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H로 레벨업-150화 (150/199)

00150 병약 소녀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래서 그런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 그에 걸맞은 사례는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 백화점 상품권 100만원짜리를 증정하겠습니다."

자그마치 100만원짜리 상품권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백령은 동요하는 기색을 비쳤다. 뭐, 나도 백령도 그렇게 돈에 구애받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백령은 아직 학생인만큼 돈에 대해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고등학생한테 100만원은 쉽게 범접 못하는 금액이니 말이다. 그렇게 백령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앞의 남자에게 말했다.

"하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내 말에 화색이 된 남자는 백령과 나를 안내하며 백화점의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가르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니라 지하의 의상실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지하에는 고객들이 아무도 없었다. 몇몇 사람들만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전화를 하고 있을 뿐,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감독님을 모셔오겠습니다."

"...흠."

방금 전에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가볍게 사진 촬영만하는 건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꽤 규모가 크게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뭐, 규모가 클수록 재밌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고, 나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던 백령의 얼굴이 화악 붉어져 있었다.

그래,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온갖 옷들이 다 있었다. 원피스부터 웨딩 드레스, 거기다 천 면적이 손 한뼘 남짓인 수영복까지. 그야말로 고급스런 옷들의 향연이었는데, 백령의 시선은 그 야시시한 수영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걱정 마, 저런 옷 입히려고 하면 내가 말려줄테니까."

내 말에 백령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도 그 수영복에서 시선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혹시 저거 입고 싶은거 아냐? 그렇게 물어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도 그런 장난을 쳤다가 삐졌다가는 얼마나 갈 지 몰랐기에 그만뒀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돌아왔다. 다만, 혼자가 아닌 거친 수염을 기르고 있는 야성미 넘치는 남자를 데리고 말이다.

"호오, 독특한 모델을 데리고 왔구만."

"'그' 복장에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동감이군. 특히 저 머리칼이 옷색이랑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아. 피부도 새하얗고, 어쩌면 오늘 모델들 중에 제일 좋은 사진이 나올 수도 있겠구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백령을 쳐다보는 그들에게 내가 물었다.

"그래서, 백령이 입게 될 옷은 뭡니까?"

내 물음에 그제서야 나를 쳐다본 감독이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중얼거렸다.

"호오... 이쪽 남자도 제법. 몸도 괜찮고, 옷빨도 잘 받겠는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여기 있는 이 소녀...백령이라고 했던가? 백령이 입게 될 옷은 다름 아니라 웨딩드레스라네. 이번에 유명 디자이너가 새로 만든 옷인데 벌써부터 명성이 자자하지. 근데 원래 오늘 오기로 했던 배우가 차가 막혀서 못 오고 있다고 하더군. 20분 뒤면 시작인데 말이야."

"시작이라뇨?"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바톤을 이어받은 남자가 대략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기획된 이벤트가 바로 '워킹(walking)'. 즉 모델들이 길을 가르고 걸어 나와 10초 정도 자신을 과시하다가 돌아가는 그 워킹을 말하는게 맞았다.

"...그래서, 웨딩 드레스 입고 그걸 하라고요?"

"네, 이번이 기획된 옷이랑 무척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요."

"백령아, 괜찮겠어?"

내 말에 백령이 머뭇거렸지만 얼굴을 붉히면서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 대신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이죠? 제 권한 내의 일이라면 뭐든지..."

"태, 태훈오빠랑 같이 하고 싶어요."

그 말에 눈 앞의 남자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덧붙이자면 나도 반쯤은 어이가 탈출한 상황이었다. 아니, 물귀신도 아니고 왜 날 끌어들이는거야. 혹시 아직까지도 화가 안 풀린건가? 아직도 삐져서 이러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백령과 시선을 맞추려 했지만 백령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연신 얼굴을 붉히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게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왜 그런 부탁을 한건지 나로서는 짐작이 안 갔다.

그렇게 눈 앞에 있던 남자는 황급히 뛰어가더니 다시 감독을 데리고왔다.

"하핫! 좋아좋아. 나도 마침 듀엣을 생각해놓고 있었거든. 마침 원래 다른 모델이 입기로 했던 정장이 있으니 그걸 이쪽의 남자가 입고, 웨딩 드레스는 백령이 입는걸로 가자고."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감독은 사람을 불러 옷과 함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여자를 두 명 데려왔다. 그렇게 10분만에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서로를 쳐다봤다.

약간의 메이크업을 받은 백령은 그야말로 청초한 소녀라는 느낌이었다. 창백한 피부가 약간의 화장이 더해지니 부드럽고 고운 피부처럼 보였고, 새하얀 머릿결과 한쌍처럼 어울리는 순백의 드레스가 백령의 청순가련함을 강조했다.

멍하니 백령을 쳐다보고 있다가 백령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왠지 모르게 달콤한 향기까지 나는게 지금 이 순간의 백령이 무지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앵두같은 입술이 핑크빛으로 반짝이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백령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인내심이 날아갈 것 같았기에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렇게나 빤히 쳐다보고. 오빠는, 이런 옷이 좋은거에요?"

"그게 아니라... 뭐랄까. 꾸민 널 보니까 조금 생소하다고 해야하나."

흠흠, 내가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자 백령이 멍하니 서 있다가 잠시 후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백령의 손에서도, 내 손에서도 부끄럼 때문인지 연신 땀이 흘러나왔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우리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화장이랑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느라고 순번을 제일 뒤로 뺐기 때문인데, 혹시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건 아니겠지.

