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167화 (168/289)

EP.167 8장 - 서은하(8)

나라면 지금과 반대로 은하가 아프고 그걸 설아가 해결할 수 있었다면, 지금이랑 똑같이 설아를 배신하고 은하를 구해달라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평등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잘못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은하는 지금 내 아기까지 임신하면서 설아를 구해주려 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가 없었다.

하루 정도라면 너에게 더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을 지금의 나는 절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정말 염치없는 나지만. 그런 내 부탁이지만 들어주라 은하야."

"......."

"지금 설아를 구해줘."

나라는 인간은.

이게 나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알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밖에 없는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F F F

0레벨에 도달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감각의 확장을 불러온다.

새로 만들어진 자궁에서 꿈틀거리는 자기야와 나의 아기가 성장해가는 느낌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사람의 신체에 문제가 있는 부분까지 자세한 정보로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내 눈앞에 있는 자기야의 머리에 봉인된 기억이 굉장히 많이 있다거나.

그중에서 가장 많이 봉인된 것이, 지금 아파서 쓰러져 있는 설아에 대한 것이라던가.

그러한 굉장히 무시무시한 정보 말이다.

하긴 내가 임신해서 0레벨이 되었는데도, 자기야가 설아를 구하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봐도 이상하긴 했다.

아마 아까 클리어 했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기억을 지웠던 거겠지.

기억을 지웠다는 걸 몰라야 의미가 있는 데다, 내가 해제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다.

'미안해 자기야.'

하지만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해줄 수가 없었다.

자기야의 품속에 안겨있는 지금의 행복이 너무 포근해서, 이 꿈과 같은 상황을 깨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설아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오늘 하룻밤 정도는 내가 자기야를 독점하게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네."

하루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어제다.

하지만 자기야와의 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슬슬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심리적 저지선에 도달해버린 상태였다.

이제는 정말로 설아를 치료해주러 가야만 했다.

"슬슬 시간이네. 가자."

일단 지금은 자기야의 집을 나가야 하니, 성당을 핑계로 대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성당이 아니라 우리 집에 가서 설아를 치료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많은 고민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자기야가 잠시 여기 있게 둔 다음, 나는 우리집에 가서 설아를 치료할까?

설아를 치료한 다음에 다시 자기야랑 만나서 조금만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되는 게 아닐까?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결국은 다 나의 욕심이라고 확신하고는 자기야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그리고 정화를 통해 봉인된 기억을 전부 해방해줬다.

당연히 자기야는 설아를 구하는 것에 머리가 가득 차올랐다.

그래도 분명 이렇게 하는 게 정답이었겠지.

"설아야!"

보기만 해도 역겨울 정도로 강한 저주가 설아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다만 설아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에, 그 저주가 자신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잘 싸워서 버텨내고 있었다.

자기야는 내 눈을 바라보며 괜찮겠냐는 듯이 슬픈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특성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되, 된 거야?"

"아마도. 다만 오랫동안 싸운 탓에 기력은 많이 잃어버렸어."

만약 설아가 0레벨이 아니었다면, 그 기력도 특성으로 생성해내서 투입해줄 수 있겠지만.

나와 같은 레벨인 설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근본적인 치료 말고는 없었다.

그 이외의 기력 같은 것은 본인이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해야 하는 부분이지.

"은, 혁. 오빠?"

"어, 설아야. 정신이 들어? 어디 이상한 곳은 없어?"

"이상한.... 꿈을, 오빠가 죽는 꿈을 꿨어."

"그건 진짜 악몽이긴 하네."

자기야가 죽는 내용의 꿈이라니, 얼마나 악랄한 내용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저주인가.

역시 겉보기만으로도 무시무시하더니 그 악랄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설아는 그걸 용케도 버텨냈네.

"언니 고마워요."

"아니야. 결국 나도 내가 원하니까 임신한 거고. 그게 아니라도 설아 네가 위험하다는데 그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요. 저 피곤해서 그런데 조금만 더 잘게요."

"응."

그렇게 우리가 방을 나가려는데, 허공에서 내 등을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봤다.

그러자 설아가 나에게 윙크를 하면서 입 모양으로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을 했다.

이미 움직일 수 있을 정도지만,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준 것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면서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도 나에게 자기야를 양보하려는 것이다.

힘든 꿈을 꿨으니까 자기야 품에 안겨서 아양이나 떨면 될 것을, 저렇게 사람이 착하고 반짝거려서 어쩐담.

저렇게 착한 행동을 하는 동생을 보니까, 방금까지 욕심을 부리던 내가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도 질 수 없지.

나는 자기야를 다시 데려와서 방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어, 언니!?"

"자기야, 설아가 외롭다니까 꽉 안아서 냄새 각인 좀 해줘. 오랫동안 잤더니 자기야 정액 냄새가 많이 흐려진 것 같아."

"기력이 쇠해서 위험하다는 거 아니었어?"

"기력은 원래 섹스로 채우는 거야, 자기야의 정액만한 피로 회복 포션이 어디 있다고 그래?"

아무리 기력이 빠졌다고 해도 0레벨 헌터가 누워만 있는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

물론 전투는 더 쉬는 게 맞겠지만, 섹스는 까놓고 말해서 헌터에겐 준비 운동 축에도 드는 일이 아니었다.

이상할 정도로 하드한 플레이만 거른다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실험할 게 있어서 그것 좀 하러 갈게.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옆에서 관람하면 질투심에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쳐 나왔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이 느껴지면 내가 이상한 거라고 자책을 했었지만, 그냥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고 이래야 한다고 자기야가 알려줬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질투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내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사람이길 자기야는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이 감정을 죽이기보단, 이상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만을 통제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설아랑 혜은이가 만들었다는 다키마쿠라인가?"

