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39화 (40/289)

EP.39 5레벨 - 나 머리가 띵했어(11)

색색거리며 곤히 잠들어 있는 유혜미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내 옆에 서서 멋쩍어하고 있는 혜은이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유혜미가 이상하기는 했다.

모유를 몸에 다 뒤집어써서 다 젖은 상태로 편의점을 가겠다니, 아무리 당황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고는 쳐도 굉장히 이상한 반응이었지.

심지어 언니가 이상하다고 말은 하면서, 혜은이가 아니라 나를 무서운 눈빛으로 째려봤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유혜미가 나를 '각성 범죄'로 신고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는 그녀 앞에서 특성을 사용한 적이 없거든.

그렇다고 그녀가 특성을 판별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나와 유혜미는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아하하...."

그리고 가장 이상한 것은 이 일련의 사태를 예상하고 몰래 쫓아가라며 마력 회복제까지 주사해준 혜은이의 행동이었다.

유혜미가 집을 나서자마자 굉장히 당황하더니, 내가 유혜미를 따라가야 한다고 부추기던 혜은이의 행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런 행동을 할 리가 만무했다.

"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야. 한 1년 정도 된 것 같은데."

"1년 전? 그때면 유혜미가 유채린 팀에 들어간 직후네?"

"어, 악몽을 꾸더라고. 언니가 강간당하는 꿈이라면서...."

"미래 예지?"

"비슷한 것 같아. 사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확신을 하고 강간범을 기다리기 시작했지. 솔직히 좀 흥분되잖아."

"미친년아!"

그게 혜은이가 강간범을 기다리게 된 주원인이었어?

아니 일반적으로 강간당한다는 미래를 보면 피하려고 하지 않아?

"원래 강간 자체는 동경하고 있었어. 근데 이 병신같은 세상에서 A급 헌터를 강간해줄 남자가 어디 있냐?"

"하긴...."

요즘 뉴스만 봐도 가슴이 큰 여성은 범죄의 대상으로 잘 선택되지 않는다는 말이 많다.

그나마 크레이지 싸이코 레즈라고 불리는 여성 강간마들이 존재하기는 하니까 조심하라는 말은 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은 길거리 강간보다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괜히 길거리 범죄를 저질렀다가 각성 범죄자로 낙인찍히느니, 후배를 괴롭히다가 미투 당한 헌터로 남는 것이 나으니까.

원래 범죄의 방향은 자신한테 법리적 해석이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그래서 정확히는 어떤 느낌이야?"

"다른 미래 예언 능력처럼 정보가 많은 건 아니야. 걔 말로는 이 세상이 소설이라더라."

"소설이라. 그런 형태의 예언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하여튼 그 소설 속 내용에서 내가 혜은이를 강간했다는 거지?

확실히 사실이긴 한데 억울하네.

그 파트만 보면 진지하게 강간을 하는 내 모습이 있기는 한데, 혜은이는 내가 강간해주길 원했단 말이야.

"정보가 단편적인가 보네. 진짜 억울하다."

다른 애들을 강간했다는 죄목이면 억울하지도 않지.

하필이면 혜은이?

진짜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냥 얘가 꿈을 꾸나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 머리핀을 제작해서 차자마자 혜미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게 떠오르더라고."

"아, 그 머리핀도 1년 전쯤에 달기 시작했어?"

"응, 애가 무슨 못 볼걸 본 것처럼 놀랐거든."

"대체 왜?"

"나중에 추궁했더니, 이 머리핀이 그 소설 삽화에 그려져 있었나 봐. 그래서 내가 그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라고 확신한 것 같더라."

"내가 남주인공이고?"

"그렇지?"

예언서가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강간하는 야한 소설이었나 보네.

그런 미래를 예언했으니까 나를 그렇게 범죄자 취급하듯이 쳐다봤구나.

심지어 내가 각성했다는 사실도 예언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신고를 넣으려고 한 거고?

"잠시만, 그럼 이제까지 날 신고하지 않았던 건...."

"널 의심하긴 했어. 확신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오늘 그 미쳐버린 착유 현장을 보고 확신했구나.

저 강간범이 자기 언니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이제야 좀 풀리네."

"후, 그래서 난 너와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운명의 강간범이냐?"

"그렇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혜은이 얘는 또라이가 분명했다.

그나저나 유혜미는 언니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던데.

"너 대체 혜미한테는 이런 사람인 걸 어떻게 숨긴 거냐?"

"운이 좀 좋았다고 해야하나.... 처음에는 딱히 숨기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때는 나도 쪽팔린 거 알았다고!"

"이제는 쪽팔린 거조차 쾌감인 거야!?"

"오,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내가 아니라 정아가 그래서 그래. 나는 아니다? 아니야."

바로 선 그어.

나는 절대로 저런 변태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물론 저런 변태 같은 생각으로 부끄러움을 쾌감으로 치환해서 가버리는 걸 구경하는 건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당하는 건 싫다.

"왠지 저 애는 나를 되게 좋은 언니라고 동경하고 있단 말이야. 애초에 각성 초기에는 애가 그 예언 능력 때문인지 많이 겉돌았거든?"

"그랬어?"

"응, 나랑 말도 안 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정령술만 연습했어. 거의 정령 말고는 만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방구석에 박혀있었지."

"...그랬던 애가 너를 동경하기 시작하면서 나아졌구나?"

"응, 혹시 그 시절로 돌아갈까 봐 무서워."

얘도 엄청난 변태긴 해도 동생을 아끼는 언니구나.

이제까지 비인간적인 면모만 보이다가, 드디어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 것 같아서 신선했다.

일 처리는 기계고 성 취향은 육변기인 저세상 무언가인 줄만 알았는데.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너, 너희 팀원 애들 조교 되게 잘해놨더라. 우리 동생도 해주지 않을래?"

