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29화 (29/108)

29====================

1부

♀ ♂ ♀ ♂ ♀ ♂

성현이에게 그날 밤 여자일 때의 내가 쓰는 메신저와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지금은 답장도 바로바로 하고있으니 한번 연락해보라는 말도 같이 보냈다.

오늘 민우새끼와 무슨 얘기를 했냐는 말에는 그냥 그럴 일이 있다고만 하고, 자세히 말해주지를 않는다.

별로 비밀로 할만한 대화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그래도 말하기 싫은 것 같으니까 계속해서 못 들은 일로 취급해두자.

[저기…죄송합니다. 희연씨 맞으신가요?]

요즘은 집에서는 언제나 여자가 되어있는게 일상이 되어서 여자인 채 브래지어같은건 안하고 티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 기다리고 있자 메세지가 왔다.

집 안에서 옷을 전부 다 제대로 입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건 여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야 옷을 입고있는것도 나름 신기한 기분이라 한동안 집 안에서도 계속 제대로 입고있었지만 요즘에 와서는 팬티에 티셔츠가 더 편해졌다.

메신저 자체도 다운받고 아이디도 만들어야 했을테니 성현이가 보낸 메세지는 내가 아이디를 알려주고 난 뒤 꽤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내져왔다.

[김성현입니다.]

[뭐야…왜이리 말투가 딱딱해. 맞선봐?]

진짜 무슨 맞선보나…문자라고는 하지만 너무 사무적이다.

남자일 때의 나랑 하는 문자는 답장도 'ㅇㅇ' 나 'ㄴㄴ' 같은걸로 했던놈이 이러니까 다른 사람 같다.

[싫으시면 바꿀께요.]

[바꿔주세요.]

[네.]

[바꾸라고.]

[응.]

이젠 제대로 반말 하겠지….

[근데 무슨일?]

[혹시 이번주 토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반말.]

[있어?]

좋아.

제대로 반말하면서 대화할 거라는 기대는 버리자.

이번주 토요일…그러니까, 빼빼로 데이가 있기 전날이다.

그러고보니 아까 민우새끼도 빼빼로 데이 얘기를 했었지. 혹시 빼빼로 주려고 이러나?

토요일…예정은 하나도 없다.

[토요일에는 왜?]

[같이 밥 먹을까 해서….]

데이트 신청인가 이거.

아자! 공짜 빼빼로만 있는게 아니라 공짜밥까지 있다!

여자인 나를 대하는 성현이를 생각해보면 싼 곳에서 대충 먹으려 하진 않을테고, 이건 기대해 볼 만 하다.

[어디 갈꺼야?]

[시간 있어?]

[공짜라고 하면 없는시간도 냅니다.]

미래에 내가 대머리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는 사실 대학생치고는 돈을 굉장히 안 쓰는 쪽에 속한다. 한달 내내 오락비도 쓰지 않고 식비만 쓰니까. 게다가 그것도 하루 한 끼 정도로 끝낸다.

두끼 먹으면 그날은 많이 먹은 쪽이다.

돈을 아낀다 아낀다 하다보니 이렇게 됬는데, 이제와서는 하루에 세끼정도 먹으면 배가 불러서 다음날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가 된다.

잠들기 직전에 딱 배가 고파서 잠자는데에 조금 고생하지만 정말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도 배가 고프질 않는다.

여자가 되고 나서야 옷 때문에 돈을 쓰고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진짜 아낄 수 있는 돈은 될수있는한 아끼고 살고있다. 빨래도 기숙사 공용 세탁기에 돌리면 돈이 나가서 가끔씩 손빨래로 끝낼만한 것들은 직접 빨아 널어 버리기도 할 정도로.

유일하게 돈을 아끼지 않는게 밥인데, 맛 없는걸 억지로 먹기는 해도 싫어하다보니 맛있게 먹기만 한다면 가격이 상당히 비싸도 만족스럽게 먹는다. 그런 나에게 공짜 밥이라니….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성현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입맛이 나랑 꽤 잘 맞아서 맛있는 곳으로만 갈테고,

민우새끼가 말하는 공짜밥은 절대 안먹는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해놓고 '형이 지금보니까 돈이 부족하다, 돈이 없다. 태수야 너 돈 좀 빌려줄수 있냐.' 하면서 내가 내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까.

