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28화 (28/108)

28====================

1부

"알았어요, 성현아. 그럼 아까 그건 나중에 내가 문자로 보낼께."

"그래, 가라."

"뭘, 보낸단, 거냐?"

"숙제 자료요."

대체 왜 성현이랑 내 얘기에 끼어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민우새끼가 나한테 뭘 보내냐고 물어와서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난 똥 씹은 표정인 성현이를 두고 스쿠터를 타고 저 멀리 가서….

커브길에서 멈춰서고 저 멀리에서 숨어 상태를 지켜보았다.

워낙 내가 비밀을 듣는걸 좋아하다보니, 이런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숨어서 들으려 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잘 안 들리는데…그치만 과 건물 바로 앞에서 나를 쫓아내고 둘이서 할 얘기라고 할 만한 대화를 나눌리는 없다.

조금 기다리면, 장소를 옮길게 분명하다….

잠시 기다리자 내 생각대로 두 사람이 장소를 옮기는게 눈에 보였다. 방향을 봐서는 과 건물 뒤쪽으로 가려는 건가.

감사합니다.

거기라면 숨을곳이 참 많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사람이 정말 안 가는 곳이다. 벤치도 있고 조각상도 있어서 연인들이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이 안간다.

나도 조각상이나 보러 한번 가보고 그 뒤로는 안 가봤다.

나는 스쿠터를 몰고 가서 주차장에 세워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분명 두 사람이 간 쪽 바로 앞에 유리로 된 문이 있었다. 그 문 앞에는 짐들이 잔뜩 놓여져있으니 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다가가도 내 모습은 보이지 않을게 분명하다.

이상한 취미지만, 나는 처음 가보는 곳에 얼마간 머무르게 되면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파악하는게 취미다.

대학 부지도 너무 넒어서 대부분의 재학생들까지도 무슨 건물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나는 대학 내의 지도를 반 정도는 외우고 있다.

산책을 겸해서 몇번이고 돌아다녀 봤으니까.

과 건물 내에도 몇번이고 돌아다니며 혼자 있을 장소같은것도 찾아봤다.

사실은 커플들이 몰래 섹스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환상에 빠져서 찾아다닌거지만….

지금까지 그런 커플은 한번도 못봤다.

대학에 처음 입학햇을때에는 MT도 신입생 환영 동정떼기 섹스난교파티인줄 알고 언제 섹스하는건가 기대했었는데….

옛날에 봤었던 바나나를 민망한 자세로 먹이게 하는 MT라는 한국 뉴스가 나를 망쳐놓았다.

음탕한 뉴스같으니.

실제로 가 보니 섹스는 안하고 술만 마시길래 실망했다.

언제쯤 나는 몰래 섹스하는 커플을 훔쳐보게 될까.

훔쳐들은적은 있지만….

이상하게 난 훔쳐보는 운은 없는데 훔쳐듣게 되는 일은 자주 있다.

섹스라던가, 사이좋아보이던 커플들이 뒤에서 싸우는 소리라던가, 듣고싶지 않았던 집안 내의 재정사정에 대해 훔쳐듣게 된다던가.

의도치 않아도 자주 듣게되는 일이 많았고, 내가 워낙 발소리 없이 걸어다니다보니 놀래켜줄 마음으로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다가 내 욕을 하는걸 들은적도 있다.

듣기 싫은 얘기를 알게 되 버리는건 처음엔 싫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듣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집안에 돈이 별로 없다는걸 들었을 때에도 난 그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지고 마구 돈을 쓰고 다니다가 그 말을 듣고 돈을 아끼게 됬고, 내 욕을 하는 걸 듣고 나도 괜히 내 욕 하는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됬고.

내 욕을 하는걸 들은 덕분에 되려 날 옹호해주는 형하고도 친해지게 되기도 했다.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친하게 지내보면 정말 좋은 애라는걸 알 수 있다면서.

그 형이 대놓고 내 욕을 하는걸 비꼬듯이 '적어도 앞에서 친한척하고 뒤에서 욕하고다니는 애는 아니다.' 라고 했다가 그 애들한테 재수없다면서 욕을 먹게 되긴 했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어서 그런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알아 두기는 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내가 직접 훔쳐들으러 가는 일도 많았다.

엿듣는데에 별 이유는 없고, 그냥 무슨 말 하러온건지 궁금하니까 들으러 간다. 솔직히 들키거나 하면 재수없는 놈 취급 당하겠지만…안 들키면 장땡이니까.

"성현…, 형…, 말을…."

오, 들린다.

잘 들리지는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목소리가 들리기는 들렸다.

이미 대화를 시작한지는 좀 된 것 같다.

다행히 대화가 끝나기 전에 엿들을 만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엿들어보자.

나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인 채 접근해 좀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다.

"후우…."

"한숨만 쉬지 말고 말을 하라니까?"

"뭔 말을 해요?"

