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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응? 왠일이지? 성현이가 민우형한테 반항을 한다.
지금까지 맨날 입 꾹 다물고 참아서 나한테 풀어왔으면서.
"야, 형이 다 너 걱정해서 그러는거야…내년에 군대간다는놈이 아다도 못떼고 가면 군대가서 여자얘기할때 얼마나 쓸쓸하겠냐?"
자기도 군대 안가본 주제에 군대얘기는 왜 꺼낼까….
성현이도 불쾌한건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다.
"아 진짜, 그리고 형 저 아다 아니거든요?"
"킥킥킥…그래도 자존심은 있네."
"아 씨…."
성현이는 속이 상해가지고 이걸 앞에서 대놓고 욕할수도 없고 안할수도 없고 하며 열만 내는 것 같은데, 그걸 또 눈치를 못챈건지 아니면 그냥 재미있다고만 생각하는건지 민우형은 웃고만 있다.
…또 저 짓이구만, 성현이더러 동정이라고 놀려대는거.
자기는 장난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언어폭력이다.
"야, 화났냐?"
"…."
"새끼! 형이 뭐라 말해서 삐졌냐?"
이럴 줄 알았다.
또 저렇게 말하면서 장난으로 넘겨놓고 자기는 아, 훈훈하게 끝냈다. 나는 내가 아끼는 동생을 걱정해준다 하고 자위할 생각이다.
평소에도 꼴보기 싫어서 내가 있을때 저러면 일부러 내가 바보짓을 하거나 해서 주제를 돌렸지만…두 사람이 대화할 때에는 저기까지 막 대하는 구나.
성현이가 나한테 한풀이하듯 욕지거리를 풀어놓는것도 이해가 간다.
"야, 그러니까 이번주 일요일에 오라니까. 형이 다 걱정하고 너 대학생활 즐겁게 보냈으면 해서 그러는거야."
"아 됐다고요…관심 없어요."
"새끼! 너 그렇게 평생 여자랑 뽀뽀도 못해보고 살래?"
…좀 심한 것 같은데?
자기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배짱 길러준다고 저러는 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냥 인신공격이다. 꼭 저런식으로 말해야돼나?
당근보단 채찍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는 사람인건 원래 알고있었지만, 나야 늘 그냥 웃고 무시하거나 대화를 돌리고 바보짓해서 주제 바꾸고 해서 넘겨버렸지만, 성현이는 그런 재주가 없다.
그냥 속상하면 쟁여두고, 나중에 내가 눈치채고 뭔일 있냐고 물어보면 털어놓고….
군대에 있는 수영이 형도, 성현이도 나랑 친한 이유가 사실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것도 있지만 이런식으로 내가 뒷담을 받아주는 배출구다 되어줬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난 비밀을 듣는걸 좋아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사람 없으니 내가 비밀을 들으려면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는 논리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
"흐음…."
듣고있으니 조금 꼴보기 싫어졌다고 할까, 나까지 짜증이 났다.
왜 저렇게 성현이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지? 그것도 자기는 괴롭힌다는 자각도 없고, 그냥 성장을 위한 성장통이라는 말로 미화시키려 들고….
'그러고보니 지금 나 여자였지?'
괜히 저렇게 성현이 더 자극해서 나중에 나한테 다 분출하게 할 게 아니라 지금 아예 상황을 끊어줘 버려야겠다.
어떻게 해야할지는 벌써 생각해 두었다. 뭐, 이런 상황이야 만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거니까….
현실에서 직접 하려고 하니까 조금 황당하지만.
지금 내 외모를 생각해보면 효과는 확실할게 분명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울타리를 빙 돌아서 성현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핸드폰은 전원을 꺼 버렸다. 괜히 방해되면 안돼고, 두 사람은 내 핸드폰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아니까 괜히 보였다가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멀리서 보니 성현이랑 민우형은 벤치에 앉아있고 성현이는 정말로 화가 나는걸 참는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으이구…저걸 또 듣고 앉아있니…나같으면 얘기하다가 조금 징조가 보이면 바쁜 일 있다고 하던가 시간 보는 척 하면서 약속있다고 하고 미안한데 먼저 간다고 해서 빠져나갈텐데.
