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s스톤-25화 (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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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 ♀ ♂ ♀ ♂

"요즘 성현이 그 새끼가 형하고 같이 놀기 싫어하는 것 같다."

"에이, 요즘 권성민 일로 한참 바쁘잖아요.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고. 그것때문에 바빠서 그냥 연락 못하는거죠."

"그러냐?"

꼬치집이라기보다는 그냥 길거리 꼬치…포장마차다.민우놈의 앞에 앉은 나는 실실 웃으며 비위를 맞춰주는 한편 성현이 대신 변명을 했다.

"권성민 그 쌔~끼는 퇴학 당해서도 나한테 피해를 줘. 그 새끼."

넌 퇴학 안당하니.

아니, 돈은 갚고 퇴학당해줬으면 좋겠다.

지 말로는 자기 친구는 가족같다며, 의리가 있다며, 정이 있다고 하는데…정있고 의리있고 가족같아서 돈 빌리고 안갚나. 나중에서야 안거지만 돈 안갚아서 그 문제로 싸우고 결국 자기 혼자 화내고 열내고 때리고 연 끊은 사람이 둘셋 되는 것 같았다.

제길…이런 놈인거 알았으면 천지가 쪼개져도 돈 빌려주는게 아니였는데.

돈을 받으려고 어떻게든 참고 비위 맞춰주고 있긴 하지만 정말 돈 받을 수 있긴 있을까?

왜 빌린사람이 아니라 빌려준사람인 내가 이렇게 매일같이 돈 생각을 해야하는걸까. 짜증이 난다.

"태수야, 근데 너 성현이랑 자주 붙어다니잖아."

"붙어다니는게 아니라 그냥 과 건물이 같으니까 자주 만나는거죠."

또 민우놈이 자기 빼놓고 붙어다닌다고, 나 피하니? 하고 물어볼까봐 사전에 차단했다.

피하는 걸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이렇게 차단해 뒀으니 다른 얘기로 넘어가겠지….

"야, 그러면 너 혹시 성현이랑 친한 애 중에 희…뭔가 하는 이쁜 여자애 아냐?"

…응?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희…누구요?"

"이름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존나 이쁘게 생기고 키도 꽤 크고…가슴 존나 큰 앤데 모르냐?"

나다.

이거 분명히 여자일 때의 나다…저번에 성현이랑 같이 있을 때 끼어들어서 이러나.

한동안 아무일도 없다 싶었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다. 저지르고 나서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민우놈이 여자인 날 찾아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워낙에 평소 여자를 밝히는 면이 없지않아 있으니….

야한 얘기만 좀 나왔다 하면 나더러 어제는 5시간동안 섹스하면서 14번은 쌌다, 유부녀 따먹었다 하는 소리만 했었으니까.

게다가 권성민의 여자친구였던 혜림이에게 남자가 있는데도 계속 접근하면서 자기 여자로 만들겠다고 지랄발광을 했던 전적도 있다.

"모르는데요? 그런애가 있었어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다. 순간이지만 깜짝 놀라 움찔하고 몸을 떨어 버릴 뻔 했다.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건 꽤 익숙해졌다. 솔직하게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서 피해보고 주변에서 욕을 먹은게 한두번이 아니니까.

원래 사람은 거짓이라도 자신을 칭찬해주는걸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거엔 익숙해져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모르는 척 하는 정도야….

"진짜 몰라? 너 성현이랑 자주 다니잖아."

"…잘 모르겠는데요."

"아 씨발…너까지 모르면 안돼는데."

"근데 그건 왜요?"

"야, 말하면 딱 감이 안오냐? 여기까지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평소 행실을 보면 답은 하나밖에는 없긴 한데.

"…꼬시게요?"

"역시 넌 성현이랑 달라."

미안하지만. 난 무슨 짓을 당해도 댁한테는 꼬셔질 생각 없는데.

돈부터 갚아.

"성현이랑 같이 알고지내는 사람이면 성현이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아요?"

"후우…그건 그런데, 성현이 이 새끼가 물어봐도 싫어요, 싫어요라고만 하고 말을 안해준다."

잘했어. 성현아!

…아니, 물어봐도 대답해 줄게 없구나?

대학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아는건 이름 하나뿐일테니까.

"형이보기엔 성현이 그 새끼가 그 여자한테 마음이 있는것같애."

"…근데 걔를 소개시켜달라고했어요?"

