생태계를 잘 아네."
"그럼요. 그래도 공장도 나쁘진 않다고 친구가 그랬어요. 온종일 행복하게 해주는 약물을 주입해준다고 해요! 그 약물은 엘프님들만 취급할 수 있는 비싼 품목이잖아요? 애완묘가 되지 않으면 경험하기 어렵대서 조금 부러워요. 하지만, 저도 나중에는 멋진 애완묘가 되어서 잔뜩 사랑받을 예정이라 괜찮지만요!"
위험 약물로 보이는 것에 동경까지 심겨 있네.
이건 좀 무시무시하다 싶을 정도인데?
아무리 그래도, 식민지로 살아온 세대가 그리 길진 않을 텐데....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수준까지 묘족 아이들을 세뇌할 수 있는 걸까.
"혹시, 너희 부모는 어떻게 생활해?"
"...부모라뇨?"
"어?"
설마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문제 발언이었나보다.
아마 모든 묘족은, 아이를 낳으면 나라 쪽에서 교육시설로 데려가 바로 세뇌작업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상황을 깨닫자마자, 나는 급하게 둘러대기 시작했다.
"아, 우리 쪽 관습에 익숙해져서 이상하게 말했네. 어릴 때 너희를 교육하신 분들은 지금 뭐하시냐는 뜻이야."
"선생님들이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실걸요? 뭐, 선생님들은 대부분 여전히 거기서 일하시겠죠. 가끔 좋은 아이들을 배출하셨다고 인정받은 분들은, 도시로 옮기셨다던데.... 뭐, 그분들은 저희처럼 팔리지 않아도 원하면 이동할 수 있으시니까요."
뭔가 말하는 투가, 선생님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엘프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뭔가 다른 계급 같은 게 있나?
이쪽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뭐, 시골이랑 도시랑 그 부분은 큰 차이가 없나 보네?"
"저도 도시에서 살아본 건 아니라서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전에 오셨던 분들의 설명으로는 그랬어요."
"흐응...."
"아, 그래도 그 이야기는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로얄들이 살기에는, 엘프들이 적은 시골이 낫다고요. 앗, 이건 좀 기분 나쁘시려나요?"
"아니, 딱히. 아무래도 상관이 있으면 불편할 만하지."
"에헤헤, 말실수했나 싶었어요."
로얄이라.
아마도 선생님들이라는 사람들은, 로얄이라는 계급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다.
이름만 보면, 엘프들에게 충성하는 묘족들이라는 뜻 같은데.
그럼 일반적인 묘족이랑, 로얄은 어떻게 구분을....
'하나밖에 없네.'
"너도 로얄이 되고 싶지는 않아?"
"에이, 이 나이면 다 늦었죠. 로얄로 각성할 거라면,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로얄이 되면, 이제까지 젖묘로 살아온 게 무의미해지잖아요. 그건 조금 싫어요."
역시나, 로얄은 각성하고 나서도 엘프에게 충성하는 중간계급이었다.
되게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긴 하지만, 그냥 매국노나 다름없는 녀석들.
뭐, 이 시점에서 생겨나는 로얄들은 이미 세뇌가 되어서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불쌍하다고 해도, 각성자인 이상 위험성이 있는 적의 분류에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저쪽에 박물관이 있는데 아시나요?"
"박물관?"
"요즘에야, 털바퀴.... 아, 죄송해요. 엘프님들 앞에서 비속어를 쓰다니.... 엘프님에게 반기를 드는 범죄자 녀석들을, 감옥에서 벌을 주며 생산력으로까지 사용하는 시스템이지만. 예전에는 그러기엔 범죄자가 너무 많았다고 해요."
아마 이쪽 세계가 엘프들에게 패배한 직후의 이야기겠지.
세상을 식민지화 당했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반발했겠는가.
당장 우리도 당할 수 있었던 일이다 보니 굉장히 와닿는 상황이었다.
나였으면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싸웠을 것 같은데....
그때 굴복해서 친엘파가 된 녀석들이, 지금의 아이들을 저렇게 세뇌 교육해서 잘 먹고 잘살고.