설아가 자기야와 섹스를 하는 동안, 나는 자기야의 집에 와서 다키마쿠라라는 녀석을 확인했다.

자기야가 특성 연습 용도로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었으니까.

이번에 새로 생긴 특성을 연습하기에는 적절할 것이다.

"집중해서...."

일반적인 치료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건 완전히 결손나 사라진 부위조차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으니까.

애초에 치료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제대로 모르겠다.

이 특성을 사용하면 새로운 세포를 마음대로 만들어 붙이고 안정화할 수 있으니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결손난 부위를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는 특성이지만.

문제는 그 부분이 재생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없던 부위를 탄생시키는 것도 가능한, 엄청 위험한 특성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태어날 때부터 머리털이 없던 사람에게 머리카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특성이라는 소리다.

"예를 들어, 유두를 이렇게 확장하면...."

일반적으로 유두가 커지면 유두에 있는 신경 수는 같으므로 오히려 면적당 느끼는 감각은 둔해진다.

하지만 유두를 크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신경까지 새로 만들어서 붙여주는 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가슴을 만들어 붙여주는 작업이다.

이러면 빼곡하게 강렬한 감각을 가진 초거대 유두가 탄생하는 거지.

"반응은...."

"흐갹!?"

"잘 되네. 시간 나면 연구해서 내 몸도 최대한 야하게 바꿔야겠다."

자기야는 그런 변태적인 걸 좋아하니까, 그 취향에 맞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아무래도 마술을 이용해서 마감한 부분이 불안정한 부분이 보였는데.

그런 부분들을 실제 세포로 메꿔서 정말 자연스럽게 마감처리를 해놓았다.

"근데 정작 자기야는 설아 사건 때문에 엄청나게 싫어하는 모양이던데."

얼굴이랑 정신이라도 싹 갈아 엎어줘야 하나.

다만 정신 부분은 나도 건드릴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 부분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다음에는 그러한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뭘 선택해야 할까."

나는 내 자궁 위에 가려져 있는 문신을 쓰다듬으면서 고민을 했다.

던전의 클리어 보상인 이 문신은, 함께 던전을 공략한 동반자의 하위 특성 중 하나를 나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었다.

자기야의 특성은 대부분 정신을 건드릴 수 있는 것들이기에, 그걸 이용해서 자기야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보상이었다.

"맞아. 자기야도 자주 특성으로 여자애들 따먹었잖아. 그럼 자기야도 같은 방식으로 나한테 따먹혀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무리 설아가 내 눈에도 예쁘고, 착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야에 대한 부분은 내가 일정 앞서가고 싶은 부분이 항상 있는 법이다.

내가 나쁜 짓 하더라도, 그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자기야도 그랬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좀 나쁜 짓을 해야겠어.

"슬슬 돌아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설아는 꽤나 피곤한 상태였으니, 그리 오랜 시간을 섹스로 보낼 수는 없을 거다.

힘들어서 잠드는 시점이 오면, 그때부터는 내 순서야.

만약 자기야의 불알에 정액이 모자라면 내가 특성으로 충전해줘서라도 야한 짓을 할 생각이었다.

"아, 자기야."

"어, 기다리고 있었어?"

"응. 혜미는 자러 갔어. 설아는 좀 괜찮아?"

"행복한 얼굴로 잠들었어. 설아가 힘들다는 거 알고 일부러 양보해준 거지? 고마워."

"설아가 대놓고 양보해주는데, 그게 너무 괘씸하더라고."

"그래서 내 자지로 혼내준 셈이네."

"그런 거지."

계속해서 고민해본 결과, 나는 자기야의 특성 중에 '나 머리가 띵했어'를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마지막까지 계속 고민했던 건 아무래도 '모르면 공부하세요'였는데, 아까 테스트해 본 결과 이번에 내가 얻은 신규 특성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왕이면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녀석을 골라야겠다는 판단하에 결정한 것이었다.

'자기야가 사용할 때랑은 조금 방법이 다르네.'

자기야는 그냥 대상만 골라서 특성을 사용하는 식이었는데.

내가 사용하는 것은 마치 '모르면 공부하세요'와 비슷하게 문신을 남겨야만 했다.

이건 진짜 안 들키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자기야."

"응?"

"아니야, 사랑한다고."

자기야를 꼭 안은 채로, 등 쪽에 '은하꺼'라고 낙서를 하는 식으로 문신을 남겼다.

그리고 그 낙서에 '은하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건 상식'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니, 문신이 자연스럽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어, 어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대체 왜 특성에 실패했나 싶어서, 마력의 흔적을 따라가 보며 상황을 살폈고.

결국은 그 이유를 깨닫자마자 엄청난 행복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진짜야?

"은하야?"

"헤으응...♡"

이미 가지고 있는 상식이라서 상식 개변 특성이 취소된 거였다.

갑자기 다이렉트로 들어온 자기야의 진심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행복해졌다.

오히려 내가 자기야를 믿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고 미안할 정도였다.

'그, 그렇다면 뭘 걸어야 하지?'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걸어두지 않기에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자기야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아껴줘서 가끔은 더 막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나는 은근슬쩍 자기야의 목에 키스 마크를 남기고, 그것과 같은 모양으로 문신을 그렸다.

'아무리 변태 같은 플레이라도, 은하는 기쁘게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건 상식이야.'

특성을 걸은 뒤, 조금이지만 바뀐 자기야의 행동을 보니까 뭔가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서 변하고 내 채취가 남는다는 게 이래서 기분 좋은 거구나.

오늘만큼은 평소 자기야의 행동들을 굉장히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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