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34화 (34/108)

34====================

1부

♀ ♂ ♀ ♂ ♀ ♂

머리가 떡이 졌지만 감기 귀찮아서 모자를 쓰고 밥을 먹고 왔다.

가만 생각해보면 요즘 왠지 여자일 때에만 몸가짐에 신경을 쓰고 남자일 때에는 지저분하게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음….

뭐 어때.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예를 들어서, 300만원짜리 보석하고, 3만원짜리 큐빅이 하나씩 있다면….

아니, 그 정도까지 차이가 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누구나 다 보석은 아끼고 자주 닦으면서 관리하겠지만 큐빅은 신경도 안쓰겠지?

그런 원리다.

남자인 나도 못 생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자인 나는 조금 사기적이다.

이건 뭐, 인간으로 안 보일 정도니까. 요즘 내 눈이 높아지는데에 큰 영향을 주고있다.

예전에는 길가다가 예쁜 여자를 보면 시선이 가기고 했는데 요즘은 길가다가 섹시하거나 야하게 옷을 입은 여자를 봐도 눈길이 가지를 않는다.

되려 옷 입은 패션을 보면서 '오, 저거 이쁜데. 나도 저렇게 입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 했지.

…뭔가 이상한데.

아무튼간에 결국은 그거다.

게임을 할 때에 메인 계정을 만들어서 키워봤더니 마음에 안 들어서 서브 계정을 생성!

이후 서브에 캐시를 마구 질러 줘 버리면 이후 본래의 계정에는 접속도 안 하게 되는…그런 현상이 아닐까?

쉽게 예를 들자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스쿠터를 사면 이후에는 스쿠터만 타게 되겠지? 자전거보다 편하니까.

참고로 나도 자전거를 타다가 스쿠터를 사서 타게 된 뒤 스쿠터가 너무 편해서 자전거를 친구한테 싸게 팔아버렸던 적이 있다.

…여자일 때가 편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견적으로 능력치가 너무 높다보니 여자일 때가 더 기분이 좋은 점은 있기는 하다.

인간족 캐릭터로 사냥하고 놀다가 엘프족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냥하기 시작하면…미묘한 차이지만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다.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한달까….

나르시즘인가.

얼굴이고 몸매고, 너무 인공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인 비율에, 균형까지 잡혀있다 보니 오히려 성형으로 불가능하다는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이는 외모다.

말이 모순되어있지만…남자일 때의 나와 비교하면 확실히 지상인과 천상인의 차이가 아닐까.

역시 오타쿠인 내 이상형이 구현화되어서 이런걸까?

오타쿠인 나에게 감사, 나에게 이런 외모를 보여준 수많은 게임과 스크린샷들에게 감사, 그리고 내 미적 감각에 감사하자!

아무래도 TS스톤이 현실 보정을 해줘서 좀더 인간같이 해 주지 않았을까 싶지만…그래도 예쁘기는 무서울 정도로 예쁘다.

"흐아아암…."

아직 해가 떠있는데도 하도 할 일이 없다보니 잠이 쏟아진다.

차라리 과제가 잔뜩 있으면 이렇게까지 한가해서 졸릴 일도 없을텐데…왠만한 과제는 미리미리 끝내두고 놀거나, 쉬운 과제는 당일치기로 처리하거나 하는 식으로 단숨에 파바박 하고 처리하는 타입이여서 그런지 지금처럼 여유가 넘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심심한데, 오늘도 여자가 되서 산책이나 하고 올까.

겨우 산책일 뿐이지만 나 자신이 타인이 된다는 감각은 매우 기분좋다.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기분 좋다고 해야할까.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쓰이고…나 자신이 주목받는다는게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음…오늘은 뭘 하지.'

오늘도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할까, 아니면 여자가 되서 산책이나 나갈까….

고민된다.

한가하다는건 좋기도 한데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너무 시간이 흘러 넘쳐서 할 일이 없다고 해야할까. 할 일을 찾아서 하라고들 하지만 그것까지도 해 버리면 정말로 할 일이 없다.

그러면 또 할일을 찾아서 해! 라고 하는건 아무래도…난 그렇게 부지런한 인간도 아니고.

"응?"

