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4레벨 - 모르면 공부하세요(5)
"후우, 시원해라."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뒤에 천천히 결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길이의 단발이 갈색과 금색의 투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도록 항상 하던 각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머리 형태를 핀을 사용해 고정한 이후에야 거울 앞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완벽하네."
어제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머리가 산발이 되어서 난리였는데.
아마 심심해서 졸았던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푹 잤으니까 말끔한 모습으로 퇴근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무래도 그렇게 잘못된 각도로 길이 들면 골치가 아파진다.
물론 고데기로 펴면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겠지만, 8레벨이 되어서 신체가 더 튼튼해진 이후로는 고데기가 안 먹는 것이 체감되는 중이었다.
'이것도 비싸게 주고 산 나름 비싼 헌터용 고데기인데....'
뭐, 곧 9레벨을 찍고 A급 헌터가 될 수 있다면 그까짓 고데기가 중요하겠냐만.
B급 헌터의 월급이나 품위 유지비가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상급 헌터 전용으로 나오는 물품들은 가격이 비쌌다.
아마 9레벨까지 커버 가능한 고데기는 어지간한 8레벨용 장비와 가격이 맞먹지 않을까?
도둑놈의 새끼들.
"아영아, 잘 잤어?"
"아, 유림아."
민아영, 나와 같은 헌터 아카데미를 나온 동기 헌터다.
애가 좀 멍청하긴 해도 그래서 이용하기가 좋다.
그리고 적당히 맞춰주면 꽤 말이 잘 통하기도 해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아, 물어보지 않아도 이 출렁이는 가슴을 보니까 잘 지내는 것 같네. 더 커진 거 아니야?"
"그랬으면 좋겠네. 빨리 9레벨에 오르고 싶다. 아직 벽을 넘는 방법이 뭔지 감도 안 잡혀."
"나도. 뭐, 어쩌겠어."
어라, 나 얘랑 왜 이렇게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기분이지?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어제도 얘랑 대화를 많이 했을 텐데?
아무래도 팀에 동기가 얘밖에 없으니까 항상 그런 느낌이었는데, 왠지 어제 얘랑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흐릿하게 대화했다는 건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
'내용을 전혀 모르겠네.'
"아영아, 우리 어제 무슨 이야기 했더라?"
"이야기?"
"잘 기억이 안 나서."
"으음...."
아영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별 건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특별한 건 최근에 읽던 책 이야기를 해줬다는 건데....
'그런 재미없는 대화니까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아영이는 의외로 여자들끼리 사귀거나 하는 연애 소설 같은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정확히는 남자를 싫어해서 굳이 남자가 나오는 소설을 읽진 않는 거지만.
"오늘은 그냥 훈련이나 할까."
머리 스타일이 망가질 확률이 조금 높지만, 그래도 이대로 심심해서 잠드는 걸로 망가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아영이면 몰라도 나는 할당량을 꽤 채운 터라 던전에 보낼 확률도 낮고....
이럴 때는 훈련이라도 해놔야지.
"아영아, 훈련 좀 도와줘."
"스택 쌓게 도와주면 되는 거지?"
"응."
내 능력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였다.
필수로 아군 하나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코스트 시스템이라니, 나 말고는 잘 찾기도 힘든 희귀한 방식이었다.
장비실에서 장비들을 꺼내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혹시 옷이 찢어질 수도 있으니까 장비만 입고 들어가야겠다.
저번에 훈련 내용 녹화되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옷을 입고 들어갔다가, 걸레짝이 된 옷을 입고 집에 돌아가는 더 부끄러운 일을 당했으니까.
"나도 입을까?"
"굳이? 혹시 모르니까 입든가."
"그럴게."
나는 옷을 완전히 벗어 장비함에 보관한 뒤에 브래지어 장비를 착용했다.
작은 동작음과 함께 가슴의 마력을 보조하는 묘한 흐름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싸온다.
무기가 수납된 팬티까지 입은 뒤에 팬티 중앙의 버튼을 눌러서 아공간을 연다.
