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3 5장 - 묘설아(5)
서류는 기본적으로 제품의 재고와 생산량, 또한 재료의 양을 표기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제품의 경우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는 거였는데, 여인위의 시설에서 아이들의 각성을 위해 사용하던 약물이었다.
즉 이 공장에서 각성 확률을 올리는 약물을 만들고 있었다는 건데....
'재료에 있는 이 마음 결정이라는 게 신경 쓰이네.'
자료는 대부분 공장의 관리와 관련된 것들이었지만, 계속해서 넘기다 보니 다른 서류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성 약물을 제조하는 주요 재료인 '마음 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나는 관련 정보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새끼들."
일단 마음 결정이라는 재료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각성자의 몸에서 끌려 나오는 보석이 맞았다.
하긴 빼앗기면 각성은 물론이고 마음조차 빼앗기니까, 마음 결정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이다.
하여튼 내가 기억 속에서 봤던 새하얀 머리카락의 엘프에게 마음 결정을 추출하는 특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에는 마스터 코코로라고 적혀있으니, 아마도 이름이 코코로인 모양이다.
마음 결정은 내가 알고 있던 대로 벽을 하나 부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10레벨을 하나 없애서 9레벨 하나를 10레벨로 만드는 것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최대한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도록 연구해 나온 결과물이 바로 각성 약물이라는 건데....
'마음 결정 1개로 약물 100개 정도를 만들 수 있다라....'
내가 알기로 각성 약물의 성공률이 10% 정도로 알고 있으니, 한 명의 각성을 희생해 열 명의 각성자를 만들 수 있는 셈이었다.
마음 결정의 특성상 자신의 레벨 이하의 벽을 깨트리는 것이라, 각성 약물 제작에 필요한 마음 결정은 1레벨 각성자여도 상관이 없었다.
1레벨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1레벨의 벽을 깬다고 볼 수 있으니까.
'가만, 이러면 이 녀석들이 왜 굳이 설아를 납치한 거지? 그냥 새로 만든 각성자로 다시 마음 결정을 추출하면.... 아 안되는구나?'
각성 약물을 이용해서 1레벨에 도달한 각성자로 추출하는 테스트를 실제로 해본 자료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2차 추출한 마음 결정으로는 약을 만들거나 직접 사용해도 누군가를 각성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약물의 재료가 되는 각성자는 따로 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가?
'아무래도 레벨이 낮은 각성자가 처리하기 쉬웠을 테고.'
그것마저도 혹시 등록된 각성자라면 골치가 아파질 수 있으니까, 최대한 여파가 적은 미등록 각성자 위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거다.
하지만 각성 자체를 축복받는 한국 사회에서 등록하지 않는 것은 각성을 잘 모르는 어린애들 뿐이었고.
자연스럽게 어린 애들을 납치해서 재료로 써먹게 되었다는 거네.
정상적인 헌터가 될 자질이 있던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도 화가 나는 일이지만.
마음 결정을 빼내는 것은 겨우 각성만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각이나 감정도 빼앗아 완전히 인생을 죽여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심지어 여기에서도 그 관련 조사가 해봤다는 자료가 있어서 읽어봤더니, 그렇게 마음 결정을 빼앗긴 아이들은 대부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자기들 손을 더럽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웃기고 있네.'
보고서에 달린 코멘트를 읽자마자 분노가 터져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알아서 자연사해서 증거를 사라져 참 고마운 일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네.
사람을 죽여놓고, 자연사라느니 입을 터는 꼴을 보니 열불이 났다.
이딴 새끼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대가리들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절로 답답해졌다.
이게 지구냐?
그나마 이 시절의 여인위는 이런 서류를 남겨두는 스타일이라 정보라도 얻었지.
미래에선 이런 장소에는 일부러 서류를 유지하지 않는 치밀함이 있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년의 엘프 새끼들을 지구에서 박멸시켜버려야 하는데....
"기존 피해자들 서류는 일부러 주기적으로 처분해서 없는 모양이고, 설아는 남아있네."
가족 관계는 물론이고 평소에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
각성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보고서부터, 특성을 이용해 각성 사실이 확실하다는 걸 확인한 보고서까지.
나는 설아랑 관련된 서류를 모두 태워버리고는 문틈을 확인하면서 상황을 노렸다.
'대충 상황은 다 알았고, 이제 설아만 데리고 나오면 끝이야.'
다행히 문 바깥은 돌아가고 있는 공장의 소리와 설비들 때문에 몰래 숨어서 이동하기 쉬웠다.
그래서 설아가 있는 방 앞까지는 금방 도달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방 안에 설아만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좀 확인해 봐야겠다.'
바깥에서는 창문이 없어서 내부를 볼 방법이 없었지만,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2층 계단 쪽에서는 여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직원들을 최대한 피해서 가며 2층으로 숨어들어 창문 내부가 보이는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천천히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내부에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른의 인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자그마한 아이의 인영 하나가 구석에 쓰러져 있었으니, 저게 아마도 설아일 거다.
또 특별한 것으로는 위쪽에 환풍기 비슷한 것이 여기 2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저기로 들어가서 설아를 데리고 나오는 건 무리고.'
하지만 저걸 활용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설아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은 들었고, 그 위치로 가서 물건을 셋팅하기 시작했다.
아까 사놨던 재료들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연막이 만들어지도록 준비하고, 트리거를 실에 걸은 채로 문 앞으로 내려보냈다.
그 뒤에는 천천히 1층의 문 앞으로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내가 실을 당기자 재료가 환풍구를 통해 떨어졌고, 그것과 동시에 새하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나는 당황하는 소리가 내부에서 들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고는.
