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50화 (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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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 ♀ ♂ ♀ ♂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채팅이나 하고 놀까 싶어져서 나는 경수의 컴퓨터를 켰다.

[그건 그렇고 요즘은 뭐 하나?]

[아~요즘 진짜 할 거 없어요.]

[저번에 돈 없다고 하더니?]

[앗, 그건 어떻게든 되가지고.]

[결국 몸 팔았구나..ㅠ]

[청년막 졸업 축하해~]

…다들 나를 남자라고 알고 있을테니 분명 농담으로 한 말일텐데, 순간 뜨끔했다.

[근데 다들 심심할땐 뭐해요?]

[담배!]

[술]

[섹스]

[자위!!]

[소설이나 만화 봐요.]

…하도 심심해서 뭘 하고 보내면 될까 힌트좀 받으려 했더니 이상한 대답만 마구 돌아왔다.

마지막 건 정상적인 것 같지만….

[그런 거 말고는?]

[놀러가죠?]

[돈 안쓰고 놀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동냥놀이. 길거리에 나앉아 있으면 부수입도 들어옴.]

[시체놀이. 경찰서 앞에서 케찹 뿌리고 하면 재미있음.]

[변태놀이 어때요?]

[변태놀이는 뭐 길거리에서 옷 벗고 뛰어다니는 놀이인가요.]

[잘 아시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답변이 하나도 없다.

[응? 지금 심심한가?]

[네…조금요.]

[정 심심하면 한번 나랑 만나서 노는건 어떤감?]

[헉, 꼬신다 꼬신다.]

[아무리 궁하셔도 그렇지 남자한테 그러시면 안돼요!]

[하하하]

어라. 이건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문제라고 한다면 여기에선 다들 나를 남자로 알고있는데, 지금 나는 여자라는 점일까.

뭐, TS스톤을 써서 남자로 돌아가면 그만인 얘기지만…얼마간은 남자로 돌아가지 않는게 지금 내 목적이니 그건 패스하고.

아, 어차피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인데 그냥 사실은 여자였어요~하고 만나버려도 괜찮긴 하려나?

"흐음…."

머릿속으로 채팅방 내의 사람들을 만나서 고기라도 먹으러 가거나 노래방을 가는 일을 상상하고 있자니, 갑자기 나한테 같이 만나 놀자고 한 사람한테서 1:1 채팅신청이 걸려왔다.

저번에 그 성별 바꾸고 와서 2시간씩 자기 물건을 빨면 돈을 주겠다고 한 그 사람이다.

무슨 일로 신청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1 채팅을 승낙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음…아까 말하는 거 보니 지금도 돈이 좀 궁해 보이는데 아닌가?]

…어떻게 알아차린거지?

[왠지 요즘 돈이 궁한 것 같은데…정 급하면 좀 빌려줄까?]

[장기매매는 싫어요!]

[하하하, 들켰나?]

어떻게 눈치챈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걱정해준 모양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사람한테 돈을 빌리는 일은 할 수 없다. 정말 빌려준다고 해도 미안하고.

[그럴 돈 있으면 아내분 몰래 비상금으로 숨겨두세요.]

[빌려주려고 했던 돈이 비상금인데?]

[헐….]

…채팅을 한지 오래 된 사이긴 하지만,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이렇게 돈을 빌려준다고 해도 괜찮은 걸까.

고맙기도 하지만,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뭐, 말하는 걸 보니 아주 급하지는 않은 모양이구만.]

[급한 일은 해결했거든요….]

[흠…그러고 보니까 해외 산다고 했지? 지금은 한국인가?]

[네.]

[뭐, 시간나면 한번 얘기하게나. 다시 외국 나가기 전에 한번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 해야 되지 않겠남?]

[직장 다니시지 않아요?]

[하하, 퇴근시간 빨라서 괜찮네.]

할 얘기는 다 한 건지 1:1 채팅방에서 나갔다.

내가 알기로는 이 사람, 유부남에다가 나이도 나보다 꽤 높다. 그런데 성격도 좋고, 말하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젊어서 그냥 채팅만 하고있으면 원래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 보인다.

채팅중에 나이 물어보기 전 까지는 나보다 한 5~7살정도 많은 사람이 그냥 나이 좀 있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노는 줄 알았는데….

1:1 채팅이 끝나고 가만 생각해보니 확실히 한번 만나보고 싶긴 했다.

…그치만 한동안은 여자로 지낼 생각인데 어떡하지.

[근데 만약 제가 여자라면 다들 어떡할거에요?]

[여자에요?]

[아니아니, 만약에.]

[정액변소가 되어주세요!]

[육변기.]

[헐…거유미소녀면 환영.]

[하하, 섹시하면 환영이네.]

혼자 상상해보다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반 농담을 섞어 말하면서도 의외로 내가 지금껏 남자라고 해 배신감이 든다던가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진지하게 말해서, 자살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왜요?]