속으로 제발 아니길 빌면서 나는 스태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와서는 '웨딩 드레스랑 정장 준비해주세요!'라고 소리치는걸 듣고는 조심스레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백령도 약간 떨리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내가 맞잡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자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살짝 미소를 짓고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하자 스태프가 말했다.

"입장해주세요! 끝까지 걸어간 다음 10초 정도 알아서 어필하시면 됩니다!"

알아서 뭘 어떻게 어필하라는거냐고. 나는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백령과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걸어 커튼 뒤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의 사람들의 시선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를 사람들도 다수, 이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심력을 소모했지만 나는 꿋꿋이 백령의 손을 잡은 채 걸었다.

다행히도 백령도 어느 정도 떨기만 할 뿐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나왔고, 길의 끝부분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10초를 버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의 끝부분까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키!스!해!키!스!해!""

이 상황은 고등학생 때도 몇 번 본적 있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그들의 고함 소리에 멍하니 정신을 놓은채 2초가 지나갔고, 내 목덜미에 느껴지는 약간은 서늘한 감촉에 고개를 돌리니 백령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면서 내 목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의지를 읽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높이에 맞췄고, 다음 순간 조심스레 그녀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반쯤 홀린것처럼 나 역시도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고,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휘감은 채 껴안았고, 동시에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수와 고함이 터져나왔다.

"꺄아아악!!"

"멋지다아!!"

그렇게 우리는 잠시 동안 키스를 한 뒤 다시 우아한 걸음걸이로 무대 뒤로 빠져나왔다.

"......"

"......"

무대 뒤로 빠져나오고 나서 백령과 나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해야할 말이 모두 지워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머릿속이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방금 전에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거지?

아무리 분위기에 휩쓸렸다고는 해도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아니, 나야 뭐 기분 좋았으니 그렇다 쳐도... 백령은 나보다 훨씬 더 후회하지는 않을까. 백령에게는 나름 첫키스였을텐데 말이다.

조심스레 백령의 옆으로 이동해 표정을 확인하니 백령은.......

"으헤헤...후후...드, 드디어 해냈어..."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무지하게 소름끼쳤다. 백발의 미녀가 아저씨처럼 음흉하게 웃으면서 혼잣말을 해대는 광경은 조금 무서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겁나게 쫄렸다.

그렇게 나는 백령과 등을 맞댄 채 가만히 기다리니 감독과 부장이라는 남자가 다가왔다.

"휘유, 성대하게 해줬구만. 덕분에 관객들 호응도가 최고였어. 자네가 입은 정장이랑 소녀가 입은 웨딩 드레스 주문이 벌써 쇄도할 지경이라고."

"그거 축하할 일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그쪽 백령이라는 소녀. 모델로 활동해볼 생각없나? 다른 모델들은 염색이다 뭐다 해서 머릿결을 엄청 상하게 하는데 그에 반해서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머릿결에다가, 얼굴도 예쁘고 말이야."

"......"

백령은 안 듣는건지 관심이 없는건지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건네주고는 자리를 떴다. 고마웠다는 말과 나중에 꼭 한 번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덕분에 오늘 행사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소정의 보상입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건넨 봉투에는 검은색의 카드와 함께 100만원짜리 상품권이 두 장 들어 있었다.

"저희 백화점 블랙카드입니다. 모든 상품의 15%를 할인해드리니 부디 얼마든지 사용해주시길. 그리고 상품권은 생각보다 훨씬 잘 해주셨기에 한 장 더 넣어드렸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고, 옷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옷은 샘플이니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연인이신 두 분께 무척이나 잘 어울리더군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연인이라는걸 부정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남자를 보면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살다살다 내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올 줄이야.

뭐, 정식은 아니고 그냥 모델 워킹이긴 하지만... 양복을 입고, 파트너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키스까지 하다니. 어지간한 결혼식 뺨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공개적 수치플레이!!'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로 죽고 싶었다.

고등학생한테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하다니. 포돌이가 날 봤다면 진작에 잡아가고도 남았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백령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백령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내게 안겨들었다.

그녀를 밀어내기엔 방금 전의 일도 있고해서 그대로 그녀를 안아주자 그녀가 뜨거운 숨결을 내쉬면서 내게 몸을 비벼댔고, 나는 그제서야 꽤나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있으면서 스킬 효과가 유지됐다는 것을 떠올렸다.

달콤한  향기와 함께 뜨거운 숨을 내쉬는 백령의 눈에는 열망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듬뿍 담겨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후원, 원고료 쿠폰은 연재 속도나 연참 확률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추천해주시면 연참 확률 UP!)

1.다음화부터 H씬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번 H씬은 가늘고 길게 가다가 갑자기 굵어질 예정입니다.

2.으으... 아직도 시험이 몇 개 남아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별로 없네요. 추석때쯤은 되야 비축분을 넉넉하게 쌓아서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달 중에는 서너 편 정도 밖에 더 연재 못할 것 같네요.

3.추천,코멘트,쿠폰은 사랑입니다. 시험기간에는 뭘 해도 재밌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듯이 평소에는 절대 안 떠오르던 소재와 히로인들이 밤마다 절 괴롭히고 있습니다.

꾹 누르고 공부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군요.

4.즐거운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