오늘의 이 지루한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저 멀리에서 눈에 익은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혜림이랑 민우…어라, 저 두사람 혜림이가 권성민 여자친구였던 시절에 서로 밀당하다가 결국 사이가 틀어져서 서로 모른 척 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 후로 같이 다니는건 한번도 못 봤는데….

인사를 하려던 나는 뭔가 수상하다 싶어서 곧바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두 사람이 시선을 피해 적당히 숨었다.

차 뒤로 갔다가 길을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만 같아 건물 뒤로 가고, 계속해서 움직였다가 벤치 위에 앉은 채 기다리고 하며 두 사람을 미행했다.

'무슨 일이지….'

설마 사귀는 건가.

억측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얘기다. 혜림이 성격 상 권성민이 없어졌으니 다음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법한 남자를 찾아 남자친구로 삼을테고…순진한 척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산하는 성격이니까.

민우놈 같은 경우에도 맨날 여친 갖고싶다 섹스 하고싶다 하는 소리만 하는 성욕덩어리니까…게다가 혜림이하고는 한번 서로 사귀냐 마느냐 암묵적으로 밀고 당기기도 했고.

숨어서 천천히 쫓아가 보니 민우놈도 혜림이도 같은 건물로 들어간다. 민우가 살고있는 방이 있는 기숙사 건물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방에 들어갈 확률이 높겠지.

좀더 따라가 보자.

우선은 시간을 좀 끌고. 곧바로 방에 들어갈지 아닐지도 모르고…잠깐 뭔가 가지고 나올려고 들어간 걸 수도 있으니까.

민우놈이 사는 기숙사 건물 바깥에서 15분정도 시간을 끈 나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민우놈의 방 앞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한번 살피고, 귀를 기울였다.

[쯥…쫍…쫍….]

…무슨 소리지?

문 밖에서도 조용히 하기만 하면 충분히 들릴만한 소리다. 대화하고 있는게 아닌건가?

훔쳐듣는게 남들에게 숨기고 있는 취미다보니 어떻게 방 안의 소리를 엿들으면 좋을지는 알고있다.

문에 귀를 대는건 생각보다 위험하다. 귀를 대는 순간 문이 밀리면서 소리가 살짝 나기도 하니까. 게다가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는 경우에도 대응하기 힘들다.

그리고 지금처럼 사람들이 지나다닐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그런식으로 엿듣는건 안좋다.

문에 귀를 대거나 하는 수법은 조금 위험하겠지.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게 나는 문 바로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문과 문틀의 틈새에 슬쩍 귀를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손에는 휴대전화. 이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보더라도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처럼 보이겠지.

[하아…오빠…안돼요….]

[안돼긴…벌써 빨아줬잖아.]

[입으로만 해주면 안한다매요….]

[알았어, 알았어…한 번만 할께.]

[아앙…몰라아….]

음….

그렇구나. 음.

섹스하는 중이군.

[그거 있죠…?]

[밖에다 쌀께 밖에다.]

[안돼요….]

[뭔일 생겨도 오빠가 다 책임 진다니까.]

음….

내 생각 이상이다.

어느새 저정도까지 나갔던 걸까.

그러고 보니까 혜림이가 나한테 민우놈 안부를 물어보지 않았었나? 요즘에도 같이 다니냐고.

그거랑 지금 상황이 무슨 관계가 있긴 한걸까….

[하악, 하악…앙, 오빠아…아앙….]

[오빠거 좋아?]

[앙…몰라요…흐응….]

나는 뭔가 서로 커플다운 대화를 하지 않으려나~해서 훔쳐들으러 온 건데. 섹스까지 할 정도였을 줄이야….

이건 이미 커플이니 아니니 의심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뭐, 민우놈 성격상 섹스 파트너라고 할 수도 있지만…아무튼 섹스를 할 정도의 사이라는건 틀림 없는거지.

흥미가 확 떨어졌다.

훔쳐듣는 취미는 있지만, 민우새끼랑 혜림이년이 섹스하는걸 훔쳐들을 정도로 변태는 아니다.

다른 커플이라면 몰라도…민우새끼가 숨 헐떡이는 소리같은건 듣고싶지 않아.

민우새끼가 섹스하면서 서로 네가좋다 니가좋다 하는 소리를 엿들으며 하아하아 대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성현이한테 이 일이나 얘기해 주고 둘이서 민우새끼랑 혜림이 뒷담이나 하고 놀아야지.

