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51화 (52/289)

EP.51 6레벨 - 나는 사회적 약자야(5)

이제 9레벨의 벽만 넘으면 되는 거였는데.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생일날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왜 저 망할 쓰레기가 은혁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벽을 넘은 거야?

나는 아직도 넘지 못했는데.

"내가, 졌다는 거야?"

저따위 쓰레기 년한테?

나는 그래서 은혁씨에게 버려지는 거야?

그런 년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 그래. 은혁아."

"옳지. 아무튼 나는 네 주인님도 아니고, 야한 스승도 아니야. 제발 이상한 것 시키지 마."

"그럼 뭐 해줄 건데?"

"...대충 친구로 해"

"섹스 프렌드?"

내가 잠시 방심한 사이에 은혁씨는 유혜은과도 관계하게 되었다.

그걸 넘어서 주기적으로 섹스하자고 약속까지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데이트 약속조차 거절당했는데.

강렬한 두통이 머리를 깨부술 것처럼 두드린다.

그렇게 많이 인간에 관해서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저들은 은혁씨의 사랑을 저렇게나 쉽게 얻어내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은혁씨와 떡치는 모든 년들을 다 갈아버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돌아오려나?

나는 은혁씨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저렇게 사랑을 나눈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쾌감이 몰려왔다.

나도, 나도 그러고 싶어.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조교라는 말은 진심이야! 저거만 지켜줄 수 있으면 강간을 해도, 사회적으로 죽게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을게. 아니, 오히려 도울 거야."

"너 진짜 미친년이지?"

"나도 염치가 있지. 네 시간과 노력, 심지어 마력까지 쓰면서 경험치 획득까지 막을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동생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동생의 몸을 팔아넘기겠다?"

"응."

아니야.

멈춰, 제발 그러지 마.

그랬다간 은혁씨를 좋아하는 경쟁자가 하나 늘어날 뿐이잖아.

이 멍청한 년아.

하지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린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화풀이를 위해서 그녀를 죽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아직 8레벨, B급으로 분류되는 헌터였으니까.

"아, 밥 식었겠다. 다시 내올게요."

"뭐 그렇게까지...."

"그냥 데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거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결국 유혜은의 동생인 유혜미가 은혁씨의 노예라는 이름으로 은혁씨에게 달라붙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일까.

너희는 다른 남자를 찾아도 되는 거잖아.

나는 은혁씨가 아니면 안 된단 말이야.

네가 은혁씨의 노예라면 건방지게 밥 같은 걸 차려주지 말란 말이야.

말은 노예라고 하면서 역시 은혁씨를 꼬실 생각이잖아.

내 은혁씨야.

가져갈 생각하지 마.

뇌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다.

온몸에서 끔찍한 무력감이 쏟아져 내린다.

그저 머릿속으로 알고만 있었던 '절망'이라는 감정이.

나를 잠식해나간다.

"혜미야 이거 맡길게. 나 나오면 돌려줘."

"네, 무사히 돌아오세요."

"응."

결국 저 노예 때문에 은혁씨가 위험에 빠졌다.

물론 그녀가 자신을 희생해서 해결하긴 했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 때문에 은혁씨가 끌려가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었다.

짜증나는 년.

지금 다른 일정이 있어서 달려갈 수 없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은혁씨, 제발 무사하시길.

그나저나 저 뿔에 은혁씨의 마력을 봉인했다는 거지?

"아...."

은혁씨.

저 이제야 깨달아 버렸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은혁씨가 저를 바라봐줄지.

이제까지 은혁씨가 섹스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인성이 더럽거나, 은혁씨를 위협한 사람들이었어요.

아마 은혁씨는 그런 사람들을 섹스로 교정시켜주는 걸 좋아하는 거겠죠?

애초에 지금까지 착한 캐릭터를 유지하던 제가 문제였던 거죠?

은혁씨는 사람을 능력으로 차별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건 오히려 제가 멍청했던 거였네요.

"하아, 하아...."

