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2부 =========================
♂♀♂♀♂♀♂♀♂♀♂♀♂♀
아저씨랑 만날 때 까지 시내에서 시간이나 보내자는 생각에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두번이나 번호를 알려달라는 남자를 만났다…처음에는 갑자기 다가오길래 혹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어제 본 사람인가 싶어서 긴장했는데, 헌팅같은거였다. 한명은 평범하게 생겼는데 잘 꾸민 것 처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그냥 잘생겼었는데 둘 다 생각 없다고 거절하니 자기 번호를 주고 떠났다. 나는 핸드폰도 꺼내지 않아서 종이에 적어서 건네줬는데 카페에서 나가자마자 그냥 아무데나 던져 버렸다.
길을 걷다가도 노골적인 시선을 받는다. 진짜 지금은 별로 그렇게 가슴도 커 보이지 않는 조금 큰 옷이고, 바지도 스키니진같은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볼까 싶었지만, 상가 유리창을 보자 얼굴 때문이구나 싶어졌다.
하긴, 비율도 엄청 좋고 얼굴도 예쁜데다가 자세히 보면 몸매도 좋은걸 알 수 있으니까.
근처에서 기다리던 나는 약속 시간이 됬는데도 아저씨가 오지 않아서 평소에는 한번도 늦은 적 없으면서 왜 늦는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로 쪽에서 클랙션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저씨가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면서 부르고 있었다.
"아저씨 차에요?"
"그냥저냥 괜찮지?"
말과는 달리, 꽤 비싸 보인다…아우디? 일단 마크는 알아보겠는데 기종이 뭘까? 뭔지 모르겠어서 뒤로 가 보니 A6라고 적혀있다. 차는 잘 몰라서 좋은건지 모르겠다. 좋아 보이긴 하는데…왠지 차에 관심이 없다보니까 람보르기니나 포르쉐 말고는 엄청 좋은 차다 싶은 인식이 안들어서.
일단은 차에 타니, 아저씨가 직접 벨트를 채워준다.
커다란 가슴 사이로 안전벨트가 지나가면서 가슴이 엄청 부각되서 야해보인다….
"어휴, 회사 앉아있는데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혼났네."
"일 제대로 하고 온 거 맞아요?"
"몰라, 내가 일을 하고 온건지 시간을 재다 온건지."
그 잠깐 동안도 계속 보고싶었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들어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경수랑은 다르게 계속해서 나를 신경써주는 이런 대화에 자꾸만 두근거리게 된다.
대체 왜일까…진짜로 점점 여성화되기라도 하는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움이 늘어난다. 차 안에 같이 있기만 해도 두근거린다.
"엣취."
"추워?"
정말로 사소한 거지만, 기침을 하자마자 히터를 좀 더 따듯하게 틀어주거나 내 쪽으로 방향을 향하게 해준다던가 손난로처럼 쥐고 있을 수 있게 따뜻한 손난로를 준다던가 하는게 자꾸만 와닿는다.
아까 나갈때하고는 조금 슈트 차림이 달랐는데, 아저씨가 원래 조금 동안이고 젊게 사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같이 거울같은걸 보면 여자인 내 외모 때문인지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오늘은 뭔가 다른 느낌이였다.
회사에서 막 끝나고 온 회사원이라기보다는 제대로 갖춰입고 나온 모습이라고 해야되나. 슈트 차림이라고는 해도 그 미묘한 느낌이 달랐다.
"머리 했어요?"
"응? 아, 점심시간에 밥 그냥 간단히 먹고 하고 왔지. 괜찮아보여?"
"평소보다 훨씬요."
"하길 잘했네."
향수도 뿌린 것 같고. 회사 끝나고 바로 온 것 처럼 말하면서 사실은 더 꾸미고 왔구나 싶다. 진짜로 40대 같지가 않다. 평소에도 관리 되게 많이 했구나, 동안이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하고 오니까 30대 초반처럼 보인다,
왠지, 나도 약간이지만 데이트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긴장되면서도, 지금 내 옷차람이 신경쓰인다.
아저씨는 제대로 다 차려입고 나왔는데, 나는 아무렇게나 갈아입고 나온 옷에, 몸매도 좀 가리는 느낌이니까.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아저씨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희연씨는 보면 자기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는거같아? 안 꾸며도 예뻐서 그런가?"
"네? 아뇨, 예쁜 옷이 없어서…."
"예쁜 옷? 아, 하긴.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가슴이 크면 이 스타일링을 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
맞는 말이다. 확실히 아무 옷이나 입어도 몸매가 좋으면 살아나긴 하지만 가슴만큼은 어쩔 수 없다. 조금 몸에 달라붙은 느낌이거나, 허리를 조이도록 하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그냥 뚱뚱해 보이는 옷이 되기도 하니까.
