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47화 (48/289)

EP.47 6레벨 - 나는 사회적 약자야(1)

"지금 주인님이 몇 레벨인데요?"

"5레벨."

"5레벨인데 9레벨인 저한테 능력이 먹히는 거였어요?"

"좀 신기하더라."

하위 특성의 등급에 따라서 레벨의 수준을 뛰어넘게 해주는 경우야 자주 있긴 한데, 내 특성은 그 수준이 좀 심한 편이니까.

최근에는 F급이라는 등급이 S급보다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경험치는 최대네. 이거 벽에 걸린 거야."

"...벽이라"

어제 잘 때 확인했을 때는 경험치가 꽤 부족했었는데, 아침에 확인하니까 이렇게 되어있었다.

경험치가 이런 건 혜미가 아침부터 혜은이가 질질 짜는 걸 보면서 절정한 것 때문이겠지.

그거 회상하면서 황홀한 표정 짓는 게 레전드였는데.

"일단 피해야겠다. 아영아, 나 화장실 갔다고 해. 옥상에 숨어있게."

"주인님, 저도 같이 갈게요."

"괜찮겠어?"

"위험하면 무력 행사라도 해야 하는데, 주인님보단 제가 더 강하잖아요."

그건 그렇네.

내 능력은 전부 정신조작이라서 이런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차하면 정신조작을 걸어서 회피하자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마 아무런 대비도 없이 오지는 않겠지.'

상대도 내가 정신조작을 걸 수 있다는 상황을 예상하고 오는 거니까.

최소한 10레벨 헌터를 준비했거나, 뭔가 정신조작을 막을 수 있는 준비를 해서 올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방금 이상한 전화에서도 6레벨이 아니면 위험하다고 했었고.

"일이 이렇게 꼬인 건 저 때문이죠...?"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한데, 결국 조심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건 사실이었다.

혜은이가 그런 반응을 했다면 이상한 걸 감지하고 더 빨리 쫓아갔어야 했는데.

그리고 솔직히 혜미는 본래 해야 할 일을 한 거고.

'내가 범죄자인 건 사실이니까.'

내가 각성했는데 신고하지 않기를 했냐.

아니면 능력을 악용해서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를 했냐?

그것도 아니면 입막음을 시키겠다고 성적인 괴롭힘을 시작했어?

전부 다 했네.

누가 봐도 범죄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저지른 일이 많았다.

물론 억울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내가 각성한 능력이 정신조작인 건 내가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그냥 남성 각성자면 솔직하게 신고하고 행복회로를 굴릴 수라도 있지, 정신조작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나쁜 결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정신조작 능력은 각성 박탈 수술 대상이니까.'

각성 박탈 수술은 여성 기준으로 마력이 있는 가슴 부를 완전히 도려내는 것으로 실시된다.

그럼 마력이 자지에 모이는 남성은...?

솔직히 상상하기도 싫다.

"벽만 넘으면 되는데.... 아니 나는 무슨 5레벨에서 벽에 걸리냐고."

5레벨뿐만 아니라 기존에도 벽에 걸린 적이 자주 있었다.

물론 5레벨에서 벽에 걸리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앞에서 그렇게 걸렸으면 이번엔 좀 그냥 넘어가주지....

"주인님, 제 특성은 계약인 거 아시죠? 코스트를 소모해서 계약하는 식으로 새로운 정령과 관계를 맺거나, 정령을 강하게 하거나, 특성 레벨을 올리는 거."

"응, 혜은이한테 들었던 것 같아."

"저 세 가지 성장은 다 따로 계약을 맺는 방식이에요. 경험치야 정령과 함께하면 오르지만, 계약을 통해 대가를 줘야만 벽을 넘을 수 있죠."

다르게 말하면.

그녀의 계약은 벽을 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너, 설마...."

"제가 저지른 일이잖아요. 제가 해결하게 해주세요. 물론 이 계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억은 제 레벨에 비례하긴 하지만...."

"그럼 지금 네가 10레벨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차라리 그럼...."

"저는 레벨이 올라도 당장 강해질 수 없어요. 올려도 지금은 A급 그대로예요. 그래서는 주인님을 지키기에는 너무 모자라죠."

"그 전화가 믿을만한 것도 아니잖아. 너무 그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게...."

혜미는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은 충분히 믿을만한 것이라면서, 주인님은 그 목소리를 꼭 기억하라고 했다.

그 목소리를 믿지 못한다면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다.

"그냥 저는 좀 미루는 것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처럼 언제 10레벨에 도달할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냥 시간만 있으면 되니까. 그 시간을 주인님을 위해 조금만 쓰게 해주세요."

"혜미야...."

옥상의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거겠지.

"나의 이름은 유혜미, 특성 시스템에 계약을 청한다."

혜미의 뿔에서 아지랑이처럼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질적으로 흩날리더니, 기도하듯 맞잡은 손에서 녹색 빛이 터져 나온다.

"삼라만상의 이치가 무너진 이형의 기억, 그 기억을 대가로 나는 특성 레벨의 상승을 원한다."

혜미의 왼쪽 뿔 끝에 강렬한 빛이 나타났고, 그녀는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힘껏 손을 꺾어서 부러트렸다.

빠직!

그녀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부러진 뿔을 나에게 내밀며 기쁜 듯이 웃었다.

"애초에, 저는 주인님의 물건이잖아요.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 애초부터 전부 주인님의 것이죠."

"혜미야...."

"자, 빨리요. 쥐고 레벨업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투명한 뿔의 조각.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빛은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내가 그 뿔 조각을 쥐자마자 무언가에 감싸여지는 듯한 따스함이 느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부에 있던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특성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정말로 레벨이 올랐다.

