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92화 (92/108)

00092 2부 =========================

한번 입었던 옷이기는 하지만, 산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오래 입고있었던 옷도 아니여서 괜찮을 것 같아 아저씨가 옷들을 사준 당일날 입었던, 조금 오피스 스커트 같은 치마를 입고 위에는 사고나서 처음 입어보는 흰색 브래지어에 흰색 셔츠를 입었다. 흰색이긴 해도 색을 맞췄으니까 덜 비쳐보이겠지?

신발은 스웨이드 로퍼. 남자 신발하고 제일 비슷해보여서 샀는데, 생각대로 편하다. 조금 치마랑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데니아가 조금 높은 팬티 스타킹을 신고나서 다시 치마를 입어보니 꽤 괜찮았다.

여기에 흰색 셔츠에, 처음 입는 코트.

"예쁘다, 정말 뭘 입어도 예쁘네~."

자화자찬에 빠지며 화장대 앞에서 몸을 옆으로 틀며 비춰본다. 진짜로 이쁘다. 워낙 몸매가 몸매고, 얼굴이 얼굴이여서 패완얼에 패완몸이라 뭘 입어도 예쁘긴 하지만 제대로 고급 의류로 차려입기까지 하니 정말 어디 상류층에 있는 사람, 모델 같은 느낌이 난다. 얼굴도 화장을 안해도 예뻐서 그런지 되게 자연스럽고.

그건 그렇고, 팬티 스타킹은 입을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진짜 뭔가 상상하고는 너무 다르다고 할까, 섹시하게 입기가 힘들다. 주름같은게 생기지 않게 입으려 하면 안에 손을 넣고 비벼 올리면서 입어야되가지고 민망해서 누군가 보고있을때는 입기 힘들 것 같다.

노팬티라고는 해도 팬티 스타킹도 안된다고는 안했으니까…괜찮겠지?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치마를 걷어올리며 다리를 벌려 아저씨한테 보내줄 사진을 준비하고 보니, 아까 보냈던 영상을 이미 확인한건지 답장이 와 있었다.

{회사 그만두고 희연씨랑 하루종일 섹스만 하고싶다….]

[안돼요!}

곧바로 사진을 보내주니, 아저씨한테서 오늘은 처음이니까 넘어가지만, 다음부터 노팬티라고 하면 팬티 스타킹도 입으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헬스장에 가서 놀다 오겠다고 써서 보낸 뒤,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핸드백에 가지고 다닐만한 물품을 넣어 나갈 준비를 한다.

사실 챙길거라고 해도 별로 없다. 돈, 핸드폰, 티슈, ts스톤 정도. 모텔에 둬도 되지만…역시 직접 들고다니는게 불안함이 적을 것 같다.

그대로 모텔을 나가던 도중 전날 트레이너가 오기 전에 연락해 달라고 했던게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 메신저를 켰다. '오늘 가도 되나요?' 라고 적어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곧바로 읽음 표시가 뜨더니 답장이 왔다.

{네, 괜찮습니다! 몇시쯤 오실 생각이신가요?]

[지금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죠! 상가 앞에 도착하면 연락해주세요.]

핸드폰으로 길찾기를 해 보니 천천히 걸어가도 길어야 20분 정도 걸릴 것 같은 거리다. 어제 차를 타고 한번 지났던 거리를 지나 걸어가면서 조금이지만 시선이 신경쓰인다.

평소랑 같은 시선인데, 왠지 좀 더 훑어보는듯한…나도 모르게 엉덩이 쪽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어진다. 혹시 팬티 안 입은게 티가 나는 건 아닐까…?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시선이 자꾸만 하체에 꽂히는 것 같다. 조금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면서 핸드백으로 엉덩이를 살짝 가린다.

…그러고보면 치마가 길긴 해도, 엉덩이가 크다보니까 조금 달라붙는 느낌이 있어서 속옷 라인이 보일만한 옷이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을테니까 더 신경 써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속옷 라인이 보일 때 시선이 향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애써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려 하며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계속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녀보며 최대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 보려고 하면서 가니 어느새인가 도착해있었다. 길도 헤메지 않고 편하게 왔고.