성현이가 여자인 나한테 마음이 있을거라는 얘기에 뭐 여자한테 면역이 없다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고 사실은 그냥 섹스하고 싶은 것 뿐, 그렇게까지 좋아하는건 아니겠지. 하고 나도 설마설마 하고있는 일을 넘기고 물어보니 민우놈은 어이없게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태수야, 너도 알잖아…성현이 그 새끼는 배짱이 없어. 걔는, 100년 지나도 그렇게 예쁜 년은 못 따먹어."

…그래서 네가 생각하기에 성현이가 좋아하는 여자를 성현이는 배짱이 없는 것 같으니 네가 뺏어서 따먹겠다고?

갑자기 어이가 없어진다. 우와, 권성민 여자친구라는 혜림이랑 사귀겠다, 사귀겠다. 내 퍼스트레이디로 만들겠다 할 때에도 참 어이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창녀촌에 가서 성형한 년을 찾은거면 몰라. 못 따먹어. 넌 안봐서 이해가 안 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섹시하고 가슴도 존나 커서 어릴때부터 남자들한테 인기있게 생긴 년은 원래 겉으로는 예의바른 척 하는 애들도 다 자존심이 많아서 도도해…형이 다 알아."

공감하기는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자건 여자건 외모가 잘나면 자신이 잘생겼다는걸 알아서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심도 생기고, 도도해지게 되어있으니까.

있는 자가 가지는 자만심이라는 거다.

…그치만, 막상 듣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기분이 나쁘다.

"…아무리 그래도 성현이가 좋아하는 애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태수야, 성현이 걔는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여자애를 알게된거고…뭘 해도 어차피 성현이는 걔랑 못 사귄다니까? 니가 걔가 얼마나 섹시하게 생겼는지 봤으면 지금처럼 말 못한다."

맨날 봅니다만?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맨날 의리 의리, 친구는 내 가족이다 하던 놈이 그 가족이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아 따먹겠다고?

정말 성현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제쳐두고, 좋아한다고 짐작을 하고 있으면서 따먹겠다고 하는 모습이 신경을 자극한다.

평소 가족, 가족, 의리, 의리 할 때에는 오글거리고 짜증난다고 생각했지만…지금은 혐오스럽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죠…."

"아 그래, 형도 알지. 아니긴 한데…그래도 태수야. 원래 뭐든지 먼저먹는 사람이 임자야. 사회라는게 그렇다? 참 더럽지? 그치만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래서 또 언제나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잘난 척 말씀하시는 떨어진 사람은 뒤쳐진게 아니라, 느리게 다가오는게 아니라 도태된 것 뿐이라고. 패배자라고 하는 그 논리를 들먹일 생각이신가?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깎아내려놓고, 그런게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니? 하고 말하면서 무시해놓고, 자기 생각을 강요한다. 이걸 하라고, 이게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자기가 경험해봐서 안다고. 그러면서 그런식으로 남이 좋아하는걸 깎아내리지 말라고 하면 자기는 그냥 충고했을 뿐이라고, 널 위해서 한 말이라고만 한다.

자위도 정도가 있지….

진정하자, 어째서인지 너무 예민해져있다. 평소에는 안 이러는데….

잠시 아랫입술을 입 안에서부터 티가 나지 않게 깨물어 화를 식힌다. 숨도 천천히 내쉬어 열이 올라 숨이 거칠어진걸 숨겼다.

"그리고 성현이는 좀 자극을 받아 봐야돼. 진짜 좋아하는 애면 걔도 열심히 할거 아냐? 걔는 좀 자신감을 가져야돼."

말의 앞뒤가 안맞는다.

자신감을 가져야 하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뺏겠다고?

나는 성현이를 생각해서 하는거다. 그러니까 성현이가 좋아하는 여자를 뺏어서 상처를 주겠다. 그러면 성현이는 그 상처를 딪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겠지?

역겹다. 갑자기 머리에 열이 오르고 짜증이 난다.

이 놈은 꼭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다 싶으면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욕하고…그걸 또 당연하게 여긴다. 상대의 성장을 위한 채찍을 주고있다고 미화하며 자신을 영웅시한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봐도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에게 진 사람을 패배자다, 도태되었다 하며 깎아내리기만 한다.

몇 번이고 대화를 해서 생각을 바꾸도록 하려고, 내가 맘에 안드는 사람이면 내 맘에 들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몇 번은 마음 먹고 둘이서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해 봤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똑같았다.

내가 옳다! 넌 틀렸다! 네가 바뀌어야한다! 날 따라와라! 널 바꿔주겠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글거린다. 중2병도 이정도까지 되면 정신병원급이다.

그나마 중2병은 타인에게 크게 피해주지 않기라도 하지. 이놈은 피해를 마구 주고다니는만큼 훨씬 더 질이 나쁘다.