돌아가는 김에 나는 기숙사 라운지에 대고 민우네 방에서 여자랑 그런 걸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좀 조용시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말한 사람이 나라는걸 민우새끼는 절대로 모를테니까 안전하다.

섹스하는걸 건드리면 개도 화낸다고 하지만…나한테 빌린 돈을 갚기 전까지는 민우새끼는 내 마음속에서 개 이하다.

방금 막 시작한 것 같던데 안되셨습니다. 분위기 팍 깨지실테니 잘 복구 해보십쇼.

좀 잔인한 것 같지만, 양심이 찔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방에 돌아올때쯤 되어서, 성현이랑 혜림이와 민우놈의 뒷담이나 하려고 보니 휴대전화에 메세지가 하나 와 있는게 보였다.

[나중에 연락할께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 영호라는 고등학생하고 관계는 이제 끝난 거겠지.

나중에 봐서 야한 대화를 좀 안하고, 적당히 재미있는 대화나 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때가서 또 얘기하고 놀아야 겠다.

[뭐. 성. 하. 현. 냐.]

나는 성현이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서로 메신저로 뒷담을 하기 시작했다..

♀ ♂ ♀ ♂ ♀ ♂

"그래서…그 민우라는 사람이 어쨋다고?"

"그러니까, 돈을 빌려놓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성현아, 형이 미안하다. 그런데 형이 정말 돈이 없다. 좀만 기다려봐라.' 그리고 다다음날 밤에 연락을 했는데 자기가 룸싸롱에서 잔뜩 놀고있다며 오라더라."

"…룸싸롱 갈 돈은 어디서 났대?"

"그러니까!"

성현이가 밥을 사준다길래 나는 성현이와 같이 밥을 먹고있었다.

…물론, 나는 지금 여자다.

이녀석, 예전에는 남자인 나한테 밥 먹자, 밥 사줄께 소리 잔뜩 하더니…여자인 나랑 만나고 나서는 한 마디도….

아니, 두번인가 세번정도 연락하긴 했었나?

아무튼 여자인 나한테 메신저로 자꾸 요즘 날 춥지 않냐면서, 근처에 일본요리집 있던데 일본 냄비 요리 좋아하냐고 묻길래 사줄꺼면 간다고 OK해 버렸다.

이번에도 비싸고 맛있어 보이는 집을 가려는 걸 내가 억지로 끌고와서 조금 싸고 맛있는 집으로 데려왔다.

이전부터 알고있던 집이다. 성현이랑 남자일 때의 내가 와 본 적이 있던 곳이니 분명 여기 오겠지 하고있었는데 전혀 모르는 비싼 요리집에 데려가길래 깜짝 놀래서 끌고왔다.

돈을 그렇게 펑펑쓰면 안돼지.

'야…희연이 진짜 착하더라…우리 과 여자애들처럼 막 밥 사달라고 하지도 않고, 저번에는 비싸다면서 싼데 가서 먹자고 하더라.'

…왠지 이런 점 때문에 남자인 나한테 자꾸 여자인 내 칭찬을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비싼 곳에서 사주려는걸 놔두고 보기에는 내가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작년에는 남자친구 있는 여자도 꼬셔대서 아주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그러면서 원래 뺏기는 놈이 문제있는 거라고 하지를 않나…."

"뺏기는 놈이 문제있다는건 무슨 소리야…?"

"몰라. 뺏길만하니까 뺏기는 거라나 뭐라나…와인에 예를 들면서 아주 유명한 와인하고 싸구려 와인을 맛보면 누구나 다 싸구려 와인만 마실때에는 그게 최고인 줄 알지만 유명한 와인을 마시면 뭐가 더 나은지 확실히 안다나 뭐라나."

"…좀 기분나쁘다 그거."

성현이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성현이는 이미 나랑 한번 했던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처음 듣는 얘기인 척 하며 대화를 했다.

남자일 때 나랑 한번 했던 얘기이긴 해도 여자인 나와는 한번도 하지 않은 얘기였으니까…처음 듣는 얘기인 척 해주는 게 좋겠지.

그것보다, 여자랑 대화할 때에 사실 지금처럼 다른 사람 욕은 하지 않는게 좋다. 여자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뒷담을 자주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지금이야 뭐 나도 공통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욕하는 거니 상관없지만.