그 뒤로도 계속 싸워온 이들은, 그렇게 공장에서 몬스터에게 강간당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여러모로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구경하실래요? 그 시절 털바퀴년들, 아니 범죄자들로 뭔가를 만드는 게 유행했대요. 그래서 그때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은, 박제를 통해서 박물관에 전시해뒀대요. 그 시절 엘프님들의 예술성과 엘프님들에게 반기를 든 괘씸한 범죄자들의 말로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죠."
역시 엘프 녀석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년들이 맞는 것 같다.
말이 반란 제압이지, 그냥 자기들 꼴리는 대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거겠지.
지구도 그런 꼴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유명한 곳 맞아?"
"매력적인 곳은 맞아요."
"아니, 유명한 곳이냐니까."
"...그, 저희 지역에서는 나름 명물인데요. 사실 지역마다 다 있는 걸로 알아서, 저희 교육용으로만 명물일걸요. 에이, 그래도 가 볼 만한 가치는 있다니까요?"
대체 교육을 어떻게 하면, 저 정도로 레지스탕스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걸까.
여기는 구해낸다고 쳐도, 나중에 이 세뇌를 해결하는 것이 엄청나게 고생스러운 일일 것 같았다.
지구에 약간 남은 여인위도 힘든데, 여긴 굉장히 두려워지네.
뭐,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상황이 아니겠지만.
"흠, 그럼 그 박물관은 여기 오는 손님한테는 다 추천해?"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가끔 커피를 만들다 보면, 양이 조금씩 다르거든요? 이게 넘치는 날은, 아무래도 죄송하다고 사과하기 바빠서 자세한 말을 못 해요. 그 이외에는 항상 하고 있어요!"
"기계가 좀 낡았나 보네."
"에헤헤.... 시골이잖아요. 좋게 봐주세요."
"하여튼, 잘 마셨다. 덕분에 시간 때울 만큼 재밌게 이야기도 했고."
"아, 감사합니다!"
"나중에 이 우유가 먹고 싶으면 주문할게, 판매한다고 했었지?"
"네! 노미오라고 검색하시면 나올 거에요."
그렇게 커피를 모두 마시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페를 나왔다.
아무래도 이 정도면 이쪽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대충 알아낸 것 같고.
대충 다음 목적지도 정해진 것 같네.
"역시, 뭔가 있지?"
"응, 그런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카페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컨셉 사진용 카페라곤 해도, 이렇게 마을과 멀리 있을 필요가 없고.
심지어 그 공장 근처인데, 그것치고는 너무 사람이 없다.
애초부터 적은 인원만 받을 수 있게, 발견이 어려운 곳에 배치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못하도록 특성을 걸어둔 거 아니야?"
"응, 적어도 노미오라는 애는 아무것도 몰라."
다만 특정 조건에 따라 행동 양상이 바뀌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에게 추천한 박물관의 추천 여부였다.
커피 머신이 과연 우연히 저런 동작을 하는 걸까?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리는 방문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는 거잖아."
"함정 아닐까?"
"함정?"
"아, 우리를 저격한 함정 말고. 엘프들을 향한 함정."
이건 예시지만, 만약 모종의 방법으로 커피를 뽑히는 양이 상대의 마력량에 비례하도록 했다면?
우리도 꽤 커피를 많이 담아준 편에 속했던 데다, 내건 모유를 추가한 후에는 거의 넘치기 직전인 수준이었다.
그럼 10레벨 엘프였다면 무조건 커피가 넘쳤겠지.
"9레벨 이하의 엘프만 그 박물관으로 오도록 유도한다는 거야?"
"그렇지. 9레벨 이하의 엘프라면, 10레벨 수준의 묘족으로도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아하."
그렇게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라면?
...솔직히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나라면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자지가 하고 싶은 말은, 방금 우리가 추천받은 그 박물관이...."
"그래, 지금 활동 중인 레지스탕스의 본거지겠지."
의외로, 우리는 협력할 대상들을 금방 찾아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