게다가 맛도 없다.

[이번주 토요일, 어디에서 몇시?]

[아, 그러면 전에 만났던 데에서….]

[그 벤치 말하는거지?]

[응.]

[시간은?]

[언제 시간 돼?]

[언제든지.]

[혹시 점심쯤에 시간되면 영화 보러 갈래?]

…영화?

음, 잠깐만.

뭔가 약간 데이트 같아졌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그냥 밥 얻어먹으러 가는거였는데.

그치만 뭐 성현이라면 괜찮으려나. 벌써 생일날 한번 같이 다니기도 했고.

[뭔가 갑자기 데이트같아졌는데.]

[싫으면 그냥 저녁 전에 만나고….]

[아냐아냐. 보러 가자.]

여기 와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한국인 종족 특성으로 보고싶은것들은 전부 다운받아 봤으니까!

이러면 안돼는걸 알면서도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운로드를 받을려고 찾아다니게 돼 버린다….

[그럼 내일 2시쯤에.]

[근데 이거 데이트 신청하는거야?]

답장이 없다.

…대답하기 곤란한건가.

[알았어, 내일 봐.]

[응.]

방금 물어본 말에는 답하지 않고 끝내는거냐.

그래도 뭐…이건 데이트 신청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시기도 그렇고, 영화를 보러 가자는 것도 그렇고. 나같아도 이런건 데이트를 생각하고 말할테니까.

최근에 산 옷을 입고 나갈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약간이지만 신이 난다. 안그래도 한번 입고 나가보고 싶긴 했는데….

여자가 되어 있으면 꼭 내 몸이 바비인형이 된 듯한 기분이다. 으히히, 리얼 옷갈아입히기 게임 너무 재미있다.

남자일 때의 내 옷을 입어보는것도 재미있고, 알몸 와이셔츠는 확실히 파괴력이 꽤나 있다. 가슴도 엄청 섹시하지만 허벅지가 역시 최고!

스타킹도 사 버릴까?

…역시 그건 조금 위험한가.

아직 치마를 입어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슬슬 흥미는 생기고 있다.

내일은 그럼 무슨 옷을 입을까….

성현이한테는 첫 데이트 일테니까…아니, 어찌보면 그냥 첫 데이트 신청인가. 생일날 성현이의 의도는 아니였지만 그것도 데이트를 했다고 하면 했다 할 수 있을테니까.

어찌됬든 조금 신경써서 입고 가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세번 다 흰 스웨터에 청바지만 입고 가는건 심하지.

난 그게 제일 마음에 들지만…스웨터에 청바지는 굉장한 패션이다. 큰 가슴에 입으니 가슴은 더 커보이고, 청바지는 달라붙어서 다리는 더 가늘어보이는데다가 엉덩이는 또 엄청 야릇해 보인다. 주물러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옷이 날개다 라고 하기보다는 옷걸이가 예쁘니 무슨 옷이든 잘 어울린다고 해야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입어본 옷들 중 가장 맘에 드는걸 고르라면 나는 스웨터에 청바지 패션이 제일 마음에 든다.

…생각해보니까 청바지밖에 입을만한게 없네?

스웨터야 괜찮지만, 캔버스화에는 청바지 말고는 어울리지가 않을 것 같다. 청바지에 캔버스화, 그리고…뭘 입지.

여자인 나야 모델보다 나을 정도로 몸매가 좋으니 아무거나 입어도 잘 어울릴테지만 조금 고민해 봐야겠다.

뭘 입을까….

어차피 고민해볼래야 고민할만한 옷들도 별로 없지만.

♀ ♂ ♀ ♂ ♀ ♂

토요일.

미리 여자가 되어있는 채로 샤워도 하고, 한번 여자인 채로 머리도 감아보고 묶으면서 머리 모양을 체크하고 브래지어도 골라 입은 나는 옷을 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오랫만에 나가는 것 같다. 데이빗을 보고 나서는 한번도 안나갔으니까.

나가자마자 언제나 여자일 때에 바깥에 나가면 느꼈던 것 처럼 시선이 느껴진다.

