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141화 (142/289)

EP.141 5장 - 묘설아(3)

일단 어제 과거의 설아와 처음으로 만나, 그녀가 내 소꿉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늘은 당연히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점심을 먹자마자 놀이터로 나왔다.

"너 뭐 하고 있냐?"

"응애?"

설아가 아기들이나 빨고 다닐 쪽쪽이를 입에 물고 아기 흉내를 내고 있었다.

진짜 쪽쪽이는 아니고 아마 유치원에서 들고나온 장난감인 것 같은데, 대체 그걸 왜 저렇게 자랑스럽게 가지고 노는 거야?

사실 이 시절에는 아기를 따라 하는 놀이 같은 게 유치원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건가?

"응애!"

"나잇값 좀 해라."

유치원생한테 나잇값 하라고 하는 것도 좀 많이 웃기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유치원생이 쪽쪽이 물고 다니는 것도 웃기지 않냐?

물론 원격 모유 디스펜서 기능이 있는 쪽쪽이면 나도 탐이 날 것 같기는 한데.

"나이갑? 나이갑이 머야?"

"내가 미안하다."

최근 들어서 설아가 점점 장난기가 늘고, 밝아진다 싶었는데.

원래 성격 자체가 좀 천진난만한 느낌의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의 감각이나 감정을 잃어버리면서, 점점 세상을 계산적으로 다루다 보니까 성격이 좀 변했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 눈동자 색이 이때부터 검은색이었네?'

일반적으로 갈색이 아닌 눈동자 색은 각성자의 증표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검은색은 갈색과 구분하기 어려운 색이라서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정도면 아마 각성자라고 보는 것이 맞는 판단 같은데....

그렇다고 이 녀석에게 특성창을 알려주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는 없었다.

어릴 때는 특성 따위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천천히 삶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괜히 얘가 특성 사용을 하기 시작하면, 초등학교를 일반 학교가 아니라 헌터 학교로 진학해야 해서 너무 어릴 때부터 진학 루트가 강제되어 버린다.

그리고 어차피 특성이 1레벨 정도일 시기라 지금은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거다.

애초에 이건 설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해결하셔야 하는 문제지.

자칫하면 아이의 인생이 복잡해지고, 제대로 꼬이면 인생이 박살 나기도 할 수 있는 주제라서 함부로 끼어들 만한 부분이 아니었다.

'하긴 그 이전에 감각이랑 감정을 빼앗겨서 박살이 났지.'

그걸 잃은 뒤로 설아는 거의 아이들에게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으면서 자라왔고.

나중에 고등학생쯤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일반인의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국 설아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건을 찾아서 막는 것이 먼저라는 건데....

"오빠, 오빠! 이거 성 만들었다?"

"엄청나게 잘 만들었네."

유치원생은커녕 어지간한 중학생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퀄리티의 모래성이었다.

물론 미래의 설아는 엄청난 퀄리티의 마술도구를 만들어내는 걸로 이런 재능이 엄청나긴 한데.

그게 이렇게 어리던 시절부터 드러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물 조금씩 부어서 굳히는 건 누가 알려줬냐?"

"응? 은혁이 오빠가 알려줬어!"

"...그랬나?"

조막만 한 손으로 모래성을 만지작거리면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절로 힐링 되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지금은 꽤 조그맣게 변한 상태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머리는 어른이라서 그런지 마냥 흐뭇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설아야. 설아는 평소에 뭘 제일 좋아해?"

"엄마! 음, 그리고 모래 만지작거리는 거랑.... 장난감으로 뭔가 만드는 거?"

"설아답네."

물론 미래의 설아가 마술도구를 만드는 것은 강해지기 위한 노력이지만.

분명히 이 시절의 설아가 가지고 있었던 취미의 잔재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듯했다.

장난감으로 저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아이가, 누구보다 물건을 만들면서 만지는 재미를 느끼던 아이가, 그 모두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니.

가끔은 미래를 안다는 것이 참 가혹한 일일 때도 있는 모양이다.

"설아야 너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우응?"

나는 한동안 설아를 안아서 비비적거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해주면서 그녀의 해맑은 표정을 보지 못하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러다가 문득 이 시절의 설아가 가지고 있던 꿈이 궁금해져서 던진 질문이었다.

"움, 설아는 우리 엄마처럼 대단한 엄마가 되고 싶어! 그래서 나처럼 행복한 아이를 잔뜩 사랑해 줄 거야!"

"......."

"오빠? 어디 아파?"

"아니야. 응, 설아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착하고 예쁜 딸이, 어떤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아이가 되었다면.

딸을 사랑하는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 와중에 설아가 했던 말이 하나 떠올랐다.

자신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왠지 엄마가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그게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기에 최대한 자신이 평범한 척 살아가려고 했다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자신이 채워지는 것 같아서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설아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지고 있던 사랑은 정말이지 너무나 강하고 빛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사랑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텅 비어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남들을 공부하고 연기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수록, 그녀의 어머니는 미소를 찾아갈 수 있었고.

그 미소에 설아는 비워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그 미소가 그녀를 정상적인 삶의 길로 이끌어줬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지금 설아의 모습에서, 많은 것들이 미래에 닿아있었다.