주변 시선도 신경쓰지 않게 되서 좋다. 조금 위험하긴 한 것 같지만, 하이힐을 신은 것도 아니다 보니 넘어질 걱정도 없으니까.

팬티 스타킹이라도 입은게 다행이다. 그 착용감 때문에 그래도 뭔가 입었다는게 느껴져 왠지 나도 내가 안 입었다는걸 깜빡 할 것만 같기도 했는데 확실히 계단 같은걸 오를때에도 누가 팬티 안 입은걸 눈치채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이거 얼마에요?"

그대로 헬스장으로 올라가려다가 의류 매장쪽에서 머리끈을 파는 걸 보고 하나 샀다. 2000원…머리끈 하나 가격치고는 비싼 것 같기도 한데, 운동 할 때 머리를 묶으면 훨씬 편할 것 같아 사고나서 헬스장으로 올라가니 입구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트레이너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언제 오셨어요? 밑에서 연락해주셨으면 제가 내려갔을텐데."

"아하하…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돼요."

전날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트레이너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떠세요? 생각은 해보셨어요? 등록하실래요?"

"음…네, 남…자친구한테도 말해봤더니 괜찮다고, 한번 해보라고 하기도했고."

아무래도 남자가 없는 것 보다는 있다고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생길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를 남자친구라고 말하며 어디까지나 허락을 받았으니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바로 나갈수도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트레이너는 그런 내 말은 상관 없이, 내가 등록을 할 지 안할지만 중요하다는 듯이 기뻐하며 나를 데리고 곧바로 PT룸으로 들어갔다.

오전 시간대인데도 운동하고있던 사람들…오늘도 남자들 뿐이였는데 전부 다 내 쪽을 힐끔힐끔 훔쳐본다. 나도 노팬티라는게 신경쓰여 조금 시선을 피하다가 우연히 요가, 필라테스를 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처럼 보이는 곳에서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는 안 보였는데, 요가 강사? 어제 안 나왔다던 직원이 저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PT룸까지 따라가자, 헬스장 내에 크게 들려오던 음악소리가 단숨에 작아진다.

트레이너가 곧바로 창가쪽에 올려져있던 파일을 가져오더니, 볼펜하고 파일 안의 종이를 꺼내 윗몸일으키기 기구의 높이를 조정하고는 그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 진짜 잘하신거에요. 혼자 운동하다보면 사고도 나고, 몸에 무리가 가도 누가 충고해주고 멈춰줄수가 없으니까 안 좋은 효과만 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헬스장에 와서 노는 기분으로 간단히 운동만 해도 남자친구분도 좋아하고, 지금 손님께서도 몸 좋아지니까 자기 몸이 가꿔지는거보면서 만족할 수 있고, 몸 좋아지면 또 사이좋아지지, 건강해지니까 피로도 덜하지, 근육 뭉친거 있으면 제가 관리해서 풀어드리지 저는 관리회원 생기니까 좋지, 심지어 회원님은 돈을 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돈을 드리면서 다니시지. 나쁜점이 하나도 없거든요."

"아, 음, 그쵸?"

적당히 대답하며 헬스장 등록 서류를 보니, 혹시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주민등록증을 적는 항목은 없었다. 핸드폰 번호를 적는건 있었는데 아무래도 개인정보 보호 때문인것 같았다.

이름, 나이, 전화번호, 사는 장소, 헬스장 등록기간을 간단히 적어주자, 이번에는 개인 PT 신청서라는 종이를 준다. 트레이너 고혁수 라고 적혀있고 비용은 공란, 운동을 하며 원하는 목적 등을 적게끔 되어있었는데, 다이어트, 재활치료 등 여러가지가 적혀있었지만 뭘 적어야 할지 딱히 목적이 잡혀있는것이 아니여서 고민하고 있었더니, 트레이너가 맨 밑의 일자와 서명란만 적으면 자신이 적는다고 말해줬다.

그대로 다 적고 난 뒤에 넘겨주니 붉은 볼펜을 꺼내고는 내가 비워둔 항목들에 전부 다 '특별회원' 이라는 글자를 적어넣는다.

"네, 그럼 이제 헬스장 등록되셨구요, 오늘부터 그럼 바로 운동하시겠어요?"