혜미 쪽을 살펴봤더니, 그녀는 두통이 심한지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방금 너무 과도하게 많은 기억을 사용해서 저러는 건가?

"괜찮아?"

"레벨은요?"

"올랐어. 지금 하위 특성 확인할게."

혜미가 그 통화 속 인물의 말을 믿으라고 했으니까, 아마 이 하위 특성에 해결 가능성이 있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6레벨이 되면서 경찰들한테 최면을 걸 만큼 충분히 강해졌거나.

[나는 사회적 약자야(F)

시전자가 각성한 사실이나 마력의 유무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마력을 완벽하게 숨긴다.]

'진짜네.'

만약 이게 각성 검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수준으로 강력한 특성이라면.....

그냥 마음 편하게 경찰을 따라서 출석해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내가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옥상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음, 바로 위가 옥상이라고 해서 여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 얼마 남았어?"

"아직 넉넉합니다."

"그럼 일단 여기부터 수색을...."

쾅!

나와 혜미가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 어딘가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는 화장실 쪽일 텐데?

"화장실인 것 같습니다!"

"내가 화장실 가볼 테니까, 너희는 CCTV 확인해 봐."

경찰이 모두 옥상을 빠져나간 이후에야 숨을 편하게 내뱉었다.

하마터면 벌써 걸릴 뻔했네.

틈이 생긴 사이에 특성을 확인해야 했다.

"뭐야, 지정?"

특성의 사용범위가 나 자신일 텐데, 왠지 특정 사물을 선택해야만 발동할 수 있었다.

대상 지정이 사람은 고를 수가 없고, 하나의 물건만 고를 수 있는 방식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잃어버리지 않을 만한 물건에다가 해볼까?

나는 소중하게 쥐고 있던 혜미의 뿔 조각을 대상으로 지정하고 특성을 발동했다.

"윽...!"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운 감각과 함께 온몸에서 힘이 확 빠졌다.

쥐고 있는 뿔 조각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이, 왠지 방금 사용한 특성을 취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설마, 이거 지정한 물체에 마력을 봉인하는 방식이야?

"그건 그렇고.... 성공한 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각성자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면....

아, 눈동자부터 봐야겠다.

나는 끼고 있던 갈색 컬러렌즈를 빼버리고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서 눈을 확인했다.

'갈색이네.'

각성한 이후부터 눈동자는 항상 반짝이는 금색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 특성을 사용하자마자 갈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력뿐만 아니라 각성자로 의심될만한 부분은 다 숨겨지는 모양이었다.

"박은혁씨. 여기 계신 거 다 압니다. 내려오세요."

"칫...."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는데.

벌써 CCTV를 확인해서 들켜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이 뿔 조각에 마력이 봉인된 거라면, 직접 들고 가는 건 위험한 행위였다.

"혜미야 이거 맡길게. 나 나오면 돌려줘."

"네, 무사히 돌아오세요."

"응."

뿔 조각이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엄청난 무력감이 몸을 짓눌렀다.

항상 사용할 수 있었던 특성에 대한 감각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증발한다.

심지어는 특성창 조차 열리지 않았다.

'장난 아니네.'

효과 하나는 끝내주는 특성이었다.

말 그대로 일반인이 되어서 각성 사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이거라면 정말 들키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아, 거기 계셨군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좀 피곤해서 낮잠 좀 자고 있었는데요."

"출근하자마자 낮잠이라.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원래 매니저는 할 일만 다 하면 그래도 괜찮은 직업이라서요. 이쪽 일 잘 모르시나 봐요?"

"네, 뭐. 저야 맨날 신고 전화나 받는 신세니까요. 박은혁씨, 당신을 각성 범죄 및 각성 미신고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영장도 물론 있습니다."

"남자 각성자라니, 그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그게 영장이 나와요?"

내 말을 들은 경찰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놓아줄 생각은 없는지, 수갑을 꺼내 들었다.

"나오더라고요. 여자 각성자가 남자로 둔갑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협조해주세요."

"억울하지만, 해결하려면 같이 가는 수밖에 없나 보네요."

"네, 대신 무죄로 밝혀지시면 보상금이 꽤 짭짤하실 겁니다."

"그건 좋네요."

그 돈으로 우리 애들 장난감이라도 사줘야지.

안 그래도 저번에 놀아주지도 못하고 와서 다들 삐져있을 테니까.

원래 그럴 때는 물량 공세로 풀어줄 필요가 있다.

"윽!?"

"죄송합니다. 박은혁씨는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셔서, 검사가 끝날 때까지는 수면 상태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미리 말을 좀 하고...."

"혹시 반항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내 목덜미에 꽂힌 익숙한 주사기의 감촉.

아마도 이건 각성자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수면제겠지.

그럼 이 인간들은 내 정신조작 특성을 막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 방법이 모두에게 유효하지는 않으니까 나를 재워서 데려가는 거겠지.

정말로 레벨업을 하지 못했다면 위험할 뻔했다는 소리기도 하다.

대체 그 전화를 한 사람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었던 거야?

'와, 그나저나 약 존나 독하네.'

약효가 얼마나 빨리 퍼지는지 벌써 잠이 쏟아졌다.

아니면 내가 지금 일반인인 상태라서 그런가?

아무튼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어라?'

비틀거리면서 경찰한테 이송되는 와중에, 왠지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 하나를 확인했다.

건물에 고정되어있는 저격용 총처럼 생긴 물건과 그 옆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온다.

근데 저 사람, 왠지 여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아..."

나는 그 누군가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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