[내가 여자한테 지금껏 그 말도 안되는 성희롱을 마구 퍼부어댔다니…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배신감이 들기는 커녕,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이런 반응이면 여자로 만나도 문제가 없긴 하려나.

[근데 이왕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으니 묻겠는데 진짜로 돈 없고 심심할때 어디 가서 시간 보내면 좋아요?]

[음….]

[아니, 뭐 한국은 돈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하는 나라니까요.]

[그건 어디 가도 똑같지 않은감?]

[뭐 밤에 약속이라도 있는데 일찍 나왔어요? 아까부터 시간 보낼 곳 없냐고만 물어보시네.]

[그런건 아닌데 그냥 할 일이 없어요.]

[정 할 거 없으면 공원이라도 가는 건 어떤가? 애들이 놀면서 떠드는 소리 듣고있으면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근처에서 노는 소리도 들리니 아주 심심하진 않다네.]

[우와, 역시 우리 채팅방 최연장자. 말하는게 조금….]

[하하하, 나이가 들면 다 공원에 아침에 나가서 하루종일 앉아있었던 경험 하나에서 둘은 생기기 마련이지.]

[…그거 왠지 연장자가 말할수록 슬프게 들리는 말 같은데요.]

채팅방에서 조금이나마 진지한 답변이 오가고 난 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떻냐는 결론이 나왔다.

…공원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목마르면 물을 마실 식수대도 있을 것 같고. 주변 사람들 대화 엿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원래 엿듣기가 남에게 말 못할 나의 취미였으니까 뭐.

경수 컴퓨터에 게임을 다운 받아서 노는것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민폐인 것 같고…뭐, 사촌동생이 컴퓨터에 별에 별 거를 다 깔려진 적이 있는 경험자로서 왠지 내가 직접 하는건 안 내킨다.

…그럼, 갈 곳도 결정되었으니 공원이나 갈까.

♀ ♂ ♀ ♂ ♀ ♂

"하아…."

정말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밖으로 나와 적당히 걸어다녔다.

공원이라던가, 공원이라던가.

뭔가 군것질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무리다. 그냥 공원에 앉아서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애들이나 구경하는게 시간 보내기엔 좋겠지. 채팅방에서 추천해 주기도 했고.

확실히 한가하면서도 시간이 지나긴 하는 것 같다. 문제라면 한 30분정도 앉아있었더니 벌써 질린다는 점과, 지금이 겨울이여서 그런지 추워서 어디 따듯한 곳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고 싶다는 점이지만. 다행이라면 그나마 오늘은 그리 추운 날이 아니여서 그냥 있을 만 한 날씨였다.

벤치에 앉은 채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내가 이 공원에 오기 전 보다 남자의 수가 늘어나있는데.

처음 올 때는 분명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불량한 애들 3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직장인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합쳐서 10명은 그냥 넘은 것 같다.

뭐지 대체. 이 공원에서 시간 보내는게 요즘 최신 유행인가.

아니면…설마 그냥 내가 앉아있으니까 보러 온걸까.

설마설마 하면서도 왠지 그럴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뭐, 그러던 말던 어차피 이 사람들이 나를 헌팅할것도 아닌데 그냥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들어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저 멀리 앉아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저기…죄송합니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제가 정말 그쪽한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데 전화번호좀 주시면 안될까요?"

…헌팅 당했다.

"예, 네? 저, 저요?"

"아, 혹시 괜찮으면 지금부터 저랑 영화라도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어라, 내가 계속 공원에 혼자 앉아서 가만히 있으니까 한가해 보인건가.

여자인 나는 뭐, 선글라스라도 쓰지 않으면 너무 눈에 띌 정도니까 이럴 만도 하지만…아니, 선글라스를 써도 몸매가 눈에 띄니 유명한 연예인 같은 건 줄 아려나.

아,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건가?

그치만 한국에서는 나 정도의 몸을 가진 여자 연예인은 본 적이 없다.  한국 연예인은 왠지 가늘은 몸을 선호하는 것 같으니까…C컵 정도만 되도 글래머니 뭐니 하고 말하는 모양이고.

아, 그런가. 그건가.

가슴 하니까 생각이 났다. 슬슬 익숙해져서 깜빡 잊었는데, 나 가슴 엄청 컷었지. 눈에 띌 만도 하다.

그보다 어떻게 할까…영화인가.

이렇게까지 직선적으로 솔직하게 관심이 있다고 말을 해 버리는걸 보니 왠지 평소엔 이런 걸 안 하는 사람인데 정말 내가 마음에 들어서 고백하듯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러고보니까 나 돈이 없구나.

어쩔 수 없지, 거절하자.

"죄송한데 저 집에 지갑을 두고와서…."

