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158화 (159/289)

EP.158 7장 - 생리통이 아니라 정혈통(4)

"진짜로 그거로 괜찮겠어?"

"왜 사람을 욕심쟁이로 만들어요. 은혁 오빠, 저는 제가 경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음, 그래도...."

원래는 오늘 설아와 함께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무슨 데이트를 하고 싶은지 알려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는 다 해주겠다고 말했고.

솔직히 저번 일을 도와준 것도 고맙고, 아무래도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인데 소중히 여겨줘야지.

하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굉장히 뜻밖의 것이었다.

아무래도 설아가 원래 감각을 모두 되찾은 뒤에 처음으로 가지는 평범한 데이트니,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같은 평범한 곳을 고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같이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이랑 놀아주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오빠, 저는요. 원래도 관심 없어서 해보지 못한 걸 해보는 것도 좋지만.... 아직 평소에 했던 것들이 더 궁금해요."

"아...."

"정말 내가 공부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질까? 나는 이제까지 나와 비슷한 성격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들이 아직 남아요."

그런 부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의 설아는 이제까지 자신이 공부한 것과 나를 통해 전해진 감정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지 않은 본래의 마음을 되찾았다면, 새로운 경험보다는 기존의 주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그대로 경험해보고 싶었겠지.

따라서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그녀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미리 연락할 테니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장난감 같은 거도 가지고 가서 애들이랑 놀아주는 거야."

"네, 좋아요."

어쩌다 보니 데이트가 봉사활동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이긴 한데.

솔직히 나도 어지간한 곳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이 좋으니까 만족스럽긴 했다.

다만 감정이 돌아온 설아에게도 그 감정이 비슷하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그나저나 어머니는 뭐라셔? 집 좀 알아보고 계신대?"

"자꾸 싼 거만 찾으셔서 충돌하고 있어요. 어차피 요즘엔 청소도 다 기계가 하는데, 굳이 그렇게 작은 집에 목매실 필요 없다니까...."

"되게 일상적인 다툼이네."

"엄청 신기해요. 되게 사소한 거로 다투고, 그런데도 분명히 엄마를 사랑하고. 진짜 신기해요...."

나는 아련한 미소를 짓는 설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줬다.

정말 고생 많았어.

내가 그때 꼭 너를 구해줬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서 미안해.

설아는 나에게 이미 고맙다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 사건을 바로 옆에서 경험했기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로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다.

"아,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무슨 특별한 일은 없죠? 문제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괜찮아요. 아이들이 엄청나게 기다리더라고요."

"자주 오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고아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이 우리한테 안기고 난리가 났다.

설아는 기존처럼 되게 착한 언니의 표정을 짓기보다는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감정을 공유받을 때와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은혁이 형아!"

"그래, 잘 지냈냐? 못 본 사이에 다들 많이 컸네?"

원래는 좀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마스터들과 자주 엮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모자랐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자지 않는 시간에 와서 놀아주려면 일을 쉬어야 하는데, 휴가를 쓰기엔 일을 처리하기에도 바쁜 시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오늘은 설아가 여기에 오자고 한 덕분에 오랜만에 올 수 있었다.

애들 얼굴을 보자마자 여러모로 힐링 되는 느낌이네.

"설아야?"

"네, 네?"

"어디 안 좋아?"

"아, 죄송해요. 조금 어지러워서...."

레벨0의 F급 헌터가 어지러울 정도라니.

실제로 몸에 그런 이상 증세가 일어나면 큰일인 셈이지만, 아마 지금 저건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현상 같았다.

이따가 몰래 어떤 느낌인지 물어봐야겠네.

"준비했다던 마술은 할 수 있겠어?"

"당연히 해야죠. 제가 그렇게 약해 보이세요?"

"겁나 강한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중 하나로 보이지?"

그녀는 웃으면서 아이들을 위한 마술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설아를 위해서 준비하려던 데이트가, 어느새 설아가 아이들을 위해 마술을 준비하는 쪽이 되었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아 보이니까 괜찮겠지?

"자, 여기 공이 하나가 있어요. 그래서 이걸 이렇게 던지다 보면? 어라?"

"와아! 공이 늘어났다!"

"맞아요. 공이 늘어났죠?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공이 하나씩 사라지더니.... 짠!"

이번에는 공으로 저글링을 하는 마술인 모양이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까 평범한 마술사 같다는 느낌이라니까.

문제는 저게 평범한 세간의 마술보다는 마법에 가까운 특성을 써버렸다는 거겠지만.

"없어졌죠? 자 여러분 손을 이렇게 내밀어 보실래요?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계세요."

"네에!"

처음에는 떨떠름했던 그녀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면서, 이제는 기존처럼 굉장히 스무스하게 마술을 이끌어나갔다.

다만 기존의 마술이 철저하게 계산하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줬다면, 이번에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소통하는 과정이 추가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3초를 세고, 손바닥을 짝하고 칠 거예요. 그다음에 여러분들의 주먹을 펴보세요. 하나, 둘, 셋, 짝!"

"우와!"

아이들이 손을 펼치자, 아까 저글링에 쓰던 공이 하나씩 손에서 튀어나왔다.

엄청난 수로 불어난 공이 아이들의 손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걸 보며, 설아는 당황하기보다는 귀여운 걸 보는 듯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저런 거 보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은데?

"어때, 아이들이랑 있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따끈따끈하네요. 물론 은혁씨한테 받았던 그 마음도 따뜻했지만, 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거라 그런지 더 두근거려요. 아얏!"

마술에 집중 안 하고 나랑 노는 걸 들켰는지,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공을 던지며 관심을 요구하고 있었다.