이제야 꽉 막혀있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어낸 것 같았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이거라면 은혁씨도 나를 바라봐줄 거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자마자 온몸에서 전율이 흘러나온다.

나는 깨달음과 함께 벽을 부수며 9레벨에 도달했다.

원인을 알았으니까, 이제는 해결해야지.

"어라, 주인님. 혹시 일찍 돌아오셨.... 뭐야, 설아씨였네요. 무슨 일이에요?"

"아, 유혜미씨. 안녕하세요."

"주인님, 아니 은혁씨 보러오신 거죠? 지금 아마 검사중일텐데...."

네 주인님이 그곳에 있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지금 어떤 검사를 받는지, 이상한 짓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다 살피고 있으니까.

다행히 아직은 큰 문제가 없다.

"아뇨."

"그럼요?"

"뿔 조각 어디 있어요?"

"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은혁씨를 제외한 사람들은 저렇게 짜증 나는 표정만 하는 걸까.

은혁씨는 화가 나는 표정도, 괴로워하는 표정도, 슬퍼하는 표정도, 행복해하는 표정도, 쾌감이 빠진 표정도,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역시. 이 세상에서 은혁씨를 제외한 모든 건 전부 쓰레기다.

이제까지 내가 너무 무지해서.

그래서 쓰레기를 처먹고 살아왔던 거지.

나는 이제야 은혁씨로 인해 구원받은 거야.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자가 구원받으리라."

"자, 잠시만요. 힉!?"

준비를 꽤 많이 해야 했다.

일단 본래라면 수납되어 있어야 할 헌터용 장비들을 마술도구랑 바꿔치기하는 것으로 빼돌렸다.

아무래도 마술도구를 넣어둘 아공간의 유무가 나에게는 크게 작용했으니까.

그리고 어지간한 상황을 모두 대비해서 마술도구를 만들었다.

내 특성이라서 가능한 순간적인 최대 화력으로 유혜미를 제압한다.

죽이는 것은 불가.

이 모든 행위는 은혁씨가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다.

아직 죽인다는 모험을 하기에는 이르다.

"커헉!"

"아, 자꾸 꿈틀꿈틀 귀찮게 하네. 어떻게 사지를 다 결박해놨는데도 특성으로 깝칠 생각을 하지?"

"대체, 언제 9레벨을.... 그것보다 누구 명령을 받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보네. 나는 누구 명령을 받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야."

아, 맞아.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긴 하구나.

이 정도야 내가 설명해주는 걸로 넘어가도 괜찮으려나.

"나, 오늘 생일이거든."

"뭐?"

"이거 생일 선물로 내놔."

"하, 하하.... 그러고 싶은데 그건 내가 아니라 주인님 거라서 말이야."

음, 그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내가 말한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이 여자는 뿔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은혁씨를 내놓으라는 거야. 이 불여시 같은 새끼들아."

"뭐?"

"내 은혁씨야. 내 거야. 내가 그의 옆에 있을 거야. 절대로 너희 같은 버러지들한테 빼앗길 생각 없어. 그걸 위해서는 나도 너희들처럼 은혁씨한테 좀 찍혀야 하지 않겠어?"

겸사겸사 생일선물로 은혁씨한테 받고 싶은 것도 있고.

지금 은혁씨는 몸에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잖아?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씨앗을 받아서 아기를 가지는 것도 가능하겠지.

다른 년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었던 주인님의 아기를.

내가 가장 먼저 받아내는 거다.

그걸 위해서 마술도구로 배란 상태를 유지해놓았다.

오늘이라면 확실히 임신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늦게 출발한 셈이지만.

그래도 너희들한테 질 생각이 없어.

은혁씨 옆에 서는 건 나야.

내가 가장 먼저 은혁씨를, 은혁씨의 아이를 내 뱃속에 품어낼 거야.

지금 내가 손에 넣은 이 뿔의 조각은.

은혁씨의 마력이 가득한 이 물건은 그걸 위한 핵심 준비물이었다.

