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6 15장 - 질 입구 주름 다림질(1)
"후, 제발...."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겠지."
"책에 나와 있었다곤 해도, 결과는 보질 못했으니까 불안해서...."
"뭐, 하필 혜미가 워낙 이런 건 말없이 알아서 책임지려는 성격이라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혜은이는 이럴 때는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며.
웬일로 좀 언니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긴, 만약에 이게 다 혜미가 거짓말이고 구원하고 도망가는 짓거리라도 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든 구해내기 위해서 노력할 거다.
그 집착에서 도망칠 자신이 있으면 도망쳐 보라지.
전용 장비를 입은 혜미가, 여러 대의 카메라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특성이긴 하지만, 기존 혜미의 정령술처럼 특별한 계약을 통해서 진행해야 해서.
이런 진중한 분위기가 필요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미래의 가능성을 온전히 바치노니.... 또 다른 미래를 우리에게 주옵시며."
진짜로 어딘가에 기도하는 듯한 모양으로.
평소에 대가만 딱 내던 계약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슨 무녀나 성직자 같은 느낌이 드네.
그리고 마침내 혜미가 말을 멈추고 눈을 감자.
그녀의 뿔에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과 함께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생성되더니 힘차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그 막을 지나가는 순간, 온몸의 마력이 멀미할 정도로 강렬한 힘이 담겨 있었고.
평범한 F급 헌터의 스펙조차 상회하는 여파를 보이며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 막에 닿는 브레이크 되지 않은 던전은 다수가 소멸해버렸으니까.
전 세계의 헌터들이 하룻밤에 직장을 잃게 되는 순간이었다.
'전부가 아닌 게 다행인가?'
아마 이 던전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엘프들의 차원에서 무기로 보내온 것이겠지만.
그 이외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녀석들도 있긴 했나 보다.
저런 곳들 처리 때문에 헌터들이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존보다는 훨씬 더 일이 줄어들겠네.
헌터 산업 부서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래도 현대 산업의 많은 것들이 헌터 문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그걸 살리기 위해서 추가적인 연구 같은 걸 해서라도 어떻게든 하겠지.
뭐, 압도적으로 던전보다 인간 측이 강하면.
던전의 몬스터 같은 것을 일부러 사육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어?
"후, 미친 새끼들. 엄청나게 달려들어서 당황했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
"지면 바보지. 혜미는?"
"지쳐서 잠들었는데, 일단은 무사한 것 같아."
처음에는 녀석들이 여인위 소속의 헌터를 마구 보내서 방해하려고 했고.
진짜로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말단 엘프들이 직접 와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싸우다가 방금 그 빛의 파동을 맞고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던전이 엘프들이 침략하기 위한 무기라는 것도 증명되었고. 이제 엘프가 사라졌으니 전투력은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
이렇게 혜미가 다해줬는데도 우리가 지구를 여인위에게서 되찾지 못하면 멸망해야지.
하여튼 이제 남은 것은 이 미친 필살기를 맞고도 지구에 남아서 버티는 코코로를 붙잡는 거였다.
아, 물론 여인위에 세뇌당해서 이상해져 있는 전 세계의 헌터들을 정화하는 것도 해야 하고.
'가장 집착이 심하던 애들이야, 어차피 혜미에게 복수하겠다고 찾아와서 알아서 잡히겠지만.'
문제는 그럴 깡은 없이, 조용히 여인위를 기다릴 녀석들이다.
꼭 그런 애들이 나중에 다시 주인님들을 불러서 진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상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서 전파하는데....
'내가 F급이 아닌 게 한이다.'
내가 F급이 되면 전 세계를 상대로 최면을 걸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면 망할 여인위에 대한 걸 혐오하게 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지금처럼 1대1로만 발동해야 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좋아.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어.'
이제까지 인류를 위협하던 던전 중 상당수를 실제로 없애는 것에 성공했는데.
그걸 일으킨 혜미가 있는 대한민국을 믿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들의 대가리가 다 사라진 여인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것도 눈에 훤하고.
