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58화 (59/289)

EP.58 6레벨 - 나는 사회적 약자야(12)

혜미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도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녹음되어있던 통화 내용을 재생해서 목소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박은혁씨? 박은혁씨 휴대폰 맞아요?]

[지금 레벨 몇이에요?]

[빨리 말해! 당신 지금 그대로 잡히면 죽어!]

[아, 몰라. 사실 지금 레벨은 별로 안 중요하고. 6레벨, 잡히기 전까지 무조건 6레벨을 찍어야 해. 기억해, 6레벨이야. 찍기 전이라면 무조건 도망쳐.]

음질의 차이가 심해서 묘하게 다른 느낌이긴 한데.

아무래도 직접 비교해보니까 비슷하다는 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특히 목소리의 발성이나 톤이 너무 똑같아서, 일부러 따라 한 게 아닌 이상 동일인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어라, 잠시만."

내가 경찰한테 끌려가기 직전에 다른 건물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저격총 비슷한 걸 사용하고 있었지.

정확하게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공주 헌터."

인터넷에 검색하자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 내가 기억했던 것처럼 이공주 헌터는 후열에서 저격을 하는 특성이 있었다.

심지어 사용하는 무기는 전용으로 만들어진 저격총.

디자인도 그날 내가 봤던 것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 추가로 있었다.

그 당시에 건물 화장실에서 갑자기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가 늦지 않도록 시간을 끌어줬잖아.

혹시 그게 화장실 창문을 저격해서 일부러 우리를 도와줬던 거라면?

'하지만 대체 왜?'

일단 전화를 한 것이 이공주 헌터라고 가정을 하자.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왜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 사건에 끼어든 거지?

그리고 왜 우리 팀에 들어오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 거고?

아니 그 이전에 어떻게 내 특성에 대해서 알고 있고, 심지어는 6레벨 특성이 뭔지도 예측이 가능했던 거야?

"미치겠네."

"그냥 본인한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니야?"

"너무 위험하잖아. 다른 것보다 S급 헌터한테는 내 능력이 먹히지도 않는데...."

[아, 그런데 이공주 헌터가 S급이 아니라 A급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의혹에서 알려진 제 특성 레벨이 9라는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능력의 특성상 10레벨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고, 실제로 S급 자격시험을 평균 시간 내에 큰 문제 없이 해결했습니다.]

[아,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오피셜이 나온 것 같은데요. S급 자격시험이....]

"어?"

잠시만, 이공주 헌터의 레벨이 9라고?

일반적으로 헌터의 랭크는 특성의 레벨에 비례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자신의 레벨보다 훨씬 강한 특성을 가진 이레귤러들이 이따금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 이레귤러에 가까우므로 6레벨인데도 어지간한 A급들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런 이레귤러나 특성이 없는 미각성 헌터들을 위해서 오로지 실력으로만 랭크를 산정받는 시험이 존재한다.

다만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특성의 레벨을 고려하는 시험과는 다르게, 굉장히 비싼 시험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게 되어있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내 능력은 상대의 전투력이 아니라 특성 레벨을 기준으로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공주 헌터는 S급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럼 해볼 만한데.

"솔직히 은혁이 네가 너무 조심스러운 거야. 그래도 그 사람이 널 도와준 거잖아?"

"그건 그러네."

하긴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으면 도와주지도 않았겠지.

이렇게 조건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상, 대화 정도는 나눠보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도움만 받고 입을 싹 닫겠어.

"와, 여기가.... 헉, 설이 언니."

"네?"

"아, 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이유로 이공주 헌터가 정식으로 우리 쪽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으로 결정이 났었다.

그 결과로 지금 우리 눈앞에 그녀가 와있는 것이고.

다만 그녀가 나와의 독대를 원했기에 다른 애들은 아래층에 가 있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공주씨."

"주.... 아니 박은혁씨 안녕하세요."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뭔가 묘한 말을 하자마자 아차 싶었는지 입을 틀어막고 말을 바꾸려고 했다.

설아한테 당한 게 있어서 그런가 저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네.

"저희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죠?"

"네? 에이, 무슨 소리세요. 처음이죠. 처음."

"전화."

내가 전화 이야기를 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을 했다.

어지간하면 '해줘'를 사용해서 진실을 내뱉게 할 생각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쉽잖아.

뭐 저렇게 티가 많이 나.

왠지 이런 스타일의 사람은 쿡쿡 찔러서 본심을 토해내게 만들지 않으면 성미가 차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지 강하게 반응하려나.

굳이 나를 구해주려고 했으니까 평범하게 이런 거로 갈까?

"이공주 헌터. 저 좋아해요?"

"네. 네? 아, 아니요!? 저, 전혀...."

솔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좋아하시는군요.

사실상 이러면 이 사람은 나를 구해주고 싶어서 구해준 것이 확실했다.

문제는 나를 왜 좋아하게 되었냐는 거다.

나와 그녀는 이제까지 접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이고.

아니면 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원에서 알던 동생 같은 그런 사이인가?

"...하아"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뱉으면서 종이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매를 걷어서 살점이 뜯어져 나간 듯한 흉터를 보여줬다.

대체 뭘 하는 거지?

"박은혁씨, 혹시 여성인권위원회. 줄여서 여인원이라고 불리는 단체를 아시나요?"

"...처음 들어보네요"

"이거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이공주는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펜과 종이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나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인원은 현재 세계를 암약하고 있는 단체에요. 일정 이상으로 큰 나라의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판검사, 주요 요직 등에 입김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죠."

