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99화 (100/289)

EP.99 9레벨 - 웅, 완전 공감해(13)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딱히 대단한 영웅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반짝거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반짝임을 조금이라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두컴컴한 나도 그 빛에 조금이나마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의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렇기에 처음에 각성해서 헌터가 된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뻤다.

최전방에서 사람들을 지키는 헌터들은 누가 봐도 반짝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실제로 나는 객관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강렬한 빛이 뿌리는 사람이 되었다.

"은하야, 너 정도 되면 그런 눈치 볼 것 없이 살아도 괜찮다니까? 누가 뭐라고 할 건데. 물론 나처럼 정말 논란될 짓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너는 그런 것도 아니잖아."

"...괜히 그 사람들만 괴롭히는 게 될 것 같아서. 힘이 있으니까 더 조심해야지."

"에휴, 널 누가 말리냐."

하지만 나 자신이 느끼기에는 나는 전혀 반짝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은 다른 사람의 빛을 억지로 흡수해서 몸을 불린 괴물이었다.

껍질에서는 반짝이는 빛을 보이며 현혹하지만, 그 안은 그저 다른 사람의 빛을 엮어 놓은 누더기 골렘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빛에 기대어 살아가는 기생충이며.

가질 수 없을 것을 가지기 위해 발악하는 욕심쟁이였다.

내가 누군가를 지키려는 것은 그저 그들의 빛을 욕심내는 내 추함이었다.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이런 괴물 따위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엮고 또 엮어서 빛과 하나가 되면 나도 빛날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너무나 추하고 탁한 빛만을 흘려대고 있었다.

나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들도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아주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서.

그 빛조차 탐이 나서 그들을 지키려고 했다.

"아니야, 은하야 보지 마."

"뭔데 그래."

"제발, 은하야. 너 절대로 인터넷 열지 마. 한동안 인터넷 금지야."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팀원들조차, 내가 더 아름답다며 그들을 욕한다.

오히려 더러운 것은 나일 텐데.

하지만 이런 내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 빛들이 모두 도망갈까 두려워, 나를 그대로 보여주지 못해왔다.

"그냥 내가 전부 책임지면 모든 게 끝이잖아. 그게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야."

그렇기에 이 기회에 포기하려고 했다.

내 자리에 맞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다른 이들의 빛을 지켜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내가 그들의 빛을 망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 욕심을 버리고 반짝이는 빛들과 멀어져서 혼자 살아가려고 했다.

"아, 흡...."

하지만 이미 나는 그들의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되어 있었고.

혼자서 모든 걸 견딘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빛을 훔쳐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연약한 그대로였다.

이제까지 해온 내 잘못된 선택들이.

그리고 추악하게 부려왔던 욕심들이 나를 짓누른다.

아프다.

뒤늦게 받는 형벌은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에, 에?"

"주접 그만 떨고 따라와요. 일단 좀 씻으셔야겠네요."

그렇게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 빛 하나가 찾아왔다.

첫 만남은 오해로 시작했지만.

그의 실상이 굉장히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 내가 만들어낸 거짓된 빛이 다른 사람을 속여 괴롭히는구나.

나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의 능력이 나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나를 아이처럼 대하며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거 제대로 된 선택이었으니까 후회하지 마세요."

"...네?"

"아, 티가 났어요. 그 공격 왜 안 막았나 후회하셨었죠? 그러실 필요 없어요."

"......."

하지만.... 그 공격은 분명히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내가 고통을 견디지 못할까 봐 무서웠던, 그저 나 자신의 연약함을 두려워했을 뿐.

분명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알고 있다는 듯이 괜찮다며 나를 쓰다듬어줬다.

이 사람은 마치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발가벗겨졌으니 부끄러워야 할 텐데.

내 추악한 내면을 바라보면서도 변함없이 나에게 친절함을 보여주는 그의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빛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

"아프다고 전부 토해내도 괜찮아요."

술기운이 퍼져나가고.

그가 계속해서 내 속을 드러내라며 나를 감싸준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지 않으면 내가 속마음을 토해내지 않을 걸 알고 있다는 듯.

내가 어떤 인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그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쌓아둔 벽을 약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착한 사람이다.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내 감정을 공유받을 것이고.

내 추악함이 묻어 그 빛이 탁해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은하씨. 제 앞에선 털어놔도 괜찮아요."

"...네?"

"지금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외치고 있잖아요.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걸 입으로 바꿔 말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그는 내 마음을 전부 알고 있으니까, 말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며 나를 유혹했다.

그 빛이 너무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나 정도는 옆에 간다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왜, 왜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그야, 좋아하니까요."

