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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 레벨업-145화 (145/199)

00145 병약 소녀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래요, 그러고보니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요."

그렇게 말하는 백령은 무척이나 씁쓸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기억해주시길 바랬는데."

그렇게 말한 백령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만 해도 옆에 있던 링거를 꽂은 봉은 없는 걸 보니 지금은 조금 괜찮은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살짝 붉은게 혈색도 좋아보였다.

몸을 일으킨  백령이 슬리퍼를 신으려는 순간 발이 미끄러졌는지 그대로 앞으로 자빠졌고, 나는 그 순간 손을 뻗어 백령의 허리를 낚아챘다. 아슬아슬하게 백령을 품에 안은 내가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백령이 울먹거렸다.

"...흑...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걱정..."

그렇게 말하는 백령은 정말로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백령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대략 10분 가까이 울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된 백령은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태훈 오빠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의 일이었어요."

5년 전이라면... 나는 시간을 되감듯이 기억을 떠올리다가 중얼거렸다.

"...봉사활동?"

내 말에 백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5년 전에 저희 부모님은 병원일을 하시느라 여념이 없어서 저를 제대로 돌보실 수가 없었고, 저는 병원에 있는 방에서 다른 애들과 함께 있었어요. 그 때도 지금이랑 다를 것 없이 무척이나 몸이 허약해서 다른 애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어두운 안개를 걷히듯이 하나둘씩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래, 5년 전쯤에 설화가 분명 나랑 같이 봉사활동을 하러 가자고 했었고, 나는 설화랑 같이 괜찮은 봉사활동을 찾다가 주말마다 병원의 아이들를 돌봐주는 것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기억에 떠올랐다. 늘 혼자서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이가. 그 때는 짧은 흑색 단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색이랑 분위기가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본 거였나.

살랑이는 그녀의 긴 백발이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몇년 사이에 정말로 많이 변했구만. 그러고보니 나는 내 나름대로 백령을 신경썼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애들이 설화를 좋아했던 것과 달리, 나는 애들을 돌보는 것에 서툴렀기에 설화의 덤 정도로 취급받았는데, 잠깐 쉬는 시간에 백령의 옆에 있다가 말을 하게 됐었다.

설화도 다른 애들은 자신 혼자서 돌볼 수 있으니 백령을 부탁했었고 나 역시도 백령에게 끌렸기에 수락했다.

물론 연애 대상으로 끌렸다는게 아니었다. 백령은 그 때 12살이었다. 나는 그런 꼬맹이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로리콘이 아니었고, 그저 백령이 겉도는 것을 보면 과거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령과의 첫 만남은 굉장히 신기했었는데, 그녀에게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순간 돌아오는 대답이 독특했다.

"어차피 다른 애들이랑 잘 어울리라고 말할거죠? 걱정은 고맙지만 필요없어요. 저는 이게 편해서 이러고 있는거고, 딱히 왕따라거나 그런 걸 당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

차가운 목소리로 쏟아내듯이 말을 마친 백령은 다시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는 별 수 없이 백령의 옆에 앉아서 조금 쉬다가 설화에게 되돌아갔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백령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백령은 내 행동의 저의가 궁금했는지 힐끔거렸지만 결국 그날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주, 나는 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빌려 백령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렇기를 자그마치 한 달을 반복하자, 그제서야 백령이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제 옆에서 책을 읽는거에요?"

"왜 이러긴. 나도 책 읽는거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들어올렸다. '죽은 시인의 사회' 백령 같은 어린애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백령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백령은 평소 어른 스러운 모습을 보였었지만 내 도발에 넘어왔고, 그날은 한참 동안 투닥거렸다. 그래봤자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나는 논리로도, 힘으로도 그녀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투닥거리고 나서야 그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는 것과 애들과 놀 수가 없으니 책을 읽게 됐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이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매일같이 이곳에 있는다는 것. 그녀의 아빠가 병원장이라는 것을 알고는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백령은 평소에도 어딘가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납득했다.

그리고 다음주부터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교는 어땠냐, 이 책은 읽어봤냐, 이런 사소한 대화도 점차 나누게 됐고, 1년, 2년,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백령은 이제 중학생이 됐음에도 늘 그곳에 있으면서 날 기다렸고 나 역시도 설화와 함께 늘 그곳에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백령이 내게 물었다.

"오빠랑 설화 언니는 사귀는 거에요?"

그 말에 나는 쑥쓰러워하면서 긍정했고, 왠지 모르게 실망하고 충격받은 듯한 표정의 백령을 볼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백령은 나와 조금씩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백령을 대하자 금세 평소처럼 대화를 하곤 했다.

그도 그럴게 백령이 초등학생일때부터 그녀를 대했기에 나는 백령이 거의 동생이나 다름 없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차가운 척, 도도한 척 하지만 사실은 애정결핍에 가까운 여동생이었다.

애초에 내가 중학교 3학년 일 때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4살이나 차이가 나는 셈이었고, 10대한테 4살 차이는 엄청난 차이였다.

그렇게 나는 백령을 동생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백령은 가끔 아쉬운듯이 나를 쳐다보면서 어리광을 부리거나 몸을 밀착시키곤 했지만 개의치 않고 그녀를 보살폈다.