"음…네."

"아, 그러면 먼저 잠깐 다른 분좀 소개시켜드릴께요, 어제는 출근을 안했는데 오늘 여자 강사분이 계시거든요? 제가 어제는 제대로 설명을 못 해드렸는데 모르는거 전부 다 설명해주실거에요."

꽤나 친절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PT룸을 나와 요가, 필라테스라고 영어로 적혀있는 팻말이 보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라고는 하지만 벽도 문도 전부다 유리여서 남자들이 운동하는 곳에서 안이 다 보인다. 여긴 뭐라고 해야될까. 요가룸? 피트니스룸?

"백아영 강사님, 아까 말씀드린 분 있죠? 지금 오셨는데 소개좀 시켜드릴께요. 여기는 백아영 강사님이시고요, 요가랑 필라테스 담당하고 계시고 나이는 27살이시고 여기는 김희연 회원님, 나이는 22살에 크게 운동 생각하시는건 아니고 특별회원 하실 분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회원 등록은 다 하셨어요?"

"네, 방금 그, 안에서 다 하고."

남자들이 날 보는 것 처럼 저절로 시선이 위 아래로 움직이며 강사의 몸을 스캔한다. 백아영 강사님…몸매가 되게 좋다. 솔직히 말해서 나만큼 좋은건 아니지만 내 몸은 어디까지나 내 몸이고, 다른 사람 몸은 다른 사람 몸이니까!

가슴은…B 정도? 볼륨감은 있지만 크지는 않아서 정말 운동하는 여자라는 느낌, 잘 움직일 것 같아 보이는 몸이였다. 회색 브라탑에 흰색 레깅스를 입고있었는데 덕분에 몸매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엉덩이는 꽤 크고, 허리는 잘록하다기보다는 탄탄하게 이쁘다는 느낌이여서 부드러울것 같다기보다는 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김희연회원님도 요가 해보고싶으세요?"

"아, 아뇨, 죄송해요."

그런 내 시선을 느낀건지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고는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 두 손으로 몸을 만져댔다.

여자가 만지면 그건 그거대로 반응할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의외로 남자가 만질 때 처럼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그냥 조금 놀라는 정도여서 오히려 그렇게 조금 놀라는 정도라는 점에 놀랐다.

백아영 강사의 손이 어깨, 팔, 허리, 골반을 만지더니, 그대로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다리를 두 손으로 만져본다. 혹시 노팬티인게 들킬까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니 그녀가 웃는 얼굴로 일어나며 말했다.

"혹시 모델하시는 분이세요?"

"네? 아뇨."

"그냥 몸이 되게 좋으세요, 원래 관리 되게 철저히 하시나보다. 근데 운동으로 관리하기보다는 식습관으로 되게 관리했나봐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런걸 만져서 어떻게 알지? 라는 의미였는데 그녀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로 받아들인건지 당연하다는 것 처럼 말했다.

"그야 그런게 직업이니까요. 지금 보시면 몸이 되게 균형이 좋으신데 근육만 있는게 아니라 적당히 지방도 있어서, 음…좋게 말하자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몸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관리가 조금 부족한 몸이거든요? 관리가 부족하다는게 나쁜게 아니라, 엄청 건강하고 좋은 몸인데 목표가 운동해서 탄력있는 몸을 가지고싶다 하는 분들께는 조금 부족하다 싶은 몸이라는 얘기에요."

"근데 회원님 같은 경우에는 몸을 만들고 싶은것도 아니다보니까 간단하게 지금 밸런스만 잡아드리려고 하거든요. 요가도 좋은 생각 같은데."

"잘됬네요, 개인 PT도 하신다고 하셨죠? 고 트레이너가 제가 가르쳐줘서 요가도 잘 아니까 관리 잘 해드릴꺼에요. 지금 그리고, 가슴이…음…엄청 크네요? 혹시 어느정도에요?"

"네?? 저기, 그건…."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서 트레이너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여기에서는 좀 말하기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강사는 오히려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재촉했다.

