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페미헌터-5화 (6/289)

EP.5 2레벨 - 해줘(1)

"야, 정신 차려."

"차려 있어요옷...."

안 차려져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하는 것이 괘씸하긴 하지만, 이 이상 괴롭히는 것은 양심의 가책이 찔렸다.

"좋아. 이 정도 실력이면 C급치고는 쓸만하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어."

"감사합니다."

"팬으로 인정은 해주도록 할게."

배정아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뻗어있었다.

헐벗고 정액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옥상에 뻗어있는 모습이라니.

다시 쥬지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참자.'

슬슬 마력이 위험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하려면 여유분 마력이 있어야 하니까 슬슬 마무리 각을 봐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너랑 대등한 입장이란 건 아니야. 알지?"

"네, 넷. 당연하죠."

"만약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는데 다가온다? 그럼 죽는 거야."

"히익!"

이건 보험이었다.

만약 배정아가 진짜 유채린과 마주쳤을 때 배정아가 아는 척을 하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당연히 비밀이야. 만약 어디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알지?"

"저,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잘 정리하고. 기억해 둘게, 배정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옥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배정아에게 걸려있던 내 특성을 해제했다.

'일단 유채린이 빠져나갔을 만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주고....'

나는 방금 나왔던 옥상 문을 다시 열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악질이네.

"배정아씨? 여기는 안 계시나?"

오, 그 짧은 시간 동안 옷가지 다 챙기고 도망쳤네.

일반인한테 들킨 것처럼 해서 쪽 주려고 했는데.

"어우, 바닥에 이게 뭐야? 정액? 양은 왜 이렇게 많아?"

아마 벌써 엄청나게 멀리 갔을 리는 없으니까 근처에 있겠지.

쪽팔리게 큰 소리로 말해줘야겠다.

"누가 남자라도 들였나? 이 정도면 3P라도 달렸나 본데. 근무지에서 무슨 짓거린지."

특성을 해제한 상태로 와서 어그로를 끄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역시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완벽한 결과에 만족하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옥상을 나와서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확 피곤하네.'

마력을 소모한 것과 배정아한테 빨린 정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아침부터 계속 렌즈를 끼고 있었더니 눈이 뻑뻑했다.

"이거라도 빼니까 좀 낫네."

화장실에서 갈색 컬러렌즈를 빼내고 찬물로 세수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거울을 보자 반짝거리는 금색 눈동자가 자신을 과시했다.

렌즈가 불편하더라도 이 눈동자를 들킬 수는 없었다.

"맞다. 레벨업 했구나."

컬러렌즈를 챙기고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눈 쉬면서 특성창이나 확인해 봐야겠다.

[페미니스트(Lv2)

당신(Feminist)에 의한 여성(Female)의 행복(Felicity)!

여성을 행복하게 만들 때마다 특성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특성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하위 특성이 개방되고, 마력이 강화됩니다.]

"경험치가 꽤 꿀이었네."

2레벨이 된 다음에도 어느 정도 올라가 있었다.

이러면 3레벨은 금방 도달하겠는데?

[해줘(F)

대상이 시전자의 부탁을 강제로 이행하게 된다.]

"이건 또 뭐야?"

말이 부탁이지 강제면 명령이잖아.

너무 사기적인 특성인데?

'하긴 그만큼 마력 소모가 강하겠지.'

그리고 솔직히 오늘 신나게 사용한 '이거 나만 불편해?' 특성도 엄청난 효과였다.

괜히 나라에서 정신 간섭 각성자들을 다 조지는 게 아니었네.

"써볼까?"

마력이 간당간당하긴 한데, 그래도 이제 위험한 상황은 다 피했으니까.

음, 뭐가 좋으려나.

"일단, 일어나서 점프를 『해줘』"

특성의 대상을 나로 정해서 마력을 흘렸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는 쪽으로 힘을 줬다.

하지만 힘을 주고 있음에도 강제로 몸이 움직여서 일어나더니 점프를 했다.

'효과 확실하네.'

다만 일어나는 방법과 점프의 높이 같은 부분은 내가 조절할 수 있었다.

지정하지 않은 명령까지는 자유롭다는 거군.