추악한 내 본성을 보면서도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내가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었던 모습이었기에.

나를 부숴버릴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오히려 내가 그에게 반해버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그가 강제로 부여해둔 육체적인 쾌감이 몰려온다.

그 쾌감은 내가 억지로 막으려던 사랑의 감정을 자꾸만 무너트리려고 했다.

아니야, 정신 차려 서은하.

너는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의 곁에 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당신도 말했죠.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 그렇게 되면 되잖아요? 남들을 원망하면서 조금이나마 행복해져 보라고요."

내 추악한 모습을 알고 있으면 도망쳐 버리면 될 텐데.

왜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내가 가진 추악함은 정말이지 욕심에 가득 차 있어서, 저 사람이 저리 부탁하는데도 욕심을 포기하지 못해서 고집을 부렸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지는 것 전부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이 이기적인 년아."

"에...?"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모두를 내버리고 쾌감에 빠지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그, 그런 게 아니...!"

정답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빛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따위는 무시해왔다.

내 욕심을 위해 그렇게 해왔다.

그것이 내 추악한 본성이었고, 그는 그런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이 쾌감은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들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욕심을 부리고 있는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봐요. 정말 행복하죠? 그게 제가 정한 당신의 결말입니다.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 쓰레기들이 다 좆됐으면 좋겠거든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빛들이 나로 인해 망가져 가리라 말하며, 이것이 네 욕심의 결말이라며 화를 냈다.

그 와중에 내가 힘들어하지 못하도록 쾌감을 통한 배려까지 하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눈이 부셔 아플 정도로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끄흑...!"

그 태양과도 같은 빛을 지켜내고 싶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가진 욕심을 모두 비워내려고 했다.

사실 그 태양과도 같은 빛에 홀려버려서.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다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를 가지고 싶었다.

F F F

서은하에게 악플을 단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하면서.

나는 천천히 초인종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은, 혁씨!"

탁!

화끈한 감각과 함께 내 팔이 내쳐지며 초인종에서 멀어진다.

서은하는 나를 떨쳐내고는, 내가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도록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몸에서는 이제 쾌감의 잔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저 자신도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둬 주세요."

'나는 내가 밉지 않아. 나는 내가 밉지 않아. 나는 내가 밉지 않아. 나는 내가 밉지 않아.'

그녀는 자신을 세뇌하듯 온 힘을 다해서 머릿속을 다잡았다.

이제까지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도 쾌감 따위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쾌감조차 극복해내며 나를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은하씨도 할 수 있었네.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저는...."

"아까 했던 그 이야기들은 다 취소할게요. 집으로 돌아가죠."

이제 와서 죄다 공구리치려던 걸 취소하려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힘을 내서 이겨냈잖아?

거기다 대고 이제 늦었다면서 강행할 정도로 아쉬운 건 절대 아니었다.

"걸려 있던 특성도 다 풀어드릴게요. 그렇다고 자책하시면 안 됩니다?"

"고마워요...."

"뭐가요? 은하씨가 원하지 않으신다는 걸 증명하셨잖아요. 그래서 멈춘 것뿐인데요?"

"그거 말고요...."

그녀는 이걸 말해도 되나 싶어서 망설이는 것 같았다.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좀 답답해져서, '웅, 완전 공감해'를 다시 켜서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그녀가 입을 연 덕분에 멈출 수 있었다.

"저처럼 칙칙하고 뒤틀려있는 사람을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 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줘서 고마워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당신 팀원들도 마찬가지일걸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까지 저 혼자 지레 겁먹은 걸 수도 있겠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책임져 주셔야 해요?"

"네?"

"욕심 다 버리려고 했는데, 은혁씨 때문에 더 큰 욕심이 생겨버렸잖아요."

"...무슨 욕심이요?"

이 사람한테 욕심이라고 할 것이 있었나?

버리려고 했다는 걸 보면, 설마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를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진짜 이 인간 중증이라니까.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버렸으니까요."

"...네?"

"사랑해요. 이 마음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 저따위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이 마음은 욕심 덩어리겠지요. 그래도 욕심을 부리고 싶어요. 당신을 가지고 싶어요."

"어...."

"그러니까 저를 책임져 주세요. 저를 품어주세요."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고백을 받으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서은하는 조금씩 나에게 몸을 가까이하더니, 그대로 내게 입술을 부딪쳐 왔다.

어지러울 정도로 퍼져오는 장미의 향기가 내 머리를 잠식하는 것만 같다.

그녀의 어설프고도 부드러운 키스가.

내 심장을 고장 낼 것처럼 매섭게 파고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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