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35화 (36/289)

EP.35 5레벨 - 나 머리가 띵했어(7)

"아, 오늘은 일찍 가시네요?"

"해야 할 건 대충 끝났거든, 이럴 때 휴가 써놔야지."

휴가를 쓰더라도 맡은 일은 마무리해야 하는 짜증 나는 직장이라, 각이 잡힐 때 바로바로 휴가를 써줘야 한다.

너무 늦게 써도 왜 이만큼 쌓아놨냐고 뭐라 하니까.

평소에는 건드리지 않지만, 꼭 감찰 나왔을 때는 별것도 아닌 거로 지랄을 해서 짜증이 난다.

"맞다. 정아야. 너 주말에 시간 있어? 이번 주말엔 조금 프리할 것 같기도 해서."

"아, 진짜 죄송해요. 하필 앞서 잡힌 일이 있는데...."

"그래? 그건 좀 아쉽네. 오랜만에 너랑 하려고 했더니."

최근에 거의 정아를 방치한 느낌이라 미안해서 해본 말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이 있다는 거지?

"근데 무슨 일?"

"개인적으로 알아볼 게 있어서요. 아, 매니저님. 혹시 하트7이 뭔지 아세요?"

"하트7? 카드?"

"네."

"잘 모르겠는데...?"

"아, 짐작 가시는 게 없으면 괜찮아요."

뭐길래 그러지?

나는 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하트7에 뭔가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건가?

"나중에 확신이 들면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그냥 제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거든요."

"그래, 그럼."

나는 정아에게 인사를 한 뒤에 건물을 나섰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는 거니까 애들 줄 장난감이라도 좀 살까?

아무래도 애들이 좀 삐쳤을 테니까.

최근에는 특성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고아원에 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주말에도 거의 다른 애들 집에 가서 떡만 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게 원인이겠지.

하지만 벽에 막힌 것도 아니고 경험치가 부족한 걸 보면 채우고 싶어지는 게 한국인의 심리란 말이야.

[희망 보육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표지판을 보며, 익숙한 고아원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연락해둬서 그런지 원장님이 바로 나와서 나를 반겨주셨다.

그나저나 안쪽이 시끌벅적하네.

누가 있나?

"다른 손님 있나 봐요?"

"이번에 정기적으로 기부해주시기로 한 분이 있어서요. 심지어 애들이랑 놀아도 주겠다고...."

"오, 좋은 소식이네요. 안 그래도 애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게 많았을 텐데."

그나저나 누가 이런 구석진 고아원에 기부를 할 생각을 한 거야?

좋은 사람이구먼.

"얘들아 형왔다!"

"은혁이 형아!"

"오빠, 대체 오늘이 며칠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미안, 미안. 요즘 일이 바빠서."

태웅이랑 은서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나에게 매달렸다.

얘들 때문에 여기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하는 짓이 귀엽지?

"헌터 언니들이 이번에는 안 괴롭혔어요?"

"엉, 요즘엔 좀 살맛이 난다. 그나저나 안쪽에 누가 왔어?"

"헌터가 왔어!"

"헌터? 기부해주신 분이 헌터야?"

"응! 예쁜 헌터 누나야!"

오, 역시 헌터도 정상적인 사람이 있었구나.

최근 들어 이상한 애들만 보고 살았더니, 이젠 헌터가 되면 사람이 이상해지는 건가 싶었는데.

"마술한대! 형아도 같이 보자!"

"마술?"

헌터가 무슨 마술을 한다는 거야.

참 특이한 사람....

'뭐지, 이 불안감은.'

헌터, 마술.

어딘가가 익숙한 키워드들이다.

나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묘설아씨?"

"아, 은혁씨.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왜 오늘 휴가 쓴 묘설아가 여기에 있는 거지?

우연히 그녀가 기부할 곳을 찾아왔는데, 그게 하필이면 여기라고?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가능하면 여기를 다른 사람들한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벌써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애들한테 마술 보여주니까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은혁씨도 마술하는 거 도와주실래요?"

"아, 네."

