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1 10장 - 정액 절임 챌린지(8)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뉴스를 잘못 읽고 있나 싶어 TV를 켰더니.
뉴스 속보로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기존 S급 헌터이자, 현재 A급 헌터인 10레벨 각성자 임윤지.
지난 세대의 헌터들 중에서는 최연소라는 별명으로 통한 실력자다.
마치 이번 세대에서 공주가 최연소라고 난리가 났던 것처럼, 그 시절에는 공주보다 1살이 많던 임윤지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다만 헌터로 활동 자체는 A급인 상태로 미성년자로 활동했으니까 공주랑은 조금 다른 케이스긴 하다.
하여튼 그녀는 헌터로서의 활동이 빨랐던 만큼, 은퇴도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녀의 특성이 빨리 성장하는 대신 전성기도 짧아지는 것이 특징인 녀석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특별함으로 인기를 끌던 그녀가 은퇴 후에는 갑작스레 정치에 뛰어들더니, 이제 30이 갓 넘은 그녀가 대통령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일에 바로 대통령이 나와서 지랄하는 게 정말 맞냐?
[박은혁 헌터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 불사르며 싸웠던 진정한 영웅입니다. 심지어 각성하지 않았을 때조차, 누구보다 잘 헌터를 보필하는 매니저로서 유명했고....]
"하, 내 자랑을 하는 건 좋은데. 왜 시발...."
[그렇기에 통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박은혁 헌터가 받은 각성이, 사실은 던전이 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병기라는 것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당연히 믿길 리가 없지.
너희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인데 그게 믿기면 그것대로 정신병이야.
그 와중에 진짜로 침통해 보일 정도로 연기를 잘해서 소름이 돋았다.
저 정도는 되어야 세상을 팔아먹는 좆집 역할을 수행하는구나.
새삼 감탄스럽네.
[박은혁 헌터는 지금도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바쳐서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다르게 그를 속인 악독한 힘이 그의 영웅심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진짜 골때리네."
이 새끼들은 결국 내가 하는 말들이 모두 헛소리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다.
마치 내가 악한 각성에 조종당해서 이상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처럼 만들려는 거겠지.
이래서 내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인기를 끌도록 만든 것이다.
굳이 이렇게 진행한 이유는, 사람들이 악을 처단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쪽 계열에 있는 사람들이 영웅심이 강해서, 대상이 불쌍하면 발 벗고 나서려고 하거든.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착각하고 달려들 것이 뻔한 상황이다.
"좆같은 새끼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은혁아, 그게 끝이 아니야. 작정했어."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내가 애들이랑 좀 야하게 섹스했던 것들을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악마적 행위를 하는 것처럼 묘사해 놓았다.
저러니까 진짜로 내가 악에 조종당해서 사랑하는 우리 애들을 괴롭히는 것 같잖아.
진짜 좀 억울하다.
심지어 주변인까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어서, 지금 나와 함께 있는 혜은이도 침식되었다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빨리 출근해서 해명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너희들의 어디를 믿고 우리 혜은이를 보내주냐?
제정신이야?
"하으.... 저게 전 국민한테 보였다니...."
"그거로 기뻐할 때냐? 지금 내가 좆되게 생겼는데?"
혹시나 해서 여인위와 관련된 자료를 풀어 봤지만, 그 제공자가 나인 시점에서 아무도 그 자료를 믿지 않았다.
내용 자체는 막고라에 가까운 느낌이긴 한데, 하필 선빵을 저 자식들이 쳐서 답이 없네.
아니 근데 내용 정리하는데 일주일이 걸린 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진짜 전 세계의 헌터가 타천사 이름을 알게 되는 중인데?"
"하필 별명도 타천사라서 상황이랑 너무 잘 맞네. 머리가 너무 띵해져...."
전세계의 헌터들이 이번 한국에서 일어난 타천사 사태가 유감이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결국 나를 구하니 뭐니 떠들고 있지만, 그냥 잡아서 죽여버리겠다는 소리잖아.
무슨 불로 사람을 정화하는 구시대적 방식도 아니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사실 자료를 잘 만들어서 그런지,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어서 고맙긴 하거든?"
