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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로 레벨업-70화 (7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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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유

달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천장. 그리고...

"...아."

얕은 탄식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무 신나게 놀았던 것의 후유증인지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걸어가 생수통을 꺼내 물을 입에 흘려넣었다.

시원한 물의 청량감이 내 목을 적시고, 어느 정도 정신을 맑게 했을 즈음, 그제서야 내 불확실한 기억들이 퍼즐조각이 맞춰지듯이 하나하나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제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때의 나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것임에 틀림 없었다. 아니면 무언가에 씌었거나 말이다.

"...뭐, 됐나."

나는 물통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아직 피곤한 몸을 돌려 침대로 향했다. 자세히보니 침대의 구석에는 루시가 몸을 웅크린채 무언가 말을 웅얼거리면서 잠들어 있었다. 문제가 된다면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속옷차림이라는 것 정도일까.

나는 그런 루시의 몸을 잡아당겨 침대의 중앙으로 끌어당긴 뒤 이불을 덮어주었고, 왠지 모르게 루시가 배시시 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루시의 미소를 보면서 나도 루시의 곁에 누워서 멍하니 생각을 정리했다. 불과 그저께의 일이지만 몇 달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어찌어찌 잘 해결해서 그날도 신나게 놀고 이렇게 집에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래, 유민에게 말했었던 그 때의 상황은 정말이지...

* * *

"...뭐?"

유민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덧붙이자면 이해가 안 되는,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음, 저런 반응을 예상하긴 했는데 정말로 기분이 묘하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걱정 마. 아마 제대로 들은게 맞을테니까."

내 말에 유민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리를 오므리며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노려봤다. 우와, 유민이 저런 표정을 지을줄은 몰랐는데, 그 정도로 싫은건가.

"...변태."

"뭐, 부정하진 않을게."

"호색한, 페티쉬, 정신이상자."

"마지막껀 아니거든?!!"

내 말에 유민이 한숨을 내쉬면서 팔짱을 꼈다. 자연스럽게 유민이 팔짱을 낀 곳 위에 유민의 풍만한 가슴이 올라와 있었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민과 눈이 마주쳤다.

"...진짠가보네."

그리고, 유민의 차갑고도 경멸이 담긴 눈빛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방금 전, 그렇게까지 분위기를 잡았던 내가 정작 한 말을 요약하면 '너랑 떡칠때 가슴이 너무 좋아서 잊혀지질 않아!'라는 거니말이다.

...물론 극도로 요약했을 때다. 실제로는 꽤나 순화해서 말했다.

"가슴이라면 네가 데려온 그... 루시라는 애도 있잖아?"

"왜 내가 걔량 떡을 쳐본 것처럼 말하는건데. 애초에 걔랑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을 믿으란건 아니지?"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유민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 했습니다.

내가 비는 시늉을 하면서 고개를 들자 유민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금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은거란건 알고있지?"

유민이 말하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 잠깐 고민했지만 금세 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 여러명의 여자들과 떡을 치고, 이렇게 여행까지 왔음에도 암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비밀.

"물론."

내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하자 유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죄책감이라던가 그런건 안 들어?"

"글쎄, 애초에 본인들이 원해서 맺은 관계인데다가... 본인들이 싫어하고, 슬퍼한다면 얼마든지 보내줄 생각이거든.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게 아니라고."

마지막 한마디는 작게 중얼거렸지만 유민은 들었는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천천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에휴, 그래. 이런 남자를 좋아한 내 업보겠지. 알았어."

예상 외로 쉽게 수긍한 유민을 보고 살짝 놀란 나는 물었다.

"응? 그 말은......"

"그래, 정말 유감스럽게도 나도 널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정말 유감스러울 정도로 싫은거냐..."

좋은건지 싫은건지 하나만 하라고.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웃으면서 유민에게 뛰어가서는 그대로 유민을 안았다. 유민은 부끄러운지 몸을 꼼지락거리면서도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고, 나는 유민의 풍만한 가슴이 내게 닿는 것을 느끼면서 슬쩍 유민의 엉덩이를 주물렀고...

"변태."

"오빠..."

"...우와."

".......흠냐흠냐."

네 개의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문에서 고개만 내민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덟 개의 눈동자(처음에는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루시도 실눈을 뜨고 보고 있었다)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을 뗐지만 이미 그녀들의 눈은 차갑게 식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뭐, 대충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사소한 헤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뭐, 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연과 빈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는 '더 이상 여자를 꼬이게 할 건 아니죠? 빨리 대답해요!"라고 따지거나 '오빠...'라고 눈가에 눈물이 어린 채 나를 바라보는 등 말이다.

"...그 땐 진짜 죽는줄 알았다고."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속으로 그 두 사람을 떠올리며 빌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여자들을 잔뜩 꼬셔야 할 운명입니다. 정확히는 떡쳐야 할 운명이요.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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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사실 공지도 없이 이렇게 잠수를 탄대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과제+과제+과제+시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겠지만... 하필이면 타이밍이 안 좋아서 몇 주에 걸쳐서 꾸준히 해야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공지라도 올려둘까 했었지만 금방끝나겠지라고 방심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3주가 지나있더군요. 작가의 불찰입니다.

2. 이번편은 오랜만에 글을 썼더니 손이 잘 안풀려서 분량이 조금 적습니다. 과제에서 해방된지 사흘 됐는데 그동안 롤만 신나게 했더니...(롤하느라 글쓰는걸 잊은 것도 있긴함. 다이아 찍었어요.)

3. 내일부턴 정상연재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사노바(자칭)인 친오빠(놈)의 말에 의하면 제 소설에는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개소리...가 아니라 묘사를 조금 손봐준다는 말을 지껄이길래 한 번들어나 볼 예정입니다. 남자가 꼴려할만한 단어를 가르쳐 준다는데 제가 알기로 이 오빠놈은 여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거든요.

4. 왜 안오냐고 쪽지보내주시면서 걱정해주신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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