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5레벨 - 나 머리가 띵했어(18)
"야, 이거 뭐냐?"
"또 뭐요?"
남자는 자신의 상사인 여자가 자신의 머리통을 갈기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 인간은 또 무슨 일로 자신을 갈구려고 이렇게 각을 재는 거야?
진짜 저 인간이 헌터만 아니었어도 미투 갈겼을 텐데.
남자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틀어준 녹음 파일을 들어봤다.
「미신고 각성 범죄자를 신고하려고요. 이름은 박은혁, 아유팀의 매니저입니다. 능력 계열은 정신조작으로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접수.... 어라? 이분은 남자분이신데? 신상 정보를 잘못 주신 것 같아요?」
「저는 유채린팀 소속의 A급 헌터 유혜미입니다. 신상정보는 맞고, 각성자가 남....」
"이 녹음이 왜요? 마지막에 장난 전화라고 해서 넘긴 건데."
「죄송, 합니다. 장, 장난.... 장난 전화였어요.」
봐요.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는 자신이 대응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굉장히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너, 진짜 빡대가리냐? 분명히 정신조작계열이라고 말을 했고, 마지막에 좀 어눌하게 장난전화라고 했잖아. 당연히 전화 도중에 정신조작에 걸렸을 가능성부터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일리가 있어.
확실히 여자의 말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럼 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범죄 사건의 신고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확실히, 저도 상대가 여성이었으면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남자잖아요?"
"너는 너무 생각이 짧아. 정신조작계열이었으면 당장 나라도 다른 사람으로 숨겠다. 그때 가장 유리한 성별이 뭐야?"
"아! 검사를 받지 않는 남성이네요?"
"너, 진짜.... 강력계에 어떻게 올라왔냐?"
뭐, 어차피 말이 강력계지 전화 셔틀이잖아요.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대답했지만, 여자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서류 하나를 던져주면서 말했다.
"가서 검사 시행해. 체포영장은 발급해놨어."
"이게 이렇게 잘 나오는 거였어요!?"
"원래 정신조작쪽은 피해가 클 수 있어서 어지간하면 바로 나와. 대신 아닐 때 보상을 후하게 해주고."
아무래도 요즘에는 정신조작 관련한 범죄는 잘 없지만, 예전에 좀 심할 때 대책이 다 마련되었거든.
평소와는 다르게 제대로 설명해주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오늘따라 그녀가 제대로 된 선배 같다고 생각을 하며 감탄했다.
맨날 갈구기만 하는 인성 파탄자인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형사긴 했구나.
"저, 근데. 지금 가라는 건 아니죠?"
"내일 가. 집에 있는 건 진짜 본인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신고자가 유혜미지?"
"네."
"유혜미도 지금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걸 보면 직장이 수상해. 내일 둘이 출근하면 그때 기습해서 체포해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약병 하나도 같이 건넸다.
남자는 물건을 받으면서도, 처음 보는 병 디자인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뭔데요?"
"10레벨 정화 인첸트가 걸린 거야. 일단 상대가 9레벨인 유혜미를 정신조작으로 제압했다고 가정한다면, 10레벨 정화 정도가 아니면 막을 수 없거든. 마시면 대충 30분 정도는 가니까, 그 안에 각성자용 수면제 투입해서 끌고 와."
"10레벨 정화 물약!?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딱 하나 가지고 있던 거야. 성녀 서은하 작품인데, 주기적으로 나라에 공급하는 물량에서 보급받은 거지."
"와 서은하가 만든 물약이면 부르는 게 값일 텐데."
"그만큼 이번 일이 책임이 막중하단 소리기도 해."
남자는 듣다 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막중하고 중요한 임무를 자신한테 맡기는 것일까.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다면 본인이 실적을 올리면....
"하라면 하는 거지, 뭐 그렇게 쫑알쫑알 말이 많아? 진짜로 내가 해줘? 이거 만약 진짜 건수고, 네가 성공하면 바로 특진인 거 몰라? 내가 밀어붙인 거라 만약 진짜가 아니어도 너한테는 별로 문제 될 거 없잖아."
"아니,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거죠. 이걸 왜 직접 안하시고...."
"내 셔틀이 직급이 너무 낮아서 써먹기 힘들어서 그런다. 됐냐?"
"...알았어요. 할게요. 아, 한다니까! 가져가지 마세요!"