"처음 들어보는 단체인데, 그런 강력한 힘이 있다고요?"

"그야, 자신들의 존재를 꼭꼭 숨기고 있으니까요."

분명히 나는 그녀의 정체에 관해서 물어본 것 같은데, 나오는 것은 이상한 단체에 대한 설명이었다.

심지어 그 내용은 영화 좀 그만 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제가 왜 그들을 잘 알고 있냐면, 제가 원래 그 단체에 소속되어 살아갈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주씨가요?"

"세상에는 A급이라고 등록되어있는 실질적 S급 헌터가 아주 많아요. 그리고 그녀들은 대부분 세계의 요직들에 편성되어서 이 세상을 주무르죠."

"아니, S급 헌터면 그냥 이 세계의 정점인데.... 누군가의 명령이나 따르면서 산다고요?"

"그렇게 세뇌당해서 생산되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생산?"

아니,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생산된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으니, 그녀가 내용을 더 붙여서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누군가를 모시기 위해서 길러지거든요. 그게 최대한의 기쁨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특성 레벨이 10에 도달하고, 자신이 모실 마스터와 어느 위치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지를 배정받죠."

"마스터라.... 대체 그 마스터라는 존재는 뭐죠?"

"저도 몰라요."

"네?"

아니, 본인이 그 자식들 본거지에서 살았다며.

근데 왜 그걸 몰라.

"저는 본 적이 없어요. 레벨은 10에 도달했지만, 아직 마스터를 배정받기 전이었고, 생산 시설을 지키는 전투 요원으로만 활동하다가 주인님에게 구출 받았으니까요."

"주인님은 또 누군데?"

그녀는 내가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잠시만, 레벨이 10에 도달했다고요? 지금 공주씨는 9레벨이 아니었나요?"

"저 9레벨 맞아요. 저건 '지난번'에 있었던 일이죠."

"지난번?"

머리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왜 과거에 있었던 일처럼 말할까.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던 끝에야 팍 떠오르는 소재가 있었다.

"설마 과거로 돌아오신 겁니까?"

"......."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맙소사, 그럼 이제까지 내 능력에 대한 걸 알았던 것도 미래에서 왔기 때문이고?

기껏해야 가벼운 미래 예지라고 예상했는데 이건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정확히는 회귀자라고 해야겠죠. 정신만 돌아온 거거든요."

"그럼 아까 보여주셨던 그 팔이...."

"원래라면 여기 소속을 나타내는 문신이 그려져 있어요. 문신의 위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요."

"그 문신 디자인이 이겁니까?"

아까 그녀가 꺼낸 종이를 가리키며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트 내부에 Q모양이 비어 있는 듯한 문신.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하트퀸 정도라고 생각되는 그림이었다.

"은근히 흔할 것 같은 문신이네요."

"그걸 노린 거겠죠. 다만 소속인 사람들의 문신은 저 Q의 모양과 크기가 똑같아서 가져다 대는 걸로 알 수 있어요. 심지어 마스터가 배정되면 문신에 세뇌 특성을 건다고 들었고요."

"마스터라...."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S급 헌터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걸까.

너무 규모가 커져 버린 이야기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말해드릴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역시 은혁씨한테 이런 걸 숨기긴 어렵네요."

"그냥 공주씨가 거짓말을 못 하는 거 아니에요?"

"...박은혁씨라 그래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렇게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

"저를 좋아해서 그러신다는 거죠?"

"아,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능글맞아"

아무튼 미래의 나는 그녀와 알던 사이일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아까 설아를 보고 아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가 실수였다는 듯이 모른 척했기도 했고.

다른 것보다 나를 대하는 것에 꽤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여성인권위원회가 하는 일이 뭔데요?"

"기본적으로는 아까 말한 대로 마스터들의 따까리로서 세계의 요직에 들어가서 암약하는 거고요. 그 외에는...."

그 뒤로 그녀에게서 나온 이야기들은 충격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원래는 남성이 각성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상이라는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그리고 나와 같이 이레귤러가 태어나서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감시하다가 죽인다는 것.

최종적으로는 마스터들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도록 모든 각성자를 마스터의 따까리로 만든다는 계획까지.

"아직 마지막 계획은 준비 중이지만, 그게 시행되기 시작하면 A급 이상의 헌터가 하나둘 실종되기 시작할 거예요."

"그리고 실종된 헌터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당연히 마스터를 배정받은 상태겠죠."

아이 상태에서부터 세뇌하면서 키우는 것으로 데이터를 얻고.

최종적으로는 그 데이터와 정신 간섭 특성을 사용해 평범한 헌터들까지 마스터라는 자들의 종으로 만든다.

애초에 국가에서 정신 특성의 각성자를 관리하는 대신 폐기하는 이유도, 정신 간섭 특성을 자신들만 이용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래에는 실패했어요. 결국 우리의 희망이었던 박은혁씨는 녀석들에게 당했고, 저는 설이 언니에게 모든 걸 부탁받아서 과거로 넘어온 거예요."

"설이라는 건, 설아를 말하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있던 생산 시설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 뒤로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서 헌터가 된 것이 지금의 그녀라고.

"의외로 매스컴에 안 걸리면서 신분을 만들었네요?"

"저랑 굉장히 닮은 사람이 이쯤에 죽었다더라고요. 설이 언니가 도와준 덕에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아하, 고생하셨어요. 근데 그럼 본명이 있는 거 아니에요?"

"본명이라...."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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