그냥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고 싶을 뿐인 인간이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무조건 남 탓이고. 마음대로 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렇고.

그래도 나름 머리는 좋은건지 꼭 그런 일로 추궁하면 잘도 빠져나간다. 그렇게 잘 한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영어를 이곳저곳 섞으면서 못 알아들으면 이것도 못알아듣냐고, 그래서 배워야 하는거라고 잘난척을 하면서.

혹시 내가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배우기 싫어지는게 그 때문인가?

진정하자.

…이러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이제와서 열받아 봤자 뭔 짓을 해도 자기 태도를 바꿀 인간이 아니라는건 잘 안다.

돈만 돌려받으면 진짜 인연 끊어버려야지.

결국은 돈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성현이한테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성현이도 돈을 다 돌려받은건 아니라는 것 같다. 아직 남은 돈이 있다나.

그것 때문에 성현이도 아직 연락을 완전히 못 끊고 있는건가….

빌린 돈을 인질로 해놓고 '이걸 돌려받고싶으면 나랑 연락해라!' 하고 인질극 벌이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말자. 한숨만 나온다.

나는 더 이상 이 주제로 얘기하고 싶지가 않아서 언제나 민우 이 개자식을 입 다물게 했던 마법의 언어를 꺼냈다.

"형, 근데 돈은 들어 왓어요?"

"…후우, 태수야 미안하다. 형이 지금 돈이 없다."

그러시겠죠.

근데 지금 꼬치집에서 꼬치 드시는 돈은 어디서 난 돈이세요?

전설로만 들어온 마르고 닳도록 써도 줄어들지 않는 돈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 ♂ ♀ ♂ ♀ ♂

민우형을 내 마음속에서 부르는 호칭이 민우놈에서 맨우 개자식으로 승격된 일이 있었던 그 다음날.

난 매우 기분이 안좋았다.

안그래도 바로 전날 민우 개자식한테 개소리를 멍멍멍 듣고와서 귀를 강간당해가지고 물에 씻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냉장고가 고장나 있었다.

제기랄.

냉대협이 내 귀에 묻은 독에 당하다니.

냉장고는 나처럼 만독불침의 경지에 달하지 못한건지 완전히 가 버렸다. 전원도 안 들어온다.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에 수업을 들으러 가고, 냉장고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마한 놈이니 들고 내려가 라운지에 맡겨놓았다.

수리공한테 연락을 해 놓고, 라운지에 있던 직원한테 돈도 맡겨뒀으니 알아서 해 주겠지.

우리 기숙사는 이런 점은 참 좋다.

"성현아."

수업이 끝나고 나와보니 성현이가 언제나 있던 장소에 있었다.

카페테리아의 구석에 앉은 성현이를 발견한 나는 갑자기 기껏 잊으려 했던 일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 올라 성현이와 얘기를 하며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현이에게 말을 걸었다.

"뭐냐?"

"민우새끼 욕좀 해봐."

"…뭔일 있었냐?"

가끔씩 평소에도 하던 장난이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 눈치챈 모양이다.

평소에는 그냥 곧바로 돈안갚는 빚쟁이라거나, 말 앞뒤가 안맞는 저능아라던가 바로바로 욕을 쏟아내던 놈이….

여자였을때에는 그렇게 눈치가 없었으면서, 왜 남자랑 얘기하면 이리 눈치가 빠를까.

…나의 순결뷰티한 몸을 노리는 게이는 아니겠지.

"아…짜증나. 진짜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해보려 하던가 하지. 뭔 말을 해도 다 안통하니 이젠 그냥 포기하고 비위만 맞춰주는데, 머리가 피곤하지는 않은 대신 엄청 짜증나."

"어제 만나기라도 했냐?"

너 진짜 눈치 빠르다.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걸까. 혹시 민우 개자식이 어제 나랑 헤어지고 나서 연락했나?

"너 희…연이 민우 그 새끼가 소개해달라고 달라붙는 것 같던데 그건 뭐냐?"

"아 씨발…민우새끼가 뭐라 하디?"

아직 희연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지질 않아서 그런지 말하다 보면 조금 헷갈린다.

내 질문에 성현이는 곧바로 반응해왔다.

역시 뭔 일 있었구나…요즘 나한테 민우가 뭐했다, 저랬다, 짜증난다 소리도 없길래 아무일도 없는 줄 알았는데.

"뭔 얘기냐 그거?"

"씨발 나한테 전화 안되니까 너한테 지랄하나보네."

