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5 수업 참관을 시작합니다 =========================
학교 안에는 나 말고도 수업참관을 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40~50대의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아직 20대에 정장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 선생으로 오해하셔서 길을 묻는 분들도 종종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동생의 수업참관을 대신하러 왔다고 하니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아무튼, 이리 저리 헤메던 나는 수빈과 수연의 반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보통 쌍둥이는 다른 반에 배정하는게 정상인데, 이 둘은 어떻게 된 것인지 둘이 같은 반에 배정되어 있었다. 혹시 임정은이 부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애들이 복도를 걸어다니면서 나를 비롯한 다른 학부모님들을 힐끔거리면서 의식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창 때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좋을 때였다. 가장 풋풋하고,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때가 바로 저때였다.
지금은 현실에 발을 딱 붙이고 서 있었기에(게임 시스템을 얻은 이후로는 아니지만) 나는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그렇다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 때 죽어라 공부해댔던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하루 4시간도 채 자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물론 나는 옆에서 설화가 있어서 할만했지만 다른 애들이었으면 때려쳐도 진작에 때려쳤을 것이다.
뭐, 설화가 아니었다면 적당히 설렁설렁 공부하다가 적당한 대학에 들어갔겠지만, 나는 설화와 함께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있는 애들한테도 그런 목표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애가 있었으면 했다. 사람이란 주변의 사람에 이상할정도로 많이 영향을 받는 존재였다. 물론 그 존재가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어디보자... 수빈이랑 수연은.'
내가 적당히 반 안을 스캔하면서 둘러보니 창가의 제일 구석 자리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수연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도 다소곳이 앉은 수빈도 말이다.
수빈은 이전에 없을 정도로 고상한 아가씨같은 연기를 했는데, 그녀의 본 모습을 아는 나는 그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마 반 애들도 '양아치 같던 애'가 갑자기 저렇게 이미지를 바꿔버렸으니 그 이유가 궁금할지도 모른다.
나야 뭐 수빈이 내게 장난을 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창가쪽에 가서 서 있자 반 애들의 흥미어린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세이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이면서 적당히 창 밖을 구경하려는데, 누군가가 내게 와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수빈이나 수연인가? 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매우 익숙하고, 친숙한 얼굴이 있었다.
"...빈아?"
"오빠, 여긴 어쩐 일로 온거야? 오빠한텐 수업 참관 있다고 말 안했는데?"
빈이의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 설마하니 빈이랑 같은 반일 줄이야. 슬쩍 보니 수빈이랑 수연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오로지 내 앞에 서 있는 빈이만 살짝 의문 어린, 그리고 묘하게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평소에 무뚝뚝한 척하면서도 알고 있었구나......"
아니, 전혀 몰랐다만. 것보다, 그 말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고개를 돌려 쳐다본 그곳에는 왠일로 정장을 차려 입은 아버지와 화사한 사복을 입고 계신 어머니가 있었다.
두 분과 시선이 마주친 내 입에서는 마른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하."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은 내가 여기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빈이는 내가 자신을 이렇게나 챙겨주고 있다는 것에 감동까지 받은 것 같았다.
하긴, 나 같아도 동생이 아니라 다른 애의 수업 참관을 왔으리라곤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고, 때마침 참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영선생님이네.'
우연이라고 해야할지, 내 여동생과 수빈과 수연의 담임 선생님은 내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지영선생님이었다. 3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지영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업 내용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영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간결하게 요점만 짚고, 애들과 즐겁게 수업을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수업 참관이라고 해서 평소보다 빡빡하게 진행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없이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수업방식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실제로 다른 부모님들의 표정도 대체로 밝아보였다. 애들이 즐겁게 수업을 들으면서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수업 참관이 끝났고, 6교시 수업 참관 전, 반을 빠져나가는 내게 지영 선생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머, 태훈이 아니니. 혹시 동생 수업 참관 온거야?"
"네, 그런거죠 뭐."
"어머어머, 너네 동생. 엄청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단다. 이 성적 유지만 되면 S대도 무리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교장 선생님도 거는 기대가 엄청 크는 것 같던데?"
"하하... 혼자서도 잘 하는 애니까요."
저 애가 사실은 저한테 박히면서 실금까지 해버리는 음란한 애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잠깐 있었지만 억눌렀다.
"그래그래, 가족끼리 사이가 좋은게 참 보기좋구나. 그럼 선생님은 이만 가볼게."
"네, 감사합니다."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지영 선생님은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나섰고, 나도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갔다. 그냥 수업참관만을 하는 부모들은 5교시 참관만을, 수업 참관후 상담을 원하는 경우에는 6교시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6교시 중에는 수업 참관의 선택 여부를 고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도서관에서 준비된 다과를 먹으면서 6교시가 끝나는 걸 기다린 뒤 상담을 하는 것과, 6교시도 서서 수업을 듣는 것,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소리였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다리가 아픈지 도서관에서 쉬는 것을 선택했지만 나는 6교시 수업도 참관하기로 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애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추억이라고 할까,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애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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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저도 오랜만에 여유롭게 글을 적으면서 치킨을 먹을 예정입니다!! 독자분들의 추천+쿠폰=치킨값
3.친척분들이 다행히 웃고 넘어가주셨습니다. 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