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50화 (51/289)

EP.50 6레벨 - 나는 사회적 약자야(4)

"괴, 괴물!"

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무섭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고통이라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심해지면 죽는다는 가치만 느껴질 뿐, 그게 왜 문제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다들 고통은 무섭고 위험한 것이라고 하기에 나도 똑같이 조심할 뿐.

"사람한테 괴물이라니."

"너, 너.... 피가! 미, 미쳤어!"

"아프네. 근데 왜 나를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아직 널 고통스럽게 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네.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섭다는 감정은 고통이라는 반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나?

왜 쟤는 벌써 무서워하는 거지?

"아."

미래에 내가 줄 고통을 예상해서 그렇구나.

오늘도 지식이 늘었네.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기억해 둬야지.

사람은 고통을 아직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거라고 예상하게 되면 무서워할 수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우리 딸 잘 다녀와."

이제는 좀 익숙해지고 있다.

근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귀찮고 복잡한 반응을 하나씩 고려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일단 다들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다 보면 느낄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는 걸까.

"너, 괴롭힘당하는 거 아니야?"

"괴롭힘?"

그건 또 뭘까.

내가 반응이 미묘하니까 자꾸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말하는 건가?

옷에 벌레를 집어넣는다던가, 책상에 낙서가 되어있다던가, 물이 뿌려지는 거?

되게 즐거워 보이길래 즐거운 일인 줄 알았는데 틀렸나 보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꺄악! 넣지 마! 히익!"

"음, 역시 별 느낌이 없네. 이게 재미있어?"

"흡, 흐아앙!"

쟤는 왜 몸에 벌레 좀 들어갔다고 우는 거지?

그냥 잡아서 죽이면 되는 건데.

그나저나 재미있다는 건 뭘까.

궁금증을 채우고 나면 좀 허한 감각이 줄어들곤 하는데, 그게 재미있다는 감각인가?

최근에는 또래 아이들이 즐기곤 한다는 자위라는 걸 따라 해 봤지만 별 느낌이 없었다.

이건 또 왜 하는 거지?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네.

"밥 먹는 건 즐거워. 맛있는 걸 먹는 건 즐거워."

그렇게 배웠으니까.

나는 그렇게 반응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의 반응이니까.

"각성이요?"

"그래....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게 정석인데. 대학 점수도 높은데, 아깝지는 않니?"

"별로."

나는 평범해지려고 했다.

그편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알아내기 쉬우니까.

신기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허한 무언가가 조금이나마 채워졌으니까.

그래서 평범한 사람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되게 귀찮은 짓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상이 되었다고 생각한 엄마가 펑펑 울 정도였으니까, 성공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엄마의 눈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운다는 건 고통의 결과물이다.

나 때문에 운다는 것은 나로 인해 고통스럽거나, 내 고통에 동조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분명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왜 우는 걸까.

"참, 어렵네."

너무 행복하기에 나오는 눈물도 있다고 한다.

수능 시험처럼 좀 쉽게 만들어져 있다면 좋을 텐데.

왜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나 어렵게 되어있는 것이 많을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시원하다.

시원하다는 건 어떤 감각이지?

목욕하면 시원하다는데 그 시원한 거랑 같은 건가?

아직도 나는 멀었나 보다.

"야, 너 좀 컨트롤이 좋다고 싸가지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아직 레벨도 그리 높지 않으면서."

"그래? 음....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

"어? 어.... 그래."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사과를 해야지 상대가 멈춰주는 거였지.

예전에는 저럴 때 뭘 원하는지 잘 몰라서 똑같이 해줬는데, 그러면 왠지 나를 무서워하면서 괴물이라고 하더라.

그럼 그게 사람다운 반응이 아니었다는 거겠지.

이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 같은 곳으로 발령된 동기가 너구나. 내 이름은 배정아야."

"아, 헤헤. 나는 묘설아라고 해."

그리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이 되었을 때는 괜찮은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평소에 실실거리고, 상대의 행동에 항상 밝게 반응해주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과 친해져서 상대를 공부하고 싶었던 나에게 있어서 가장 괜찮은 캐릭터였다.

"아얏!"

저 애는 나를 바닥에 만든 얼음으로 미끄러트리는 걸 좋아한다.

물론 너무 허접스럽게 깔아서 항상 눈치채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걸려주는 편이 적당하겠지.

넘어진다고 딱히 잃을 것도 없으니까.

"야, 선배가 우스워?"

"죄,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면 헌터 생활 끝나냐고."

얘는 이름이 여유림이었나.

전형적인 후배 갈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아카데미의 후배 갈구기만 보다가 헌터 생활에서 갈구기를 당하는 건 꽤 신선했다.

오랜만에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요즘 들어서 공허한 느낌은 계속되는데, 인간에 대해서 자세히 알수록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려웠다.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야 하나?

"여유림, 너는 후배가 들어오자마자 지랄이냐?"

"아, 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꺼져라."

"아니, 좀 아껴주라는 거지. 그래도 같은 팀원인데."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던전 정보나 제대로 정리해서 내놔."

이 팀의 매니저를 맡은 박은혁이란 남성이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한테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 말은 그에게서 채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거겠지.