"성현아, 형한테 싫은점이 있으면 그냥 말을 하라니까. 형 답답하다. 형 그런거가지고 화내는 사람 아니다? 싫은게 있으면 싫다. 딱 말을 해야 형이 알아들을 거 아니냐?"

와…또 이 말이냐.

수영이 형이 생각난다. 분명 저 말을 듣고 싫은점을 다 말했다가 개새끼야! 하는 소리와 함께 얻어맞았지.

그리고 결국 빌린 돈 때문에 뒤에서 맨날 욕하다가 수영이 형이 먼저 사과했고. 수영이형네 집은 진짜 집안 사정이 안좋다.

대학 등록금 비싸다고 명문대에 합격해놓고 대학 자퇴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걸 나한테 말할 정도니까.

수영이형도 나랑 성현이랑 똑같이, 설마 안갚겠냐 하고 돈을 빌려줬다가 못 돌려받은 케이스다.

결국 수영이형이 이대로 가다가는 받을 돈도 못 받고 맨날 만날때마다 욕만 먹고 돈 달라고 하면 얻어맞을까봐 결국은 내가 그냥 참고 사과하라고 설득하자 먼저 숙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민우새끼는 '형도 미안했다! 짜식!' 하면서 해피엔딩~.

…진짜 정신병 있는 것 같다.

그 일에 대한 말은 나랑 수영이형이 성현이한테 몇번이고 얘기해 줬기 때문에 성현이도 잘 알고 있다.

"말할거 없다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성현이도 민우새끼를 믿고 말하질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수영이 형처럼 되기는 싫은거겠지. 수영이형이야 그래도 덩치가 좀 있어서 맞아도 버텼지만, 성현이 몸으로는 잘못 맞으면 갈비뼈 부러진다.

수영이형도 가끔 보면 멍들어있을때가 있었으니까….

갑자기 저런놈하고 반년을 지낸 수영이형이 존경스러워진다.

진짜 보살이 따로 없었는데…군대를 간 수영이형이 그리워진다.

"성현아, 형이 그 여자 하나 소개시켜 달라고 한게 그렇게 아니꼽냐?"

"그 소개시켜달라는말도 한두번이지, 매일매일 하잖아요."

"형이 원래 무슨 일 생기면 바로바로 처리하는 성격인거 알잖아? 성현아, 원래 해야 될 일이 있으면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거다?"

그러신분이 빌린 돈은 1년동안이나 안 갚으시는군요!

참 빠르기도 하다?

"성현이 너 형 외로운거 알잖아. 형 연애사업좀 도와주면 안되겠냐."

"제가 왜 그런걸 도와줘요."

"성현아, 너밖에 내가 그 여자애랑 연락 할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저도 연락처 모른다니까요."

"스읍…후우…."

민우새끼의 한숨쉬는 소리가 들린다.

한숨소리라기보다는, 담배를 피고있는 것 같다.

"야 성현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형은 아무리 들어도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성현아, 네가 말하는게 앞뒤가 안맞잖아 앞뒤가. 팩트가 뭔데. 사실. 진실. 이, 한국말로 하면 딱 무슨 말인지 알지 않냐? 앞뒤가 맞는 말을 해야 제대로 된 팩트지. 형이 생각하기엔 앞뒤가 전혀 안맞는것 같거든? 그렇지 않냐?"

"뭐가 안맞는데요."

"성현아, 정말 모르겠니?"

모르니까 물어보는거 아닐까?

"성현아, 네가 그 여자애랑 전에 밥 먹으러 가기로 했다면서 가지 않았냐. 그러면 밥 먹으러 가는게 길가다가 딱 하고 만나서 밥먹으러 가자 하고 밥먹으러 가게되느냐, 그건 아니거든. 아,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근데 형이 보기엔 그게 그런 상황이 아니였거든? 그렇게 생각 안하냐? 분명 약속을 하고 만난거란말야? 근데 약속을 하면 우리가 보통 뭘로 하니? 전화, 핸드폰. 그걸로 한단말이야? 안그러냐? 이 약속이라는게 서로 어디서 만나자, 어디로 가자 하고 대화를 해야 되는거거든. 근데 네가 연락처를 모른다. 그게 형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데. 형이 귀가 이상한건지…아니면 네 설명이 이상한건지 딱 답이 나오지 않냐?"

성현이가 대답을 하고 있지 않자 민우새끼가 계속해서 말을 한다.

확실히 민우새끼 말대로만 듣자면 이상한 상황이긴 하다.

그치만 사실을 따져보자면 저 말에는 맞는말이 하나도 없는데….

우선 내가 우연히 성현이랑 민우새끼랑 대화하는걸 듣고 끼어들은 거니까 약속하고 만난것도 아니고, 정말로 성현이는 여자인 내 연락처를 모른다.

"아 그러니까 그게 약속하고 만난게 아니라고요."

"성현아…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된다니까."

그치만 뭐, 민우새끼가 저러는게 한두번인가.

상대 말중에서 자기 맘에 안드는 부분은 절대로 사실로 인정 안한다. 저놈이 원래 좀 그런 면이 있다.