오늘은 조금 평소보다 어른스러운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길면 모양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이미지가 바뀌는 건가…거울을 보니 연상의 누님 같은 분위기가 났다.

야릇한 연상의 누님.

뭐, 여자인 내 몸이 야해보이는게 하루이틀인가.

머리는 오늘도 올려 묶었다. 이게 제일 편하다.

옷은 코트에, 안쪽에는 새로 산 검은 긴팔 셔츠. 목까지 올라오는 이 옷을 뭐라고 하더라? 하이넥? 조금 남자 옷 같기도 했지만 되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그 위에 새로 산 바바리 코트. 블루그레이라고 했던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회색이다. 블루그레이가 뭐야 블루그레이 컬러가. 시나몬은 고풍스럽고 계피는 촌스럽다는거냐.

입은 옷이 조금 이상하다고 할까. 그냥 흰 스웨터에다가 입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안 드는건 아니지만 흰 스웨터는 성현이랑 만날때 너무 많이 입었다.

과감하게 희생하자.

원래 난 패션 테러리스트니까 이정도 어색함은 괜찮아.

솔직히 나도 내 옷이 괜찮은지 안괜찮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입어도 괜찮으려나 해서 인터넷에 회색 바바리 청바지 검은티 하고 검색했지만 사진이 하나도 안 나왔다.

뭐 괜찮겠지.

기숙사 밖으로 나와보니 역시 코트를 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따듯해!

나는 천천히 걸어서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아직 안 나와있겠지. 내가 기숙사에서 나오는걸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미리 나왔다.

…응?

"헉."

어라?!

벌써 나와있어!

분명 성현이가 사는 곳은 학교에서 꽤나 멀텐데…올려면 택시를 타도 30분쯤은 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면 1시간 이상 걸릴텐데.

대체 몇시부터 준비하고 나온거냐!

그보다 내 모습을 보면 곤란하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는 문은 기숙사 근처에 있긴 했지만, 나는 그쪽에서 가고있는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기숙사 단지에서 맨 마지막 동 앞에는 곧바로 대학교 부지를 나가 문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서부터 한 4개정도 건물을 지나서 들어와야 되는 건물에 살고있다. 그 옆쪽에는 공원이 있고, 벤치는 그 공원 앞에 있다. 그 공원은 대학교 부지를 나가는 문 쪽으로 들어와 쭉 전진만 하면 나오게 되있고, 내가 사는 기숙사는 들어오다가 한번 우회전을 해야된다. 아니면 들어오자마자 우회전을 해서 자전거나 스쿠터는 들어올만 하지만 차는 들어올 수 없는 뒷길로 오거나.

빙 돌아서 갈까….

이렇게 일찍 와서 날 귀찮게 하다니.

나는 기숙사 쪽으로 돌아가 뒷길로 가서 기숙사 바깥에서 막 들어온 것처럼 약속장소로 갔다.

"일찍 나왔네?"

"앗."

성현이는 나를 보더니 입을 열려다 말고 갑자기 심호흡을 했다.

"후우…응, 근데 너도 일찍 나왔네?"

"원래 약속장소에는 일찍 나가있거든. 근데 왜 한시간이나 일찍 왔어?"

"…나도 원래 일찍 나와서 그래."

거짓말 하고 있네!

내가 모를줄 아냐 이 지각쟁이!

"난 미안, 오래 기다렸어? 아니야, 나도 방금 막 왔어 같은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1시간 일찍 약속 잡을 걸 그랬나?"

"…그러면 거기에서 또 한시간 일찍 왔을걸."

오, 그럴 법 하다.

뭐, 일찍온건 일찍 온 거니까. 미리미리 움직이도록 하자.

성현이도 같은 생각인건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래는 택시타고 갈 생각이였는데…버스 타고 갈까?"

"어디?

"영화 보러. 버스 괜찮아?"

"괜찮아, 근데 오래 걸려?"

"한 40분 정도…."

멀어!

그 정도면 성현이가 사는 집 근처까지 갈 만한 거리다.

아, 혹시 거기까지 가려는건가? 지금 있는 곳 근처에는 맛있는 식당도, 크게 놀 만한 것도 없지만 성현이네 집 주변이라면 놀만한게 꽤 많다.