"어제 나 불러서 희연이 아냐고 물어보더라."

"너 가르쳐줬냐?"

성현이가 눈을 번득이며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물어봤다.

"안 가르쳐 줬지. 그냥 모른다고 했다. 내가 왜 가르쳐주냐? 혜림이 일도 있었는데 왜 저지랄하는지 뻔하지."

"후우…진짜 니가 눈치 빨라서 다행이다."

그리 빠른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민우새끼는 말하는 걸 보면 너무 뭘 원하는지 티가 나서 잘 알아차리게 된다.

성현이는 마음을 놓은 것 처럼 한숨을 쉬었다.

"아, 야 나 전화번호 바꿨다."

"응? 왜?"

"그 씨발새끼 때문이지 왜긴 왜겠냐."

"뭔데?"

"그 개새끼가 맨날 전화질 하면서 밥먹자, 뭐하냐 하면서 처음에는 떠보는 것 처럼 희연이 물어보더니 나중엔 아주 대놓고 전화번호 가르쳐달라면서 소개시켜 달라고 하대? 씨발 싫다고 하니까 막 우정이니 뭐니 지랄하는데 존나 오글거리고 짜증나서 바꿨다."

"너 돈 못받은거 아직 있다매."

"아 씨발 몰라. 그냥 태워버렸다고 생각할거니까 그렇게 알아."

…나도 그냥 연락 끊어버릴까?

그러고 싶지만 나는 아직 한푼도 못 받았다. 내가 빌려준 액수는 대학생끼리 돈을 빌리고 빌려주고 한 금액 치고는 상당하다….

처음 만났을 때야 설마 부잣집 아드님이라면서 이거 빌리고 안 갚겠냐 하면서 빌려줬지만….

…그게 1년이 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머리아파.

"아오 씨 진짜 어제오늘 왜이러냐. 어제는 그 개새끼가 발광하고, 오늘은 냉장고가 고장나고."

"냉장고 고장났냐?"

"아침에 보니까 안돌아가더라."

"씨발 아무리 화나도 냉장고에 화풀이하면 안돼지."

"냉장고가 난 되게 열받아서 참고있는데 머리좀 식히라고 자극하잖아."

농담을 섞으며 나는 성현이와 민우 개자식의 욕을 계속했다.

일부러 민우 개새끼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성현이는 연락 끊는다 할 정도로 화가 나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내가 더 기름을 뿌려서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애들온다 이 얘기 그만하자."

"아 한창 물 오르고 있었는데."

뒷담을 계속하며 쌓인걸 풀던 성현이와 나는 슬슬 카페테리아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자 대화를 멈추고 주제를 바꿨다.

괜히 뒷담을 하다가 소문이 나서 민우 개새끼 귀에 들어가면 또 지랄발광 할테니…게다가 권성민이 혜림이를 민우 개새끼가 꼬시려 했던 것 때문에 이리저리 그 새끼 욕을 하고다녀서 이름을 아는 사람이 꽤 많다.

나랑 성현이랑 같이 어울렸다는걸 아는 애들도 상당하다. 권성민이 소문을 냈으니까.

여전히 아는 사람은 많으니 괜히 뒷담하다가 걸려서 입방아에 오르는건 싫다.

"태수야."

저 멀리에서 카페테리아로 오던 혜림이가 갑자기 나를 발견하더니 다가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늘도 또 숙제 물어보러 온건가….

"오늘 숙제 뭐였어?"

역시나.

제발 수업 정도는 나와줬으면 좋겠다. 대학까지 와놓고 수업엔 안나온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숙제도 모르고 수업도 안듣는 대학생.

진짜 대단하다.

숙제를 꼬박꼬박 완벽하게 해 가는건 아니니 잘난척할 입장은 아니지만 나같은 놀기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도 수업은 매일매일 나가서 끝날때까지 있고 애들이 토론하면 토론도 하고 그러는데….

그래도 겉으로는 웃는다. 누가 되었던 괜히 밉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 오늘 숙제 별로 안 어려워. 스토리보드 있지? 그거 노래에 맞춰서 짜 가면 돼."

"스토리보드? 스토리보드가 뭐야?"

그건 니가 검색하던가 해서 알아봐 좀.

내가 백과사전이니 아니면 숙제 가르쳐주는 네 고용인이니.

"그…영화나 동영상이나 광고같은걸 만들때 콘티가 필요하거든?"

"…콘티는 뭐야?"

…너 디자인과 맞아?

저걸 백치미라고 좋아하는 놈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난 짜증나기만 한다.