뭐, 원래 저놈이 어떤 상황이건 스스로 잘 못 빠져나오는 성격이라는건 알고 있었으니까…. 이왕 목격한 김에 평소처럼 내가 빼 줘야지….
따지고 보면 지금은 여자니까 평소처럼은 아니지만….
나는 두 사람이 앉아있는 벤치로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성현씨~."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두 사람 다 나를 본 순간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흠칫한다.
…나한테 뭐 묻었나? 뭐 이상한거 있나…?
성현이야 놀랄 만도 하지만, 민우형은 왜 놀라는건지 이해가 안간다.
"흐, 희, 희연아, 여, 여긴 왜 있어?"
"아…말 더듬는다."
아싸! 섹스 약속 취소!
마음 속의 말은 밖으로 내뱉지 말자. 상처받을테니까.
"…성현아, 너 아는사람이냐?"
"아, 안녕하세요. 성현이 친구에요?"
말 더듬는 걸 보니 괜히 말실수 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쳐 민우형에게 인사를 했다.
민우형은 내가 인사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순간 눈동자가 아래로 살짝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봤군.
가슴을 봤어…요즘 하두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걸 느껴서 그런지 저런걸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됬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래서부터 시선이 위로 쭉 올라간다. 훑어보듯….
여자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변태같은 사람이였나…? 그냥 지식은 많은데 생각을 자유롭게 하지를 못하는 일자무식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아, 전 성현이…친한 형입니다."
손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건가.
"안녕하세요."
무시하고 그냥 못 알아차린 척 고개를 좀더 깊게 숙여서 인사해 주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벌쭘한 것 처럼 내밀었던 손을 다시 되돌린 상태였다.
여자가 된 순간 사실 여러 사람을 가지고 망상하며 자위를 좀 하긴 했지만, 절대로 상상에 나오지 않고, 섹스를 한다는 상상 자체도 하기 싫은 인물 1위가 민우형이였다.
섹스를 못한다거나 하는것도 아니고 권성민처럼 싫은것도 아니지만 그냥 싫다.
워낙에 남자대 남자로 얘기를 하다가 여자를 자기 좆에만 박히면 맘대로 되는 동물처럼 다루는 듯한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그냥 여자로서 싫다.
남자로서 보면 참을만 한 사람이지만….
나는 벤치에 앉아있던 성현이에게 다가가 손으로 잡아당겨 일으켰다.
"성현아, 밥 사준다매. 가자, 가자."
"어? 으, 응? 내가 언제…?"
눈치없어!
다행히 민우형은 지금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저 사람도 눈치는 꽤 좋아서 이런건 잘 알아차리니 들키기 전에 빨리 데려가 버려야겠다.
괜히 엄한데에 화풀이 하면 곤란하니까. 예를들면 나한테 전화해서 힐링해달라면서 오밤중에 술마시자고 한다던가.
나는 성현이의 팔을 잡아 끌고는 일부러 연인처럼 팔을 껴안아 가슴을 밀착시켰다.
"우, 우왓…."
"아, 죄송해요~성현이랑 밥 먹기로 해가지고 제가 좀 데려가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아, 아 네, 데려가세요. 별 얘기 안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요, 네가 생각하기엔 별 얘기 아니셨겠죠.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나름 예의를 차린다. 나도 저거에 속아서 처음엔 착하고 순한 사람인줄 알고 다가갔었지. 성현이도 마찬가지….
그런데 아까부터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 올라오는게 다 보이시거든요. 가슴좀 그만 봐주실래요.
겉으로 비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안돼 안돼. 스마일, 스마일~
이래보여도 속마음 숨기고 웃는 표정을 짓는건 특기다.
"예약을 해뒀는데 시간이 거의 다 돼가서…인사도 못해서 죄송해요."
"아, 전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성현아, 가자 가자."
"어? 아, 응? 어어…?"
눈치좀 채라….
성현이의 팔에 일부러 보란듯 가슴을 붙히며 연인처럼 걸어가자 민우형은 뒤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더니 스무 걸음은 넘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뒤에서부터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성현이 너 나중에 연락 꼭 해라!"
"…무시해, 무시."
나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돌려서 성현이의 팔을 잡은 채 웃는 얼굴로 민우형에게 인사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현이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가슴이 닿아서 그런가…? 가슴이 커서 그런지 일부러 위치를 바꿔보면 팔이 가슴에 완전히 감싸진다.