"하아, 제대로 해라. 어차피 난 그거 한다고 직급 오르지도 않아서 주는 거야. 물론 가장 좋은 건 정말 네 생각이 맞아서, 장난 전화였다는 결말이겠지."
"하긴, 그렇죠.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 내일 아침에 바로 준비해서 가라! 내일 내가 휴일이라 커버 못 쳐줘!"
"아, 압니다. 알아요!"
여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우면서 짜증을 내뱉었다.
능력도 없는 남자들을 상대하는 건 역시 힘이 든다니까.
'하아, 진짜 아니겠지?'
정말 자신이 말한 대로 여성 각성자가 남자로 숨었든가, 아니면 그냥 멍청한 저 녀석의 말대로 장난 전화가 맞든가.
그런 평범한 상황이면 좋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정황이 묘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예, 마스터.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오늘은 힘들 것 같습니다."
원래라면 보고가 아니라 오늘 바로 달려갔어야 했는데.
여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오늘부터 마스터를 만났어야 했던 일정을 내일로 미뤄야 한다는 사실이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일은 건수가 너무 커서 가볍게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남성 각성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확정은 아닙니다. 아직 장난 전화일 가능성이나 여성이 위장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진 못했습니다."
그녀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둔부를 부드럽게 쓸어넘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면서 하는 행위라기에는 너무나 추잡한 짓거리였다.
"네, 결론이 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번 일 마무리 되면 바로 가야죠. 아, 마스터도 참♡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으흣♡ 네에♡"
그녀는 교태를 부리면서 전화를 끊고는 축축해진 팬티 속으로 손가락을 삽입하고 자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찌걱! 찌걱!
음탕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고, 그녀의 표정이 점점 무언가를 굉장히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아, 마스터♡ 아흣♡"
여자는 옷이 방해되었는지 한 꺼풀씩 벗어던지더니,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서 침대를 뒹굴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가슴을 매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질내를 열심히 쑤시며 자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가 원하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아, 아.... 역시 마스터의 것이 아니면...."
그녀는 결국은 자위를 포기하고, 손에 묻어있던 자신의 애액을 빨아먹으며 침대에 편히 누웠다.
내일 아침에 그 남자의 마력 검사 결과만 확인하는 거야.
그다음에는 바로 마스터의 곁으로 달려가야지.
"마스터...."
여자는 통화했던 상대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배, 아니 자궁에서는 안쪽에 Q라는 글자가 적힌 하트 문신이 불길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F F F
"잘 먹었습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제대로 된 아침을 먹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주인님은 대체 뭘 드시고 사신 거예요."
"아침에 라면 하나면 든든하지. 그것도 아니면 3분 카레 정도?"
"진짜 다행이네...."
"뭐가?"
"제가 여기서 지내는 거, 잘 생각한 것 같아요."
"그 말은 마치 내가 이제까지 잘 못 지낸 것 같잖아...."
혜미는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확답할 정도로 내 삶이 형편없는 거였나?
"애초에 월급도 적은 편 아니시지 않아요? 그건 다 어디다 쓰시고...."
"취미생활에?"
"어딘데요."
"...대부분 고아원에 기증하고 있어"
"......."
진짜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나라도 그렇게 변태처럼 굴던 놈이 그런 취미가 있다고 하면 신기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항상 혜은이가 신기해.
"훗, 진짜 많이 착각하고 있었나 봐요.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네요. 언니에 대한 것도, 주인님에 대한 것도."
"모르는 게 당연한 것 아니야?"
"아뇨. 저는 알고 있었어야만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신고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신고? 무슨 신고?"
저번에 각성자 범죄자로 신고하려고 했던 그거 말하는 건가?
진짜 그때는 식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아, 아니에요. 그거 맞아요."
"준비나 하고 있어, 나도 빨리 씻고 나올게."
"제가 씻겨드릴까요?"
"아니, 그럼 아마 지각할 것 같아서."
쟤랑 같이 욕실에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한 발 더 뺄 가능성이 컸다.
슬슬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럴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 그게 아니라 정령으로 씻겨드리냐는 뜻이었어요."
"아?"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말이 나온 김에 부탁했더니, 거의 1분 만에 샤워부터 탈수까지 완료 당했다.
심지어 평소보다 깨끗하게 씻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러면 평소에 내가 해왔던 건...?"
"저도 평소엔 평범하게 물로 샤워해요. 아무래도 운디네도 여성체라 그런지 여성 몸을 그렇게 뽀득뽀득 만지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물론 운디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건 다 도와주지만요."