성현이는 민우놈에게 조금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나한테 욕을 해서 민우놈에 대한 내 평가를 낮추는 걸로 불안감 같은걸 지우려 드는걸까.

괜히 분위기가 안 좋아질테니 그런 얘기는 꺼내지 말자.

"이건 태수 얘기인데, 수영이형이라고 지금 군대간 형이 있거든? 그 형이 하도 당한게 많은데 정말 과했다 싶은 일이 있었나봐. 수영이 형이 팔에 흉터가 남을 정도로. 근데 그걸 민우 그놈이 사과를 하지 않는거야. 그걸가지고 4시간 가량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해서 설득했는데 결국은 사과 했지만 그때 했던 말이 참 가관이라더라."

"뭐라고 했는데?"

성현이는 목을 잠시 더듬더니 민우놈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 '태수야, 수영이가 형한테 사과하라고 했니? 수영이가 사과하라고 하지 않고 그때 분명이 괜찮다고 했거든. 괜찮다고 했으면 괜찮다는거야. 형하고 수영이는 그런사이다. 형이 사과하기를 바랬으면 수영이가 사과해 달라고 했을거다. 그럼 형도 했을거고.' "

흉내 되게 못내네!

민우놈 흉내 경력 1년인 나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

"게다가 그걸 가지고 태수가 그래도 사과할 문제는 사과해야하는거라고 4시간을 설득해서, 한 사과가 그냥 수영이형 팔 툭 치면서 '아프냐? 미안하다.' 하고 끝."

"…좀 심했다 그건."

"그치?"

…그 설득을 한 당사자가 나 자신이다 보니 속이 갑자기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수영이 형이 생일날 우연이라고는 해도 민우놈이 원인이 되어서 팔에 상처를 입었는데, 작지만 분명히 흉터가 남을만한 상처가 생겼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사과를 안하고 '생일빵이다' 같은 식으로 넘어가려 하길래 나중에 장장 4시간에 걸쳐 사과해야 한다고 부드럽게 말했더니 하는말이 사과하라고 안했으니까 안했다.

…미쳤나?

게다가 결국 한 사과도 정말 대충이였다. 성현이가 한 말대로 그냥 팔 툭툭 치고 아프냐? 미안하다 짜식. 형이 좋아서 그런거다. 약사줄까?

수영이 형이 그 말에 괜찮다고 한마디 하니까 괜찮으면 됐다! 하고 끝.

…뭐지?

뭔가 분명히 이상한 것 같은데 정말 설명을 하려고 하면 설명을 하려는 내 머리가 더 아파온다.

"오늘은 내가 살께."

"아냐, 내가 살께."

"그건 좀 아니지…네가 몇 번을 사 줬는데."

식사가 끝난 후 계산을 하려 하자 성현이가 더치페이를 하려고 돈을 꺼내는 나를 만류했다.

나는 여전히 지갑이 없다.

이상하게 속옷은 잘 샀는데…여자 지갑을 사려고 하니 거부감이 든다.

대체 뭘까…전에 지갑을 사려고 했을 때 봤던 그 분홍빛, 금빛으로 반짝반짝 거리는 지갑은…그냥 심플하게 검은색으로 통일된 지갑 없을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냈더니 성현이가 지갑을 꺼내느라 지퍼가 열려있는 가방을 흔들며 나를 막아섰다.

성현이는 지갑이나 휴대전화, 수첩 등을 전부 다 가방에 넣는 쪽이다. 나는 전화, 지갑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그래서 그런지 가끔 전화를 안 받는다…수업 시작 전에 불러달라고 해놓고 안받으면 어떡하자는 건지.

"에이, 됐다니까. 넣어둬 넣어둬."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사게 하는건 아니지. 남잔데."

"나한테 사준게 얼만데, 이정도는 내가 내야지."

괜히 고집은 세서 자꾸만 자기가 계산하려고 한다.

나는 지갑을 든 성현이의 손을 잡아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상태로 다른 한 손으로 돈을 내밀어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어."

"으잇?!"

가방에서 콘돔 상자가 떨어졌다.

저번에 산 그거인가.