팔을 풀어주면 다시 멀쩡해 질 것 같기도 하지만 뒤에서 혹시 민우형이 아직 보고있을지 모르니 풀어주기는 그렇다.
여기까지 해 주면 그래도 여자친구다, 동정이다 하는 문제로 뭐라 하지는 않겠지.
"여, 여기에 왜, 왜 있어?"
아, 성현이가 입을 열었다.
걸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던가, 저 멀리에서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성현이와 나를 계속해서 번갈아 보고 가는게 보인다.
연인으로 보이는 걸까.
"그냥 놀러왔는데?"
"태, 태수 보러…온거야…?"
내가 나를 왜 보러 오니. 거울 보면 보이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지만 괜히 내가 내 여자친구인 것 같이 보여서 입으로 해줬던 일에 대해 고민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태수 말고 가을이라서 단풍 보러 왔는데?"
"아…."
이 정도 거리면 민우형이 뒤따라오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보일테니 나는 성현이의 팔을 감싸안고있던 팔을 풀고 떨어졌다.
성현이는 팔을 풀자 걸음을 멈추고 그 자세로 가만히 있더니 잠시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멈춰있길래 왜 멈추나 해서 한번 봤더니, 바지 위로 자지가 발기된게 보인다.
"음…앉아있다 갈까?"
성현이는 몸이 워낙 좀 가늘은 쪽이여서 그런지 스키니진 같은걸 주로 입는다.
그러고보면 통이 큰 바지를 입는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지금은 저렇게 발기한게 잔뜩 티나지만…자기도 이런 일이 있을 걸 생각하고 입고 나온건 아닐테니까. 생리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아, 아냐. 괜찮아."
"바지가 달라붙어서 꼬추가 얼마만한지 다 보이시는데요?"
"…."
성현이는 내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쯧쯧.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없다.
장난을 쳐도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킬 일은 없다는 거군!
나는 성현이에게 놀리듯 말했다.
"섹스하고 싶어서 선거야?"
"어…아…어…."
"벌써 아까 말 더듬어서 기회 날라갔으니까 가라앉혀!"
어라.
방금 전까지 피가 올라 붉은색이였던 성현이의 얼굴이 갑자기 하얘졌다.
바지 위로 팽팽하게 주름을 잡아내던 자지도 갑자기 힘이 없어지는게 눈에 보인다.
"아…아아아아…."
성현이가 갑자기 머리를 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쇼크였어?!
나랑 섹스 못한다는게 그렇게 충격이야?!
그것보다 주저앉지 마! 사람들 다 보잖아!
"야, 야, 일어나 일어나! 왜 주저앉고 그래?"
성현이의 팔을 잡아 일으키니 순순히 일어났지만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잡고 후회를 하는 사람처럼 잡아 누른다.
"아아아아 씨발 여, 연습했는데…! 마, 말 안더듬을려고…."
연습까지 하고있었던거냐?!
…아니, 더듬는걸 고치라고 그런거긴 했는데.
"왜 그래? 내가 다 창피하다…."
"하아…."
성현이는 갑자기 한숨을 푹푹 내쉬기 시작했다.
세계가 멸망하기라도 한 것 처럼….
성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심호흡을 시작했다.
"후우…하아…후우우…."
뭐 하니 너.
몇번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떴다가, 다시 심호흡하고, 눈을 뜨고 다시 심호흡 하고를 반복한다….
진짜 뭐 하는거지.
"후우…미…안, 아무것도 아냐…."
…오?!
오오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말 안 더듬었다!
진심으로 놀랐다! 성현이가 여자랑 대화하는데 단문이라고는 해도 말을 안 더듬고 말하는걸 보게 될 줄이야!
"오, 뭐야? 한달도 안 됐는데 많이 고친 것 같은데?"
"그, 그게…시, 심호흡 하고 좀 지, 진정됬을 때 말하면 돼…."
아, 돌아왔다.
그래, 이게 성현이지….
"그래도 열심히 하긴 했나보네!"
1년 가까이 고쳐라 고쳐라 하면서 한번도 고치지 못한 걸 옆에서 봐 온 나니까 지금 저 짧은 말 한번 한게 얼마나 열심히 한건지 알 수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묘한 기분이다.