"어차피 이제 관리하기 시작하면 신체 상태도 알아야되서 트레이너가 알고 있어야 되는 정보에요. 그리고 저도 회원님 스포츠브래지어랑 브라탑같은거 제대로 알려드리려면 알아야되니까 괜찮아요."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해서, 조금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하는 말이다 보니 좀더 신뢰감이 느껴져 사이즈를 말해줬다.

그러자 강사도 트레이너도 깜짝 놀라며 시선이 내 가슴에 집중된다.

"사, 삼십사요? 삼십사에 H?"

"…네."

"기준은요? 유럽사이즈에요? 자, 잠깐 좀 만져봐도 될까요?"

"네?? 어? 그, 그게."

강사가 갑자기 다가오면서 가슴을 만져봐도 되냐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여자니까, 다른 의미는 없을테니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두 손을 뻗어 가슴 밑부분의 갈비뼈쪽을 잡더니, 그대로 옷 위로 몸을 만지며 가슴 밑부분을 확인하고는, 가슴의 라인을 따라서 만진다기보다는 쓸어올리는 느낌으로 그 볼륨감을 확인했다.

"와아…관리해서 키우신거에요? 진짜 엄청 힘들텐데, 운동보다 식습관이 더 중요하긴 하겠다. 어떡해, 나보다 더 잘아시는거 아냐? 너무 몸매가 좋으시다."

"저기, 어, 언니도 좋으세요."

와아아아아아 언니라고 말하는거 엄청 창피해!

누나라고 하고싶다. 잔뜩 부끄러워하면서 칭찬하니 진짜로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처럼 느껴진건지 백아영 강사가 정말로 기뻐하며 친한 누나가 동생을 대하듯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

"어떡해, 회원님 진짜 남자한테 인기 엄청 많으시겠다. 혹시 운동쪽으로 잘 안하는 것도 가슴 유지하려고 하신거에요?"

"어, 네…맞아요."

"진짜, 최소한으로 운동하면서 관리만 철저히 하셨구나?"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다보니까 무조건 맞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프로니까 나보다 잘 알겠지. 말하면서 자꾸 허리를 만져보고 하는데 만진다기보다는 질감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그러더니 트레이너 쪽을 보며 축객령을 내린다.

"혁수씨는 일단 할거 하고있으세요, 회원님 운동복은 다 지원해주는거죠? 다 준비해드리고 나서 불러줄께요."

"아, 네 강사님. 제가 미녀끼리 친해지는데에 방해가 됬나보네요."

"그걸 알면서 계속 있었던거에요? 진짜 누가 변태 아니랄까봐."

"이제 제 회원님이신데 그런말은 좀…."

제발 멈춰달라는듯이 입 앞에서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는 모습에 백아영 강사가 까르르 웃는다, 둘이 뭔가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처럼 보이는데, 뭔가 눈빛이 걱정하지 말고 맡겨달라는 느낌이여서 트레이너쪽을 보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트레이너가 원래 하던 일인 듯 다른 남자 회원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운동 자세를 고쳐주는 것을 보다가, 백아영 강사가 팔을 잡아당겨 그녀에게 이끌리며 요가 룸 밖으로 나와 스포츠 브래지어같은 운동의류가 잔뜩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둘이 사이가 좋아보여요."

"그래보여요? 혁수씨가 아무래도 친절하고, 친밀하기도 하다보니까 친해지게 되더라구요, 밖에서 만나면 누나동생 하기도 하고. 응? 혹시 끈이에요?"

"네?"

어디까지나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줄자를 가져와 빠른 속도로 몸의 사이즈를 잰다. 너무 익숙한 손놀림이여서 옷 가게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그대로 허리를 넘어 힙 사이즈도 재더니 하는 말에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옷 맵시 내는거 엄청 좋아하는구나. 아니면 남자친구 취향? 하긴, 치마가 이렇게 타이트하면 라인 보이는것도 창피하죠?"

"아, 네…그쵸?"

"근데 이렇게 크면 속옷 고르기 힘들겠다…아, 형태는 어때요? 언더 보니까 돌출형인건 알겠는데…이게 되게 동적인걸 잡아줘야되다보니까 가슴이 클 수록 형태도 중요해요. 뿌리는 몰라도 종류에 따라서 탑인지 바텀인지도 조금 중요하거든요."