애초에 나는 옷을 고르는 센스가 없어서 스웨타만 주구장창 입거나 셔츠만 입거나 해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원래는 차 끌고 올 생각 별로 없었는데, 이참에 그냥 이 근처에 종합쇼핑센터 열었다고 하니까 거기로 가려고."
"근데 차가 진짜 좋은 거 같아요…새차같아."
"관리를 잘 해서 그렇지. 아무튼, 종합 쇼핑센터 가면 옷도 많고, 외국 브랜드도 많아서 희연씨 몸에 맞는 예쁜 옷도 있을텐데 어때? 옷부터 사러 갈까?"
거절하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저씨가 정말로 나한테 뭔가 해주고 싶어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정말로 지금 내 옷차림이 안좋다는게 느껴지긴 했으니까.
다만 걱정되는건, 그 옷의 가격이 대체 얼마나 하는가였다. 이 아저씨는 대체 나한테 얼마나 쓰려는걸까. 전에 방 구해줄수 있냐고 할때도 구해준다고 하고.
아…맞아. 방 구해야되는데.
생각이 난 김에 아저씨에게 오늘부터 다른데에서 묵을 수 있냐고 하자, 아저씨가 기다렸다는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그러면 짐 들고갈때 같이 갔다올까? 차 끌고가면 편하지?"
"아…그게, 짐은 저 이게 다에요."
"…그 가방이 다라고?"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는 의문에, 나는 설명을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아저씨는 그런거 흥분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또 거짓말을 해서 숨기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가 자위했다는 말은 숨기고, 옷 갈아입다가 들어왔다고 바꿔서….
"그러니까…사실 아까 짐 들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 경수라는 애 때문에 못 들고 왔다는 거지? 속옷도 다 두고오고?"
"네…속옷은 좀 비싸서 아깝긴 한데, 그래도 또 가면 정말로 뭔가 일 생길 것 같아서요."
"그래…?"
아저씨에게 말하면서 혹시 이런 얘기듣고 흥분한걸까? 해서 슬쩍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역시나 자지가 발기한건지 바지 주름이 툭 튀어나와있었다.
"…경수랑 섹스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에? 왜요?"
아저씨가 흥분한 걸 보고, 또 내가 경수랑 하는걸 생각하면서 흥분했구나 싶어 한 질문이였는데 예상 외의 대답이 돌아와 당황했다.
왜지? 흥분한 건 맞는 거 같은데.
"얘기 들어보니까 딱 알겠구만. 걔 싫지? 내가 아무리 그런 성벽이 있어도 난 희연씨도 같이 흥분하는게 좋은거지, 그런 새끼한테 다리 벌리는걸 보고싶은게 아니라서 싫어. 오히려 내가 묻고싶은데, 내가 걔 혼좀 내줄까?"
"아, 아뇨. 괜찮아요."
뭔가 너무 예상 외라서 당황스럽다. 당연히 경수랑 섹스하길 원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말로 싫어서 짐도 다 두고 왔다고 말하니까 조금도 망설임 없이 싫다고 말하는데다가….
솔직히, 진짜로 너무 갑작스럽다. 갑자기 막 긴장된다. 뱃속이 찌이잉 하고 울리는 것 같다….
"근데 그러면 속옷도 없겠네? 속옷 먼저 사러갈까?"
"핸드폰 먼저 사요. 문 닫을수도 있으니까. 종합 쇼핑센터? 거기에 그런데 통신사 대리점도 있어요?"
"아…그건 걱정 안해도 돼. 해 두라고 했거든."
"네?"
해 두라니 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아저씨가 짧고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내 명의로 개통해서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까 있다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한테 받기만 하면 돼."
어라? 짧고 간단한 설명인데도 이해할 수가 없다?
뭔가, 갑자기 내가 아저씨에 대해서 잘못 알고있었던건가 싶어진다. 그러니까, 프로그래밍 같은걸 하는 사람이고 40대에, 사장이고, 작은 기업은 아닌데 엄청 큰 기업도 아니고, 사장이긴 한데 위에 더 사람이 있고…?
응? 근데 큰 기업이 아닌데 사장 위에 사람이 더 있을 수도 있나?
애초에 사장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나…? 으응?
아니, 그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까 40대인데 사장인 것도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뭔가 갑자기 깨달은 건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아저씨도 거짓말을 한게 아닐까?
"그, 그게 돼요?"