그리고 팬티 앞에서 나오는 검의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뽑아 들었다.
"수리는 잘 된 것 같네."
"저번 공략에서 망가졌다며?"
"어, 그래서 고치고 여기다 놔둔다더니 제대로 고쳐놨네."
하긴 이 나라가 다른 건 몰라도 헌터 장비 관련되어서는 제대로 관리하니까.
심지어 우리가 장비를 출입한 기록 하나하나가 평생 사라지지 않을 정도다.
조금 과한 감은 있지만, 최근 각성자 범죄에 민감한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겠지.
"와,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네."
"뭐가?"
"아영이 네 가슴 말이야. 순수 마력 헌터들 가슴을 볼 때마다 무겁지 않으려나 싶어."
물론 비쥬얼이 그렇다는 거지, 헌터가 저 정도로 심한 무게감을 느낄 리가 없다.
애초에 우리가 사용하는 브래지어나 팬티 같은 장비도 무거운 편이니까.
"스택 좀 쌓을게."
"편하게 해."
내 특성은 다른 사람에게 신체 강화를 걸어주는 것이 기초적인 능력이다.
다만 이게 메인은 아니고 그 걸어준 강화의 스택이 내 몸을 강화할 때 필요한 코스트다.
최대한 아군들에게 강화를 걸어놨다가 그걸 단번에 내 화력으로 돌려서 싸우는 것이 나의 전투 스타일이다.
중복한 사람에게 추가로 강화 스택을 쌓으면 신체 강화가 강해지지는 않지만, 스택은 그대로 쌓인다.
따라서 한 명이라도 아군이 있으면 능력을 쓰는 데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반대로 혼자면 너무 무력한 능력이지.'
저번에 혼자 고립돼서 아무것도 못 하고 몬스터한테 뒈질 뻔한 기억이 떠올라서 인상을 찌푸려졌다.
괜히 기분만 잡쳤네.
"난이도는 평소 하던 대로네?"
"엉, 일단 몸부터 풀게."
던전을 다녀온 뒤로 제대로 된 훈련을 한 적이 없으니까.
일단 익숙한 난이도로 가볍게 몸부터 풀 생각이었다.
"흡!"
연습용으로 나타나는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튕겨내어 막는다.
간단한 행위지만 적절한 순간에 특성을 사용하여 화력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음?"
근데 특성 사용할 때 원래 이런 감각이었던가?
평소라면 몸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힘이 나는 것이 전부였는데, 방금은 약간 묘하게 간지러운 느낌이 났는데?
기분 탓인가?
"아닌데."
전투를 위해 뛰거나 달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바람과 심한 마찰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특성을 사용한 이후로 마찰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조금 달라졌다.
더 미세한 감각을 잘 잡아내는.... 마치 증폭된 것 같은 느낌이다.
감각이 예민해지다니, 무슨 레벨이 올라서 신체 강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나?
그래도 더 상황이나 몬스터에 대응하기 편해진 것은 사실이라서 이동에 대한 정확성이 늘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유림이 좋은데?"
"그러게. 느낌이 좋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력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으, 뭐지?"
이상하게 특성을 사용할 때마다 이런 감각의 증폭이 심해져 갔다.
이제 달리는 것으로 인한 바람의 마찰만으로도 몸 전체를 핥아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방금까지 더 좋은 정보를 줘서 전투를 유리하게 해주던 감각은 오히려 과도한 정보로 나를 혼란시키기 시작했다.
과도한 감각에 전투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유림아!"
"힉!?"
결국 나는 몬스터의 움직임을 놓쳤고, 내 상태를 파악한 아영이가 급하게 몬스터를 태워버리고 훈련을 중지했다.
"하윽...."
"괜찮아? 어디 안 좋아?"
"몸이 너무 민감해져서.... 이게 대체 왜 이러지?"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하지만 그렇게 푹 쉬고 나왔는데 피곤하다고?
이번 던전에서 무기가 망가지긴 했어도 그렇게 힘든 난이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딱히 이상한 일은 없었는데?