이게 오늘 나에게 주어질 생일선물이다.

"별로 걱정하지는 마. 오늘 은혁씨한테 원하던 선물을, 그의 씨앗을 내 뱃속에 받고 나면, 그 뿔을 은혁씨한테 돌려줄 거니까. 그럼 나는 너희들처럼 은혁씨한테 사랑받겠지."

"미쳤어, 너 진짜로 미쳤어!"

"아아, 분노한 은혁씨가 나를 범하고 괴롭히고.... 그의 색으로 나를 칠해줄 거야. 상상만 해도 행복해. 이제까지 무미건조했던 생일과는 차원이 다른 최고의 생일이야. 그렇지 않아?"

그나저나 자꾸 시끄럽네.

예전에는 이런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은혁씨 덕분에 나는 인간이 되었구나.

나는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에 올라오는 부드러운 짜릿함이 몸을 지배했다.

은혁씨, 다 당신 덕분이에요.

이렇게 제가 남을 죽어라 패면서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건, 이 여자를 질투해서 분노에 가득 찰 수 있는 건, 은혁씨를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는 건.

전부 은혁씨가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이에요.

"아, 정말. 세상은 쓰레기지만, 은혁씨는 너무 아름답네요."

뭐야, 출근하시네?

때리는 데 집중하느라 은혁씨가 검사를 마치고 출근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까지는 여기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은데....

"유혜은한테 문자라도 넣어야겠다."

아마 최근에 유혜미가 유혜은을 벌레처럼 취급했으니까, 그 말투를 좀 고려해서 쓰면 되겠지.

오늘은 연차를 써서 쉬고 싶다고.

나는 문자를 넣자마자 전화기를 꺼버리고는 대충 던져버렸다.

"하, 으...."

"아, 내가 그랬다고는 은혁씨가 아닌 사람에게 찌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너와 너의 언니의 변태적인 섹스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9레벨 헌터들의 위상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보고 싶다면....

한 번 해보든가.

"미친, 년...."

"물론 그런 위상이 왜 중요한지는 잘 몰라. 하지만 인간들 대부분은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

그래서 객관적으로 볼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은혁씨가 선택해줄 거라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은혁씨는 특별했지.

그런 보편적으로 보이는 가치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은 거야.

오늘이야말로 나는 은혁씨가 사랑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내 이미지에 맞는 야한 복장이면 바니걸 정도가 좋으려나?"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이런 옷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물론 은혁씨의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이제까지 은혁씨가 해왔던 일들을 생각하면 성적 취향은 일반적인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일단은 채택.

"은혁씨가 심심할 수 있으니까 마술쇼라도 준비해둘까?"

물론 이게 메인은 아니다.

다만 옷도 바니걸 복장인데, 컨셉질 정도는 제대로 해야지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야동 같은 것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거겠지.

"후후, 그리고 이 커튼 뒤에 준비한 결박 침대에 은혁씨를 결박하고...."

생일선물로 그의 아기씨를 받아낸다.

오늘 나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자리에 오른다.

내가 제일 먼저 은혁씨와 하나가 되는 거야.

"하아, 은혁씨...."

빨리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그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렇게 일에 집중해서 빠져있는 모습조차도 아름답네.

너무 사랑스러워.

매일같이 당신만을 보는데도 질리지 않아.

그렇게 편안하게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정아가 뭔가를 눈치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레벨? 지금은 6이야. 이틀 전에 올랐어."

"아, 이제 알겠네. 저 반차처리 좀 해주세요!"

"뭐? 야, 정아야!"

아, 저거 멍청한년인 줄 알았더니.

너무 대놓고 확인했었나?

내가 은혁씨나 그 주변 여자들의 레벨을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았다.

저번에 놀러 온 적이 있어서 집 주소를 알고 있을 텐데....

"뭐, 입막음하면 되는 거겠지."

띵동.

나는 우리 집 앞에 서있는 배정아의 모습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