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0 10장 - 정액 절임 챌린지(7)
갑자기 특종이라면서, 타천사라고 불리던 베일에 감춰져 있던 헌터의 정체가 '박은혁'이라는 매니저라는 걸 TV에서 방송한다?
이딴 미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리가 없었던 만큼, 나는 너무 놀라서 쏟아진 물을 치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TV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시발 내가 숨기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걸 들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각성자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이나 장비를 이용한 헌터라는 정도로 예상한다는 정도의 뉴스라는 거였다.
아니 근데 대체 어디서 나온 정보길래 저렇게까지 확신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야?
일반적으로는 좀 의심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야, 혜은아! 좀 나와봐!"
"응? 히히 욕실 다 치웠다? 깨끗하지?"
"빨리 옷 입고 여기 와서 앉아봐."
옷 입고 나오니까, 일주일 전보다 더 피부톤도 밝고 예뻐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정액이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는 찌라시가 정말이었던 건가?
이런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혜은이의 미모가 빛이 났다.
정신차려 박은혁, 지금 혜은이 얼굴에 홀려 있을 떄가 아니잖아.
"뭐, 뭐야!? 일주일 동안 은혁이 너 뭘 하고 다녔길래...."
"지랄. 나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어요. 오랜만에 휴식이라고 집에서 푹 쉬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뭐 어디 나가서 실수라도 할만한 건덕지가 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물론 당연히 내 흔적을 찾았기에 들킨 거겠지만, 적어도 그게 최근 일주일이 원인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급하게 혜은이를 부른 이유도, 그 이유가 감이 오질 않으니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아마 나보다는 혜은이가 관련 내용을 검색해서 알아보는 편이 빠르고 정확할거다.
아무래도 평소에 타천사 덕질이라는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녔던 혜은이니까, 관련된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겠지.
실제로 혜은이는 최근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흐름으로 여론이 오갔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성능 확실하구만.
"이상하네...."
"이상하다고?"
"오늘 너무 갑자기 발표된 것 같은데? 원래 언론사 같은 경우는 한발자국씩 늦잖아?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관련 게시글이, 심지어 타천사 팬덤에 올라온 게시글까지 전부 방송 이후야."
자연스럽게 정보가 풀리면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정보를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일부러 풀었다는 소리가 된다.
정액으로 절여지고 있던 혜은이나 이 집을 나간 적도 없는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대체 누가 정보를 뿌렸지?
"내가 타천사인 걸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나?"
그나마 내 사랑들도 다 던전에 박혀 있으므로 실수로라도 이런 상황을 일으킬 수 없다.
그렇다고 내 팬들이 조사 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보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만약 타천사의 팬이었다면, 그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자 저런 식으로 뉴스부터 시작할 리가 없으니까.
그럼 결국 둘 중 하나가 되는데,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자가 특종을 이용해서 소모했거나.
아니면 나에 대해서 알아차린 '여인위'가 나서서 정보를 풀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는 여인위가 그랬다는 것이 가능성이 큰 것이, 저 뉴스에서는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확신하고 다루고 있단 말이지.
저 뉴스를 내보내는 사람이 여인위 소속이라면 위에서 준 정보를 완벽하게 믿을 테니 상황이 전부 설명된다.
특히 남성인 각성자가 존재한다는 말도 없이, 그냥 타천사는 남자지만 헌터로 싸운다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도 여인위의 느낌을 주는 파트였다.
매번 여성 각성자만 존재한다는 식으로 이 세상을 조종해 왔는데, 갑자기 남성 각성자가 존재한다는 걸 밝히는 건 싫었겠지.
근데 굳이 그렇게 해서 박은혁과 타천사가 동일 인물인 것을 밝혀야 했나?
"이해가 안 되는 행보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 건 여인위 밖에 없는데. 여인위가 왜 이런 짓을 해?"
내 정보를 알아차렸으면, 일단 공격해서 제압할 생각부터 하는 게 맞지 않나?
그 정보를 언론에 뿌릴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가....