뿌리? 돌출형? 바텀…? 아니, 탑 바텀인가 그건 어디선가 들어보긴 한 단어지만 여기서 나올만한 단어는 아니였던 걸로 기억하고있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브래지어 얘기 맞지?

워낙 살 때마다 아무것도 몰라서 점원에게 맡기고, 점원이 체크해준 뒤 보고 주는걸 시착, 편하고 맘에들면 구매하는 과정만 거쳐서 그런지 진짜 여자들이 알아들만한 얘기를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고민하고 있는 내게 그녀가 왜 대답을 안하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조금 민망한 주제긴 한데, 그래도 말씀해주셔야되요. 여자들한테는 진짜 중요한문제거든요? 남자랑은 다르게  운동하다보면 이게 격한 운동이냐, 격하지 않냐에 따라서도 다 바꿔 입어야되고 안그러면 형태도 안좋아지고, 쿠퍼인대도 늘어나서 쳐지고 그러기는 싫죠?"

"네, 그야."

"어차피 지금 여기 우리 둘밖에 없어요, 여자끼린데 뭐 어때요."

결국 고민하던 나는 숨길려고 해도 아는게 있어야 숨길텐데, 어찌 할 수가 없다보니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게…사실 그게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네?"

"저기, 사실 제가 가슴이 갑자기 커져가지고, 뭘 사야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점원한테 골라달라고 했거든요."

…믿을까? 고민하면서도 적당히 꾸며낸 말을 하니, 그녀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말이 되냐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을 가만히 보더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표정. 이렇게 크면 정말 고르기 힘들어서 그냥 다 점원한테 맡겨 버리지 않을까? 직원이다보니 그런 지식도 많아서 제대로 골라줄테고.

가만히 내 몸을 위 아래로 살펴보던 그녀의 두 눈이 갑자기 핸드백을 향하더니 눈이 커진다. 저절로 내 두 눈도 핸드백을 향하고,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의문도 잠시 그녀의 두 눈이 빠르게 내 몸을 위 아래로 훑어본다. 정확하게는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뭔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혼자서 스포츠 브래지어, 브라탑, 레깅스를 뒤지면서 골라주기 시작했다.

"…저기요?"

"아~괜찮아요,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아요.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께요."

왠지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한 동생을 대하는 태도였다면, 지금은 뭔가 조심하는 느낌이다. 대체 뭘까 이 차이는….

"방금 스포츠 브라도 다 종류가 다르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보통 제가 입고있는거같은거는 보이시죠? 어깨끈도 가늘고 옷도 전체적으로 편해 보이는 이런건 라이트한거구요, 가슴이 흔들리는것보다는 적당히 잡아주면서 호흡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거에요. 음…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수면브라처럼 편한데 운동하기 좋게 되 있는 느낌?"

"저기…수면브라는 뭐에요?"

아, 이건 실수다. 내 말이 정말 믿기지 않는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 뿐인데….

"혹시 와이어 있는거 없는거 차이는 아세요?"

"…어, 네."

"진짜로?"

…사실 잘 모르겠어.

그치만, 더 이상 모른다고 하면 이상해 질 것 같아서 대답을 회피했다. 그랬더니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받아들인건지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중얼거렸다.

"부럽다 진짜…."

"네?"

"아뇨, 아니에요. 수면브라는 잘때 입으면 편하게 잘 수 있으실테니까, 한번 나중에 찾아보세요. 그리고 스포츠브라는…회원님같은경우에는 그런데 일단 크다보니까, 이렇게 라이트하면…잡는 힘이 약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단 런브라하고, 메가서포트, 집업골라드릴꺼고, 라이트도 드릴건데 이거는 나중에 혹시 오늘은 요가만 하고싶으시다~하면 입으시면 되세요. 가슴은 캡슐형이랑 혼합형 있는데…혼합형으로 할께요? 일단 미디움이 이거랑, 이거랑, 이거고 하이가 이거, 이거, 이거니까 입어보시고 하나씩 제일 맘에 드시는거 고르시면 되요."

"자, 잠깐만요. 미디움이랑 하이…요?"