오락실 같은것도 있고, 영화관도 있었지. 맛있는 식당도 대부분 그 근처에 있다.

"꽤 머네? 어디까지 가는거야?"

"오늘 밥 먹으러 갈까 하는곳 근처에 영화관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 근처에서 볼까 해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성현이네 집 근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성현이네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것 같다.

역시 그 주변이 놀것도 많고, 식당도 많아…내가 다니는 대학교 근처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옷 잘 어울리네…."

"…너 인터넷에 데이트 할때 어떻게 해야되는지 검색해보고 왔지."

너무 만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온듯한 대사다. 게다가 실제로 연애교과서 같은 거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말' 같은거에 자주 나오기도 하고.

뭐가 됬든 칭찬해라! 라는건데, 실제로 효과도 꽤 좋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니까.

단, 남용하지 말것.

버스정류장에 온지 얼마 안되서 버스가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게 보인다. 평소에는 꽤 오래 기다리는데…오늘 운이 좋은건가.

"아, 나 교통카드 없어."

성현이는 먼저 카드를 찍고 버스에 탔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내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성현이는 빈 좌석을 하나 찾아서 그 앞에 서 있었다.

"여기 앉아."

진짜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온 건가.

검색해보지 않았어도 저 정도야 뭐 기본적인 행동이긴 하다. 나야 괜찮지만 그래도 앉으라고 하니 앉아주자.

여자인 나보다도 성현이가 키가 조금 더 작은데다가 몸 여기저기가 가늘어서 성현이에게 앉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역시 여장대회 부동의 압도적 1위! 저 정도면 그럭저럭 미소년 축에 속하지 않을까?

"태수한테 들었는데 마작 좋아한다면서?"

"마작 할줄 알아?"

"조금."

버스에 앉아있었더니 성현이가 마작 얘기를 꺼냈다.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마작 얘기나 하면서 보내볼까.

성현이는 의외로 마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컴퓨터로 쳐보기도 꽤 쳐본 것 같았다.

이 자식, 남자인 내가 마작하자고 할때는 그렇게 싫다싫다 하더니!

여자일 때 그냥 마작 좋아한다는 말 하나 들었다고이렇게까지 하냐!

오랫만에 마작 얘기를 하니 즐겁긴 하지만 배신감까지 든다.

"역시 빨리 나고 싶을 때에는 퐁하고 치만 하는게 최고지."

"깡 하기가 쉽지가 않던데."

"그거 나 한판에 동남서북 전부 다해서 7깡 나온적 있거든? 거기까지 가면 스릴 장난 아니야!"

"그게 돼?!"

됀다.

제길, 거기서 났으면 내가 깡이 3개였으니 산깡츠에 도라 10이라는 말도 안되는 패가 나오는 건데.

만화에나 나올법한 패가 나올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나지를 못했다.

성현이와 마작 얘기를 하던 나는 얘기를 하다 말고 요리 얘기로 대화를 돌렸다

남자일 때에 자주 얘기하던 주제다.

"볶음밥 하다가 한번이지만 황금 볶음밥 된 적이 있어. 계란 노른자만 풀어서 파파박 볶아봤는데 엄청 깔끔하게 되더라고…그게 되게 맛있었는데…."

"계란만 넣어서 볶았어? 노른자가 잘 탈텐데."

"그치?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거기에 그냥 소금간만 하고 파만 살짝 썰은다음 약간 볶아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게 되더라고?"

"아, 그럴때 있지…진짜 나는 그렇게 맛있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맛있게 될 때."

"난 탕이나 찌개류는 자신 없고 볶는것만 자꾸 하는데 그러다보니까 중화요리가 너무 신기해 보여. 어떻게 볶으면 그렇게 되는거지 싶은것도 많고."

"태수도 찌개랑 탕은 잘 못한다고 하던데. 난 반대로 탕이랑 찌개는 자신있는데 볶는건 좀…."

성현이는 꽤 즐거워 보인다.

남자일 때의 나랑 대화 코드가 잘 맞았으니까. 지금도 대화가 잘 통하는건 당연하다.

처음 대화를 시작했을때는 꽤 긴장하고 있던 것 처럼 딱딱한 얼굴이였는데 계속 쉬지 않고 말을 나누면서 웃고 떠들었더니 긴장이 풀린 것 처럼 성현이도 웃는 얼굴이 되었다.