가방에 넣어뒀던 건가…아무래도 내가 성현이와 실랑이를 하다보니 가방이 너무 흔들려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지퍼도 열려있었고.

성현이는 깜짝 놀라며 콘돔 상자를 주워 가방 안에 넣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 이래서 직접 내겠다고…."

"아, 아니, 아니, 아니거든!"

아, 요즘 좀 안 더듬는다 싶었더니 또인가.

섹스를 한 뒤에도 성현이가 연락을 하길래 여자일 때에 가끔 만나서 밥을 먹거나 했더니 어느새 여자일 때의 나랑 있어도 조금도 말을 더듬지 않게 됬다.

…그래서 요즘은 안 더듬나 싶었더니 아직 완전히 고친 건 아닌건가.

"아냐아냐, 다 이해해. 음…그렇지, 이런걸 생각하고 왔는데 여자가 밥까지 사줘버리면 조금 마음에 걸릴수도 있겠지."

아, 그 사이에 내가 낸 돈으로 이미 계산이 끝났다.

"계산 물러달라고 할까? 네가 낼꺼야?"

"그, 아, 아니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다 이해해."

"아, 아니라니까?!"

계산을 끝내고 가게 밖으로 나오면서도 성현이는 계속해서 변명하듯 말했다.

"이, 그게 이건 그냥 집 안에 두기 좀 그래서 들고다니는거지…그런 생각 하고 그런게 아니라니까!"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는 거구나."

"그…아, 아니라고 진짜…."

아, 삐졌다.

…진짜 잘 삐진다. 자기가 말을 잘 못한다는걸 자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사람을 설득하는게 잘 안되면 자꾸만 풀이 죽는 경향이 있다.

음…그러고 보면 요즘 조금 하고싶기도 했고.

성현이랑은 이미 한번 한 적도 있으니까…할까?

아무래도 나한테 가장 맞는 상대는 성현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선, 차일 걸 두려워해서 그런지 함부로 사귀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무거운 관계로 가려 하지 않는 것도 있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친밀도같은것도 꽤 높고.

게다가 얼마 전부터 보니 입도 꽤 무거운데다가 내 쪽도 많이 생각해준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괜찮다는 것 처럼 주소라던가, 이름이나 대학같은 신상정보도 안 묻고…그냥 여자인 나를 여자인 나로만 보고 지내준다고 해야하나.

여자인 나랑 섹스하고 싶어하는 건 있는 것 같지만….

"아니야? 그럼 하기 싫어?"

"어…그, 그…그건…."

성현이는 머뭇거린다.

하고싶다는 거구나!

흠흠, 건강하다는 증거야….

"제한시간 5초입니다, 5, 4, 3…."

"하, 하고는…싶…지."

놀리는거 너무 재미있다.

뭐, 성현이 정도라면 나도 괜찮다.

한번 했다는 게 우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입이 무거운 것도 있고, 멋대로 막 움직이거나, 달려들질 않는 점도 있고….

"하아…섹스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더니, 하고 싶어졌다아…."

"무, 뭐?"

아, 입 밖으로 내 버렸나.

목소리도 꽤나 야했다. 잘 못 들은것처럼 되물으면서도 제대로 들은건지 성현이의 바지춤의 주름도 조금 이상하게 되어있다. 한쪽이 팽팽하다고 해야할까.

섰구나….

으응…역시 여자가 되면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섹스에 대한 걸 생각하면 갑자기 머릿속이 뜨거워지면서 인격이 변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아래쪽도 조금 젖는게 느껴진다…뜨겁고 습하게, 그리고 걸어갈 때마다 입구쪽이 뭔가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다른 것보다 바람이 스칠때 겉부분만 이상할 정도로 빨리 차갑게 식는듯한 기분이….

'하아아….'

정말로 머릿속에서 또닥하고 뭔가가 바뀌는 듯한 기분이다. 갑자기 팍 하고 생각의 구조가 변한다고 해야할까.

정말로 여자가 되는 기분이다.

여자일 때에 평소에는 남자인 내가 여자인 나와 함께 내 몸을 조종한다는 기분이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야한 생각을 하다가 흥분되 버리면 정말로 온 몸이 여자인 나에게 정복당한 것 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어디 조용한 곳 알아?"

"…꿀꺽."

성현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린다.

…눈치가 꽤 좋아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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