분명 나랑 설아가 데이트할 생각이었는데, 이 녀석들 우리끼리 꽁냥거릴 시간을 안 주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신나게 놀 수밖에 없겠네.

"크흠, 이번에는 나도 한 번 해볼까?"

"오, 생각해보니까 자주 연습하고 계셨죠?"

"사실상 내가 가장 자주 쓰는 게 마술이니까."

정확히는 설아의 특성을 미러링한 마술도구 제작인데.

하여튼 설아도 이걸로 마술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거잖아?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어차피 이게 특성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들이니, 내가 대놓고 사용한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다.

"너희들 배고프지? 근데 오늘은 우리가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마 마술쇼가 끝나고 나서 평범하게 밥을 먹기로 했었어. 맞아?"

"네, 맞아요!"

굉장히 일치가 잘 되어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분 좋게 들으며,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사실 이미 음식들은 다 사다가 배치해놨다.

이렇게 마술로 꺼내줄 생각이었을 뿐이지.

"하지만 내가 너희들이 좋아하는 치킨 피자 햄버거를 마술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걸 먹을 수 있겠네?"

"와아아!"

미리 이야기를 맞춘 대로, 원장님이 일회용 빈 그릇을 아이들에게 가져다주기 시작했고.

애초에 그건 내가 미리 만들어서 가져온 마술도구였다.

곧 아이들마다 접시가 하나씩 주어졌고, 나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요청했다.

"자, 그럼 다들 치킨이랑 피자 햄버거 중에서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생각해줄래? 셋 다 싫으면 원장님 밥도 좋아."

마지막 농담에 애들이 꺄르르 웃었지만, 실제로 원장님 밥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한 명쯤은 선택할까 싶어서 밥도 조금 준비했는데, 원장님이 좀 슬퍼하시겠다.

하긴 어릴 때는 다들 저런 음식을 좋아하지.

한 명씩 아이들의 생각을 읽어서 뭘 먹고 싶은지 파악하고.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이 담긴 그릇과 바꿔치기를 해준다.

다만 모든 아이가 다 음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음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욕심쟁이야. 두 개나 세 개를 생각했어. 내 말 맞지?"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받지 못한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음, 이거 이러면 뭔가 괴롭힘을 조장하는 것 같잖아?

시간을 끌려고 하는 대사인데, 조금 애매했나 보다.

"아니야,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욕심쟁이가 아니야. 많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먹고 싶은 욕심쟁이! 평소에 친구들이랑 음식 나눠 먹던 스타일이지."

"맞아요!"

내가 묻자마자, 접시가 비어 있는 태웅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근데 태웅아 3개를 다 고르는 건 조금 선 넘지 않았니.

덕분에 3가지 음식을 적당히 나눠서 담아야 하는 원장님이 고생하시고 있어.

"자, 하나씩 소환해볼게요. 짠! 피자랑 치킨이 반반 담겨있네?"

"우와!"

3개를 모두 고른 태웅이를 제외한 모두에게 반씩 담긴 접시가 전해졌고.

태웅이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내 눈을 슬그머니 피했다.

3개를 다 고른 건 너밖에 없단다.

"그럼 모든 걸 다 가지고 싶은 야망에 가득 찬 태웅이한테 갈 접시는!"

"아, 안대에!"

"푸하하하!"

뒤에서 음식을 삼등분하던 원장님이 화가 나셨는지, 치킨 피자 햄버거가 아니라 원장님이 해놓으신 밥이 올라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보자마자 빵 터졌고, 나도 솔직히 원장님이 저러실 줄은 몰라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이렇게 되네.

"자,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기대하던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태웅이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렸고.

우리는 태웅이를 우리 쪽 테이블로 데려와서 같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걸 또 삐져서 안 먹겠다고 하다가, 설아가 귀엽다면서 안아준 이후에야 마음이 풀려서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웅!"

"설아 너도 먹어."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요즘 자꾸 그러네요."

"그래? 뭔가 이상한 감정이 들고 그런 건 아니지?"

"전혀요. 제가 마술도구로 검진해봐도 큰 문제는 없다고 나와서 더 당황스러워요."

혹시 기존에는 아예 무감각했던 고통을 느끼면서, 그게 문제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것도 아니면 원래부터 몸이 좀 안 좋았는데, 기존에는 그게 아픈 거라고 느끼지 못했던 건가?

하지만 아픈 거로 고통은 못 느껴도 존재 자체는 느꼈었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유 잘 먹는다. 어차피 애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다 부른데요."

"그건 그렇지."

이따가 가는 길에 고급 죽이라도 사줘야겠다.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설아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장난감들을 선보였다.

영구 마술도구로 만들어낸 변신 로봇 세트라던가, 옷이 정말로 바뀌는 마법소녀 지팡이 같은 것들이다.

"우와!"

"이런 거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보지? 너희들 진짜 잘해야 해."

"네에!"

그 와중에 태웅이는 로봇이 아니라 중성적인 스타일의 마법소녀 지팡이를 들고 갔다.

아마 헌터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인 것 같아서, 조금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 여인위 녀석들을 잡다가, 포경으로 인해 각성이 막힌 걸 해제할 방법을 찾는다면....

'그때는 태웅이 너도 각성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꼭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을게.'

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엘프들의 노예가 되어 있는 세상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나는 왠지 마스터 녀석들을 조져야 하는 이유 하나가 더 생긴 것 같아서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나저나 설아는 왜 장난감 나눠주다 손이 멈췄지?

"설아야?"

"에, 은혁, 오빠...."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방금까지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던 설아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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