"남자는 좋아해?"
"잘생긴 사람은 좋아해요."
"...그래?"
마치 나는 잘생겼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칭찬이니까 감사히 받아야 하나?
"뭔가 기분이 이상해."
"뭐가요?"
아니, 너한테는 주인을 챙기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뭔가 지금 신혼집에서 부인이랑 같이 출근 준비하는 기분이라서 묘해.
애초에 자기 옷은 정령술로 다 알아서 입으면서, 내 옷은 왜 단추 하나까지 직접 채워주는 거야?
"그래서 싫어요?"
"아니, 좋아."
"그런데 뭘 그렇게 이상한 반응을 하세요?"
이게 진짜로 '봉사'를 받는다는 거구나.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봉사는 대체?
"아, 달링 어서 와. 어라, 옆에 그분은?"
"아, 아영아. 유채린 팀의 유혜미 헌터. 이틀 전부터 아래층에서 지내는 거 알지?"
"그건 알지. 왜 그렇게 딱 붙어서 오는 건지, 심지어 왜 같이 출근했는지 묻는 게 아닐까?"
목소리에 조금 뼈가 담겨 있는데.
음, 역시 아래층에 혜미를 내려놓고 왔어야 했나?
아무래도 혜은이랑 둘이 남겨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 데리고 왔는데.
"저희 동거하거든요."
"야, 야! 그걸 말하면...!"
"호오?"
아영이가 웃는 얼굴로 내 옷을 잡아당겼다.
거기서 그걸 직구로 꼽아버리면 내가 상황 해명을 해야 하잖아.
"이상하다. 내가 같이 동거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거부하던 달링이, 저번 주까지만 해도 친하지 않던 유혜미 헌터님이랑 동거를 하는 사이가 되었구나."
"아하하, 아영아. 오해야. 좀 일이 있어서, 잠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후우, 오늘 아침부터 주인님이 주신 정액이 뱃속에 가득해서.... 아직도 따뜻해요."
구라 치지 마.
아까 운디네한테 부탁해서 다 긁어냈잖아.
"달링, 오늘 퇴근하고 우리 집으로 가서 해명해."
"아니 그게...."
"내가 모르는 사람은 미리 소개하랬지."
"유혜미 헌터는 아는 사람이잖아...."
"몰라, 아무튼 모르니까 해명해."
미치겠군.
나는 이쪽을 보면서 왠지 즐기는 듯한 사건의 원흉을 노려봤다.
이거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저런 거 아니야?
이러다 언니 말고 나까지 괴롭히는 게 아닐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밖이 너무 소란스러운데?"
혜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창문을 살짝 열어서 상황을 살펴봤다.
그런데 그녀가 왠지 심각한 표정이길래 나도 그쪽을 확인하려다가 저지당했다.
"왜?"
"경찰이에요. 정확히는 각성 범죄 단속국"
"...설마 저번에 신고 때문에?"
"장난 전화라고 말했어도, 워낙 내용이 의심스러워서 그런가 봐요."
이건 좀 위험한 상황이었다.
잡으러 온 사람들 전원한테 특성이라도 걸어서 상황을 모면해야 하나?
하지만 그걸 대비하려고 S급 헌터라도 데리고 왔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달링, 전화 왔어."
"...이 타이밍에?"
[발신번호 표시제한]
이런 상황에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니.
진짜 너무 수상한데.
이걸 받아봐야 하는 건가?
"야, 혜미 너 뭐 하는 거야!"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고민하던 사이, 혜미가 전화를 받아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연결되자 휴대폰에서는 한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은혁씨? 박은혁씨 휴대폰 맞아요?"
"그, 그런데요?"
"지금 레벨 몇이에요?"
"당신 누구야. 누군데 그런 소리를...!"
"빨리 말해! 당신 지금 그대로 잡히면 죽어!"
확실히 지금 상황이 시급한 것은 맞았다.
근데 그거랑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내 레벨을 물어보는 건....
애초에 내가 지금 경찰에 잡히기 직전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아, 몰라. 사실 지금 레벨은 별로 안 중요하고. 6레벨, 잡히기 전까지 무조건 6레벨을 찍어야 해. 기억해, 6레벨이야. 찍기 전이라면 무조건 도망쳐."
그녀가 거기까지 말하자마자 전화가 끊어졌다.
이게 뭐지?
내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