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142화 (143/289)

EP.142 5장 - 묘설아(4)

처음에는 설아를 납치한 그 범인이 그냥 백발의 여성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억을 최대한 떠올린 결과, 가려놓고 있는 상태의 귀 부분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즉, 그건 이번 사건의 범인이 엘프라는 것을 의미했고....

'여인위랑 관계가 있는 걸 넘어서, 범인 자체가 마스터였다고?'

이건 굉장히 골치가 아파지는 문제였다.

만약 내가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더라도 마스터와 싸우는 것은 무리인데.

그걸 넘어서 특성도 없이 몸은 이런 꼬마인 상태로 상대해야 한다니.

'돌아버리겠네.'

물론 꼭 범인과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설아가 납치되지 않도록 노력하던가, 아니면 납치되더라도 설아만 데리고 도망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설아가 납치된다는 결과지,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납치되는지에 대한 과정은 전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그녀가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하기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낮은 것이 문제겠지.

그렇다고 아직 납치되지도 않았는데, 납치되었다고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웃긴 일이잖아.

'아니지, 잠깐만....'

기억 속에 있던 설아는 분명히 유치원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중에 납치를 당했다는 건데....

잘하면 그녀가 어디로 납치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는 유치원에서 꽤 가까운 자리에 있어. 즉, 그 이전에 납치할만한 위치는 없다는 소리야.'

그렇다면 당장 내일 설아가 납치되더라도, 내가 설아를 미리 만나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납치당하는 것 자체를 막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고.

하여튼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알아보고, 내일 내가 설아를 만날 때까지 별일이 없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무사해라 설아야.

"아, 은혁이 오빠!"

"안녕. 오늘은 좀 난리를 치면서 놀고 있구나."

"히히,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찐득찐득해졌어!"

"흙을 더 넣으면 되잖아."

"하지만 오늘은 찐득찐득한 게 좋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니.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도 유치원복 가슴팍에 묻어있는 흙 자국에 눈이 갔다.

아무래도 저런 흙 자국을 빨지도 않고 다음 날 유치원에 보냈을 리는 없으니까....

'설아가 납치되는 거, 오늘이구나?'

저 가슴팍의 흙 자국은 내 기억 속 창고에 있던 설아에게도 있었다.

그러니 오늘 설아가 집에 가던 길에 납치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터다.

어제 겨우 녀석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 감을 잡았는데, 그러자마자 다음 날 납치되는 건 너무 일정이 빡빡한 거 아닌가?

솔직히 좀 너무하네.

"설아야, 그거 팔찌 오빠가 좀 가지고 놀아도 괜찮아?"

"우응? 하지만 이거 가지고 놀면 엄마한테 혼나...."

"오빠가 혼나는 거잖아? 내가 빼앗은 거로 하자."

분명 설아가 차고 있던 이 팔찌에는 마력을 이용해서 아이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능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장비들은 전부 부수거나 벗겨놓고 납치하겠지.

그럼 그걸 최대한 들키지 않게 숨긴다면, 최소한 창고의 위치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만약 설아가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했을 때의 보험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일단 팔찌의 일련번호를 확인해서 적어뒀다.

이걸 알고 있어야 이따가 설아가 납치되었을 때 이동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팔지의 크기와는 다르게 아주 작은 크기의 위치 추적기를 꺼냈다.

"우와 그거 뭐야?"

"설아야.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오빠 믿지?"

"웅? 웅!"

"이거 삼킬 수 있겠어? 마실 물 줄 테니까."

"에에,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알아, 하지만 이건 먹어도 괜찮은 거야. 오빠가 책임질게."

만약 걸려서 엄마에게 혼이 난다면, 전부 내 탓으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일 처리를 했다.

아주머니가 나를 꽤 믿고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 설아도 나를 잘 믿어줬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위치추적기를 삼키면, 설아의 각성 마력 때문에 존재 자체를 눈치채기 어려워진다.

물론 정밀하게 검사가 가능한 기계를 이용하면 모르겠지만, 유치원생이 몸속에 위치추적기를 삼키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그걸 돌릴 범죄자가 어딨겠어.

나는 이것이 확실히 허를 찌를 수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방금 나한테 설아를 맡긴다고 하고 편의점에 가지 않으셨나?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시는 것 같지?

"설아야!"

나는 그 순간 굉장히 섬뜩한 감각이 느꼈고.

방금 분해했던 팔찌를 흙 속에 숨겨버린 뒤, 설아를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평소라면 상시 작동해야 하는 CCTV의 불빛이 꺼졌기 때문이다.

너무 대놓고 지들 범죄 저지르겠다고 알리는 거 아니냐?

'젠장...!'

다행히 설아는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서 달려주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성자들이 우리를 쫓아오는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달려온 곳에 CCTV가 있어서 섣불리 납치하지 못한다는 거지만....

당연히 그들은 실시간으로 우리가 도망치는 위치의 CCTV를 끄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아마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못했던 것도, 저 녀석들이 일단 떨어트린 상태에서 정신을 잃게 하는 방법을 썼겠지.

설아가 납치되는 장면을 기억에 남기면 안 될 테니까.

"커윽!?"

"오빠!?"

"망할 꼬맹이가. 이상하게 눈치는 빨라 가지고."

