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로 레벨업-184화 (184/199)

잠시 틈을 두고 대답한 나를 레베카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이상한 점을 찾자면 레베카는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오질 않았다.

내가 레베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들이대는 상대를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다. 거짓말이 서투르며 자신의 매력을 자각하지 못한다.

고작해야 이 정도가 전부였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레베카와 만난 것도 이번이 고작 세 번째였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가 화를 내는게 아닌 슬퍼하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레베카는 계속해서 입술을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며 머뭇거렸다.

몇 번이나 입을 열었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대로 입을 닫아버리는 레베카의 행동에 나는 점점 속이 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저렇게나 고민을 거듭하는 것일까.

그리고 레베카는 기어이 결심을 했는지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평소의 다정하고도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아닌, 어딘가 슬프고도 체념한 듯한 기운없는 목소리였다.

"...태훈 오빠는, 저에게 질린건가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차라리 '우리 헤어져요'라고 했다면 머리를 박으며 사죄했을텐데 말이다.

"그, 그럴리가 없잖아!"

내 말에 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태훈 오빠는..."

레베카가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헬레나를 바라봤다. 레베카의 도움 덕에 어떻게든 옷을 입힌 헬레나는 몸을 쭉 뻗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헤, 헬레나와 하게 된 건 이유가 있어!"

"그렇겠죠. 태훈 오빠는 이유도 없이 헬레나를 덮칠 사람이 아니니까요."

레베카의 말에 나는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레베카는 내가 헬레나와 바람이 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저 헬레나와 몸을 섞은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쁜 것일까?

"...어째서."

레베카가 띄엄띄엄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말하는 레베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나만...다들..."

"레베카?"

심상치 않은 떨림에 나는 황급히 레베카의 손을 맞잡았다. 레베카의 떨림이 온전히 전해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레베카는 화가난게 아니었다. 슬픈게 아니었다.

레베카는.

"오빠한테... 버려진 줄 알았어요."

체념이란 벽이 화난 감정과 슬픈 감정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오빠가 저 말고도 다른 여자들이랑 관계를 맺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오빠가 계속 저를 찾아줘서 기뻤어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감정이,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너무 좋았어요."

레베카는 이때까지 쌓아둔 말을 토해냈다. 수 년간의 억누른 감정들이 농축된 레베카의 말은 처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때까지 착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가든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듯한 눈길이었어요. 이 머리색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도 않고, 뒤에서 이야기만 나누는 애들을 보면 정말로 소외감이 들었어요."

시선에 익숙한게 아니라 익숙한 척을 한 것이었다. 첫 만남에서도 그랬다.

레베카는 시선을 거북해하면서, 자신에게 들이대는 남자들을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나는 레베카가 그것에 익숙할거라고 제멋대로 착각했었다.

몸을 떨며 말하는 레베카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조심스레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아주었다.

"사귀는 친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어요. 나를 올곧게 바라봐준 유일한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런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레베카는 멈추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다가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만큼, 오빠와 가까워지자 버려지는게 두려워졌어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게 아닐까, 혹은 자신이 부담스러워 떠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할수록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늘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며 서로를 믿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태훈에게는 다른 여자들이 있다. 늘 그의 옆에 있는 여자들 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적었다.

그렇기에, 언제 차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품에 안고 지냈다. 차일거라는 생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마음의 준비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내 품에 안겨있던 레베카는 이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그런데 오늘 오빠가 제가 아닌 앨리스랑 헬레나랑만 하는 걸 보니까... 그, 따돌림 당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쏟아낸 레베카의 눈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손으로 그런 레베카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그건 아니야 레베카."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자 레베카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레베카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인지 대답했다.

"하지만 오빠는 저만 빼놓고 헬레나와 앨리스하고만 했잖아요."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레베카를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젠장. 이런 부끄러운 소리를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서 하게 될 줄이야.

빌어먹을 상황을 저주했다. 누가 보면 3류 소설 주인공인줄 알겠어. 빌어쳐먹을.

"레베카, 잘들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취해서 쓰러져 있는데 강제로 범하는 취미는 없어."

내 말에 레베카의 동공이 커졌다.

"......."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는 레베카를 보며 나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널 덮치지 않은 이유는 너를 존중하기 때문이야. 내가 너와 앞으로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고. 오해할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앨리스는 자기가 먼저 유혹했고, 헬레나는 멋대로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는 덮쳤어."

물론 앨리스의 유혹에 넘어간 것과 헬레나를 막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맞지만 결코 레베카를 버린다거나, 따돌린다는 생각따위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바에서부터 계속 레베카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레베카를 험하게 다뤘던 것도 있고, 이번에는 사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일부러 꾹 참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받아들일 줄이야.