"아뇨, 제가 관심이 있는거니까 제가 낼께요. 그러니까 같이 어떠세요?"

"에?"

…어떡하지.

공짜로 얻어먹는건 내 취미가 아니지만 갑자기 따라가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대신 내준다는 말에 좀 많이 끌렸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많이 빈곤해서 그런건지.

게다가…처음 보는 사람이고, 오늘 하루 놀고 안 만나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휴대전화 번호야 다른 걸 알려주면 되는거고….

왠지 나 자신이 굉장히 꽃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내 앞에 가만히 서있다. 꼭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긴장해서는 내 입에서 거절이나 승낙 둘 중 하나의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우와, 진짜 어떡하지.

설마 이런 식으로 갑자기 헌팅당하거나 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 내 옷차림도 엄청 대충 입고 나온거고.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헌팅남의 얼굴은 붉게 물든 채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왠지 시선이 가슴을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얼굴하고 가슴을 몇 번 번갈아 보는 것 같다 싶을 때 쯤 남자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어…우선 추우니까 어디 카페라도 가지 않으실래요?"

우와, 필사적이야.

왠지 꼭 나를 데려가고 싶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의외로 기분 좋다 이거. 이래서 여자가 꽃뱀짓을 하는건가?

그건 그렇고 뭐…커피 정도야 괜찮으려나.

"아…커피만 마시는 정도면…."

"아자!"

남자는 왠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내 쪽으로 오기 전 앉아있던 곳을 힐끔 봤다. 그 곳에는 헌팅남의 일행이였던 걸로 보이는 다른 두 남자가 있었고, 둘 다 눈 앞의 남자가 주먹을 불끈 쥐는 걸 보고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저기, 혹시 저 두 분도 일행이세요?"

"아, 일행이긴 한데 둘 다 일 있어서…."

둘이서만 가고 싶다는 건가?

…사실 속으로 저 둘도 같이 오는거면 왠지 싫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뭐, 커피 마시고 잡담하는 정도야 괜찮으려나 싶어진 나는 나를 헌팅한 남자를 따라 커피숍으로 가기 시작했다.

♀ ♂ ♀ ♂ ♀ ♂

카페로 가는 길에서 남자는 내가 같이 커피를 마시자는 말에 응해준 것이 기뻣던 건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요?"

"희연이요. 김희연."

"우와, 이름 되게 예쁘네요…아, 우리 반말 틀까요? 보아하니 나이 차이도 그리 크게 안 나는 것 같은데."

"음…전 존댓말 하는게 버릇이 되서 갑자기 반말을 하라 해도 잘 못해서…."

"아, 그러면…."

"아뇨, 반말 하셔도 괜찮아요. 근데 몇살이에요?"

"그럼 난 반말 할께. 아, 나이는 22. 희연이는?"

…내가 설정했던 여자일 때의 내 나이가 22살이 맞았나?

뭐, 맞다고 치자.

"동갑…이네요."

"진짜? 와…근데 진짜 엄청 예쁘다…남자친구 없어?"

이렇게까지 내 신상에 대해 물어본다는건 기뻐하는게 아니라 탐색전 같은 걸까. 어떤 화제를 좋아할지, 무슨 얘기를 하면 호감을 가질지 대략적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계속 웃으면서 말하고 중간중간 칭찬을 섞어서 그런지 불쾌하다는 기분은 안든다. 존중해 주는 듯한 느낌도 있어서 가볍다는 느낌도 크게 들지 않는 것 같다.

"어떨 것 같아요?"

"…아, 있을 것 같은데 없으면 좋겠다."

"없는게 좋아요?"

"당연히 없는게 좋지…아까 관심있어서 말걸었다고 했잖아. 있어?"

나는 말 하는 대신에 두 손을 X자로 교차시켰다.

"진짜 없어? 왜? 와, 진짜 말도 안됀다. 고백 엄청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으으음…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사귄 것 같아요."

카페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름하고,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까지 얘기 한 후였다.

도착한 카페는 커다란 건물 1층에 있었는데 건물 위에는 CGV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이 건물에 영화관도 있는건가?

날 헌팅한 남자의 이름은 유태민으로, 전공은 문창과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만화나 소설을 많이 읽는 오타쿠 취미인 나와 의외로 대화 화제가 맞아서 재미있게 대화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해외 소설이나 한국 소설이나 아마추어는 별 다를 바가 없더라구요? 일본의 소설가가 되자! 사이트나 중국의 리드노벨이라던가 한국 소설 사이트를 다 보면 내용이 다 똑같아요. 다 이계로 날아가고 게임 능력을 얻고 한다니까요?"

"나는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근데 중국어랑 일본어로 된 소설은 뭘로 봐? 번역기?"

"아, 저 일문하고 중문 다 할 줄 알아서 그냥 읽어요."

"우와…희연이 진짜 대단한 여자네. 완벽하다 진짜."