말이 마술이지 그냥 특성이잖아요.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자연스럽게 속이고 있네.

애들은 재밌어하는 거 같으니까 괜찮으려나?

"이 카드 뭉치에서, 카드 하나를 골라주세요."

"골랐어요."

[다이아5]

내가 뽑은 카드를 들고 멍하니 있으니까, 그녀가 카드 뭉치를 건네주면서 넣고 섞어서 돌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만 살짝 카드를 보여준 후에 카드 뭉치에 카드를 넣고 잘 섞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오케이, 그럼 제가 그 카드를 찾아볼게요?"

묘설아는 딱히 대단한 동작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카드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더니 박수를 몇 번 치는 정도.

"자, 우리 친구들. 카드한테 부탁을 해볼까요? 위로 올라와 줘!"

"위로 올라와 줘!"

의외로 무대 체질이네.

방송에 나가는 건 대부분 거절하길래 이런 건 익숙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애들 다루는 것도 꽤 잘하고.

"짠!"

최종적으로 맨 위에 있던 카드를 뒤집자, 그곳에는 내가 뽑았던 다이아5가 있었다.

저게 특성을 써서 하는 거라는 걸 몰랐다면 나도 신기해했겠지.

"얘들아 잠시만. 설아씨 우리 이야기 좀 해요."

"언니는 은혁씨랑 이야기 좀 하고 이따가 다시 마술하러 올게!"

"네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사람은 일부러 여기 찾아온 거다.

어떻게 내가 여기를 후원하고 있는지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아까 원장님 반응을 보면 후원 금액도 꽤 큰 것 같던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아, 혹시 티 났나요?"

"설마,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조금 화난 것처럼 말하자,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를 설명했다.

"은혁씨가 전에 고아원에 기부한다고 했었잖아요. 그게 기억이 나서요...."

"왜, 남의 사생활을 캐요...."

"제가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그래서 알아보니까 은혁씨가 기부하는 곳이 이곳이더고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애들도 귀엽고. 왜요? 저는 하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오히려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니까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이번에 B급 헌터로 승급했을 테니까 돈이 부족하진 않았겠지.

"품위 유지비가 쓸 곳이 솔직히 잘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기부해보기로 했어요. 은혁씨가 긴 시간 그렇게 한 거 보면, 그게 그만큼 보람차다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왜 하시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애들 너무 귀엽더라고요!"

"그쵸!?"

드디어 우리 애들의 귀여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 기뻐졌다.

물론 묘설아가 내 뒤를 캤다는 건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묘설아가 인성이 제대로 되어 먹은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동료가 생긴 것 같아서 즐거워졌다.

"크흠. 아무튼, 다음부터는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

"조심할게요. 아무튼, 저도 여기 후원해도 괜찮죠?"

"그럼요. 그건 당연히 하셔도 되죠."

그건 자신의 자유지.

내가 화가 났던 건, 내 허락도 없이 내가 뭘 하는지 조사했다는 거니까.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그런지 참을만한 일이었다.

"아, 전화 왔다. 저는 통화하고 들어갈 테니까, 설아씨는 애들이랑 놀아주고 계세요."

"네, 그럴게요."

업무 전화라서 일단 받긴 했는데.

뭔가 일이라도 터진 건가?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요?"

"저, 은혁씨. 혹시 유혜은씨랑 친해요?"

"어, 조금 아는 사이긴 한데요."

"혹시 유채린팀이 이쪽 건물로 온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유채린팀이? 왜요?"

"현재 쓰던 곳에 문제가 생겨서 이사 예정인데, 중간에 있을 곳이 비어서 이쪽으로 온대요. 다른 곳도 많은데, 혜은씨가 꼭 여기로 오겠다고 했다고...."

이 인간이 진짜.

아니, 누가 봐도 나랑 놀겠다고 이쪽으로 오려는 거잖아.

공적인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면 어쩌자는 거야?

"저희 건물이 S급 수용이 가능해요?"

"어차피 다른데도 S급은 어렵고, A급은 최근에 아영씨가 승급해서 설비가 갖춰졌잖아요? 그 때문인 것 같아요."