내 말에 레베카가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버리는게 아니에요?"

"안 버려. 애초에 너 같은 미녀를 내가 버리고 말고 할 입장은 아니지. 반대라면 모를까."

"전 절대로 안 버릴거에요."

"...그래."

어딘가 확신이 가득 담긴 레베카의 말에 나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반응과는 반대로 레베카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 품에 얼굴을 비벼댔다.

헬레나도 그렇고 대체 왜 자꾸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대는거야? 혹시 이상한 냄새가 나는건 아니겠지.

"...후후, 사랑하는 사람과는 멋대로 안 하는구나. 그렇구나."

어딘가 행복해보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연신 중얼거리는 레베카를 보니 나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제발, 좀 봐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돌리려고 하는데 내 앞에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레베카가 물었다.

"저희 셋 중에서는 누가 제일 좋았어요? 화 안 낼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봐요."

이래놓고 사실대로 말하면 갑자기 정색하면서 날 죽이려 드는건 아니겠지.

"...진짜?"

"진짜죠. 어서 말해봐요."

내 팔을 자신의 가슴팍에 끼운 채 묻는 레베카를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앨리스는 조교랄까, 굴복시키는 맛이 있었다. 헬레나는 테크닉이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에 반해서 레베카는 딱히 특별한 점이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레베카 네가 제일 좋았어."

"거짓말이죠? 표정에 다 드러나요."

그렇게 말하며 혀를 내밀어 메롱하는 레베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레베카의 금빛 머리칼을 헝클어지며 아름답게 찰랑거렸다.

"앨리스는 속을 알 수가 없었어. 날 좋아하는지, 호의를 품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서 초조했고. 헬레나는 테크닉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것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의 대용품 취급을 받는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았거든."

내 말에 레베카가 살짝 당황하더니 '헬레나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거에요.'라고 작게 덧붙였다. 이런 와중에도 친구를 두둔하는 걸 보면 정말 사이가 좋구나 싶었다.

"아무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라는 감정을 섹스 중에 느낄 수 있던 것은 너뿐이야. 레베카."

내가 말하고도 쪽팔리는, 밤에 이불을 수백번은 찰 것 같은 대사였지만 레베카는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는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부...부..."

"부?"

"부끄러운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렇게 소리지르며 레베카의 손이 내 뺨을 후려쳤다. 자기 딴에는 나름대로 약하게 때린 것 같지만 순간 턱이 나가는 줄 알았다.

와, 진짜 아팠어. 게임 시스템 덕에 얻은 스텟이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다른 여자들과 섹스한 현장을 들킨 것 치고는 나름대로 싼 벌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야, 근데 부끄럽기로 따지면 내가 더 부끄럽지.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며 나는 뺨을 문질렀다. 슬쩍 거울에 비춰보니 뺨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레베카도 아무래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우물쭈물거리며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내 뺨에 손을 뻗었다.

"...아파요?"

"엄청 아파."

내 말에 레베카가 내 뺨을 약하게 꼬집었다. 아야.

"이럴 땐 빈말로라도 딱히 안 아프다고 해주는거 아니에요?"

"난 가식없는게 유일한 장점인 남자라서."

내 말에 레베카가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오빠는 가식 없는 것 말고도 장점이 많아요. 상냥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지 못하고, 바보 같으면서도 해야 할 때는 제대로 할 줄 아는 남자니까요."

"장점이 아니라 욕 같은데."

그렇게 말한 나도 레베카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탱크톱에 터질듯이 팽팽한 가슴에 슬쩍 손을 뻗었다.

"...오빠."

"왜?"

천천히 천 너머로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을 즐기며 묻자 레베카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하지만 얼굴을 붉히면서도 싫지는 않은듯 몸을 더욱 밀착하는 레베카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동시에 주물렀다.

탄력적이면서도 말랑말랑한 극상의 감촉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레베카와 나는 입을 맞췄다.

오해가 풀렸다는 안도감과, 한 발 더 레베카에게 다가갔다는 만족감이 몰려오면서 나는 반쯤 고삐가 풀린 상태였다.

지난번의 격렬한 플레이에 대한 사과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리고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육덕진 몸을 부드럽게 다루는 것은 몸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레베카의 탱크톱을 그대로 벗겨 던져버리고, 핫팬츠 역시도 그대로 내려버렸다.

동시에 드러난 커다란 젖가슴과 연한 금빛의 음모가 무성한 음부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레베카는 침대 위에 뻗어 있는 헬레나를 곁눈질하며 부끄러워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레베카의 유두를 살짝 꼬집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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