취소하겠습니다.

이 미친년은 또라이가 맞습니다.

시발 어느 언니가 자기 동생을 강간범한테 팔아넘겨서 조교 해달라고 부탁을 해?

"너 사실 인륜을 져버린 쓰레기 아니냐?"

"매도당할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신랄해!"

"알았으면 하지를 말라고."

물론 유혜미를 어떻게든 처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언니인 혜은을 동경하다가 그런 언니를 망쳤다고 착각된 상대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애잖아.

상황만 보면 되게 참한데?

"애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특히 나를 구하겠다고 성장까지 멈췄거든."

"성장을 멈춰?"

"그, 예언에 대한 기억은 일종의 코스트라서.... 아마 소모하면 기억을 다시 잃는 모양이야."

"그럼 그냥 모두 소모하게 만들면 끝이잖아?"

계약해서 코스트를 모두 소모'해줘'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그걸 왜 굳이 소중한 동생의 몸을 나에게 팔아넘기면서까지 조교를 해달라고 하는 거야?

"너무 일시적이야. 물론 그렇게 하고 상식을 바꿔서 계속 소모하게 해도 괜찮긴 한데...."

"뭔가 문제가 있구나?"

"혜미의 실력이 올라갈수록 기억을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져. 심지어 기억을 잃으면 관련된 기억이 모두 봉인되지만, 같은 기억을 회복하면 관련된 기억의 봉인이 모두 풀리고."

"그건 어떻게 아는 거야?"

"말했지? 혜미가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떠오르는 기억을 혐오하고 힘들어하는 기억도 코스트로 소모해버리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 그 기억들도 다시 살아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어떤 메커니즘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운 기억도 저 방법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컸다.

원래 A능력으로 봉인된 것을 B능력으로 해제 가능한 경우는 많으니까.

"그나마 저번에는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언니라도 의지해줘서 극복했지만, 이번 일에서 다시 무너질까 봐 걱정이야."

"어렵네."

유혜미는 자신의 언니의 반짝임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

그런 그녀로서는 그 반짝임을 망치는 '적'이 나타난 셈이구나.

그래서 자신이 언니를 지키겠다고 힘내고 있는 거고, 여기서 대응 없이 넘어가 봐야 다시 재발한 기억으로 나를 죽이려 들겠지.

"기억이 모두 되살아나도 괜찮은, 즉 기억 제거 없이도 나를 죽이지 않는 상태. 그러면서 본인이 무너지지도 않을 정도로 강인한 상태. 이게 네가 원하는 조교의 목표네?"

"응, 바로 그거야."

말이 조교지, 이건 그냥 혜미의 상태를 해결해달라는 뜻이다.

그냥 이 미친년의 어휘가 존나 천박할 뿐인가?

"아, 그리고 조교라는 말은 진심이야! 저거만 지켜줄 수 있으면 강간을 해도, 사회적으로 죽게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을게. 아니, 오히려 도울 거야."

"너 진짜 미친년이지?"

"나도 염치가 있지. 네 시간과 노력, 심지어 마력까지 쓰면서 경험치 획득까지 막을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동생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동생의 몸을 팔아넘기겠다?"

"응."

사실 나로서는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거긴 했다.

반대로 내가 혜미랑 붙은 다음에 혜은이의 상식을 바꿔서 정상인으로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유혜미도 내가 언니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나를 굳이 죽이진 않을 테고.

"하지만, 역시...."

혜은이가 하자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끌린다.

아니, 꼴린다.

유혜미도 언니에게 포스가 가려져서 그렇지 굉장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특히 정령술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 펠라 손잡이, 아니 뿔도 매력적이고.

그런 유혜미를 언니인 혜은이 본인이 가져다가 따먹으라고 바치는데, 이걸 거절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지.

당연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취향의 성적 노리개로 조교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겸사겸사 언니에게 의존하는 성격도 좀 고쳐주고.

그리고 아무리 유혜미가 나쁜 애는 아니라지만, 나는 나를 죽이려는 애를 가만히 둘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솔직히 미안하다는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네 언니가 부탁한 건데 어쩌겠어.

"너 진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응. 물론 나쁜 언니라고 동생에게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겠지."

"알고는 있구나?"

"하지만, 이대로 혜미가 망가지는 거 더는 못 보겠어."

네가 지금 부탁하는 게 진짜로 애를 망치는 것 같은데.

네 머릿속에서의 망가진다는 나랑은 사전적 의미가 많이 다른 거 같다?

확실히 이상해.

"그리고 혜미가 알아줬으면 하거든."

"뭘?"

"내가 느끼는 행복. 강간당하는 거랑 여러 가지 야한 시츄에이션에서 나오는 행복감. 나를 이해해줬으면 해.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미친 건가?"

솔직히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 하필 그 내용이 강간 패티시 같은 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자매 덮밥 같은 시츄에이션 동경하고 있다고! 나도 그런 거 하고 싶어!"

"그게 본심이지 미친년아!"

"아, 아니야!"

아니긴 뭘 아니야.

방금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그러니까."

"어?"

"동생 앞에서 가버리면서 미안하다고 울부짖는 거 동경해! 동생이 울면서 언니를 부르지만, 타락한 언니는 그저 쾌감에 헐떡이고, 동생이 절망하면서 가버리는 거 동경한다구! 동생이랑 언니가 키스하면서 남자에게 차례로 박히는 섹스 구도도 동경한단 말이야!"

"어...."

"하지만 혜미는 너무 착한 동생이라 그런 거 이제까지 상상으로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구! 이런 내 마음을 알아?"

미안하다 유혜미.

나도 순간적으로 쟤 말에 동조할 뻔했어.

솔직히 좀 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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