"음…예전부터 생각한건데 희연씨 내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지?"
"높아요?"
"솔직히 처음에는 희연씨가 다 아는줄 알았는데…아냐, 희연씨는 그런거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희연씨 사달라는거 사줘도 부담 없다는것만 알아둬."
뭐지, 왠지 평소랑 다른 것 같다…내가 알고있는 아저씨는 사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는 아저씨였는데, 갑자기 아저씨라고 불리는 사장님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아, 그렇다고 진짜 다 사줄 수 있는건 아니고…상가 하나 사달라고 하는건 안됀다?"
"아니, 그걸 누가 사달라고 해요. 사줄수 있어요?"
"갖고싶어?"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 저거 농담일까 아니면 진담일까.
"농담이야. 진짜로 그런걸 사줄만큼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다행히도 농담이였다.
그나저나 대체 뭘까. 뭔가 오늘따라 아저씨 태도가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가면서 할짓없이 가죽 시트를 손으로 만지면서 대체 왜 이러는걸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음…그러니까, 아저씨는 사실 돈이 많고 높은 사람이다. 근데 그걸 이미 어느정도 표시를 냈는데 내가 멍청해가지고 그걸 잘 이해를 못했다.
근데 서로 섹스를 하게 됬는데 나는 계속해서 이해를 못한 채로 그냥 아저씨가 좋아서 섹스했고, 어제는 아저씨의 성적인 판타지나 패티시즘도 이해해주면서 받아줬다.
음…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정도인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잘 해주는걸까.
내가 멍청한건가? 솔직히 여자가 되면 조금 멍청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여자가 멍청하다거나 그런 말이 아니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뭔가 머리속에서 생각하는게 조금 둔탁한 느낌이 든다.
혹시 이런게 백치미라는걸까.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아저씨가 평소랑은 다르게 정말로 자기 매력을 나한테 뽐내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거 안해도 되는데.
계속해서 옆에서 화제를 꺼내서 대화를 이어가주는것도 그렇고, 신경써주는게 많이 느껴진다. 뭐라고 해야할까, 유부남이라는걸 잊어 버릴 것 같다. 아저씨도 그럴 생각으로 이러는 거 같고.
"거의 다 왔네."
"우와…."
운전 끝에 종합 쇼핑센터에 도착했는데, 뭔가 내가 알고있는 그런 곳과는 달랐다. 분수대도 있고 공원도 있고…응? 이거 쇼핑센터 맞지? 왠지 식당도 엄청 많고, 빌딩 같이 보이는 건물에…아, 저거 호텔이였구나. 쇼핑센터에 호텔이 있다!
내가 너무 서민적인건가. 도너츠라던가 빵, 핫도그, 카페, 피자 등 음식을 파는 구역이 따로 나뉘어져있고 옷만 파는 구역, 지하에는 코스트코같은 백화점이 있는데다가 3층에는 CGV도 있고…대체 뭐지 이게. 뭔가 이것저것 뒤섞여있는데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자 정말로 입구 근처에서 서있던 회사원같은 남자가 아저씨를 발견하자마자 가까이 다가와서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건네줬다. 딱히 대화도 하지 않고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아저씨랑 눈을 한번 마주치더니 깜짝 놀라서 인사를 한번 하고 사라졌다.
"포장해달라는 말까진 안했는데 이렇게 포장해서 가져왔네…선물 내용물은 벌써 알고있지?"
"앗, 네."
상자를 열자 안에서 핸드폰이 나왔다. 아이폰 7…? 이거 비싼 거 아닌가.
"마음에 들어?"
"이, 이거 비싼건데…."
"직접 고르라고 하면 희연씨 성격 봐서는 최대한 싼 거 고를 것 같아서 그냥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걸로 사달라고 한거니까 받아. 내가 선물해주는거니까."
우와…뭔가, 되게 부담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뭔가 그 왜 이렇게…막…이걸 대체 무슨 감정이라고 해야되지.
대체 내가 왜 이러는걸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그냥 좋은지 안좋은지만 말해. 좋아?"
"엄청 좋아요…."
어떡하지, 뭔가 해줘야 되는건가. 뭐지…드라마 같은 거 보면 이럴때 막 껴안고 키스하지 않았나.
어찌해야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내 어깨를 감싸안더니, 쇼핑센터 안으로 데려갔다.
"일단 그 가방부터…아니지, 옷부터 사자. 오늘은 나랑 데이트 한다고 생각하고 쇼핑 하고나면 밥도 맛있는거 먹고."
…역시 데이트였어.
얼굴이 갑자기 확 뜨거워져서, 손에 든 아이폰을 꽉 쥐고 아저씨가 데려가는대로 끌려가기만 한다.
