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허, 시발...."
내용을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던전에서 찾은 펜던트에서, 우리가 미래나 지난 회차에서나 써먹을 기술로 만들어진 편지가 발견된다?
절대로 좋은 신호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읽어야겠지."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해도, 이걸 읽지 않는 건 악화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니까.
나에게 꼭 필요한 사항이니까 이렇게 전달되도록 해놓았을 거잖아?
이미 상황은 일어나는 것이 확정이고, 이건 해결책을 담은 물건이라 보는 편이 맞으리라.
'역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문제가 있는 건 맞았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에 집착해서 어떻게든 뭔가 힌트를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러지도 않았으면, 아마 조금 더 늦은 시점에 문제를 발견했겠지.
그나마 이렇게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열어볼게."
"응."
편지 봉투에는 하얀 편지지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정갈한 글자가 깔끔하게 적혀 있는 편지가 눈에 띄었다.
한글이긴 한데, 약간 방언이 섞인 것처럼 말투가 좀 이상하네.
"내가 쓴 게 아닌가?"
당연히 내가 적은 편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적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말투의 편지였다.
일단 읽어보면 알겠지 싶어서, 천천히 내용을 읽어보는데.
역시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박은혁님에게...."
편지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세상이 위험에 처했으니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 위험을 만들고 있는 자들은 우리가 아는 귀쟁이 종족인 '엘프'였다.
사실 이거야 다른 세상 이야기인데,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 필요는 없지.
'역시....'
근데 이 편지를 보내게 만든 것이 아무리 봐도 우리가 도운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면 왜 그런 행동을 했겠는가.
그것에 관한 내용도 바로 다음에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걸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편지가 도착했다는 건, 예상대로라는 거네."
이전에 엘프들이 우리 차원을 찾아낸 것은 그냥 직접적으로 발견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편지를 쓴 '아스카'라는 소녀의 세상을 통해서 진입한 거지.
그리고 일단은 그걸 전부 자기들 차원으로 쫓아낸 것이 저번 혜미의 특성의 힘인데....
'그 원래의 루트는 확실하게 막혔지만, 여전히 아스카의 차원에서는 들어올 방법이 남아 있다는 거네.'
그리고 엘프들은 그 방법을 통해서 지금 여러 테스트를 하는 중이고, 그것으로 인해 던전이 불안정해지는 중이라는 거다.
차라리 그런 여파라도 없으면 상관이 없을 텐데, 이미 그 여파가 나오는 걸 보면 결국은 시간 문제라는 소리잖아.
이 편지도 그 방법에 편승해서 도착한 것일 테고.
"이걸 재진입 각을 보네. 미친년들...."
"간단히 말해서, 엘프 녀석들이 다시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되는 거지?"
"어. 돌아버리겠다."
이제 좀 평화를 되찾고, 일상을 지키면서 평범한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 망할 엘프들과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싸울 방법에 대해서 편지에 적혀 있다는 건데.
"편지를 찢어서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네. 쟤들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
"그럼 가서 직접 엘프들을 족치자는 거지?"
"응, 그게 기본 베이스긴 해. 돌아오는 건, 아무래도 저쪽에서 방법을 알아내서 와야겠네."
결국 그녀는 이 편지를 쓴 이후 붙잡힐 거라고 남겨져 있었고.
자신을 구해내서 최종적으로는 그쪽 세상의 엘프들도 처리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였다.
그럼 이제 이쪽으로 쳐들어올 방법이 사라지는 것이니, 이곳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싸움에서 그나마 기존보다 나은 점이긴 하네."
항상 모든 싸움이 우리 집에서만 되는 것이다 보니, 싸움의 여파가 그대로 우리한테 손해로 다가오는 형식이었는데.
물론 저쪽 차원도 피해자긴 해도, 최소한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게 보면 그나마 좀 낫다.
'제일 좋은 건 녀석들의 본진에 쳐들어가서 끝을 보는 거겠지만....'
그건 생각보다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쪽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간다고 해도 여기 적혀 있는 제한 사항을 보니까 더 그럴 것 같고.
여러모로 복잡한 느낌이야.
"차원을 넘어서 침략하는 것 자체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제한 사항이 있다라...."
지금 엘프들이 왜 우리를 힘으로 압도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하면 편하다.
분명 엘프들은 다수의 10레벨을 끌고 와서 우리를 쓰러트리면 정복하는 것에 충분했을 거다.
그런데 왜 굳이 세상을 속이고, 암약해가면서 지배하려고 했을까?
"다른 차원에 넘어갈 때는, 해당 차원의 최고 레벨의 바로 아래 등급과 비슷하거나 같은 수준만 넘어갈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돌아갈 때는 상관이 없고."
