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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 레벨업-133화 (133/199)

00133 아이돌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렇게 반쯤 반신반의하면서 준비를 마친 나는 그녀와 매일 만나던 강변가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갔다. 하지만, 평소 만나는 시간으로부터 10분이 지나도 그녀가 나오지 않자 나는 슬슬 포기해야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슬슬 집에 돌아갈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멀리서 모자를 쓴 그녀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지만 트레이닝복을 입고 이쪽으로 가볍게 뛰어오고 있는 사람은 틀림없는 모자녀. 그녀였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녀가 가까이와서 내게 말을 걸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안 뛰실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서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풀며 그녀의 속도에 맞춰서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뛰면서 나는 그녀의 심리 상태를 파악 하려 했지만 상태창이 들어먹지도 않았고, 그녀가 앞만 보고 달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그녀의 뒤를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대략 20분 정도 뛰고 나서야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옆에 서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쑥맥이나 다름 없는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그냥 적당한 외모스텟과 스킬 덕에 손쉽게 꼬실수 있었던 것에 반해, 그녀는 그런 것에 대해 면역력이 있었다. 그러니 외모가 아닌 입담이나 다른 매력을 이용해서 그녀를 사로잡아야한다는 소리인데, 심지어 시간제한까지 걸려있으니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달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집 주변에 또 어슬렁거리는 녀석은 없죠?"

최대한 걱정을 연기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멈칫했다가 다시 방금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네. 덕분에요."

목소리도 좋은 걸 보니 분명 모자 속에는 무척이나 예쁜 외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쪽 화제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아! 그래, 지난번에 식사 대접 받은게 감사해서 그런데, 혹시 운동하고 나서 아침이라도 같이  안 드실래요?"

아, 젠장. 내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지. 점심도 아니고 아침을 왜 같이 먹어. 내가 말하고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갑작스레 뛰는 것을 멈추고 되물었다.

"...아침이요?"

이제와서 아니라고 했다간 더 호감도가 폭락하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네! 운동 하고 나서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 먹는 거죠."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풋'하고 웃었다. 작게 새어나온 웃음소리에 나는 안도와 함께 쪽팔림이 동시에 몰려왔다.

"...좋아요, 도시락 기대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에 듣지 못할 정도로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나를 뒤에 두고 다시 뛰기 시작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퀘스트 때문에 반 강제로 시작한 공략이었지만, 어쩌면 정말로 그녀에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후우."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조심스레 그녀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멀다고 느껴졌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은 운동을 마치고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서 루시에게 부탁햇다.

"루시, 혹시 아침에 운동할 때 먹을 도시락좀 싸줄 수 있어?"

"...도시락은 왜요? 그냥 집에 와서 먹으면 되지 않아요?"

"아니, 매일 같은 코스를 운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식사를 한 번 대접받았거든. 그래서 아침에 운동한 다음 식사할 수 있게 도시락이나 챙겨가볼까 해서."

"흐응~ 혹시 여자에요?"

움찔. 루시의 날카로운 지적에 몸이 떨렸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하핫."

루시는 여전히 의심스러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이미 식사를 대접받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요.'라고 하고는 제대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약속해주었다. 정말이지 기특한 동거녀였다.

"그럼, 운동 끝날 때 즈음에 제가 찾아가서 갖다드릴까요?"

그런 루시의 말에 내가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집에 와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루시의 의심스러운 표정은 더욱 심해졌지만, 몇 번 괴롭혀주니(주로 육체적으로 말이다) 수긍해주었다.

그렇게 다음날에도 나는 모자녀와 함께 만나 운동을 했고, 한 시간 정도 조깅을 끝낸 다음 그녀를 벤치에 앉아 쉬게 한 뒤 집까지 뛰어와서 루시가 준비해놓은 도시락을 챙겨서 벤치로 돌아갔다.

평소 체력을 단련해놓은 덕분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루시가 준비해준 도시락은 크기가 무척이나 컸는데, 어제 준비한 반찬을 보니 어지간한 저녁 만찬 수준이었다.

평소 내가 먹는 음식이랑 똑같다면 맛도 수준급이겠지. 그렇게 도시락을 챙겨 벤치로 돌아오니 그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태훈 씨가 준비한건가요?"

"뭐... 아침에 일어났을때 거의 다 해놨습니다."

작업하는 여자에게 동거녀가 준비해줬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작은 거짓말을 했고, 그녀도 그 이상 생각하지는 않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시락을 싼 보자기를 천천히 풀었다.

보자기가 풀리고 나온 고급스러운 도시락이 담긴 상자가 나왔고, 조심스레 상자를 여니 온갖 진수성찬이 들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준비할 수 있는 닭튀김을 비롯한 튀김류와, 나물들까지. 아침에 먹으면 체할 것 같을 정도로 대단한 양이었고, 모자녀는 조금 질린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준비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니, 내가 준비한게 아니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누르고 둘러댔다.

"제가 손이 좀 커서요."

내 말에 모자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넣어져 있던 젓가락을 꺼내 나물과 밥을 위주로 먹기 시작했다. 고기반찬도 가끔 먹기는 했지만 튀김류에는 거의 손을 대질 않았다.

"튀김은 별로 안 좋아하세요?"

"아뇨, 좋아하긴 하지만... 운동하는데 튀김 먹으면 조금 그래서요."

체중 관리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와 함께 얌전히 식사를 계속했다.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식사를 하니 꼭 부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런 여유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우리는 식사를 마쳤다.

양이 많았지만 무척이나 맛있어서 그런지 그녀도 나도 결국은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나물이나 채소를 그녀가 거의 다 먹고, 튀김이나 고기는 내가 다 먹어치운 셈이다.

"요리 잘하시네요. 간도 맞고, 종류도 다양하고."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음, 괜히 거짓말했나.

"잘 먹었어요. 그럼 내일 뵈요."

식사 정리가 끝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그녀의 집 방향으로 천천히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어영부영해봤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빠르게 거리를 좁힌다.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내 말에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갈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녀의 미성을 듣는 순간 나는 손으로 주먹을 쥐며 속으로 환호했다. 좋아, 이전의 그녀였다면 거절했을 일을 이번에는 수락했다. 그녀와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힌 것이다.

이대로 거리를 좁힌다면 2주 안에 공략하는 것도 완전히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옆에 선 채 집까지 걸어가는 길을 에스코트했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뒤에 헤어졌다. 텅 비어있었던 그녀의 집을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내내 도시락 준비를 해준 것인지 루시는 집에서 곯아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런 루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학교를 갈 준비를 했다.

그럼, 내일은 어떤 대화를 해야 그녀와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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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비축분 쌓으면서 H씬 쓰는데... 아아 좋다. 몇 편 동안 안 적으면서 애태워서 그런지 너무 좋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최근에 봤던 성인만화(동인지)에 빙의해서 자신이 TV로만 봤던 아이돌이, 자신의 밑에 깔려서 신음하는걸 상상하니..(꿀꺽)

2. 아이돌 히로인 하자고 한 독자분 누군진 몰라도 나이스 샷. 좋은 조언이었습니다.

3. 다음 챕터 히로인도 하나 구상중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나올 것 같습니다. 특수한 플레이가 가능한 캐릭터거든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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