"네, 그러니까, 라이트는 요가, 필라테스, 발레. 미디움은 헬스, 자전거, 하이는 러닝, 복싱, 줄넘기같이 많이 움직이는 운동.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운동 종류마다 바꿔 입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쵸?"

…진짜로?!

여자가 운동한다는게 이렇게 귀찮은 일이였어?!

전혀 몰랐다. 그냥 남자들처럼 운동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적어도 스포츠 브래지어라는걸 입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종류가 많다니.

"85에 맞춰서 골라드렸는데…스포츠 쪽은 사이즈가 S,M,L 같은게 회사마다 달라지니까 다음에 혹시 따로 구매하실때는 사이즈로 고르시면 돼요. 그리고 회원님 같은 경우에는 의상 지원을 해 드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신경쓰지 마시고 다 입어 보세요."

"네? 근데 그러면 못 파는게…."

"아마 회원님이 와서 운동하시면서 늘어나는 등록금이 의상 지원비용 넘어가는데까지 한달도 안걸릴걸요?"

…진짜로 내가 헬스장을 다니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 돈이 벌린단 말이야?

조금 안 믿긴다. 하긴, 나도 이런 여자가 헬스장에 있다고 하면 궁금해서라도 한번쯤 들려보기는 하겠지만.

"음…근데 사실 사이즈 커질수록 격한 운동 하시는 분은 없으세요."

"왜요?"

"얘기 들어보니까, 잡아주는데 한계가 있다나봐요? 해외에 유명한 테니스 선수도 가슴이 커서 힘들어하다가 축소수술 하고 바로 1등했잖아요. 여자만 알 수 있는 고생이죠."

하긴, 조금 뛰듯이 걸어본 적 있기는 한데 가면 갈수록 반동이 생기는 것 처럼 흔들림이 커져서, 가까운 거리면 몰라도 오래 달릴수록 점점 아파지긴 했었다. 두 손으로 가슴을 잡고 뛰는게 제일 편한 자세일 정도다.

아디다스, 나이키…여러 브랜드에서 나온 옷들을 전부 다 건네주더니, 전에 왔을때 입은 팬티와 레깅스를 주고, 헬스장에서 대여 가능한 트레이닝 자켓을 위에 올려 넘겨준다. 순식간에 옷을 두 손 가득 들게 됬다.

"다 골랐어요?"

"어머? 지금 뭐하는거에요? 여자 브래지어 고르는데 훔쳐봐요?"

"에이, 왜그래요. 운동할때 입는 옷인데."

그러고는 백아영 강사에게 본 기억이 있는 열쇠를 건네준다. 여자 탈의실 락커 열쇠였다.

열쇠를 건네주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더니, 내 쪽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씩 하고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백아영 강사가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고 그가 멀리에서 주먹에 맞는 시늉을 한다.

강사는 그대로 나를 탈의실까지 안내해주고는 문까지 열어주더니 안에 들어가는 내게 덧붙이듯 말했다.

"전에 입었던건 보니까 사이즈가 안맞는건 입으셨길래 제가 빼놨어요, 다 입어보시고 오늘은 미디움중에서 입으시고 나오시면 돼요."

"어, 저기 이거 그런데 브라탑이…."

"아~걱정 안하셔도 괜찮으세요, 여기에서 파는건 안에 입는 스포츠브라보다는 그냥 브라탑처럼 입는것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하나만 입어도 괜찮으세요. 신경쓰지 마시고 입고 나오시면 되고, 혁수씨한테 말해둘테니까 곧바로 PT룸 가셔서 설명 들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니, 그녀가 당연한 일이라는듯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혹시 또 불편한거나 모르는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오전출근 안하는 날에도 혁수씨한테 말하면 제 연락처 가르쳐줄거에요. 안에 지금 여자 손님 아무도 안계시니까, 천천히 다 입어보시구요. 안 맞는 것 같은거는 운동 끝나고 혁수씨한테 주면 혁수씨가 알아서 해줄거에요."

============================ 작품 후기 ============================

조금만 쓰려다가 한편정도는 쓰고 자자 싶어서, 쓰고 잡니다.

2시간 뒤 일어나야 되서 연참은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