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0 5장 - 묘설아(2)
[대상에게 남아 있는 비틀림을 바로잡아, 당신의 맹세를 증명하십시오.]
[시간의 비틀림: 과거 시점에 당신이 간섭합니다. 비틀림과 관련된 사건을 찾아서 정상적으로 처리하십시오. 특성 사용이 금지됩니다.]
삐이이이!
시끄러운 이명으로 인해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분명 이전에는 던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뇌를 쿡쿡 쑤시는 듯한 느낌이네.
그리고 몸이 결리는지 신체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비틀림?"
특성창이 보여주는 내용을 보며 의문을 토하는 순간, 또 다른 의문이 나를 덮쳐왔다.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 맞나?
뭔가 평소에 듣던 느낌보다 훨씬 앳된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
그 순간 '과거 시점에 당신이 간섭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깨끗해 보이는 데다가, 지금이라면 형체도 남아있지 않아야 할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많은 신세를 졌던 바름 보육원의 모습이었다.
'내 어린 시절로 돌아왔어? 이 정도 외모면 거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같은데....'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확인하며,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 시점의 설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기에 비틀림이 있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어떻게 과거로 돌아오는 게 가능한 거야?
"은혁아,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워, 원장님?"
"응?"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친엄마처럼 우리를 키워주셨던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안겨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새끼냐?'
정신 차려 박은혁.
물론 정말 오랜만에 뵙게 된 원장님이긴 하지만, 자칫 이상한 반응을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아무래도 원장님이 돌아가신 사고는 지금으로부터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고, 내가 말 한마디 한다고 그 미래를 바꾸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 은혁이는 똑똑하니까 뭐든 잘할 수 있겠지. 원장님은 믿어요?"
"네...."
"그래도 아직 은혁이는 어리니까, 힘들 때는 원장님이나 형들한테 의지해도 괜찮아. 알지?"
"알아요."
대부분은 입양에 성공하는 여자애들과 다르게, 남자애들은 입양에서도 인기가 없다.
각성하지 못하는 가능성 없는 아이는 기르기 싫다는 거겠지.
그래서 사실 남자아이는 고아원에서도 받기 싫어하는데, 원장님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받아 소중하게 키우시는 분이었다.
그러니까 내 위에 형들만 남았지.
'성공해서 꼭 보답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취하면서 고수익 직업인 헌터 매니저로 취직을 도전하고, 이제 좀 안정되었다 싶어서 이곳에 돌아왔는데.
원장님은 던전 브레이크로 돌아가신 상태였고, 원장님이 없어 굴러가지 못한 고아원은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붕 뜬 아이들이 간 고아원들을 뒤져보다가 찾은 것이 내가 지금 지원하고 있던 희망 보육원이었다.
바름 보육원의 내부를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고아원의 모습은 철거되어서 폐가가 되어 있던 상태긴 했지만, 그 이전에 내가 정상 운영되던 고아원을 떠날 때와 비교해도 신기한 것이 많았다.
아직 멀쩡해서 교체하지 않고 놔둔 세탁기. 완전히 낡아서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절에는 새것 같은 TV. 전체적으로 내 기억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들.
워낙 옛날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어서 그런지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얘들아 밥 먹자!"
"네에!"
시끌벅적한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되고, 굉장히 그리운 스타일의 음식들과 떠들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채로 이런 경험을 자꾸 맞이하니,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계속 틀어막아야 했다.
밥까지 먹이는 건 너무 반칙 아니야?
"은혁아 왜 그래? 입맛이 없어?"
"아뇨. 정말 맛있어요."
대량을 조리하다 보니, 메뉴 자체는 항상 제한적이었지만.
그래서 더 확실하게 원장님 스타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메뉴들이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는 너무 향이 강하다고 거르던 싸구려 소시지도, 원장님이 준비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진짜 최근에 혜미가 밥을 해줘서 그렇지, 맨날 제대로 된 밥도 먹지 않다가 이걸 당했으면 정말로 울었을 것이 분명했다.
다 같이 원장님을 도와서 설거지까지 마무리하고,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우르르 달려 나가서 놀기 시작하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다.
가끔 싸우는 모습도 보였지만, 거기에 가서 원장님이 중재하고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행위였다.
진짜 이러다가 내가 왜 여기로 날아왔는지를 잊어먹게 생겼네.
'설아부터 찾아야 하는데....'
이 과거로 돌아온 것은 내가 과거 회상이나 하면서 힐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설아랑 관계된 무언가의 일에서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고, 그것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건데.
정말 힌트라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서 손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은혁아. 우리 팽이로 놀건대, 같이 할래?"
"미안, 오늘은 좀.... 나중에 하자."
"우응, 요즘 은혁이 나랑 안 놀아...."