"닥쳐, 이 쓰레기야...."

"흐응.... 아쉽네. 내가 장난감으로 쓰고 싶은 스타일의 녀석인데. 마스터가 타겟 이외에는 건들지 말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참 운이 나쁘지?"

"카악 퉤엣."

최대한 도발해서 설아보다는 내 쪽으로 시선을 분산시킬 셈이었다.

타겟인 설아 말고는 건드릴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이용해야지.

하지만 그녀는 내 도발을 비웃으며, 설아를 안아 들고는 내 배를 힘차게 후려 찼다.

"커헉!?"

"읍, 으으읍! 우읍!"

"너 같은 귀여운 어린애가 그렇게 침을 뱉어봐야. 포상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니? 그 정도로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오산이야."

"쿨럭, 시발. 그건 그냥 네가 페도새끼라서 그런거고."

"후훗, 나중에 마스터한테 허락받으면 꼭 너를 찾으러 와줄게. 알았지?"

저 미친년을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미래에서는 각성자 범죄로 살인 등 엄청 많은 범죄를 저질러서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들어간 녀석이었다.

근데 사실 마스터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말이 무기징역이지 어떻게든 뒤에선 사실상 마스터랑 꽁냥대면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겠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굉장히 기분 나쁘고 좆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이게 나라냐?

"우욱 시발. 힘 조절을 하긴 했는데, 근데도 무지막지하게 아프네."

나는 고인 핏덩이를 뱉어내고는, 최대한 빨리 근처에 있는 피시방으로 향했다.

어지간하면 납치를 막는 건 불가능할 거라 여겼지만, 이딴 식으로 눈앞에서 당할 거라고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기억 그대로 사건이 벌어진다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설아가 무사하다는 거겠지만....

'반대로 기억 그대로면 마스터랑 내가 1대1로 대치한다는 건데.'

그 기억이 재현되길 바라기에는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설아에게 먹인 위치추적기의 위치를 확인했고.

다행히 그들도 몸속에 그런 것이 있다는 예상은 하지 못했는지, 정상적으로 위치가 이동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금방 신호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구석진 곳에서 갑자기 신호가 끊어졌다.

이건 마력을 이용해서 만든 신호 장치를 일부러 무력화하는 공간에 진입한 것이다.

전파 차단과 함께 범죄 용품으로 인기 있는 녀석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가 녀석들이 아지트로 사용하는 곳이라는 건데....

지도를 띄워서 확인해보니, 그곳에 있는 건물은 창고보다는 폐공장에 가까웠다.

창고라고 하기에는 좀 미묘한 장소긴 한데, 지금 가장 유력한 곳은 여기니까 여기부터 알아봐야겠네.

"일단 여기 도면부터 구하자."

당연히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각성 관련 범죄에 대한 데이터가 전부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이 비밀번호는 모든 시스템에서 똑같은 것으로 설정되어있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위험하게 이런 식으로 마스터 비밀번호를 만들 이유가 없을 텐데, 이 시절에 보안 시스템 짜던 놈들은 다 빡 대가리인가?

'가만 마스터 비밀번호?'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비밀번호라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었지만, 하필 마스터랑 연관 있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마스터들이 데이터에 접근하기 쉽도록 이런 식으로 시스템에 허점을 만들어놨다면?

이 당시에는 마스터들이 완벽하게 정착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약간 위험하더라도 모든 마스터가 주요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이런 짓을 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마스터들이 시스템에 잘 숨게 되어서 이런 보안이 약한 건 멀리하면서 개편해버린 거고?'

어떤 빡 대가리가 구성했길래 이딴 짓을 했냐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냥 외계인들이 지구 침략하려고 판 깔고 있었던 짓이라는 걸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들과 같은 루트의 비밀번호를 써야 그들에게서 설아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솔직히 많이 기분 나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방금 그 폐공장의 도면과 사진 등 관련 데이터를 띄웠다.

그리고 첨부되어있는 사진을 보면서 설아가 여기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창고인 줄 알았던 것이 여기 구석에 있던 방이었구나.

'일단 저 방에 설아가 갇혀있다고 치면, 연결된 길들은....'

움직일 수 있는 몇 가지 루트를 짠 뒤에는 곧바로 폐공장 근처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또한 최대한 내 선에서 구할 수 있는 약품들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연막을 만들 수 있는 재료 조합을 사서 챙겼고.

그 뒤로는 최대한 빨리 폐공장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쉽게 길을 내주진 않네.'

당연히 녀석들이 바보는 아니었기에, 폐공장에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는 문은 전부 지키고 서 있었다.

결국 나는 폐창고 근처를 빙빙 돌면서 다른 구멍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고,

한참을 찾아본 끝에야 유리가 깨져서 진입할 수 있게 되어있는 창문 하나를 발견했다.

'근처에 문도 없어서 지키는 놈은 없는 것 같고.'

혹시나 해서 창문 안으로 돌멩이를 던져서 반응을 살폈지만, 안쪽에서 지키고 있는 인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다행히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설아가 갇혀있는 방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려는데.

방구석에 쌓여 있는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부와 보고서로 되어있는 서류 더미였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 간단히 내용을 읽어봤다.

"와, 미친...."

그런데 그곳에 적혀있던 내용은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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