뭐, 그게 전부 자기들끼리 경쟁한답시고 시스템을 그따위로 만들어둔 탓이지.
"수고했어."
"...성공했나요?"
"응, 완벽하게. 몸은 괜찮아?"
"...마력이 워낙 강하기 터져서, 몸이 많이 무너진 느낌이네요."
"은하도 그렇게 말하더라. 치료는 했는데, 마력이 많이 뭉쳐서 고통스러울 거라고."
"...그래서 마사지해주고 계셨던 거예요?"
"응."
혜미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뭉쳐있는 가슴을 주물러주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야하다고 생각하면서 만졌다가, 응어리진 마력이 딱딱해져서 몸을 짓누르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
그래도 이건 치료하고 나서 이렇게 마사지해주면 금방 좋아질 거란다.
"던전도 상당수 사라졌고. 아마 굉장히 평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시도 때도 없이 브레이크 터지던 생활은 끝나겠지."
"...아기 키우기 좋겠네요."
"그러게. 너무 부인이 여럿이라서 미안하긴 한데. 괜찮지?"
"저야 다 알고 좋아한 건데요."
"...고맙다."
아무래도 아이들까지 태어나기 시작하면 정신없겠네.
그래도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 누군가가 손쉽게 죽는 지금의 세상보다는 나을 거다.
"코코로는 찾았어요?"
"지금 애들이 찾고 있어. 물론 아직은 너를 노리고 습격하는 여인위 잔당이 많아서. 조금 사리고 있긴 하지만."
일단 자기 주인이랑 떨어트렸다고 분노해서 움직이는 멘탈 좆밥들부터 다 처리하면.
그다음은 코코로를 찾아서, 그 코코로를 이용해 남은 잔당을 모아 최종 정리할 생각이다.
엘프가 나와서 도움을 청하는데, 어지간한 여인위 소속은 뛰쳐나오겠지.
거기까지 하면 대충은 정리가 되지 않을까?
물론 아까 말했지만 그런데도 걸려들지 않고 남아서, 이상한 사이비로 전직할 새끼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좀 스펙이 있다 싶은 녀석들은 미리 코코로를 통해서 정보를 찾아내 잡아다 치료해줘야지.
실력 있는 애들을 다 처리해서, 당장 중요한 여론으로 올라오는 것만 막아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러네요."
"뭐, 진짜로 10레벨 수준이 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이상 없는 거지?"
"하읏.... 주인님 만지는 게 야해요."
"야하게 만져본 경험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 알아서 풀려. 말 돌리지 말고 말해줘."
"없어요. 이제까지 계약한 정령들이 무서워서 다 계약 해지하고 도망친 것만 빼면."
"...얌마!"
생각보다 큰 걸 숨기고 있었네.
정령과의 계약이 없는 혜미는, 사실상 조금 튼튼한 일반인이잖아.
계약을 복구할 때까지는 최대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네.
"지금 나랑 혜은이 둘이서 12시간마다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말해. 코코로년 잡아 올 때까지는 자유시간이니까."
"...딱히 필요 없어요. 이렇게 주인님 품에 안겨만 있어도 절로 행복하거든요."
"예쁜 소리만 골라서 하는 수업이라도 듣고 다녀?"
"진심이거든요?"
하긴 지금 정말로 하고 싶은 걸 다 할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혜미를 노리는 녀석들은 막는다 쳐도, 거의 전 세계적으로 여신 취급을 받는 게 혜미였으니까.
이미 성녀는 있으니까 신까지 가버리는 건 좀 웃기긴 했다.
그 와중에 내 별명은 왜 아직도 타천사에서 바뀌지 않는 걸까.
"아흣...."
"그래도 많이 풀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네. 가슴 끝나고 나면 다시 계약할 정령 찾을 거야?"
"...주인님. 저 고민이 하나 있는데요."
"응, 말해."
"앞으로 계약 안 하면 안 될까요?"
"뭐?"
지금 모든 계약이 해지된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 새로운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건,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으로 남겠다는 소리다.