아까 확인했던 설아의 위치를 찾아서 곧바로 손을 붙잡고는 밖으로 달려 나왔다.
"켁, 케흑!? 으, 은혁 오빠?"
"설아야, 달려!"
아마 이런다고 저 녀석들이 우리를 잡지 못할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몰라서 여인위와 관계가 없는 경찰 하나를 찾아 놓았다.
지금쯤 설아네 아주머니가 그 경찰에게 신고했을 거고, 나는 설아가 마음 결정을 빼앗기기 전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
우리는 공장 기계 위를 달리면서 위태위태하게 공격받지 않을 만한 상황을 만들며 도주했고.
설비가 고장 날 것을 걱정한 녀석들은 우리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만약 저 녀석들이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녀석들이었다면 저렇게 당황하지 않고 바로바로 우리를 제압했겠지만, 저들의 대부분 받은 명령만 따르는 인형 같은 녀석들이었기에 이런 방법이 통했다.
"망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엘프년은 우리를 빠르게 쫓아와서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제발 나가 뒈졌으면 좋겠네.
"이런, 나는 당연히 뭔가 특별한 손님인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꼬맹이였네?"
"설아야 뛰어!"
"하, 하지만...."
"빨리!"
당연히 엘프는 별 볼 일 없는 내가 아니라 설아쪽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것 자체가 내가 노린 결과였고, 나는 나에게서 그녀의 시선이 떨어지는 순간 계획했던 장소로 달렸다.
설아가 붙잡히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해야 할 텐데...!
"멈춰! 안 멈추면 이것들 다 흡수해 버릴 거야."
"호오? 마음 결정이 어떤 건지 알고 있나 봐?"
"설아를 풀어줘. 어차피 여기 있는 마음 결정을 내가 흡수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잖아."
"당돌한 꼬맹이네. 하지만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건 각성이 가능한 여성들만 흡수할 수 있단다."
"나 여자거든!?"
나는 무리수를 두기로 했다.
시발 어차피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의 몸뚱이를 겉만 보고 어떻게 알겠어.
물론 벗겨보거나 탐지 관련 특성이 있으면 바로 들키겠지만, 애초에 탐지 특성이 있었으면 그 전에 이미 다 털렸겠지.
"흐음,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그래도 모험을 하긴 좀 그렇지."
내가 안도하려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이동한 엘프가 내 멱살을 붙잡았다.
시발 저 커다란 젖탱이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저렇게 빠른 게 어처구니가 없네.
어떻게 바로 앞에 있는 마음 결정을 잡기도 전에 도착하냐....
"여자애 잡아 와."
"예, 마스터."
"거짓말을 그렇게 잘하는 것도 그렇고. 되게 당돌하게 딜을 하는 것도 그렇고.... 너 좀 재미있네. 계속해봐."
"큭!?"
"흐응.... 그나저나 마음 결정에 대한 것도 알아버린 모양이네. 보안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
나는 아까 설아가 갇혀있던 방까지 끌려왔고, 그대로 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차라리 나만 이렇게 잡혔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곧 설아도 울면서 끌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서 주변을 살피는 순간 강렬한 기시감이 나를 꿰뚫었다.
'기억에서 봤던 구도 그대로인가?'
엘프년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팍 상할 정도로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사실도 똑같았고.
가슴팍에 흙을 묻히고 덜덜 떠는 설아의 위치와 상태도 비슷했다.
그나저나 아직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못 끌었는데 괜찮으려나....
"너는 무섭지도 않나 봐. 누나 같은 위험한 사람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저 아이를 구할 생각만 하는구나."
"그렇다면?"
"저 애가 많이 소중한가 보구나?"
"......."
대체 당연한 것을 왜 묻는 거냐는 눈빛을 하자, 그녀는 광소하더니 설아를 내 눈앞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설아를 특성의 힘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설마 저 미친년이....
"그 얼굴이 분노와 슬픔과 절망으로 물드는 것이 보고 싶어서 말이야. 나는 그런 거 정말 좋아하거든."
"미친년...."
"친구들은 코코로라는 이름은 귀여운데, 왜 하는 짓은 미친년이냐면서 뭐라고 하지만.... 원래 사람 취향이 그런 걸 어쩌겠어."
파지직!
강렬한 소리와 함께 설아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그녀의 비명이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당장이라도 그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마음 결정의 운송책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들이 나를 붙잡고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설아에 눈가에 남아 맺혀있고, 검은색의 하트 모양의 보석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설아의 마음 결정이 추출 당하는 중이었다.
엘프년은 나와 설아의 표정을 보면서 다시 광소하더니, 나를 붙잡고 있던 남자들에게 마음 결정을 회수하게 시켰다.
"정말 그 눈빛 마음에 드네. 어때, 이 누나의 노예를 하지 않을래? 그렇게 한다면 저 텅 빈 껍데기라도 괜찮다면 선물해줄게."
그딴 걸 말이랍시고 하는 거야?
진정해 박은혁, 아직 설아의 마음 결정은 가공되어서 부서지거나 하지 않았어.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챙겨서 설아에게 되돌릴 방법을 찾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흡!"
"허?"
나는 그녀가 판단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로 설아의 마음 결정이 있는 곳으로 몸을 던졌다.
아마 바깥에 도착한 것은 여인위와 관련이 없는 정상적인 경찰일 것이다.
지금 설아의 마음 결정을 지켜낸다면, 어떻게든 그녀를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던진 도박수였다.
하지만 내 손이 설아의 마음 결정에 닿는 순간, 이전에 느껴봤던 익숙한 감각과 함께 마음 결정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고.
내가 그것에 당황하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암전하며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