저러면서 또 합동과제 하면 만든게 이상하다, 안예쁘다 지저분하다, 못알아듣겠다….

하아, 말을 말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스토리보드를 검색해가지고 어떤 건지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러면 노래에 맞춰서 몇분 해야돼? 몇장 그려야돼? 내용은?"

"…노래 길이에 따라 다르겠지. 그리고 스토리는 네가 짜야돼는거야."

참자.

그것까지 다 짜주면 그게 내 숙제지 니 숙제냐! 라고 외치면서 화내고 싶지만 참자.

전부 다 자세히 가르쳐주면서 스토리도 대충 즉석에서 생각해 예를 들어주니 혜림이는 그제서야 알아들은 듯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어렵다…."

고개는 왜 끄덕였니?

목 아픈가?

"알았어, 땡큐."

"그래, 숙제 열심히 해."

"아, 근데 너네 참 민우오빠하고 요즘도 같이 다녀?"

이제 좀 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민우 개자식에 대한 일을 물어본다.

뭐지?

영문을 모르겠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걸 묻는걸까.

"요즘은 같이 잘 안다니는데 그건 왜?"

"그래? 아냐아냐, 태수야 숙제 열심히 해."

"그래. 잘가라."

성현이가 나 대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혜림이는 나한테 인사하고는 그대로 계단 쪽으로 가더니 건물 밖으로 나갔다.

뭐였지?

"태수 너 수고한다 진짜."

"오냐…."

나도 나 수고하는거 안다.

성현이는 내가 혜림이에게 숙제가 뭔지 가르쳐주는동안 잠깐 자리를 비우나 싶더니 그 사이에 사 온 것으로 보이는 음료수를 내게 내밀었다.

마침 말을 너무 많이 해 목이 말랐던 나는 뚜껑을 돌려 열어서 침이 마른 입 안을 적셨다.

역시 공짜는 뭐든 맛있어.

음료수를 두세모금 마시고 나니 성현이는 잠시 혜림이가 간 곳으로 시선을 향하더니 말했다.

"근데 민우새끼 얘기는 왜 묻지?"

"성민이 없어가지고 새로 보지에 박을 좆 찾나보지…오! 지금 한 말은 조금 라임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아? '보지'에 박을 좆 찾나'보지'."

"미친…."

난 천재 랩퍼인가….

성현가 나의 천재성을 시기하며 째려보는 모습이 보인다.

"…아, 근데 태수야 너 마작 좋아한댔지."

"뭐야, 드디어 마작을 배울 맘이 생긴거냐?"

마작 친구가 필요해!

1년동안 대학 내를 돌아다니며 친해진 사람마다 마작을 할줄 아냐고 물어봤지만 단 한명도 찾지 못한 나에겐 너무도 반가운 질문이였다.

언제나 마작 가르쳐준다고 해도 싫다싫다 하더니 먼저 마작 얘기를 꺼내다니…이 참에 마작을 가르쳐주겠어!

"대충 규칙은 외웠다. 퐁하고 캉하고 치하고…리치랑, 핑후, 또이또이…치또이츠…."

…어라?

뭐라고 한거지 지금…내가 잘못들었나?

"…마작은 언제 배웠어?"

"요즘 그냥 배우고 있다. 어렵더라."

"패랑 역 외우는게 어렵긴 하지…역 외우는거 너무 어려우면 신경쓰지 말고 그냥 치또이츠나 혼일색 같은걸로 맞출 생각 하면서 치다보면 그래도 어떻게든 쳐지긴 쳐져."

"혼일색이 다 똑같은색으로 내는거였나?"

"…성현이 니가 마작 얘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충격적이다.

뭔 일이 있었던거지…음….

…짐작 가는 일이 없다.

아니…어렴풋하게 있는 것 같기도 한데…기억이 잘 안난다.

"근데 갑자기 마작은 왜?"

"너 희연이랑 마작 친구라매?"

"…."

그러고보니 그랬지. 그런 설정이였다.

…아니 잠깐만, 그럼 설마 그것때문에 마작 하겠다고 외운거야?

대체 왜?! 조금 무섭다!

"너 좀 징그럽다…."

"뭐야, 갑자기 뭔데."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니 성현이가 발끈했다.

약간 징그럽다…그 말 한마디 했다고 마작을 배운다니.

내가 하라고 할 때엔 그렇게 몇달을 설득해도 안하더니….

아, 모르겠다. 이것도 좋다면 좋은 일이겠지. 앞으로는 마작 얘기도 좀 할수 있을테고.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방금 성현이가 한마디도 안 더듬고 혜림이랑 대화하지 않았나?

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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