"마사지해 줄까?"
"마사지?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았나?"
"후후, 기대하시라."
딱히 기대는 되지 않지만,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맡겨보기로 했다.
솔직히 신체 강화도 아닌 아영이가 내 몸을 주물러봐야 얼마나 시원하겠어.
'아, 아니다. 내가 신체 강화 걸어줬지.'
그거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네.
내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영이는 뭔가를 꺼내오더니 내 몸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오, 시원해. 이거 뭐야?"
"정아꺼야."
"뭐냐고 물었는데 주인을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하냐?"
뭐, 그게 아영이다운 점이지만.
애초에 아영이가 바르는 이게 뭔지 본인도 잘 모를 수 있겠네.
나중에 따로 정아한테 물어봐야겠다.
"뭔가 차가우니까 진정되는 느낌이네."
"몸이 좀 뭉친 것 같은데?"
아영아, 뭉친 것이 아니라 그냥 단단한 거야.
원래 신체 강화 헌터는 전체적으로 튼튼한 몸이 자리를 잡으니까 어쩔 수가 없거든.
"그럼 풀어줘야지."
"뭐?"
아니 힘을 줘도 단단해서 잘 안된다더니 어떻게 풀어준다는....
히익!?
"흣! 무, 무슨 짓이야?"
"마사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마사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몸을 쓰다듬어.
힘이라곤 하나도 넣지 않고 자극만을 목표로 한 손길이었다.
얘 손길이 왜 이렇게 야하지?
'설마 마사지를 배웠다는 게?'
진짜 얘는 빡대가리라서 마사지를 해주는 척 성적으로 괴롭히는 레즈물을 보고 마사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걸 보고 배웠다면 이런 손길도 가능성이 있겠지.
"그, 그만.... 히익♡"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민감해져 있는 몸 때문에 흠칫거리는 반응이 올라왔다.
이러다가 아영이랑 관계를 맺는 미친 상황까지 가겠는데.
"너, 너.... 그거 마사지 잘못 배운 거야!"
"그래?"
"마사지는 원래 이렇게 야한 것이 아흑♡"
"알아."
"뭐?"
"하지만 최근 유림이는 스트레스가 많잖아? 이럼 풀릴까 싶어서."
"누가 그걸 그렇게 풀어!"
얘가 상식이 부족하다 보니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영이한테 범해진다는 평생 쪽팔릴 만한 과거를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영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영이의 손길이 성기나 젖꼭지 같은 노골적인 성감대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거네.
선은 지키겠다는 건가?
"하우윽♡ 아영아 그만...."
"조금만 더."
부드럽게 층을 쌓여오는 쾌감의 나래.
얇은 수건을 한 겹씩 쌓아가듯 기분 좋은 감각이 몸을 덮어오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감각은 끝없이 늘어만 간다.
'역시 이상해.'
내가 아무리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지만, 가끔은 꼴릴 때 자위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쾌감이 쌓이면 절정이 찾아오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타이밍을 한참 넘은 것 같은데 가버릴 수가 없었다.
쾌감이 머리에 가득 차지만, 그 쾌감을 해결해줄 트리거가 꽉 막혀있어 괴로웠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쯤 했으면 가버려야 하잖아.
"유림아 기분 좋아?"
"흑♡ 싫어♡ 가게 해줘...."
"와, 달링한테 들은 것 그대로네?"
달링?
누구를 말하는 거지?
아영이는 사귀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오케이. 그만 괴롭힐게. 이 정도면 많이 풀린 것 같으니까."
"헤으윽♡"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뻔했다.
그걸 가버리는 감각이라고 착각해서 좋아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절정할 수 없었다.
"나는 가서 점심 먹을게. 유림이 너는 정신 차리면 나와."
"히익!?"
아영이는 내 보지를 쓸어서 애액을 손에 적시더니 입으로 쪽쪽 빨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다?
내가 알던 아영이가 저런 애였나?
"잘 모르겠어.... 하지만 버텨야 할 것 같아."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챙기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버티자."
너는 할 수 있어 여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