카페에서 태민이 사준 커피를 대화를 나누다 말고 가끔 한 모금씩 마시며 애기를 나누고 있자니 왠지 바로 옆을 걸어가는 남자의 시선이 한 두 번쯤 내 쪽으로 힐끔 하고 내려봐지는게 느껴졌다.

…가슴 골 훔쳐보고 가는구나.

뭐, 이젠 슬슬 익숙해져서 화나지도 않는다.

그것보다는, 카페에 도착하고 좀 더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느낀건데, 이 사람 내 생각 이상으로 말을 재미있고 듣기 좋게 잘 한다.

"그러니까, 요즘은 문창과도 순문학…아, 그러니끼 고전 얘기하는건데…."

"앗, 알아요. 순문학. 아, 문창과에도 그거 있어요? 순문학하고 상업문학계하고 서로 파벌싸움 엄청 하는거."

"그거 있지! 잘 아네?"

"소설이나 만화를 좀 좋아해서 그냥 여기저기에서 소문 듣고 그랬어요…근데 그게 학교 내에서도 심해요?"

"심하지…근데 아까 말하려던건데, 문창과도 요즘은 그래도 만화나 드라마 각본같은것도 가르치고 그래. 뭐, 솔직히 우리 과가 취직률이 좋은 과는 아니니까. 저런 것도 가르치는게 낫겠다 싶었나보지."

"으으…한국이 좀 창작 관련해서 너무 안 좋은 나라긴 해요."

"그러고 보니까…."

우연히도 내 취미와 잘 맞는 전공에서 배우는 대학생이였는지, 나랑 대화 주제가 아주 잘 맞았다.

우와, 뭐야. 즐거워.

헌팅이라는게 원래 이런건가. 남자 쪽에서 내가 하고싶은 대화 주제를 신경쓰면서 막 맞춰주고 하니까, 나도 조금 신경써주기만 해도 대화가 쭉 이어지게 되서 굉장히 즐겁다.

남자일 때에는 하고싶은 얘기를 이렇게 막 해도 이상한 놈 취급하는 애들이 더러 있었으니까…아, 역시 사람은 얼굴인가. 외모지상주의인가. 여자일 때의 내가 보기 드문 정도가 아니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미녀다 보니까 이렇게 잘 해주는 건가….

"아, 그래서 내가 전에 여자친구가 자장가 불러달라고 했을때 뭐 불러줬는지 알아?"

"어…음…잘자라 우리 아가~아?"

"푸~푸루루 푸~푸린~푸~푸우."

"포켓몬이잖아!"

"으히히히…아, 진짜 애가 웃다가 잠 다 깻다고 화내야될지 웃어야될지 모르겠다고 막 하더라고."

그건 그렇고, 처음에는 그냥 조금 잡담이나 하다가 갈 생각이였지만, 중간중간 농담도 내 개그 코드에 맞게 하고 계속 날 즐겁게 해주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니 왠지 조금만 더 있어도 되지 않나 싶어진다.

한시간은 가볍게 넘었을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니, 잠시 화제가 끊겼을 때 태민이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더니,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와…근데 진짜 나 반할 것 같다."

"네?"

"몸매도 좋지, 얼굴도 예쁘지, 게다가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지…진짜 완전 내 이상형이다 너."

"어…."

살짝 한숨을 쉬면서 말하는 모습에 조금 움찔했다.

"희연이 너 진짜 남자친구 없어?"

"…없어요."

"그럼 나 입후보 하면 안될까? 처음 만나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나 희연이 너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에? 아, 안돼요. 그런거."

될 리가 없잖아. 내가 남자친구라니.

생각도 하기 싫다고.

…섹스는 꽤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섹스랑 이건 별개다.

뭣보다 섹스는 그냥 쾌락만 느끼며 눈을 꾹 감고 있으면 된다고 해도 남자친구라고 하면 막 키스하려고 들거나 할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남자랑 키스라니. 그건 진짜 끔찍하게 싫다.

"음…희연이 너 혹시 아직 시간 돼?"

"왜요?"

"안돼?"

"음…되긴 되는데."

"그럼 나랑 영화 안볼래? 여기 바로 위에 가면 영화관인데."

"으음…."

어떡하지.

두 번째로 묻는 말이긴 하지만, 아까와는 완전히 받아들이는 기분이 달라져 버렸다.

아까는 좀 꺼려졌다고 하면, 지금은 뭐 봐도 괜찮지 않나 싶어졌달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근데 영화까지 얻어 보기 너무 미안한데."

"괜찮다니까, 내가 같이 보고 싶어서 사는건데. 아, 커피 내가 치울테니까 같이 올라가자."

…슬쩍 말했더니 왠지 승낙한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뭐, 괜찮지 않을…까…?

============================ 작품 후기 ============================

나머지는 군대 갔다 와서 쓰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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