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어떻게든 된 것 같긴 한데.... 뭔가 말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좀 답답한 느낌이야."
"그럴 만하지. 아무래도 아이도 있고 그러니까."
물론 이런 부분들이야, 기존 헌터들도 위험한 전투에 나가기 전에 전부 경험했던 것들이지만.
들은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른 모양이다.
뭐,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정신 차리고 진행해야지.
"일단 내가 상황을 알아서 그런지, 나한테 엄청나게 물어보던데?"
"끙...."
나한테 말로는 알겠다고 했어도, 불안한 것이 많은지 공주에게까지 물어본 모양이다.
하여튼 공주가 대충 잘 둘러 대준 모양이라, 결국은 다 괜찮게 끝난 느낌이다.
이제 다음으로 같이 갈 애들한테 부탁을 해야 할 텐데....
"그래서 몇 명이나 데려가려고?"
"너를 포함해서 4명이 확정된 상태잖아? 그렇게 4명으로 진행을 하려고."
"흐음.... 결국 그렇게 되려나."
아직 임신하지 않아서, F급 헌터까지 올라가지 않은 네 명이 있었다.
그 네 명이라면 애초부터 내가 임신시키고 책임질 생각이 있었던 만큼, 흔쾌하게 이번 일정에 동참해줄 것 같은데....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그 애들을 이런 위험한 길에 동반시키는 것도 매우 미안했다.
"그게 미안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여보도 그런 부분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하듯, 다들 마찬가지일 거야. 여보도 그래서 좋아하는 거잖아?"
"...그렇긴 해."
나랑 초기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녀석들이지만.
그때부터 헌터로써 자신이 해야 하는 희생에 대해서는 확실했던 녀석들이었다.
확실히 그 부분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긴 하겠다.
"아, 매니저님?"
"응, 오랜만이야. 요즘 많이 못 챙겨줬지? 바쁘다 보니까 미안하다."
"어쩔 수 없죠. 아마 매니저님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섯 명 중 하나일걸요?"
"끙...."
그래도 이제 그런 일은 다 마무리가 되어가고, 심지어 남은 것도 인수인계가 끝났는데.
딱 이렇게 휴식 취할 시간도 없이 바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좀 그렇네.
참, 인생이라는 게 앞을 알 수가 없다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부탁할 게 있어서."
"야한 거?"
"말고, 진지하게."
"흐응...."
하긴, 오랜만인데 야한 거든 데이트든 좋은 이야기 없이 본론 들어가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
다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부족했다.
미안하지만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야겠지.
"일이 있어. 오랜만에 헌터 일이기도 하고, 제대로 위험하고 사실상 승률을 점칠 수 없는 정도의 난이도야."
"에이, 그런 거야 지난번에 갔던 그 던전도...."
"그 정도가 아니야. 나는 같이 가겠지만, F급 헌터는 따라갈 수 없거든."
물론 중간에 F급 헌터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가겠지만, 그게 바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정말 위험한 여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다 말을 해줘야 했다.
"아, 뭐야. 매니저님이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럼 더 상황이 나은데?"
"...뭐?"
"솔직히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매니저님 없어서 욕구 불만만 잔뜩 쌓이는 것보단 심심하면 매니저님한테 한 대씩 맞으면서 가버리는 게 낫죠."
"......."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답변이 날아오니까 어지러울 정도였다.
여기서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해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긴, 애초에 내 예상대로 답을 내놓으면 정아가 아니지.
항상 내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애가 정아였으니까.
"근데 그런 던전이 지금도 생겨요? 요즘 던전이 강해졌다는 말은 들렸지만...."
"던전이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다른 차원이나 이세계 같은 용어로 표현할 수 있겠네."
"...설마 엘프들 차원에 직접 가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부분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지금 그 차원을 엘프가 점령했고, 그런 만큼 엘프의 많은 병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거긴 기본적으로 원래 다른 종족이 사는 곳을 엘프들이 차지한 식민지 같은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하필 그 식민지에서 이쪽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있다는 거네요."
"일시적으로는 막았지만, 근본적으로 루트를 다시 뚫으면 문제라는 거지."
다행히 이쪽엔 저쪽으로 갈 좌표가 있으니까,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저쪽도 이쪽으로 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구현을 한 모양이지만, 정확한 좌표가 없어서 시간이 걸리는 것 같고.
"저쪽의 식민지 사태를 해제할 정도로 무너트리면, 일단 바로 우리한테 직행하지는 못하게 되잖아."
가능하면 그 후에 본진까지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지금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무리고.
당장은 어떻게든 저쪽의 여인위를 밀어내고, 저쪽 나름대로 방비해서 이중으로 방벽을 세우는 형태로 가야 한다.
"알았어요. 저는 당연히 갈 거예요. 일정이랑 다 잡아주세요."
"...고맙다."
"근데 언니들이 괜찮다고 해요? 아무래도 매니저님까지 그런 위험한 전투에 참여한다고 하면...."
"방금까지 시달리다 왔지, 나도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딴 식으로 계속 엘프들에게 괴롭혀지며 사는 건 좋지 않으니까.