"그래?"
"응, 근데 어지간한 곳은 올리자마자 삭제당하는 중이라서 제대로 공유도 어려워."
원본이 공유될 수가 없으니, 내부에 있는 내용은 전해질 수가 없고.
그렇다 보니 대부분은 그런 자료를 풀었다는 정도만 건너 건너 듣게 된다.
그걸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자료가 거짓이라는데 믿어볼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까?
심지어 임윤지는 역대 많은 좆같은 평가를 받던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헌터 쪽에서 필요한 일들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해왔고.
전체적으로 헌터계에서 만큼은 평가가 좋은 편이다.
저번에 은하를 괴롭힌 사건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머리 박고 반성하겠다며 진짜로 머리 박았던 기억이 난다.
진짜 사람들 민심 하나는 잘 잡는 인간이라니까?
아, 물론 은하를 괴롭힌 사건을 지시한 사람은 임윤지 본인이 맞다.
저번에 여인위쪽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알게 된 부분이니까 확실하겠지.
엘프들을 통해 전달된 명령이 임윤지에게 들어가고, 최종적으로 임윤지가 상황을 조종해서 만들어낸 일이었다.
여인위가 은하를 그렇게까지 해서 탐낸 건, 아마 약물 쪽 생산에서 써먹으면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해서다.
진짜로 사람을 사지 잘라 놓고 포션 만드는 기계처럼 만들어낼 계획이 짜여 있는 걸 보고 경악했었지.
그게 왜 악플이 아니라 진짜로 존재하는 계획이냐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뭐, 엘프 자식들은 인간을 노예 정도로 여기는 것 같으니까."
그나마 높게 쳐주면 장난감이나 애완동물 정도려나.
그래도 저번에 보니까 자기 소속이면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긴 하던데, 같은 인간으로 보단 애완동물을 아끼는 모습이라서 오히려 역겹긴 했다.
근데 맨날 그 인간한테 박으면서 성욕을 푸는 건 뭘까?
그 새끼들은 전생에 수간충이라도 되었길래 자기보다 못난 생명체라고 믿는 인간한테 박나?
어이없는 새끼들.
"얘들 대체 노리는 게 뭐길래 혜은이 너를 이렇게 내놓으라는 걸까?"
"모르겠어.... 일단 나도 떨어지면, 네가 고립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솔직히 내가 시간만 버텨서 던전에서 다들 나올 때까지 버티면 가능성이 있긴 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혜은이나 내가 이 지구상에서 지명수배당하는 중이라는 건데.
아마 지금이야 괜찮지만, 모든 헌터들이 협력해서 우리를 쫓아다니면 금방 들킬 거다.
심지어 우리만 숨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숨어있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겠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 지금은 불가능한 방법이 되어 있었다.
쟤들도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고 굳이 이런 방법을 택했겠지.
가장 사람들이 말 안 통하는 상태로 만들고, 정보를 뿌리는 것까지 제한시킨다.
우리 팀이면 칭찬해 마지않을 방법이지만, 문제는 저 짓거리를 하는 게 적들이라는 점이다.
"아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조져버리고 싶네."
던전에 F급 헌터 세 명이 갇혀있는 것만 아니더라도, 희생자가 좀 생기는 일이 있더라도 여인위에 맞짱을 신청하면 되는 건데.
지금 걔들은 좆빠지게 던전 공략 중이고.
나랑 혜은이라는 S급 헌터 둘의 인력으로는 전 세계랑 맞짱까는 건 자살행위였다.
"혜은아, 이게 맞냐? 여론전도 선빵 맞아서 좆댔어, 전력도 밀려, 숨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뭐 어쩌라는 걸까?"
"사실 여기도 슬슬 위험하지 않아?"
"그렇지. 너무 오래 있었어."
급하게 해외로 나와서 숨어있는 중인데, 아무리 대포폰을 쓰고 CCTV에 찍히지 않는다고 해도 헌터 사회에선 그런 싸구려 회피는 통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헌터들의 특성을 이용해서 추적할 테니까.
그나마 나는 헌터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것도 어렵지만, 옆에 혜은이가 있다는 시점에서 아웃.