뭔가 지나가면서 어디서 많이 본것같은 브랜드가 많이 보였는데….
분명 나도 아는 여성 의류 브랜드이긴 한데, 내가 알 정도면 진짜 비싼 브랜드 아니였나.
대체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걸까.
♂♀♂♀♂♀♂♀♂♀♂♀♂♀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매장에 손님 사이즈에 맞는건 이 여섯가지 종류밖에 없어서…."
"음…그러면 다 사지. 괜찮지?"
"네?! 다, 다요?"
속옷 매장에 가서 사이즈를 말하니, 점원이 의심이 간다는 듯 줄자를 가져오고는 놀란다. 진짜로 이 사이즈가 한국에 있을줄은 몰랐다나, 모델급이라던가, 사실은 모델 아니냐고 묻는다던가.
처음 간 매장에서는 내 사이즈를 취급하질 않는다고 하면서 옆의 서양 쪽에서 온 브랜드를 추천해줘서 그곳으로 갔는데, 점원이 따라가서 옆 매장 점원에게 설명해주자 두 번째 매장에서도 곤란하다는 듯이 이 사이즈가 나갈 일이 너무 없어서 들여 온 물건이 없다고 했다.
서양 쪽 브랜드를 가고 나서야 맞는 사이즈를 찾아서 시착해보기는 했는데, 나도 나한테 맞는 브래지어가 이렇게나 많이 한 매장에 있는건 처음 봐서 신기해가지고 하나하나 다 입어보고 있었더니, 탈의실 밖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영수증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자, 잠깐만요?! 지금 산거에요?! 잠깐만, 다 안사도 돼요!"
"결제 취소 해드릴까요?"
"산걸 왜 취소해?"
시착하고 있는 사이에 멋대로 내 속옷을 여섯개나 사버렸다! 이게 얼마야?! 아까 슬쩍 본 가격표가 원이 아니라 달러 기준이여서 셈을 할 수가 없다. 이 잠깐 사이에 대체 얼마를 쓴거지….
"희연씨, 시착한것중에 맘에 드는 거 있으면 입고 나와. 아, 네임택은 다 떼주시고."
"떼면 환불 못하잖아요!"
"네임택은 버려드릴까요?"
우와아아아악 진짜로, 환불도 못하게 그냥 다 사버리고 있어 이 아저씨.
속옷 매장에서 속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벌써 상황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진 나를 데리고 멋대로 의류 매장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다음에 간 의류 매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어…손님, 혹시 안 맞으세요?"
"으…네, 가슴이…끼네요 이거."
"…손님이 조금 사이즈가 있으셔서, 음 상의만 그러세요?"
"아뇨, 엉덩이도 껴요…허리는 잠기는데…."
"아…네에…."
뭔가, 여직원의 목소리가 조금 무섭다.
분명 서비스 정신에 투철한 목소리일텐데 뭘까, 되게 예쁘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내가 좀 심하게 예쁘긴 하지만 그래도 남자로서 꽤 취향이고, 지금도 댁이 레즈비언이여서 하루 자고싶다고 하면 승낙할 것 같은 외모인데….
"손님, 지금 롱스커트중에는 맞는 사이즈가 없으신거같고…좀 이렇게, 사이즈를 맞춰주는 스타일로 가져다 드릴까요?"
"어…그러니까, 스판같은거에요?"
"네, 스…판입니다."
내가 여자들이 입는 옷에 대한 용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최대한 간단하게 말해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점점 정신적으로 뭔가 한계가 오는 듯한 모습이 됬다.
왜 그러는 걸까…진짜 난 조금도 악의가 없는데. 진짜로 몰라서 그러는건데.
"그런데 이런 옷은 지금 손님이…힙이 좀 크셔서, 시착을 하시면 구매를 하셔야 되는 상황이 되는데, 이 외에는 미니스커트중에서는 사이즈가 맞는게 많은데, 미니로 가져다드릴까요?"
"미, 미니스커트는 음…."
미안하지만 치마 초심자로서는 정말로, 제발 부탁이니까 긴 치마를 입고 싶어진다.
의외로 긴 치마는 밑이 허전하다거나 그런거 없이 오히려 좀 따듯한 느낌도 드는데, 뭣보다 치마를 입었다는 기분보다는 좀 품이 많이 넒은 바지를 입은 느낌이 들어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미니스커트는 좀…그건 진짜 조금만 들면 보일 것 같잖아.