그런주제에 말재주는 또 어느정도 있어서 대화로 상대하기도 좀 까다롭다. 게다가 자기 말재주가 딸리는 사람 만나면 영어까지 섞어 쓰면서 더 알아듣기 힘들게 말하는걸로 상대를 짜증나게 만든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건 성현이인데 완전히 성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성현아, 형도 다 이해한다. 그래, 예쁜 여자 만났는데 남한테 소개시켜주기는 싫겠지. 남자라면 원래 다 그런거야. 근데 이건 좀 아니지…형이 그 여자한테 마음이 있다는게 딱 안 느껴지냐? 그런데 그걸 이렇게 딱 하고 연락도 안받고 하면서 대화를 할 생각도 안하면 그건 아니지. 형은 니가 싫다고 하면 안한다?"

"근데 왜 이러는데요."

"성현아, 네가 형한테 싫다고 했니? 형은 그런 말 못 들은 것 같은데?"

목소리만 듣고있는데도 성현이의 감정이 느껴진다.

성현이가 말주변이 좋은건 아니니 대화로 민우새끼를 밀어붙힐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생각 자체도 깊게 할 수 있는 애지만 바로바로 판단하고 생각을 해내는 대응력은 떨어지니까….

"형한테 싫으면 싫다고 그냥 말 하라니까? 성현아, 너는 지금 싫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도망치고 있는거야…사회에 나가면 도망치면 안돼. 네가 하고싶으면 하고싶다, 하기싫으면 싫다. 딱 하고 정리를 하고, 그래도 딱 해야 할 때가 있는거야. 싫어도 해야 할 때. 물론 형이 지금 네가 그게 지금이라고 하는건 아니지만, 형은 네가 이렇게 도망만 치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 성현아, 형 말이 틀리냐?"

"…아뇨."

"아니라고 했지? 너도 지금 속으로는 다 알고 있다는거다? 그런데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이러는건 네가 도망치는것밖에 않되는 거거든."

성현아 참아라.

그냥 참고, 나중에 나한테 욕해라…네가 틀리거나 잘못한게 아니라 그냥 궤변에 당한거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코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형이 잘못했다. 네가 싫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밀어붙혔으니 형이 잘못한거지."

"…."

"근데 성현아, 형이 너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하려고 그런게 아니라 네가 싫다고 딱 말하지 않아서 그런거거든. 아니다, 그냥 형이 밀어붙힌게 문제니 형이 잘못한거지."

나왔다! 내가 잘못했다, 근데 네가 이래서 그랬다. 그치만 역시 내가 잘못했으니 미안하다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나도 저거에 참 많이 당했다. 저런식으로 대화를 끊어버리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너 왜 연락은 또 안돼냐? 핸드폰 맨날 꺼져있다고 나오더라?"

"그전 번호 자꾸 전화가 안되서 바꿨어요."

"그러면 형한테 연락을 해 줘야될꺼 아니냐. 전화번호 바꿨다고."

"…."

"아니다, 됐다. 너도 다 일이 바쁘니까 연락을 못했겠지. 나중에 형한테 연락 한번 해라."

눈치를 채고도 그렇게 말하는거니 아니면 정말 눈치 못챈거니?

툭툭 하고 뭔가 치는 소리가 난다. 수영이 형 때의 일로 봐서는 지금 성현이에게 억지로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친 걸로 추정된다.

"형이 미안했다. 화 풀어라."

"…예."

"그래도 성현아, 형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그 여자애 전화번호 하나 못주겠니?"

"진짜 모른다니까요."

"진짜로?"

"핸드폰 없대요. 진짜 저도 연락처 모른다고요."

"그러냐, 그럼 너는 연락 어떻게하냐?"

자기가 한 말이 틀리다는걸 알았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다.

수영이형 생일날 수영이형한테 실수로 담배로 팔을 지져놓고도 네가 병신같은 농담하니까 천벌이라면서 수영이형이 사과하라는 말 안했다고 사과도 안했던 인간이니까 뭐.

그 사과도 내가 몇일 뒤 그건 좀 심했다면서 뒤에서 말하니 나중에서야 '아팠냐? 아팠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 미안하다. 괜찮지?' 하고 끝냈다.

"연락 못했다니까요."

"진짜냐? 아 나 어떡하냐. 이번에 빼빼로데이도 가까워서 함 친해져볼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민우새끼가 억지로 어깨동무 해놓고 끌고가는 거겠지. 속으로는 좋게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성현이는 다행히 내 얘기는 안 꺼냈다.

내가 연락이 된다거나, 메신저 얘기도 없다.

휴우….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일은 없겠군.

혹시 건물을 나가다가 마주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나는 숨어있던 자리 그대로 숨어서 1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결국 민우새끼는 그냥 여자인 나를 소개시켜주지 않았다고 성현이를 괴롭히려 온 거였나.

정말 질이 안좋다.두 글자로 말하자면 저질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