그렇다고 혜은이를 쟤들한테 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 최대한 자주 위치를 이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음으로 정해둔 곳이 어디더라...."
"이번엔 일본."
하루마다 나라를 바꿔가면서 숨는 것도 되게 짜증 나는 일이네.
여기 지명이 아마 사가였던 것 같은데, 그게 뭐 중요하겠냐만....
하여튼 가장 저렴한 숙소가 인터넷에 떠 있길래 그곳을 예약해서 들어갔다.
오히려 이렇게 한적한 곳이 도망치기도 좋고 괜찮겠지.
솔직히 아까까지 지내던 호텔은 그러기가 너무 애매했어.
"여기 괜찮은데? 오랜만에 이불에서 자는 것 같아."
"그래?"
"응, 네 정액 위에서는 최근에 자주 잤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잖아."
잘 생각해보니까 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원래부터 이상한 거구나.
왜 말한 내용이 실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거지?
하여튼 혜은이랑 있으면 이런 골때리는 대화를 자주 해서 심심하진 않다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은 너무 심해서 두통이 생길 정도라는 거?
"응?"
이불을 펴기 시작하는데, 안쪽에서 무슨 종이 쪼가리가 떨어졌다.
혹시 뭐 설명 같은 게 적혀 있나 해서 주웠더니,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는커녕 한자조차 아닌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녀석이다.
"아니 여기서 갑자기 한글이 왜.... 여기 무슨 한인 지역 이런 거 아니었잖아."
"응, 예약도 전부 일본어로 했어."
혹시 나라를 특정 당할까 봐, 지내는 곳에서는 철저하게 해당 나라의 언어를 써왔는데.
갑자기 방에서 한글이 적힌 종이 쪼가리가 나오니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발견했으니까 무슨 내용인지 읽어봐야겠지.
그냥 우연히 여기 운영하는 사람이 한인이라거나....
"뭐야, 더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전부야?"
[찍어]
딱 두 글자가 전부였다.
나는 이게 접혀 있길래 다른 내용도 적혀 있는 줄 알고 열어본 거였는데.
그냥 저 두 글자가 다였구나.
"너무 맥락도 없이 '찍어'라는 글자만 있으니까 도리어 수상하네."
"어? 잠시만 은혁아 그거 혜미가 쓴 거 아니야!?"
"뭐가, 이거?"
혜은이는 쪽지를 가져가더니 필적을 유심하게 살폈고.
거의 확신하듯이 혜미가 쓴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혜미는 우리가 여기에 올 줄 알고서 미리 쪽지를 남겨놨다는 거야?
아니 그럼 차라리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좀 대응하기 편했을 텐데....
'아니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했겠지.'
혜미는 이런 부분에서 말은 안 해도 엄청나게 신중한 성격이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못했을 리 없으니,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을 테지.
여기에 남겨놓은 메모가 겨우 두 글자인 것도 그렇다.
여기다 그냥 편지를 남기면 되지만, 다른 누군가가 볼까 봐 일부러 이런 힌트 같은 느낌으로 남겨놓은 거잖아.
"찍어, 찍어.... 찍어줘?"
[밸밸사이 외전: 찍어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라, 최대한 인터넷을 우회한 뒤에 밸밸사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밸밸사이가 가해자 측 여성들이 기존 피해자 측 남성들을 위한 영상 크리에이터 공간으로 바꾼 이름이 바로 '찍어줘'였다.
솔직히 '찍어'라는 글자를 보고 떠올릴만한 소통창구는 여기 정도밖에 없지.
"역시, 여기다 보내놨구나."
밸밸사이 사이트의 쪽지함에 숨겨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서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으로 찍어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둔 것이 참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텍스트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나 보네.
"그나저나 여기가 있었네. 여긴 여인위한테 들키지 않았구나."
이미지 파일은 혜미가 나에게 쓴 편지를 촬영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당연히 이번 사건의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었다.
아니, 방법 자체야 나도 아는 거였지만.....
"미래를 안다는 게 좀 쩔긴 하네."
그 방법을 써도 되는 타이밍이 적혀 있는 건, 그거랑 이야기가 좀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