넌 친구보다 여자라 이거냐.
내가 고치라고 도와줄때는 그렇게 못 고치더니 이게, 섹스해준다고 하니까 바로 효과를 보여?
"그, 그래?"
열심히 한걸 인정해주니까 좋아하는 것 같다.
솔직하기는.
"음…그래도 안돼. 아무리 좋게 쳐줘봐야 이건 손으로 해 줄까 말까네. 아, 해준다는 말 아니야."
"하아…."
또 한숨 쉰다.
저러다 죽는건 아닌가 싶을정도로 한숨에 고통이 묻어나온다.
그러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내 앞으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성현이의 뒤를 따라 걷다가 바로 옆에 서서 걸으며 물었다.
"아까도 지금처럼 심호흡 하고 하고싶은말 하지 그랬어?"
"으, 응…?"
진정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긴 하지만, 기다려 준다고 하면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아마 방금 나한테 말하는게 오래 걸린건 내 얼굴을 보고 다시 긴장해서 그런 것 같으니 민우형한테 말하는 거라면 훨씬 빨리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얼굴 보는걸로 긴장하진 않을테니까.
"아…아까 얘기하는거 드, 들었어?"
"원래 너 목소리 들려서 그냥 모른척 하고 갈까도 생각했는데 대화내용이 너무 심하길래 나간거야."
"음…."
"왜 그렇게 얼굴에 기운이 빠져? 솔직히 그런거까지 해주고 안 피하면 그게 이상한거 아니야?"
그냥 모른척 갈까 했다는 말에 얼굴이 또 우중충해지는걸 보고 내가 묻자 성현이는 납득한 듯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하고 친해?"
"…그, 그냥 조금."
"말하는걸 보니 그냥 속을 박박 긁으면서 말하는 것 같던데…왜 아무 말도 안해?"
"그, 그래도…맞는 말이니까…."
…맞는 말이라니.
말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완전히 상실된게 보인다. 자학적이게 된 것 같을 정도로.
…민우 이 개같은 놈이 힘들게 자신감 붙혀놨더니 다 깎아놔?
열받는다.
"하아…맞긴 뭐가 맞아? 맞는 말이라도 할 말이 있고 못할말이 있지.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 들먹이는건 그냥 인신공격이야 그거."
"응…."
"그리고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난 자신감 없어보이길래 생일선물로 자신감좀 생기라고 그런 것도 해줬는데."
"미, 미안…."
진짜 바닥까지 떨어트려놨구나.
민우 이 입을 바늘로 꼬맨뒤 촛농으로 붙히고 그 위에 순간접착제로 코팅을 해줘야 쓸 놈….
"…그치만 내, 내가 그런 것도 사, 사실이고…어, 어차피 난 말 더, 더, 더듬는 것도 못 고, 고치고…."
진짜 순식간에 분위기가 우울해졌다.
성현이가 걸음을 빨리 하더니 나에게 등을 보인 채 힘없이 고개와 어깨를 떨구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지, 진짜 고, 고치려고 했는데…."
…너무 풀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내가 미안해진다.
그냥 오늘은 넘어가 줄 걸 그랬나.
집에가면 울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울해보인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곧바로 완전 실패해 버렸으니 속상하기도 속상하고 자신감도 떨어지겠지….
…어라?
"혹시 지금 이러는게 나 때문이야?!"
내가 말 더듬었다고 섹스 안해준다고 해서 이러는거야?!
설마설마 하며 외치자 성현이가 고개를 들더니 내 쪽을 보고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아, 아냐! 그, 그냥…내가 못한거지 그게 왜, 왜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구나!
아무리 봐도 내가 그 말을 해가지고 자기 혐오에 빠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민우형한테 시달리는건 지금까지도 있었던 일이였지. 많이 당했을테니 크게 상처받을 일은 아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였냐.
…그렇게 나랑 섹스하고 싶은거야?
약간 부끄럽다고 해야할까, 창피하다고 해야할까….
그것보다…나 때문이면 역시 아까 발언은 취소해 줘야 할 것 같다….
민우놈 때문이라면 내가 취소해줘도 크게 회복하진 않겠지만 나 때문이라면 단숨에 회복하겠지….