평소 그녀가 집에서 부모님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그녀의 성격상 다른 애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그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줄 알았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순간을 떠올리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느 정도 적응했어도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모습은 말이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몇 번 하자 그제서야 지끈거리는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었다.

설화가 죽은 직후, 나는 현실도피를 하는것처럼 방에 틀어박혔다. 그랬으니 당연히 백령을 보러 봉사활동을 올 리도 없었고 백령은 아무래도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 주에 설화 언니랑 태훈 오빠가 오지 않길래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었어요. 두 분은 늘 안 오는 주에는 미리 연락을 주셨으니까요. 그래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다음주도, 다다음주도 안오셔서...... 그래서, 저는 제 나름대로 조사하고 나서야 사실을 들을 수 있었어요."

"......"

"설화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저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나 해맑던 언니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늘 병원에서 생활하는 백령은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사지 급사가 아니다. 차에 치여 병원으로 오지도 못하고 사람이 짓뭉개졌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어제 오빠를 거기서 만났을 때 저는 꿈인 줄 알았어요."

쓸데없는 희망을 불어넣는 악몽이요. 그렇게 덧붙인 백령이 손을 뻗어 내 뺨을 붙잡았다.

"혹시, 어제 소난 언니를 만나게 된 것도..."

그렇게 말하는 백령은 내가 아직도 설화의 트라우마에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설화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괜찮았다.

"아니, 그런건 아니야."

그런데 뭐라고 둘러대야 되는거지. 다른 여자한테 사랑에 빠졌다가 차였다고 말하면 백령이 왠지 나를 쓰레기 보는 눈빛으로 볼 것 같았다. 소난이 설마 이미 백령한테 떠벌린건 아니겠지?

'아니, 떠벌렸으면 저렇게 물어볼리가 없지.'

나는 속으로 안도하면서 적당히 둘러대기로 결론내렸다.

"그냥 요즘 이유 없이 약간 우울해서."

"그래요? 그럼 아빠한테 우울증에 좋은 약을..."

백령이 웃음꽃을 피우며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순수한 꼬맹이라니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난 우울증이지만 넌 불치병이라며."

내 말에 좋아하며 말하던 백령이 축 늘어졌다.

"...네, 언니한테 들으셨겠지만 수술도 3주 남았어요."

덧붙이자면 확률도 극악이라고 했다. 해도 안해도 수명을 보장할 수 없지만 안하면 그조차도 연장할 수 없으니 필사적으로 하는 것일뿐.

'얘는 병원장 딸이면서 대체 왜 그런 것도 몰랐던건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백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병을 낫게 해주는 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 동안 즐겁게 해주는건 할 수 있어.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안긴 백령의 몸을 들어 침대 위에 앉힌 뒤, 옛날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에 백령은 마치 고양이처럼 기분좋게 갸르릉거리면서 숨을 내쉬다가, 잠시 후 황급히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쳐냈다.

"저, 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이런건 안 돼요!"

"좋아했으면서."

"그, 그래도 안 돼요! 더 이상 어린애 취급하는건 금지, 금지에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백령을 보니 조금 안심됐다. 그래도 완전히 체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적어도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태도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럼 뭘 해주면 되는데? 같이 책이라도 읽을래?"

나는 그녀의 침대 옆에 배치되어 있는 책장에서 책을 두어권 꺼내들며 말했고, 백령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거절했다.

"아뇨, 책 읽는 것보다는... 좀 가까이 와주세요."

내가 그녀의 침대 옆까지 다가가자 백령은 침대에 앉으라고 말했고, 나는 조심스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몸에 약간의 충격이 가해지며 나는 옆으로 엎어졌다.

"...뭐하냐?"

그렇게 말하며 나를 넘어뜨린 백령을 보니 백령은 연신 얼굴을 붉히면서 내 위에 올라탔다. 지금 당장 그녀를 떨어뜨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알기로 백령은 이렇게나 몸이 가까워지면 얼굴을 잔뜩 붉히면 순정녀였는데 말이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음란해진건!'

걱정스런 마음에 고개를 드니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부끄러워하며 어버버거리는 백령이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군.

"그, 그러니까... 저, 절 안는거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팔을 그녀의 등에 휘감으며 내 허리 위로 당겼고, 그녀는 그대로 내 가슴팍 위에 엎어졌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과 내 얼굴이 채 3cm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다가왔지만 백령이 얼굴을 붉히며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무, 무슨 짓이에요!"

"뭐긴, 부탁대로 안아줬잖아."

내 말에 백령이 더욱 얼굴을 붉히면서 횡설수설했다.

"그런 의미로 아, 안아달라고 한게 아니라......"

그렇게 한참 동안 횡설수설하던 백령을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소리쳤다.

" 저랑 세, 섹뜨하는거에요!"

......뭐?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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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애정결핍 소녀 모에에... 개인적으로 약간의 집착 캐릭터 좋아합니다. 백령은 일종의 소꿉친구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오늘 사촌 동생 과학 가르쳐 주다가 깨달았는데 '입사각'을 반복해서 말하다보니 뭔가 되게 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만 그런건 아니죠?

3.일상생활 가능하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마세요. 그럼 전 이만 다음편 적으러 가보겠습니다.

4.추천이랑 코멘트, 쿠폰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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