"하필 이렇게 일이 딱딱 맞아 들어가냐...."

아마 그녀도 전부 알고 이런 짓을 벌인 거겠지.

사실 우리가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없었다.

최근에 한 팀이 사고가 나서 해체되면서 자리도 하나 비었고, 그 자리에 영구도 아니고 임시로 자리를 잡는다는 소리니까.

"하, 일단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전에 유채린 사건도 있고 해서 불편하실까 봐 미리 알려드린 거예요."

"그렇죠. 전 유채린이 아직 불편해서...."

난 특성 레벨을 올려서 유채린을 문제없이 농락할 수준이 될 때까지는 조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유채린과 가까워지는 상황을 전혀 원하고 있지 않았다.

"전화 안 받네."

진짜 사람 골치 아프게 하네.

오늘 쉰다고 했으니까 바빠서 받지 못하는 건 아닐 테고.

전에 혜은이가 주소 줬었던 거 같은데, 그냥 직접 가서 지랄해야겠다.

"원장님 죄송해요.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어, 그래요. 애들이 실망할 텐데...."

"다음에 꼭 다시 온다고 해주세요! 그리고 이거 애들 장난감인데, 미안해서 주는 거라고 전해주시고요."

최대한 빨리 유혜은한테 말을 해서 취소하도록 해야 한다.

진행이 시작되어버리면 정작 상황을 진행했던 유혜은도 멈추기 어려워지니까.

나는 급하게 유혜은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뭐야, 놀러 온 거야? 역시 내가 오늘 쉰다고 말해두길 잘했...."

"야, 유혜은! 너 미쳤어?"

"응? 뭐가? 아.... 이사때문인가."

"아니, 나랑 이야기는 하고 진행을 하던가."

진짜 나한테 귀띔을 하나도 없이 진행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심지어 팀별로 격리가 되어있다고는 해도, 이번에 자리가 난 곳은 우리 팀 바로 아래층이다.

그래서 존나 가까우니까 마주치지 않을 수도 없는데.

"음, 어쩌다 보니까 적합한 곳이 거기라서...."

"구라치네. 내가 찾아오면 거기로 수정한단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자, 잠깐만! 알았어.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해."

물론 내가 유채린이랑 좀 부딪힌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채린이 아니더라도 유채인 팀에는 S급이 하나 더 있기도 하고, 최소 A급으로만 이루어진 사람들이다.

아직 특성 레벨이 5인 내가 들키지 않기에는 너무 빡센 환경이잖아.

"알았어, 알았어. 이거나 마시면서 숨 돌려."

그녀는 내가 열변을 토하자,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면서 잔을 건넸다.

이건 또 뭐야?

우유인가?

"우유긴 한데, 이거 맛이 좀 이상하다?"

"내 모유라 그런가?"

"푸읍!"

이 미친년이?

아니 애초에 임신도 안 했을 텐데 모유는 어떻게 나온 건데?

"아, 최근에 E급 몬스터인 드레인카우가 원유 생산모델로 발탁된 거 알지? 근데 드레인카우는 임신에 따른 원유 생산 길이가 너무 짧고, 임신 자주 하면 금방 죽잖아. 그래서 우유만 나오게 하는 약을 개발했는데...."

"그거 빼돌려서 너 자신한테 놨다고? 진짜 미친년이구나...?"

"실수로 사람한테 놓았더니 잘 동작했다는 보고서를 찾았거든."

"그렇다고 그걸...."

"수유 플레이를 해보고 싶었어."

"진짜 돌겠네."

분명 다른 것 때문에 따지러 왔는데.

추가로 따지고 싶은 것이 생기고 있었다.

일단 이사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아무튼,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일단 허락 맡지 않은 건 미안해. 시간이 촉박한 일이라서."

"시간이 촉박했다고?"

"응, 누가 그 건물을 노려서 들어가려고 작업 중이던데? 내가 그거 유채린 이름빨로 컷하고 들어갔지."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우리 건물에 들어오려고 한 것이 유혜은 말고도 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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