예를 들어 우리 지구의 최고 레벨은 0레벨이고, 그것보다 낮은 레벨이 바로 10레벨이 된다.
즉 엘프는 인간의 10레벨과 같거나 낮은 레벨만 도착할 수 있는데.
엘프는 10레벨이 끝이긴 해도 인간보다 레벨별 강함이 높기에 9레벨까지만 넘어올 수 있는 거다.
그래서 9레벨의 엘프들이 넘어와서 10레벨이 되는 과정을 거쳐, 마스터가 되었던 거지.
그렇다 보니 물량으로 싸움을 붙기가 굉장히 어려웠고.
엘프들은 천천히 암약하면서 10레벨들이 늘어나는 날을 기다려왔던 거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 시스템이네.... 잠시만, 그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잖아."
아스카라는 소녀의 차원은,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 수인인 묘족이 살아가는 차원인데.
그 묘족들의 기본적인 레벨 시스템은 인간과 같았다.
애초에 인간을 미리 그렇게 잘 알고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들이 묘족들의 반란을 당해봤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아까 그 시스템은, 여기서 엘프들을 공격하러 넘어갈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우리는 0레벨이 아닌 10레벨까지만 넘어갈 수 있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F급 헌터들을 죄다 활용하지 못하는 전투라 이거네.
"그건 그나마 괜찮지 않아? 여보는 F급 헌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일단은 여기서 9레벨이나 10레벨인 상태로 이동해서, 도착한 다음에 내가 임신시켜서 0레벨을 만들자?"
"그러면 될 것 같지?"
어차피 4명의 경우에는 이미 임신시킬 계획이었으니, 그 부분에서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말인데....
그건 확실히 그럴듯하네.
계획만 조심해서 잘 짜면, 정말로 효과가 있는 전략일 것 같긴 했다.
"대충 어떤 느낌으로 모이면 될지 감이 오네."
내가 확실히 임신시킬 대상으로 꾸린다고 한다면....
공주랑 정아, 유림이랑 아영이까지 넷을 데려갈 수 있겠네.
그렇게 다섯 명 정도가 넘어가서 어떻게든 몰락시킬 수 있다면, 이곳의 위험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몰락에 대한 부분도, 우리에게 혜미가 있어서 해결했던 것과 비슷한 원리로.
저쪽은 아스카의 힘을 통해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래서 위협이 되는 아스카를 잡아두는 거고, 반대로 죽이지 않는 것도 워낙 강력한 힘이니까 자기들도 공격용으로 써먹기 위해 연구 중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긴 한데, 굳이 이런 편지가 도착하게 했다는 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거고.'
애초에 미래에서 보냈던, 다른 회차의 내가 보냈던.
결국은 나나 아니면 내 근처 사람이 판단해서 보낸 건데.
이걸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을 거다.
다만 가능성이 있는 것과 굳이 그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은 다른 영역이지.
"일단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올 때마다 파워로 눌러 찍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럼 그게 더 싸게 먹히는 것은 아닐까 싶긴 했다.
다만 그렇게 되면 F급 헌터로 상시 국경 수비를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물량빨로 상대가 밀어붙이거나 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만큼, F급 헌터를 뚫을 방법을 길게 연구해서 위험해지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여러모로 생각해볼 때, 역시 가서 침략의 가능성을 뿌리 뽑는 게 좋은 건 사실이었다.
이쪽에는 이미 F급 헌터들이 있으니 막을 수 있고, S에서 A급 헌터들만 위험을 고려하면 완벽한 승리가 가능하니까.
만약 실패해도, 전체 전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성공 시에 얻는 메리트가 너무 강하다.
"하지만...."
그 위험을 고려하는 것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과.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이제 방금 태어난 애들이 6명인데, 그 애들을 여기 두고 차원 출장을 나가야 한다는 거니까.
"공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여보가 위험할 정도의 일이라면 말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근데.... 여보 성격상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으니까 벌써 포기했어. 대신 여보가 간다면, 무조건 같이 간다는 정도."
"...하아, 어쩌겠어.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애초에 원래 헌터라는 직종은 이런 위험과 안전에서 위험을 택하고 싸우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희생을 통해서 세상을 구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가면서 싸움을 도전하는 이들이다.
"나 혼자 결정하기엔 무거운 문제니까, 일단은 모두랑 상의하긴 해야겠지만...."
"이미 간다는 쪽으로 마음 기운 거 아니야?"
"......."
그리고 나는 이전에는 헌터가 아니라 매니저 나부랭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분명히 '헌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물러날 준비 따위는 되어 있지 않은 멍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