"은혁아, 어쩌면 전제 조건부터가 틀렸을 지도 몰라."
"전제 조건?"
여인위가 아니라 다른 단체가 범인이라는 소리는 아닌 것 같고.
그럼 결국 남는 건 남자인 각성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정도인가?
근데 이건 내가 이제까지 얻었던 정보만 봐도 확실한 부분인데?
"이제까지야 그렇지만. 만약 걔들이 그 고집을 버렸거나 해결법을 찾았다면?"
"해결법?"
"예를 들어, 네가 각성한 걸 일반적인 각성과 다른 무언가 악한 것에 씐 것처럼 공표할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남성 각성자라면 나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니 내 케이스가 인류의 적이라는 듯이 묘사해 척결하는 방식을 채용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네.
"이슈화시키려는 거구나?"
"그런 것 같지?"
만약 갑자기 아무도 모르던 남자가 각성했고, 그 각성자가 잘못된 악마 같은 각성자라 처단해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큰 이슈로 번지기 힘들다.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특출난 피해자나 상황이 있지 않은 이상 공감하기 어려워하니까.
그런데 만약 그런 피해자가 없더라도, 그 의심의 대상 자체가 엄청 인기를 끌던 대상이라면?
녀석들은 일단 타천사가 남자라는 정보를 풀어서 도시 전설이 아니라 진짜 유명한 헌터로 만들어내고.
그 이후에 여론을 사용해서 나를 압박해올 생각인 거다.
근데 기본적으로 타천사라는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선한 헌터의 분위기잖아?
그걸 대체 어떻게 해서 쓰레기에 위험한 놈으로 만들게 되는 거지?
정확하게 무슨 속셈인지를 모르니까 계획을 세우기가 까다롭네.
"역시.... 벌써 작업 들어가서 정보가 뜨고 있어."
사실 타천사는 최초로 남자가 각성한 케이스라더라 같은 찌라시가 인터넷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아마 곧 있으면 그 정도가 아니라 내가 각성한 방식이 일반적인 각성과는 다르다는 주장까지 가겠지.
어차피 여인위 자리에 앉아 있는 학자나 경찰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이 힘을 쓰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긴 대통령도 여인위 소속이니 오죽하겠어.
"일단 여인위쪽 자료 조사해둔 것부터 정리해야겠다. 하, 씨. 이 새끼들 일부러 다들 던전 들어가니까 저지르네."
"아마 F급 헌터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F급 헌터 전원이 던전에 들어가게 하려고 했던거겠고."
"그랬어? 그냥 어지간하면 다 데려가려는 느낌이었잖아.
"처음에 살짝 뒤로 빼려고 했는데, 채린이나 은하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그러다라고. 혹시 설아도 그러지 않았어?"
"의미가 깊다면서 그런 말을 했었지. 지금 오히려 이렇게 보니까 수상한 라인업이긴 하네."
일단 나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니, 내 편에 있는 F급 헌터들을 전부 던전으로 보내서 제거한다.
그리고 내가 방어하는 동안 뿌리는 말들이 죄다 거짓으로 치부될 수 있도록 여론전까지 진행하는 거지.
그럼 아무런 문제 없이 나를 제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오케이, 혹시 몰라서 최대한 복사해서 여러군데에 저장해 놨고. 물리적으로도 저장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은혁아, 조금 불안해. 이 정도로 많이 알아차렸다는 건 거의 조사가 끝났다는 건데...."
"아, 맞다. 망할."
나랑 관련된 사람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러면 이미 고아원부터 노려서 날 협박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는 급하게 집을 나서서 고아원으로 향했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텅 빈 집만 남아있는 고아원의 상태에 당황했다.
"설마...."
"아니야. 사고를 당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한데?"
혹시나 해서 내부를 살펴보다가, 원래라면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머리핀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녀석의 성격상 이걸 일부러 떨어트렸을 리는 없으니, 이건 무조건 일부러 나에게 알려주려고 남긴 거다.
똑똑한 녀석이라니까.
"가자. 어딨는지 알 것 같아."