"미안하다."
그나저나 이 시절에는 내가 어떻게 생활했더라, 너무 오래전이라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충 밖에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TV는 고아원 내 카르텔에 따라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헌터물 애니메이션이나, 형들이 좋아하는 영화 같은 것이 자주 채널 고정을 당했고.
아직은 헌터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서 그냥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선호했던 것 같다.
혹시 기억이 날까 싶어서 계속 머리를 때리며 정확히 뭘 했는지 알아내려 했는데.
두통만 심해질 뿐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어지간한 건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은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뿌옇게 막혀있는 느낌이네.
"원장님, 저 평소에 밖에 나가면 어디서 노는지 아세요?"
"흐응, 지금 원장님 시험하는 거야? 너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나 해서요."
"놀이터, 맞지? 항상 늦어서 찾으러 가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잖아."
"크흠, 그렇죠 뭐...."
이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어릴 때 뭔가 일이 있으면 놀이터에 혼자 앉아서 놀면서 사색을 즐기곤 했었는데.
이 시기에도 비슷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잘 다녀와. 어디 다치면 혼난다?"
"알아요."
일단 마을을 좀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아원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아이인 이상 행동에 제약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나는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금방 아까 고아원 내부를 살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면서도 다른 과거의 마을을 보니까 가슴이 절로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여기 원래 문방구가 있었구나.'
처음부터 분식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문방구가 한쪽에서 작게 분식을 파는 형태였다.
나중에 문방구보단 분식집이 잘되니까 완전히 전향했던 모양이네.
지금은 그 분식집도 사라져서 먹지 못하게 된 상태였지, 기회가 되면 저기 있는 떡볶이도 오랜만에 먹어볼까....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저 초등학교였을 거고, 아마 지금이 방학 초반 시즌인가?"
가장 고아원이 고생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아직 유치원들까지는 방학을 시작하지 않은 모양인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부모님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유치원은 끝나는 시간이 빠른 경우가 많으니까, 이쯤 부모님과 함께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긴 하겠네.
그나저나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설아도 유치원 다닐 시기 아닌가?
"자, 여기 봐야지."
"네에."
그러다 놀이터 구석에 있는 바다 모양 합판?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사진 명소로 쓰라고 만들어두는 장난감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여자아이와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그 모습이 신경이 쓰여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의 엄마에게 안겨서 실실거리는 그 목소리에서, 뭔가 묘한 간질거림을 느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 톤인데...?
"아윽...!"
그 순간 저릿한 두통이 머리를 감싸왔고,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주저앉았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방금 그 목소리랑 비슷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저 애랑 아는 사이라고?
진짜 시발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오빠? 은혁이 오빠?"
"어, 어라...."
당연히 기억 속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인 것은, 방금 그 아이가 나를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며 괜찮냐고 묻는 모습이었다.
나를 정말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특히 그녀의 어머니 또한 나에게 아는 체를 하며 웃어주셨다.
"아, 안녕. 갑자기 머리가 조금 아파서."
"호 해줄까?"
"엉?"
"호오~ 이렇게 하면 아픈 게 날아간다고 엄마가 그랬어!"
굉장히 천진난만한 스타일의 아이네.
그나저나 나는 고아원 아이도 아닌데 용케 이런 애랑 친하게 지냈네.
내가 이 놀이터를 애용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여기서 만나 친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굉장히 의외였던 것은 저 여자애 어머니의 반응이었는데.
아무래도 고아원의 남자애가 자기 딸이랑 놀면 걱정하거나 해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것 같았다.
별로 그런 쪽에 선입견 같은 걸 가지지 않은 분인가?
"자, 설아야. 이제 집에 갈까? 오빠한테 안녕해야지."
"안녀엉! 아픈 거 꼭 나아야 해! 오늘 놀이터에 오빠가 없어서 심심해써!"
"어, 엉. 내일은 빨리 나올게."
나는 방금 들였던 이름 하나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 여자애가 설아라는 거야?
확실히 머리카락 색이나 기본적인 것들이 닮아있긴 해....
'하지만, 설아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어.'
심지어 그 시절에는 일반인을 연기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주변에 있던 애들을 울리거나, 엄마를 울게 하는 등 굉장히 많이 사고를 쳤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방금 만난 소녀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그런 이상한 현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일단 정리해보면 나와 설아는 모르던 사이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던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였다.
그리고 설아는 이 시점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이 이후에 설아가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 시절부터 설아가 기억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다.
즉, 높은 확률로 이 이후에 일어날 어떠한 사건이 문제가 된다는 거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점쳐봤지만, 역시 특성창에서 말했던 그 사건이라는 건.....
"이, 시발."
설아가 감정과 감각을 잃어버린 원인이 되는 사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