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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유
나는 한참 동안 송희 누나에게 안긴 채 울었고, 송희 누나는 그런 나를 껴안은 채 나를 달래주었다.
거창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 뿐이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한없이 부드럽게 와 닿았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솔직히 말해 조금 꼴사나웠다.)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서야 송희 누나의 품에서 떨어졌고, 송희 누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워 머쓱하게 웃고는 송희 누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마워요."
"뭘, 힘들면 또 와도 돼."
그 말에 나는 안심하며 천천히, 송희 누나의 방문을 나섰다. 나와서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남짓이었다. 아직 시간이 꽤나 남았는데 유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밖으로 나간걸까?
나는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내 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1. 서연을 찾아가본다.]
[2. 레베카를 찾아가본다.]
[3. 유민에게 찾아가 대화를 나눠본다.]
세 개의 알림창을 확인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1번을 클릭했다. 3번을 곧바로 누르자니 왠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료가 부족하달까, 조금 더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여자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1번을 클릭한순간 다른 알림창이 산산조각나면서 흩어졌고, 나는 화살표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갔다.
화살표는 가장 왼쪽에 있는 방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나는 방에 노크를 두 번했다. 곧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누구세요?"
"나야."
내 목소리를 듣고 '다다다다'하고 방문 앞까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열리는 문 너머로 방금 막 샤워를 했는지 물기 묻은 머리에 수건을 걸치고 있는 서연이 보였다.
"선배?"
"말하고 싶은게 있어서."
내 표정에 진심이 깃든 것을 본 것일까, 서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담담히 서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쓰던 방에 비해 조금 작았지만 서연이 혼자서 쓰니 그러려니 했다. 구석에는 서연이 가져온 짐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방금 전까지 서연이 입었던 것인지 핑크빛 속옷이 놓여 있었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서연은 그제서야 속옷을 발견했는지 황급히 속옷을 치웠다. 중간중간 얼굴을 붉히면서 '갑자기 찾아온 선배가 나빠요'라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침묵했다.
서연이 속옷을 치우고,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윤기가 흐르는 흑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준수한 몸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또래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몸매라 생각한다.
아무튼 서연은 우리 학교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미소녀다. 그렇다고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고, 활발하면서도 친절하고 상냥하다.
적어도 서연이 나한테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은 없지 않은가. 물론 내가 그럴 계기를 준 것이 없기도 하지만. 아무튼 서연은 나와 가장 처음 몸을 섞고, 내가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몇 번 정도는 봤으리라 생각한다.
송희 누나 때는 서연이 놀러갔을때 몰래 공략했지만 그 이후로 송희 누나와 만나러 갈 때 서연과 간간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빈이 때와도 마찬가지.
'섹스 파트너'라고는 해도 서연은 처음부터 나를 배려해줬다. 내가 서연의 말을 거절했는데도 나를 원망하지 않고(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오히려 웃으면서 일단은 섹파부터 하자고 말했다.
'나라면 따귀부터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솔직히 몸을 섞고 책임도 지지 않는 건 굉장히 쓰레기같다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핵폐기물 정도가 아닐까. 지금 당장 따먹은 여자만 해도 다섯이 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연은 신경쓰지 않았다. 단순히 나와 몸을 섞는 것으로 만족해서일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서연의 호감도와, 처음에 했던 고백이 유효했다.
"......."
그리고, 나는 몸에 달라붙는 핫팬츠와, 안이 비치는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서연이 내 앞에 앉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용은 방금 전 송희 누나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걱정됐다. 내가 맞는 것은 상관이 없다. 서연이 분노해서 나를 때리는 것으로 괜찮다면, 그것으로 좋다면 상관없다.
왜냐하면 서연은 송희 누나처럼 내게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내 첫번째 희생자였다. 그렇기에 서연은 날 때리고 원망할 자격이 차고 넘쳤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며 서연의 표정을 살폈다. 서연이라면 사실 어느정도 눈치 채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서연은 지하철에서부터, 그 감각을 느꼈을테니 말이다.
서연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내 말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현실을 의미하리라는 것을 금세 눈치챌 것이었다. 그리고, 서연의 표정은 어떻게보면 내 예상대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에서, 잠시 후 충격을 받은 표정, 그리고 곧이어 묘한 배신감이 깃든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의 서연을 보니 속이 괴로워졌지만 나는 꾸역꾸역 말을 이어서 겨우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내 설명이 끝나자 서연이 물었다.
"선배, 이런 말을 지금 저한테 하는 이유가 뭐에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흐음~ 그냥이란 말이죠. 뭐, 좋아요. 그럼 이게 현실이라는 가정 하에 제 솔직한 감상을 말씀드릴게요."
서연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꿀꺽 침을 삼키면서 눈앞의 서연을 응시했다. 복숭앗빛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면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
나는 침묵하며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유민이 내 앞의 소파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온 것일까, 라는 의문은 불필요하겠지. 지금 필요한 것은 해답이었다. 그런 시시콜콜한 질문은 질문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서, 답은 찾았어?"
그렇게 묻는 유민은 시계를 힐끔거렸다. 7시 40분, 잠시 후면 애들이 일어나고 다시 오늘 하룻동안 신나게 놀게 되리라. 다른 애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자는 유민의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나도 어정쩡한 상태로 오늘 하루를 괴롭게 보내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복잡한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내고 대답했다.
"글쎄, 찾았다면 찾은거겠지. 너는?"
내가 역으로 질문하자 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했다.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그럼, 내가 찾은 답을 말할게."
내 말에 유민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태연하게, 평소처럼 고고하게 행동하는 유민의 모습이라 생각할 뻔 했으나 유민의 눈가가 살짝 빨간 것이 보였다.
울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몰라서, 관계를 맺는다는게 두려워서 운 것일까.
송희 누나한테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유민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녀에게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물론 나는 유민을 처음 만난 순간을 제외하고 딱히 뭐한 적이 없었기에 신경쓰지 않았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유민은 의외로 어린아이 같은 점이 많았다.
섹스할 때도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몸매에 비해 애정을 갈구하는 듯이, 조금 더 자신을 봐달라는듯이 어리광을 피우곤 했다.
도도하고, 고고한 모습을 보이며 새침을 떨어대도 사실은 애정을 갈구하고, 조금 더 살내음을 느끼고 싶어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유민의 모습은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유민을.
"내 대답은......."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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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금 쉬다가 왔습니다, 집안 일이 있어서 이전처럼 매일2회 연재가 아닌 주3~4회 연재가 될 것 같습니다.
2.코멘트는 잠시 동안 잠그겠습니다. 응원 댓글, 혹은 히로인들을 좋아해주시는 댓글 덕에 기분이 좋았고, 계속 보고싶지만... 몇몇 독자분들이 다소 거칠게 다른 독자분들을 비방하는 경우가 있어 분란이 일어날 수 있어 며칠 동안 봉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중요한 오타나 연락이 필요하신 경우 쪽지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집안일 때문에 잡생각이 많아 약간 글이 꼬이고 잘 안 써져서 몇 번이나 고치긴 했지만 이제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다음화에 주인공의 마음을 정리하고 공략 재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