"어디?"
"여인위 한테서 빼앗았던 생산기지. 물론 들켰을 테니까 거기 있지는 않겠지만, 힌트 정도는 뭔가 남겨놓지 않았을까?"
그 머리핀은 고아원의 여자아이인 은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서는 여인위의 생산기지에서 훈련을 하며, 헌터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 머리핀을 고아원에 두고 가지도 않았는데, 그게 여기에 있는 시점에서 확실히 나에게 힌트를 주려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이건 어렵겠네."
그래서 실제로 생산기지에 찾아갔는데, 거기엔 다수의 여인위로 보이는 녀석들이 출입하면서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도 들킨 건 확실한데, 그럼 대체 어디로 가서 숨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에게 현재 위치를 알려주지 않은 건 아마도 그게 여인위에 넘어갈까 봐 그런 것 같은데.
하긴 오히려 그게 더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인가?
"지금 알아봤는데, 우리 팀이나 너희 팀 관련된 가족들이 전부 실종 상태야. 굳이 포장을 시키지 않고 실종이라고 한 거 보면...."
"우리 쪽에서 숨겼다는 거지?"
"응."
시킨 일도 아닌데 이렇게 완벽하게 진행하다니, 역시 우리 애들만큼 잘 크고 있는 애들이 없다니까.
하여튼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고 준비를 해준 애들 덕분에 우리는 각 잡고 싸우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다.
아무래도 소중한 것들이 있는 이상, 그것이 인질로 잡힌다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일이니까.
"아, 너 몸은 괜찮아? 왜 하필 네 몸도 이상하게 개조한 직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냐...."
"오히려 개운하고 행복한데? 항상 은혁이 너랑 함께하는 기분이야."
"실제로 옆에 있거든?"
그 뉴스가 나간 뒤로 나의 이제까지 있었던 행적이나 고아원 등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죄다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의도적으로 녀석들이 내 정보를 풀고 있는 모양인데,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분명 내 평판을 엿먹이려고 하는 행동일 텐데, 이건 누가 보아도 제대로 되어 먹은 착한 모습만 나오잖아.
그 정도로 정보 파악했으면 이상한 것들도 많을 텐데 왜 내 쪽에서 좋을 일만 하는 거지?
'정확한 속셈은 모르겠지만, 이 틈에 여인위나 엘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공론화시키자.'
여인위에 대한 데이터야 많이 얻었지만, 그걸 일반인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이 보고 고개를 끄덕이려면 실제 사건과의 연관성 등을 조사해서 완성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잠자코 구경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건데.
이제는 대강 정리가 되었으니 오픈해서 역전각을 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오늘도 출근하라고 난리를 치더라."
"출근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랄하고 있네."
이 상황에 출근하게 생겼냐?
물론 우리 직장이니까 출근하는 건 당연한 건데, 이미 나라가 여인위에게 떨어진 시점에서 거길 무슨 깡으로 나가.
혜은이와 나는 아무리 출근하라고 연락이 와도 무시하고 잠적한 채로 자료를 완성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자, 이제 업로드...."
"미친?"
"혜은아 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뭔데? 나도 보여줘."
혜은이가 보고 있는 게시글에는 드디어 내 각성이 비정상적이고, 척살해야 하는 것이라는 찌라시가 등장해 있었다.
아니 찌라시가 아니라 시작부터 메이저 뉴스로 때려 박아서 도망칠 수 없게 해뒀구나?
이러면 한발 늦은 셈이 되는데....
"뭔 미친 소리냐 이거...?"
"......."
하지만 그 이상한 각성을 한 본인이나 영향을 받는 주변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며.
점점 타락하다가 결국인 정의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학살하게 되도록 뇌가 이상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정말 영웅으로서 이 세상을 구해온 박은혁 헌터에게 지명수배를 내리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나, 어쩔 수 없이 강행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 세상을 위해 싸우려 했다는 점에서 결코 빌런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거짓된 각성에 속고 있는 그를 구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진짜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 처먹겠네.
이거 진짜 미친놈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