…다시 해 준다고 하자.
"…빰빠라밤! 오후…지금 몇시야?"
"으, 응? 지, 지금…."
"오후 지금시, 거저주는 홈쇼핑!"
그치만 역시 '흐, 흥 그렇게 풀 죽어있으면 미안하잖아! 흥! 벼, 별로 널 신경쓰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싶다면 기회 한번쯤 더 못 줄것도 없는데? 흐흐흥!' 하고 츤데레처럼 말하기는 좀 부끄럽다.
장난 치면서 말하자.
"오늘의 상품은 '한번 더 찬스'! 이 대단한게…음…으음…뭘로 하지…"
"가, 갑자기 뭐 하는거야?"
"잠깐 기다려봐…음…이 대단한게 지금이라면 봉골레…아니, 오늘은 햄버거가…아니다, 역시…음…지금이라면 이 대단한게 일식집 라면 하나 가격!"
오늘 메뉴는 일식집 라면으로 정했다.
성현이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건지 가만히 왜 이러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만 있다.
"한번더 찬스. 라면 하나."
"…어, 그, 그래서…?"
"하아…."
눈치없어….
"…오늘 말더듬는거 봐주기권, 일식집에서 라면이랑 초밥 한 접시 가격."
"…어, 어?!"
…앗! 회로 할 걸 그랬나!
역시 여기까지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건지 갑자기 성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지, 진짜?!"
"방송 종료 3초전…."
"자, 잠깐만! 잠깐만!"
"2초, 1초, 0초…."
"얼마야!"
"40,000원이 안돼는 가격 39,990원!"
"…하, 한국 돈 없는데."
"네, 시간초과."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왜 이러지, 남자일 때 대화할때는 특이하긴 하지만 나름 유머감각도 있고 그때그때 반응도 잘만 하는데.
"재방송은 30초 뒤입니다."
"어?! 자, 잠깐만! 사, 삼십분 뒤로 하면 안돼?! 화, 환전소 갔다올께!"
"너 바보지."
일부러 저러는거라고 믿고싶다.
이렇게까지 거저 주는데도 왜저렇게 당황해서 말뜻을 못 알아들을까….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자 그제서야 내 말을 알아듣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좋아하는 것 같다.
"재방송이니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추가."
"…하아, 이번달에 돈 조금 부족한데."
"생일에 고기 먹으러 가서 그래?"
"아, 응. 그때 좀 많이 썼지."
비싸긴 하다.
이번에 같이 갔을때 한국돈으로 한 9만원 가까이 쓰지 않았을까.
뭐, 성현이가 돈 없을때 내가 밥을 사준 횟수가 하도 많으니 나도 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먹으러 갔었지만…역시 조금 너무 비싸긴 했나.
"…아이스크림 뺄까?"
"아냐, 됐어. 그냥 먹어. 이번달 쫄쫄 굶는 한이 있어도 낼꺼니까."
…자꾸 내 자의식 과잉 같은데, 저런 말을 들으면 계속 머릿속에서는 '너랑 그만큼 섹스하고싶어.' 라고 하는 것 처럼 들린다.
사실 본심은 저런 생각이 있기는 있잖아?
없다고는 누구도 말 못할게 분명해. 남자라면 누구나 여자랑 있으면 조금이라도 섹스에 대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까.
경험담이다.
"근데 태수랑은 어떤 사이야?"
"마작 친구."
성현이가 여자인 나와 남자인 내 사이를 캐는듯한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평범하게 대답해 주었다.
남자인 내가 맨날 마작치고 놀 사람이 없어서 찾아다닌다는건 성현이 뿐만 아니라 나랑 알고지내는 놈이라면 다들 알고있는 사실이니까. 미리 남자인 나와 여자인 내 접점에 대해서 물어보면 마작 친구라고 대답하려고 생각도 해뒀다.
후후, 이정도로 나는 당황하거나 하지 않는단다.
"마작…흐음."
성현이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응?
어라, 잠깐만.
"…너 아까부터 말 안 더듬는다?"
"으. 응?"
나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말을 안 더듬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좋아진거지?!
…역시 섹스해 준다고 해서 이렇게 되는거야?! 섹스 파워야?!
"그, 그러고보니 그, 그랬나?"