"여름엔 요리하기 싫어지지 않아?"

"덥고 습하고 짜증나고 빨리 상하잖아. 땀도 엄청 나고. 겨울에는 괜찮은데."

"근데 이거 완전 아줌마 대화 아냐? 재미는 있는데…."

"뭐 어때? 재미있으면 됐지."

남자랑 여자가 할 대화는 아닌 것 같지만, 남자랑 남자일때에도 이런 대화는 많이 했으니까 뭐.

성현이랑 요리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다 갔다.

"아, 여기에서 내려야돼."

만화 얘기까지는 꺼내지 않아도 되겠군.

도착해 보니 성현이네 집에서 가깝지도 않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였다. 한번 지나간 적이 있는 곳이다.

영화관 바로 앞이다.

지금 상영하고 있는 영화는…전부다 내가 본 적도 없는 것들이다.

포스터는 뭔가 로맨스 같아보이는게 하나 있고, 코미디로 보이는게 하나, 그리고 액션처럼 보이는게 하나 있다.

"근데 오늘 뭐 볼꺼야?"

"…이거."

성현이가 지갑을 손에 들더니 표를 꺼내 보여줬다. 로맨스 영화다.

…어째서?!

나 로맨스 싫어해! 코미디가 좋아!

그치만…그, 그렇군. 여자랑 데이트 하는거니까 로맨스가 좋을거라고 생각한건가.

제길…표도 미리 사뒀으니 코미디로 바꾸자는 말도 하기 그렇고….

미리 말해둘껄!

"방영은 언제 해?"

"…앞으로 1시간 뒤에."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더니 말했다. 택시를 탔으면 20분 정도 일찍 왔을테니, 원래는 방영 20분 전에 올 생각이였던 건가.

1시간동안 뭘 해야하지….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나니 성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가만히 서 있었다.

응?

옆에 나란히 서서 성현이를 보니 뭔가 평소랑 달라보인다.

아까는 몰랐지만, 성현이가 이렇게까지 키가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김성현씨, 근데 지금 보니까 키가 좀 커지신거 같은데요?"

"…."

"깔창?"

대답이 없다.

정곡이구나!

괜찮아 성현아…난 깔창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단다.

하긴, 여자보다 키가 작으면 신경쓰이긴 하겠지. 아주 미묘한 차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겠지!

…모른 척 해주자.

"발 안아파? 아까 버스 안에서 계속 서있었잖아. 좀 어디 앉아서 쉬고있을까?"

나는 쉴 만한 곳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저기로 가서 시간이나 보낼까. 한시간이나 보내야 되니까 밖에서 있는것도 좀 그렇고.

성현이도 좀 불편하긴 했던건지 순순히 따라왔다.

카페에서 대충 버스 안에서 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영화 상영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영화관으로 들어간 나는 성현이에게 물어봤다.

"팝콘 파는데 먹을꺼야?"

"난 됐는데."

"콜라도?"

"영화관에서 뭐 먹는건 좀 그렇지."

성현아! 여자가 뭐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일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돼!

그치만 나도 영화권에서 뭘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영화 보다가 화장실 가고싶어져서 중요한 장면을 놓친적이 있어가지고 팝콘은 몰라도 콜라는 절대로 안마신다.

근데 그것보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표 판매소에 성인 딱지도 붙어있고 예고영상 같은거에서는 침대 위에 여주인공이랑 남주인공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거 야한거 아니야?"

"…조금 그런 장면이 있긴 있을걸?"

뭐, 우리 둘 다 성인이니까…볼수야 있지만.

혹시 노린걸까.

일부러 로맨스를 노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성현이 성격에 그러지는 않을 것 같지만, 으음…영화관에서 보이는 로맨스 영화도 지금은 이거 하나 뿐인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야하면 나야 재미있고 좋지.

영화 상영 전에 화장실에 갔다오고 나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게 내 공공장소 여자화장실 첫경험이긴 한데…생각보다 진짜 별거 없었다. 들어가서 볼일 보고 끝.

나중에 한번 예쁜 여자 들어가면 훔쳐보러 가볼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