예상했던 그대로긴 하지만, 이렇게 같이 해준다고 해서 고마웠다.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다 보니, 좀 고민이 될법한 주제인데.
"고마워."
일단 정아의 경우에는 쉽게 오케이를 받았고, 다음은 유림이랑 아영이네.
원래는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둘이서 같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모양이라.
그냥 대충 상황을 양쪽이 눈치챈 김에, 같이 오라고 말했다.
"달링이 저런 표정 지으면, 진짜 심각한 사안만 나오던데. 무슨 일이야? 또 그 엘프 녀석들이 문제야."
"...티나냐?"
"아마 누가 보든 그렇게 생각할걸? 평소라면 힘찰 자지가 그렇게 축 처져 있잖아."
"유림아, 누가 들으면 내가 항상 자지 빨딱 세우고 다니는 변태인 줄 알겠어."
"아니었어!?"
아니야 이 미친년아.
그냥 유림이 너를 따로 부르거나 할 때는 그런 이유로 부르는 게 많아서 그렇지.
평소에 그렇게 자지 빨딱 세우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거든!?
"그러게.... 달링 자지가 시무룩하네. 진짜 어디 아파?"
"야!"
유림이가 은근 진지하게 저런 말을 해서 어처구니가 없는데.
자연스럽게 아영이가 농담으로 이어나가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진지한 이야기 하려고 불렀는데, 벌써 분위기는 다 흐물흐물해져 버렸네.
"흐음, 그런 거면 선택지가 없잖아. 자지가 있는 곳에 나도 있어야지. 자지 케이스가 안 따라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도 달링이 가면 무조건 갈 것 같은데."
"음...."
근데 뭔가 갈수록 대화 내용이 좀 이상하네.
원래라면 힘들긴 해도 헌터니까 가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간다고?
"어쩔 수 없잖아? 자지가 없으면 금단 증상 나온다고."
"...내가 다 미안하다."
"달링은 좀 미안하긴 해야지. 그나저나 그쪽으로 가면 4명으로 줄어드는 거지? 그럼 지금보다 이득인데? 더 달링이랑 오래 있을 수 있어."
"...작전하느라 바쁠걸?"
"그 작전도 같이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대체 뭐야 이 긍정으로 넘치는 마인드들은?
일단 쉽게 승낙해줘서 고맙긴 한데, 조금 찜찜하네.
"이거야?"
"응, 읽고 날짜에 맞춰서 준비해주면 될 것 같아."
"...얼마 안 남았네. 급하게 잡아서 그런가?"
"빠르면 빠를수록 대처하기 좋으니까."
일단 나도 그렇고, 비 관계자들한테 이야기도 하고 챙겨갈 것을 비롯한 준비도 해야 하니까 최소한의 여유는 줬지만.
그 이외에는 모든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두었다.
"응, 그럼 오케이라고 알아듣고 진행해도 괜찮지?"
"응."
"에잉, 부르길래 좀 기대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
"아, 그 부분은 미안. 나도 할 일이 좀 쌓여있어서."
"알아. 아무리 내가 자지가 좋아도 거기까지 방해할 생각은 없어."
...진짜 다들 여러모로 고맙다니까.
나는 흔쾌히 같이 가겠다는 답을 준 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도 같이 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설득하기 좀 어려울 것 같다.
'최종 보스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문을 열었고, 어느새 이야기가 다 퍼졌는지 우르르 몰려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성한 애들한테만 말했는데, 지금 보니까 고아원 애들이 다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일심동체인 녀석들이라니까.
"결국 다 말했나 보네."
"그럼 은혁이 오빠가 말하지 말란다고 말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끙...."
이건 아마 높은 확률로 은서가 무조건 말해야 한다면서 진행한 일일 거다.
왜냐면 은서 빼곤 다 조금씩 눈치를 보는데, 은서만 당연히 할 것을 했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으니까.
얘도 참 한결같네.
"그래, 뭐.... 야, 야. 울지 말고."
태웅이 얘는 또 왜 울고 있는 거야.
진짜 안 그래도 마음 약해진 상태에, 얘들까지 이러니까 되게 힘들었다.
"오빠, 그냥 우리도 가면 안 될까? 차라리 그러면...."
"안돼. 아직 방해만 될 거야."
"이제 우리도 A급...."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미안해 은서야."
아마 이 답변 자체는 그녀도 예상한 듯, 한숨만 내쉬고 더 말을 잇진 않았다.
가지 말라고 우는 아이들을 보면 아무래도 힘들긴 하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태웅아, 알잖아. 나는 모두를 지키러, 싸우러 가야 해. 그런 내가 멋지다고 해줬었잖아? 그러니까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줘."
"응, 응....."
"그렇게 울면 나중에 헌터 매니저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오빠, 무조건 돌아와야 해. 안 돌아오면 내가 직접 찾으러 갈 줄 알아?"
"야, 그건 좀...."
"이건 통보야."
"......."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서 기쁘면서도.
이렇게 그들의 마음을 짓밟고 위험한 싸움에 나간다는 것이 미안한....
오늘은 참 여러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