상의도 하의도 맞는 사이즈가 정말 없어서 몇번이고 매장을 바꾸고 나서야 맞는 옷을 살 수 있었는데, 아저씨는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 대체 어디에 갔었던 건지 손에 처음 보는 핸드백을 들고있었다.
"그, 그거 산거에요?!"
"맘에 안들어? 다른걸로 바꿔올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아아…하아…."
진짜로 이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으로 도배한 여자가 돼 버렸다….
결국 옷은 내가 겨우겨우 한개정도 고르고 있는걸 아저씨가 보다말고 미니스커트 쪽으로 아저씨가 맘에 드는 옷이나, 점원이 추천한 옷을 사거나 하고 원피스를 한 벌, 코트 하나, 스타킹, 양말, 셔츠도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셔츠 몇가지에 내가 좋아하는 스웨터도 하나 사고 나서야 쇼핑이 끝났다.
뭐지, 내 옷인데 내가 사는게 아닌거같아…그보다 대체 이건 얼마를 쓴걸까.
슬쩍 계산하는 곳에 가서 가격대를 훔쳐보려고 하니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배….
"신경 쓰지 말랬지."
아저씨한테 쫓겨났다. 그보다 분명…백만원대…숫자가 몇이였지.
마지막으로 신발을 사러 갔는데…내가 신고있던 운동화는 쓰레기통 행이 되 버렸다.
하나만 산 게 아니라 뭔가 예뻐 보이는 신발로 세개를 샀는데 하나는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스니커 쪽이였고, 다른건 스웨이드 로퍼…? 무슨 플랫 구두? 슈즈였나? 그냥 구두같은데 좀 예쁜거랑, 또 하나는 어쩌구 스틸레토라고 설명해줬는데, 하이힐이였다.
하이힐은 내가 균형을 못잡고 넘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쉬웠다. 그러니까, 걷는 것 자체나 균형을 잡는건 쉬웠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다만, 계단을 걸어 내려가거나 하는게 너무 어렵다.
아저씨가 하이힐을 신을 때 진짜 눈이 번쩍번쩍 해지는게 보여서, 뭔가 이런거 좋아하는구나 하고 신었는데, 계단을 만나자마자 괜히 신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부러지는거 아닐까 싶어서 불안하다.
계단이 높지는 않아서 겨우 내려간 뒤에는 계단을 만날때마다 아저씨가 팔을 빌려줬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무릎을 겨우 덮는 치마 이름은 모른다. 그나마 제일 긴 치마였는데 끝부분에 주름이 있어서 꽃잎처럼 벌어지는 치마였다. 그리고 80데니아였나? 스타킹이라는게 두께 단위도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거기에 검은색 하이힐하고, 깔끔하게 흰색 티를 안에 입고 겉에는…이걸 뭐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외투? 조금 캐주얼한 스타일이다.
조금 사무적이여 보이기도 하는 매칭이였는데, 일부러 이렇게 입은것도 사실 조금 있다. 아무래도 아저씨가 슈트 차림이로 나왔다보니까, 짝을 맞춰 입을걸 생각해보니 이런 느낌이 됬다.
그대로 계단을 만날때마다 팔을 빌린게 어느새인가 평지에서도 계속 팔을 잡고있게 되서, 같이 차도 사서 마시고 구경도 하면서 다니다보니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좀 많이 느껴졌다.
하이힐에 불안해 할 때에는 못느꼈는데, 남자들이 특히 나를 많이 보고있었다. 여자들도 내 쪽을 봤다가 아저씨를 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뭔가, 남자들 시선은 몰라도 여자들 시선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나를 보는건 괜찮은데 왜 아저씨 쪽을 한번 봤다가 고개를 돌리지?
"왜 그래?"
"…아니에요."
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되게 신경쓰인다. 지 남친이나 관리 잘 할 것이지. 고개 돌리니까 남자친구가 어디 보고있는지는 모르나? 아주 내 가슴에서 엉덩이 얼굴까지 안 훑어보는 곳이 없구만. 너무 노골적이여서 옷 벗겨지겠다!
반발심인지 뭔지, 나도 모르게 아저씨한테 더 달라붙게된다. 저 눈빛이 뭔가 아저씨랑 나를 연인관계가 아니라 원조교제 관계같은걸로 보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응? 방금 내가 뭐라고 생각한거지?
아니, 연인 관계이기를 원하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아저씨가 깔보여지는 기분이 싫다는 것 뿐이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자기 멋대로 머리속에서 안좋게 생각하는게 싫은 것 뿐이다.
============================ 작품 후기 ============================
천천히 한편씩 올리려다가 그냥 한번에 다 올립니다.
비축분 없이 그냥 쓰면 쓰는대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