사실 혜미가 싸울 필요는 없지만, 워낙 주변에 위험한 것이 많다 보니까 자기를 지킬 힘은 필요하기에.
나는 바로 고개를 휘저으며 반대했다.
"너무 위험해. 그랬다가 진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그때 가서 계약...?"
"너무 머리가 꽃밭인 생각인 거 알지?"
"...알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녀석이랑 계약하려면 기억을 대가로 지급해야 한단 말이에요."
나와 있었던 그 추억을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리려는 혜미를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마음이 여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혜미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선뜻 그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건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지만. 나로서는 네가 위험할 소지는 최대한 줄이고 싶어."
"여인위도 다 내쫓았는데 걱정이 많으시네요."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아직 S급 헌터 스펙의 여인위 따까리들이 우글우글하잖아.
심지어 그렇게까지 어그로를 끌었는데....
네가 S급이라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정도인데, 일반인이 되면 잠도 못 잘걸?
"만약에 네가 기억을 되찾는 동안,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아도. 쓰레기로 취급해도 참고 견딜 테니까. 네 몸부터 챙겨줘."
"...이제까지 기억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결국 내 말에 설득당해서 기억을 대가로 정령을 계약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진심으로 기억을 버릴 자신이 없어서인지, 계속해서 취소당한 끝에 포기했다.
...이건 조금 큰일이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이거에 집착하는 것 같긴 해요."
"괜찮아.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잊기 싫다고 하면 난 기뻐해야지."
기쁘긴 한데 얘를 어떻게 지켜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근데 꼭 기억만 대가로 해서 계약을 해야 하나?
혹시 다른 것은 방법이 없겠냐고 하자, 혜미가 고민하던 끝에 말해줬다.
"저번에 뿔 부러트려서 드렸던 것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물건이면 가능할 거예요. 근데 S급을 찍을 정령의 계약 재료가 되려면, S급보다는 귀한 녀석이어야 할텐데...."
"어?"
그거랑 비슷하면서, S급보다 강한 힘을 담고 있는 녀석이라면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일반적인 S급 헌터보다 강한 엘프에게서 추출한 '마음 결정'인데.
엘프 대부분이 원래 차원으로 돌아갔어도, 아직 하나가 남은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코코로를 잡아서, 걔한테 있는 마음 결정을 추출해서 주시겠다는 거예요?"
"...원래라면 공주가 받아야 할 차례지만, 공주도 이번에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으니까. 이해해 줄 거야."
공주가 내 아기를 가지는 거야, 내가 '나는 사회적 약자야'를 이용해서 일반인이 된 상태로 관계를 하면 될 것 같고.
물론 이 부분은 나 혼자 결정할 것이 아니라, 공주와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아마도 허락해줄 거다.
"그럼 공주가 9레벨을 유지하는 거잖아요."
"공주는 9레벨이어도 S급이잖아."
0레벨인데 F급은커녕 S급을 못 하는 네가 걱정할 타이밍이야?
그리고 공주는 평범하게 10레벨에 도달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너는 레벨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가능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기다려줘. 그전까지는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게."
"...네!"
그럼 결국 가장 큰 목표는 최대한 빨리 코코로를 잡아야 하는 것이 되네.
그나저나 여러모로 코코로가 잡으면 주는 것이 많은 혜자몹이었다.
잔당 처리에도 좋고, 혜미 몸보신에도 좋고, 심지어 내 기억에 따르면 외모도 먹음직하게 생겼으니까.
"무슨 생각 하세요?"
"여러모로 코코로한테 당한 게 많거든. 특히 설아는 코코로 때문에 인생에서 감정이라는 걸 잃고 살았을 정도니까."
그래서 과연 어떻게 해야 코코로를 최대한 괴롭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일단 잡는 거야 다른 애들이 알아서 해주겠지만.
붙잡은 다음의 처리는 나에게 맡긴다고 했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요?"
잠시 고민하던 혜미가 꽤나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내놔서, 나는 굉장히 감탄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채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