"다음은.... 손가락 위에 마력으로 불 피우기를 『해줘』"

혹시 나에게 특성을 써서 다른 특성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능력이 발동했음에도 손가락 위에 불을 피울 수는 없었다.

"역시 대상이 할 수 있는 것만 가능한 거구나."

대충 알겠다.

이건 정신에 영향을 줘서 대상이 그걸 하도록 강제할 뿐이다.

따라서 대상이 시행 불가능한 명령을 시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거지.

"뭐,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네. 생각보다 마력 소모량도 안정적이고."

명령을 유도하는 동안은 계속 마력이 소모되지만, 명령이 끝나고 나면 소모가 멈춘다.

따라서 상시 켜놓아야 하던 '이거 나만 불편해?'보다 소모량은 많아도 실질적 사용량은 비슷할 것 같았다.

'아닌가?'

이게 꼭 1회성 명령만 가능한 거야?

하지 말라는 명령 같은 건 해제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하잖아.

"화장실 안에만 있는 걸로 『해줘』"

이번에는 갑자기 몸이 강제로 움직이진 않았다.

다만 마력 자체는 계속 소모되고 있는데....

"오, 안되네."

화장실을 나가려고 하면 몸이 강제로 멈췄다.

이것도 몸을 강제로 조종당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 나빴다.

"자, 그럼...."

대충 새로운 특성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겠다.

천천히 이 특성의 희생양을 찾아봐야겠지.

F F F

"이상하네."

한 년만 걸려라.

바로 그 녀석부터 괴롭혀주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왠지 아무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일만 존나게 열심히 했네.'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들을 보면서 기지개를 켰다.

이러면 이번 주에 정리해야 할 건 끝인가?

돌발 상황이 일어나서 일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끄으, 슬슬 퇴근할까?"

"오늘 일 끝나신 거예요?"

"아, 설아씨."

묘설아가 인스턴트커피를 내밀면서 말을 걸어왔다.

설마 직접 탄 거야?

"고마워요. 원래 제가 해드려야 하는 건데."

"에이, 커피 타는데 누가 하고 말고가 어딨어요."

확실히 마인드가 착했다.

다른 년들이었으면 내 대가리 한 대 후린 다음에 커피 타오라고 시켰을 텐데.

"퇴근하시게요?"

"네, 공부할 게 좀 많네요."

"정아씨는요?"

"정아는 자리에 엎드려서 자고 있어요."

그래서 기다려주고 있는 건가?

얘는 사람이 착한 건지, 아니면 걔가 자기를 병신 취급하는 걸 모르는 건지....

"정아씨는 제가 깨워서 보낼 테니까. 설아씨는 들어가세요."

"네? 하지만...."

"벌써 퇴근할 만한 시간 훌쩍 지났잖아요. 이런 잡일은 익숙해서 괜찮아요."

시계를 확인한 묘설아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렇게 하겠다면서 퇴근했다.

이럼 이제 우리 팀에는 나랑 배정아만 남는 건가?

"배정아 자리가...."

저기네.

진짜 헌터들은 이렇게 곤히 자고 있으면 선녀들인데.

왜 그렇게 성격이 빻은 인간이 많은 거야?

'하긴 외모는 각성 때문도 있지.'

최근 나도 외모가 훤칠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쥬지가 마력량에 맞춰서 자라나는 것도 체감이 크지만, 전체적으로 몸의 밸런스가 좋아지는 느낌이다.

"내 외모랑 목소리 말이야, 『이거 나만 불편해?』 묘설아로 느껴져야지."

내가 굳이 묘설아를 퇴근시킨 이유다.

묘설아를 연기해서 배정아가 요즘 묘설아에게 어떻게 나오나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괴롭힘당하고도, 다른 사람을 괴롭힐 생각이 드냐인데.’

하긴 원래 쟤도 선배한테 괴롭힘당했었지.

그런데도 묘설아를 괴롭혔었던 거고.

쓰레기년.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괴롭히는 게 양심에 찔리니까 건수를 잡고 싶었다.

'역시 섹스는 양심 찔리지 않는 상태로 편한 마음으로 싸지르는 게 제일 꼴리지.'

그리고 만약 묘설아를 괴롭힐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괴롭힘당한다?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어도 그런 일이 늘어나면 징크스가 될 거다.