어릴 때부터 특출났던 손재주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도 그렇지만.

그녀가 내 아이를 가지는 것에 집착했던 것도, 그녀가 잊고 있었던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꿈에서 비롯한 것이겠지.

그리고 하필이면 그녀가 나와 친해지기 직전까지 실실거리면서 착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이 시절 성격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애기야."

"응애?"

"아니다. 내일 또 보자."

"안녀엉!"

"은혁아, 항상 고마워. 우리 애가 너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

"아니에요. 아주머니. 저도 설아랑 있으면 재밌어요."

설아가 자기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신나서 뛰어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설아랑 이야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긁어모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유일하게 관련이 있어 보이는 정보는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겠지만.

'설아가 각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인가?'

심지어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내가 마력이라도 쓸 수 있으면 어떻게 알아볼 방법이 있을 텐데....

설아가 순수 마력 각성자였다면, 아무리 1레벨에 유치원생이라도 외모적으로 티가 심하게 나타났겠지만.

1레벨 특수 코스트 사용 각성자는 마력 자체가 적어서 두꺼운 옷을 입고 있거나 하면 티가 나질 않았다.

'가장 의심이 되는 건 보석이란 말이야?'

사람이 가진 임계점을 넘었을 때 생성되던 보석이 떠올랐다.

만들 때 각성이 취소된다는 특징이 있는 데다, 설아처럼 감각과 감정을 잃어버린다는 것까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추출하는 방법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걸 추출하였다고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긴 하지.

특히 내가 알기로 설아는 어린 시절에 각성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3학년 때 급하게 각성해서 급성장한 케이스였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각성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 되는데.

그럼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각성이 취소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대체 왜 이런 어린애를...."

내가 알기론 그 보석을 흡수해서 벽을 부술 수 있는 레벨은 추출 당한 사람의 레벨보다 높을 수 없다.

물론 직접 실험해본 것은 아니지만, 혜미가 정령술에서 사용하는 벽을 부수는 계약과 거의 같은 시스템인 것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같은 문제점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좀 뒤져봐야겠는데...."

물론 어린애가 돌아다니면서 어린 여자애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알아보러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받았던 용돈을 죄다 털어서 PC방 비용으로 사용했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진짜 보안 허술하던 시절이네...."

아무리 내가 과거 자료 열람 때문에 관련 코드를 외우고 있다고는 해도.

그 코드만 가지고 있으면 이 시점 대부분의 각성 관련 정보에 접근 가능한 것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애초에 대통령 등 권위자 용으로 쓰이던 마스터 비번을 공공재 같은 과거 자료라고 다 풀어주는 미친 일 처리 방식이 어딨어.

나도 국가 소속이지만 공무원 새끼들이 일을 똑바로 처리하는 걸 보질 못했다.

"최근에 어린애들 대상으로 했던 사건이...."

그리고 일부러 이쪽 사건을 파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은근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고아원 같은 곳들이 많이 존재했다.

아마 여인위의 생산 시설이 아이들을 납치했던 흔적이겠지.

경찰에서도 일부러 데이터를 유실시켜둔 덕에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기조차 어려웠다.

"근데 왜 이렇게 싸한 느낌이 드냐...."

이상하리만치 관련된 사건들이 깨끗하다.

하긴 애초에 그런 특이한 사건이 있었다면 내가 예전에 대충 훑어보다가 발견했을 거다.

만약 정말로 각성한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그 이상한 보석을 만들어내는 범죄자들이 존재한다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여인위가 엮여 있다는 거지.'

시발, 무슨 사건마다 발 하나씩 걸치고 있는 것이 너무 얄밉네.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걔들은 어차피 이유 없이 욕을 먹어도 싼 녀석들이기 때문에 일단 욕부터 쑤셔 박았다.

그렇다면 일단 사건이 터지고 은폐하기 전에 그 데이터를 찾아야 한다는 건데.

하필이면 항상 컴퓨터를 확인하지 못하고, 저녁이 되면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였다.

너무 상황이 안 따라주네.

"잠시만, 방금 그거 뭐야!"

나는 별생각 없이 접수된 신규 사건들을 내려받던 도중, 다운로드와 동시에 사건이 삭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설마 싶어서 파일을 열었더니 어린 여자아이들만 노리면서 납치하는 일당들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원래 이 정도면 거의 찌라시 수준인데....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급하게 삭제했다. 그런 찌라시 조차도 퍼지면 안 될 정도의 사건이라는 거지.'

이 정도면 여인위가 엮여 있다는 건 확실해졌네.

하지만 그것 말고 자료에서 건질 거라곤 용의자의 인상착의 정도가 전부였다.

은발을 넘어서 눈처럼 하얀 머리색을 가진 생머리라....

"윽!?"

범인의 인상착의를 읽는 순간, 갑자기 뇌를 찌르는 두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설아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각.

오래되어서인지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모종의 이유로 잊고 있었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마치 전기로 머리를 지지는 듯한 두통과 함께,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는 기억이 재생된다.

무슨 창고 같은 곳으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심지어 방금까지 글로 읽었던 범인과 인상착의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설, 아야...!"

그리고 나는 그 창고의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설아의 모습을 간신히 캐치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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