아.
섹스 파워가 바닥난 모양이다.
이 조루….
조루하니까 참 아까전의 민우놈과 성현이의 대화가 생각난다.
들었을 때부터 조금 궁금했는데…이참에 물어보자.
"그러고보니까 아까 그 사람하고 대화하다가 동정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생일때만 해도 동정이였던 걸로 아는데?"
"으, 으, 응?"
그사이에 대체 언제 섹스하고 동정을 뗀거냐는 어투로 묻자 성현이가 심각할 정도로 크게 당황했다.
뭐야 이 반응.
무슨 의미야.
"여자친구 생겼어? 우와, 그러면 진도 되게 빠르네…."
성현이가 여자친구 만든지 한달도 안되서 섹스라니. 이건 무언가가 각성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아니면 여자친구가 엄청난 변태라던가.
"아, 아니?! 그런거 없는데?!"
없으면 없지 왜 그리 당황해…?
성현이가 목소리가 깨질 정도로 급하게 말했다. 소위 말하는 삑사리.
"그럼?"
"…그, 그게….그, 그건…."
성현이는 대답하기 싫은건지 말을 더듬기만 하고는 갑자기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러고는 묵묵부답인 채 아무말도 안하고 걸어가고만 있다.
…그렇게 민감한 문제였나?
혹시 혼자 홍등가라던가 퇴폐업소라도 가서 동정 떼고 온건가.
그런거라면 확실히 여자한테 말하기 좀 곤란하긴 하다.
'…그러면 내가 얘랑 섹스해 줄 이유가 없네?'
성 현이에게 섹스를 해 준다 하며 꼬셔대거나 처음 여자로서 만나준 이유가 자신감 좀 얻어서 여자도 좀 만나보고, 용기좀 가지는 의미에서였는데 벌써 혼자 퇴폐업소에 가서 동정을 뗄 만큼 여자에게 내성이 생겼으면 내가 만나줄 필요도 없다.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성현이에게 말했다.
"근데 동정 아니면 내가 섹스 해 줄 이유가 없네. 난 자신감좀 가지라고 이러는 건데. 벌써 다른 여자랑 했으면 뭐…."
"아, 아, 아냐! 다른 여자랑 안했어!"
"으응?"
이건 또 뭔 소리래.
다른 여자랑 안했으면 내가 입으로 해준 것 말고는 여자와의 경험이 없으니 여전히 동정 아닌가?
성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해보라는 듯 가만히 있자 성현이는 시선을 나에게서 피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 그때…이, 이, 입으로 해, 해줬으니까…그, 그래서…."
아….
음, 그렇구나. 입으로 해 줬으니까 이젠 동정이 아니라고….
으음….
음…그래, 그렇구나….
전쟁이 일어난다.
이리저리 튀는 육편…총알…그리고 번개가 떨어지는 듯 한 소리….
죽어가는 전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약혼자의 모습, 흐려져가는 의식….
"풉! 아, 아 잠깐만…."
미안해!
참으려고 했는데! 웃겨서 못 참겠어!
잠깐만 기다려봐, 참을 수 있으니까….
"크크크크큭…자, 잠깐만…으흐흐…!"
그렇게 생각하려면 생각할 수도 있다 싶긴 한데 역시 너무 웃기다.
미안해 성현아.
성현이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창피한 것 처럼 붉어지더니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한번 내 쪽을 뒤돌아보고는 걸음을 멈춘다.
기다리는 건가?
"아, 고마…푸훕!"
힘들게 진정한 나는 걸음을 빨리 해 성현이를 따라잡았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수습되지 않았다.
겨우겨우 진정했지만 성현이는 이미 창피할대로 창피해진건지 일식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도 무시했다.
라면집 바로 앞에 가서야 성현이는 다시 입을 열고는 '나도 그냥 민우형이 짜증나서 말한거니까 그렇게 너무 웃지 마.'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난 라면을 먹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성현이를 놀렸다.
그래도 역시 왠지 나에게 가끔씩 시선이 향했기에 들렸을 지도 모르지만.
"아, 성현아 방금 나 이 면발하고 방금 전 먹은 아이스크림 동정 떼줬다?"
"…그만해."
"푸후훕…."
내가 해놓고 내가 뿜을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