그럼 괴롭히지 않게 되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는 내가 열심히 괴롭혀줘야겠네.'

그냥 유채린 모습으로 괴롭히지 말라고 하면 바로 듣겠지.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잖아.

"정아야. 일어나. 이제 퇴근해야지."

"아, 씨. 졸려...."

비몽사몽 일어난 배정아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뭔가 이상했나?

"지금 몇 신데?"

"8시 다 돼가는데?"

"아, 시발. 나는 정리하고 들어갈게. 먼저 퇴근해."

"어, 응. 내일 봐."

의외로 대화 자체는 그렇게 악의적이지 않네.

하지만 내가 뒤를 돌아서 회사를 나가려고 할 때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레퍼토리가 바뀌질 않냐.'

바닥이 엄청 미끄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대놓고 하는데 안 걸린다고?

물론 얼음이 얇긴 한데 빛 반사되는 양이 달라서 티가 나잖아.

"아야!"

너무 작위적으로 넘어졌나?

연기가 어설펐나 싶어서 배정아 쪽을 확인했지만, 딱히 의심하는 구석은 없었다.

일단 자연스럽게 먼저 퇴근하는 척 건물을 나서면서 특성을 해제했다.

'다음 복병은 CCTV인데.'

그나마 요즘 CCTV는 모두 국가 직속이라서 얘들 맘대로 확인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상한 짓을 할 거니까 문제네.

'CCTV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옥상의 경우에는 헌터들이 일탈하려고 일부러 설치를 못 하게 막았었다.

그 덕분에 저번에는 시원하게 저지를 수 있었고.

"집 정도가 적당한데."

배정아가 이 근처에 살았던가?

차 없이 출근 했던 것 같은데.

'맞네.'

혹시나 해서 주소지를 확인해 보니까 근처에 있는 아파트였다.

이 정도면 아마 걸어서 갈 터였다.

"아, 씨. 존나 졸리네. 빨리 집가서 자야지."

아직 비몽사몽 한 상태로 집에 가기 시작한 배정아를 따라가며 특성을 걸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특성이 최고겠지.

'CCTV에서 수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마치 내가 배정아와 함께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기했다.

배정아가 문을 열면 자연스럽게 따라서 들어갔고, 마치 그녀와 대화하는 것 같은 제스처도 했다.

이 정도면 내가 배정아 집에 초대받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물론 정말 순수하게 내 연기로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줘' 특성을 사용해서 배정아가 눈치채기 힘든 정도로 행동을 유도해서 옆에 사람이 있는 것에 가깝게 행동하게 했다.

다행히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솔직히 유채린 모습으로 같이 가버리면 쉽긴 한데.'

하지만 유채린 모습으로 따먹으면 뭘 하라고 해도 다 할거잖아.

그럼 '해줘'를 테스트하기 어려워진다.

배정아를 따먹고 괴롭히면서 즐길 생각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이건 특성의 연습이니까.

"물 온도 오케이."

배정아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욕을 준비했다.

졸린다던 사람이 샤워가 아니라 목욕을 하네.

따뜻한 목욕물에 몸 담그고 자려고?

나는 욕실 구석에 앉아서 나른하게 목욕을 즐기는 배정아의 몸매를 구경했다.

물론 젖을 수도 있으니까 옷은 미리 벗고 들어왔다.

"흐아, 좋다...."

나도 좋은 구경해서 좋다.

그렇긴 한데 배정아가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네.

뭐부터 해야 쟤가 불행해질까.

"일단 PTSD부터 자극해볼까? 목욕물 『이거 나만 불편해?』 노숙자들 정액이 가득 섞인 정액 짬통으로 느껴져야지."

추상적인 주문을 했으니까 배정아가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구현될 거다.

실제로 경험했을 리가 없으니까 공포심 때문에 더 역한 것이 튀어나오겠지.

"뭐, 뭐야! 힉!"

깜짝 놀란 배정아가 욕조에서 몸을 빼려고 했다.

그녀의 표정에 드러난 짙은 혐오의 감정을 보니 자지가 절로 부풀어 올랐다.

그나저나 어딜 나가려고 그래.

"정아야, 거기서 잠수『해줘』"

그녀가 그대로 욕조에 머리를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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