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아이돌 공략을 시작합니다. =========================
그렇게 그녀를 도와준 다음 날, 나는 모처럼의 공휴일날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빈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빈아? 무슨 일이야?"
곧 있으면 모의고사라 공부에 집중한다고 부모님한테 들었는데 오랜만에 온 연락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전화를 받으니 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늘 시간 괜찮아?"
"나야 괜찮은데. 빈이 너 모의고사 준비하는거 아니었어?"
내 말에 빈이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랬는데... 솔직히 요즘 별로 의욕이 없다고 해야 할까. 별로 흥미가 없어서."
그 말을 들은 나는 빈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도 사춘기 때 저러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빈이는 이때까지 착실하게 군말없이 공부를 했던 모범생이었고, 나는 이때까지의 경험으로 빈이 같은 모범적이고, 자기 절제가 강한 아이들일수록 한 번 어긋나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 겪어봤었으니까.'
"...알았어, 그럼 내가 집으로갈게."
빈이의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은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빈이를 소중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빈이는 내 여자이기 이전에 '가족'이니까. '설화'가 돌아오고, 그녀들에 대한 기억이나, 존재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빈이만큼은 가족으로 내 옆에 남아있을테니 나는 빈이를 소중하게 여겨야만 했다.
나 하나만을 위해 10년 가까이 바라봐 온 그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뭐, 여동생을 따먹은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집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신발장에는 신발 한 켤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부모님은 아무래도 또 출장을 가신 모양이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레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빈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곳에는 침대에 웅크려 앉아있는 빈이가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우울해보여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가, 조심스레 빈이를 끌어안았다.
내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웅크려 앉아 있던 빈이는 내 갑작스런 포옹에 당황한 듯이 '꺅'하고 귀여운 비명을 질렀지만 나인 것을 눈치채고는 내 등뒤에 팔을 휘감고는 천천히 안겼다.
나는 그런 빈이의 등을 그저 토닥이면서 빈이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고, 몇 분 동안 서럽게 울먹이던 빈이는 조금 진정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오빠. 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왜? 뭘 모르겠는데?"
내가 다독이듯 묻자 빈이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건 엄마 아빠 때문이잖아. 엄마 아빠는 오빠가 그... 설화 누나가 죽은 뒤로 방에 틀어박혔고, 걱정했었거든. 그래서 나는 나라도 엄마 아빠한테 안심시켜드려야겠다 싶어서 최대한 모범생처럼 굴기 위해 노력했고..."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빈이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 저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나름대로 빈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은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부모님은 두 분 다 맞벌이라 바쁘시니까 걱정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모범생처럼, 꼼꼼하고 착실한 모습을 연기했어. 혼자 집에 있는게 무서워도, 제대로 음식하는 법이나 집안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도 인터넷에서 찾아가면서 혼자서 다 해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빈이에게서는, 엄청난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오빠가 집에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어. 둘이서 함께 있었으니까. 두려움도, 힘든 것도 반으로 나눌 수 있었어."
하지만, 나는 대학에 붙고, 설화가 죽은 뒤 자취방에 틀어박혔다. 빈이는 그때부터 엄청난 고독과 외로움에 휩쌓였을 것이다. 내가 설화를 잃었을 때 느꼈던 절망감에 준하는 고통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빈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빈이가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착각이다.
빈이는 혼자서 해야만 했던 것이다. 스스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해야 했을 뿐이다.
나는 빈이가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착각이다.
빈이는 그 누구보다도 외로웠다. 다만, 그것을 내색하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때 나는 방구석에 쳐박혀서 울부짖고 있었고, 늘 그렇듯 방임주의인 부모님은 출장으로 집을 비웠다.
".......미안. 미안. 미안해 빈아."
나는 그제서야 내가 빈이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직감했다.
빈이가 내게 집착하는게 조금 심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이상할정도로 집착하고, 이상할정도로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빈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였기에, 그리고 빈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부모님 없이 간신히 둘이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빈이는, 내가 설화와 함께 대학을 붙고, 자취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빈이는 그 때 분명 웃으며 나를 축하해줬지만, 속마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세게 껴안았다. 빈이의 온기와 함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런 빈이를 다독이며 연신 미안하다고 그녀에게 속삭였고, 빈이는 나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가 서로를 위로한 뒤, 나는 빈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했다.
"...자취는 그만둘게. 루시랑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와야겠어."
"...그래도 돼?"
빈이는 걱정스런 표정이면서도 약간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빈이의 표정을 보고 확실히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표정의 빈이를 두고, 계속 자취를 한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이지. 거듭 말하지만 나한테 있어서 두구보다 소중한 건 너야. 빈아."
"...다시 한 번 말해줘, 오빠."
"사랑해, 빈아."
그런 내 말에 빈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세게 껴안았다. 방금 전까지 흘리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말랐고, 나는 그제서야 빈이의 부드러운 가슴이 내게 닿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 똘똘이가 슬슬 커지려고 하는 순간, 나는 빈이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이런 훈훈한 상황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그럼! 일단 루시한테 연락하고 빠른 시일 안에 집으로 돌아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슬쩍 침대에서 빠져나와 일어섰다. 빈이는 어딘가 아쉬운 표정으로 조금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냐고 어리광부렸지만 나는 빈이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얼버무린 뒤 황급히 집에서 빠져나왔다.
참고로, 빈이한테 정말로 공부할 의욕이 없냐고 물었더니 나랑 같은 대학을 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거짓말처럼 보이진 않았으니 진심이겠지. 불행중 다행이다.
"...후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빈이가 이제는 나를 완전히 믿어준다는 것일까. 이때까지 꾹 참았던 감정을 쏟아내고, 나한테 사실대로 말해줬다는 점이 고마웠다.
나는 빈이와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멀어져 있었다. 가족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로 한 걸음 더 다가갔으니 앞으로는 빈이와의 관계도, 어긋나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빈이가 어째서 나한테 그렇게 집착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한 명의 존재에게 감사를 표했다.
'에로스'
녀석이 준 능력 덕분에 나는 진실을 알고, 사람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일도 에로스의 권능으로 변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빈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릴때 봤었던, 진심이 담긴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
"...루시가 한 소리 하겠네."
빈이와 있었던 일은 루시에겐 비밀로 하기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무래도 문자가 온 모양인데, 발신자가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모자녀:오늘 저녁에 시간되세요?]
볼 때마다 모자를 벗지 않고 있어서 등록한 이름이었는데, 이제 보니 조금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핸드폰을 조작해 시간이 된다고 답장을 보냈고, 그녀에게서 금세 답장이 왔다.
[지난번 일에 대한 감사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리고, 동시에 퀘스트 창 하나가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후원, 원고료 쿠폰은 연재 속도나 연참 확률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추천해주시면 연참 확률 UP!)
1.이번 편도 side 스토리로 빈이의 관점에서 쓰려고 했다가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서 포기하고 주인공의 관점으로 적어버렸습니다.
2.이번 편은 조금 길게 보고 느긋하게 적을 생각입니다. 이때까지 H씬을 너무 많이 적었어요. 이번편은 조금 진지하게 주인공의 여심 공략을 다룰 예정입니다.
3.쿠폰, 추천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