그래, 맨 처음에는 그저 그런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그래도 매니저님은 우리를 생각해서...."

"야, 무슨 선생님이냐? 가르치고 앉았네. 그런 이야기만 할 거면 꺼져. 나 혼자 쉬게."

"응? 으응."

그리고 내가 그와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각성했다는 것을 깨달은 뒤였다.

왠지 허공에서 무언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몰래 정아와 그가 하는 행위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각성자인 남성이라니.

정말 발견하기 어려운 인간의 유형이었다.

그에게 인간을 배운다면 얼마나 많은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기대'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워낙 연기에 심취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넘어가 버린 것이다.

"어...."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괴롭힌 배정아를 단죄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감각.

"나, 나...?"

평생 알지 못할 거라고 포기하고 있었다.

애초에 기대라는 것을 모르기에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나에게 주어진 것이 비워진 것을 채우는 것이기에, 그것을 채우려고만 했었다.

그런데 그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은 대체 무엇일까.

왜 평소랑 똑같을 심장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지?

왜? 이게 뭐야? 모르겠어. 무서워.

"무서워?"

무섭다니.

내가 무서워했다고?

내가? 내가? 지금 내가 무서워했다는 거야?

이런 건 이상하잖아.

왜 저 남자를 보고 있기만 해도 몸이 두근거리는 거야?

나는 그날 이후로 시간이 된다면 최대한 박은혁을 따라다니며 행동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사람을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깟 충족감이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

박은혁을 공부한다면 충족감을 넘어서 진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

"조, 좋아해요!"

이상한 기분이다.

박은혁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한 배정아가 저렇게 말하면서 박은혁에게 구애하는 것이.

왠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기분이 나빠진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아, 이게 질투구나.'

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전율이 샘솟는 것만 같았다.

이제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이 하나씩 '이해'되어버린다.

나는 박은혁을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그를 노리는 배정아한테 질투를 하고 있구나.

내가 질투를 하고 있어.

질투라니.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남자는 저렇게 잠자리 가지는 걸 좋아한다니까, 방금 이야기 나온 것처럼 오나홀처럼 쓰는 거겠지.

그런 거로 생각하면 그다지 그 감정이 심해지지 않았다.

"여긴 뭐가 맛있어요? 추천받아도 되죠?"

"저는 B세트를 좋아하는데, D도 꽤 호평이에요."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음식의 맛으로 인한 즐거움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헌터면 이 정도 음식점은 와야 한다고 해서 왔던 것이 전부였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본 거였지.

'그나저나, 요즘 은혁씨가 레벨이 많이 오른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특성으로 살펴봤더니 다이아4가 나왔다.

금색 눈에 4레벨이라는 뜻이었다.

역시 은혁씨는 특성 성장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네.

"아, 드세요."

"그래야죠."

그저 그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솔직히 입에 음식이 들어간다고 별 느낌이 다르진 않았다.

다만 그의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붕 뜬 것처럼 행복감이 몰려오기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게 사랑이구나.

이게 쾌감이구나.

아, 이래서 사람들은 쾌감에 미쳐있는 거구나.

이게 이렇게나 짜릿한 거구나.

이제야 이해하고 만다.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행동들을 하나씩 이해해버린다.

그야, 이렇게나 기분 좋은걸.

"아, 수고하셨어요. 혹시 오늘 시간 있으세요?"

"죄송해요. 오늘 선약이 있어서요. 어쩌다 보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중지하고 온 거거든요."

거절당했어. 거절당했어. 거절당했어. 거절당했어. 거절당했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정아때는 나를 선택해서 데이트를 해줬잖아.

이번엔 누구길래 나를 버리는 거야? 나는 알아야겠어.

"아하, 그럼 나중에 다시 물어볼게요. 어, 잠시만요."

그의 등에 특성을 부착한다.

평소에도 그에게 자주 부착하는 녀석이었다.

그게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그 근처의 상황을 완벽하게 지켜볼 수 있는 마술도구였다.

"달링!"

"아, 다 끝났어. 가자."

아, 민아영이었구나.

그래, 저년도 레벨이 8이었지.

하지만 은혁씨 괜찮아요.

제가 금방 레벨을 9로 만들어서 나를 바라보게 할게요.

A급 헌터가 되면 저깟 B급 헌터는 눈에 차지도 않겠죠?

아무리 떡치면서 정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A급 헌터가 고백하는데 B급 따위가 눈에 차겠어?

심지어 민아영은 은혁씨를 괴롭히던 쓰레기잖아.

그에 비하면 나는 은혁씨가 싫어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없지?

이건 내가 무조건 유리해.

"갑자기 뭐야? 설마 벽을 깼어?"

민아영이 9레벨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그 장면을 목도하는 순간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 부러움, 고통, 절망감, 이런 상황에도 은혁씨가 내 눈에 보이기에 밀려오는 쾌감까지.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폭주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던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가며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은혁씨를 사랑하는 감정이.

그에게 다가가는 여자들을 질투하게 되는 감정이.

머릿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래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구나."

나는 그날, 인간의 감정을 하나 더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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