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부
♀ ♂ ♀ ♂ ♀ ♂
"성은씨잉!"
"…."
성현이와의 일이 있고 몇일 뒤, 점심시간에 나는 성현이를 만났다. 얼마간은 나도 성현이를 보기 좀 불편했기에 일부러 수업이 끝나자마자 카페테리아를 피해서 집에 갔지만 슬슬 괜찮아 진 것 같아서 카페테리아로 가보니 성현이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생일 다음날 문자로 '생일 잘 보냈냐.' 하고 보내니 '어.' 라는 내용의 답장만 하나 오고 그후 아무런 말도 없길래 나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성현이에게 다가간 나는 놀려 줄 생각으로 성현이가 여장을 했을때의 출전명을 부르며 다가갔는데, 반응이 없다.
…성현이는 나를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린다.
"…뭐야, 왜그래?"
"어…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반응이 아닌데.
나는 성현이의 앞에 앉아서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음, 아직 이곳저곳의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 할인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생일 잘 보냈냐."
"응? 어, 그래…."
…반응이 뭐 이래?
평소 모습이 아니다. 내 예상대로라면 대면한 채 이 화제를 꺼낸 순간 갑자기 당황하면서 욕을 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입에 불과하지만 여자를 경험해봤다 이거냐.
쿨가이가 되겠다 이거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지만 현재 나는 남자. 그러니까 신태수…여자일 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일을 모른척 해야하는게 당연하니까…이렇게 행동하면 되려나..
"헤헤 장군님, 제가 바친 생신선물은 어떠셨습니까."
"…."
"생신날에 여자가 없어서야 곤란하지요 헤헤헤, 데이트는 잘 하셨습니까."
"…."
…아무런 반응도 없다.
왜 이러지.
한동안 쌓아둔 정액이라는 이름의 마력을 배출하고 나니 머릿속까지 비어버린건가?
"…뭔일 있었냐?"
"별로…."
"기껏 생일에 데이트 해 주게 했더니 왜이래? 차였냐?"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이 아니다.
여자랑 입으로라고는 해도 한번 하게 되었다는게 그렇게 충격이 큰걸까.
나야 한창 성에 관심이 많을 때 아는 누님이 동정을 떼…주기보다는 반 덮쳐지듯 서로 분위기에 끌려 하게 되었으니 충격을 받기보다는 되려 더 하고싶다는 생각만 했어가지고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간다.
"야, 태수야."
성현이는 갑자기 굳은 얼굴로 나를 부르더니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며 코로 한숨을 쉰다.
나는 그 모습에 뭔가 진지한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장난기를 없애고 물었다.
"왜 그러는데?"
"…아니다…됐다…."
'다' 하고 말을 끝낼 때마다 한숨을 쉰다.
…전혀 됀게 아닌 것 같다.
성현이의 생일 이후 몇일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선 혜림이나 다른 과제 문제는 아닌 것 같고…짐작가는거라고는 여자가 되어서 한번 입으로 해 준 것 밖에 없다.
이자식이. 첫 펠라였던 나도 지금 이렇게 정신을 다잡고 평소처럼 행동하는데 뭐 이리 뭔일 있었습니다~하는 티를 팍팍 내?
"점심 뭐 먹을래?"
"아무거나…."
"…혜림이 따먹을래?"
"그러던가…."
이것봐라.
주변에 한국인이라고는 우리들밖에 없는걸 확인하고 나름 농담이라고 했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평소같았으면 '미친놈' 이라고 한번 말하고 끌끌댔을 놈이….
괜히 분위기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있었더니 갑자기 메신저 알림음이 마구 올려왔다.
'흐음….'
성현이와의 일이 있은 뒤 나는 나 자신 자체가 여성화가 되가는건 아닌지에 대한 실험을 하고있다.
뭐, 실험이라고 겉치장하지만 그냥 노는 기분으로 하고있다. 인터넷에서 여자인 내 사진을 옷을 입은 채 몸만 찍어서 한번 올려놓고, 여자인 척 하면서 대화상대를 찾는다고 올렸다.
얼마 되지도 않아 사기다, 거짓말 치지 마라, 인증해라 하는 답글들 사이사이에서 보이는 남자들의 메신저 아이디에 서내 맘에드는 나이대를 하나 찝어서 따로 여자일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둔 메신저 아이디로 대화를 한다.
현재 대화 상대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17세.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남자한테 내가 오빠오빠 하고 부르는건 거부감이 심각할 정도로 일어나서 연하로 했다….
우우웅…우우웅….
그래서 성현이랑 대화를 하지 않은 요 몇일, 이 메신저의 대화상대와 가끔씩 대화를 나누고는 했더니 이젠 시도때도 없이 짧은 문자가 날아온다.
내용은 상당히 야한 느낌이다. '누나 몸 너무 예뻐요.' '사진보니까 가슴 되게 크던데 몇컵이에요?' '누나랑 만나고 싶어요.' 등등…완전히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만나서 섹스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팍팍 전해져온다.
.여자였을 때 성현이의 자지를 빨고, 정액까지 삼켜버렸는데도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나에게 나 자신이 여성화하고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지금 내 상태가 어찌보면 정신분열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리성 장애라는걸 물질적으로 변환해 생각하면 지금 내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신분열은 내면에서 한 사람이 더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나는 외면 자체가 다른 사람이 되 버릴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그로 인해 생기는 내면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보려는 중이다.
…중2병 같지만 나 나름대로는 꽤 진지하다.
나 자신이라는 배역이 하나 있고, 또 하나의 배역. 그러니까 여자인 나와 남자인 나는 서로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존재다.
여자에서 남자로, 남자에서 여자로.
'나' 라는 자리를 두고 서로가 번갈아가면서 내가 되고, 남자가 되었을 때에는 여자인 나는 TS스톤 속에, 반대인 경우에는 남자인 내가 TS 스톤 속에 들어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복잡해지지만 현재 생각중인 가정은 이렇다.
여자인 나와 남자인 내가 서로 바뀔 수 있는 이 상황에서, 바뀌는 정도는 얼마나 바뀌는 것일까?
우선 지금까지 볼 때 여자인 나는 나다. 남자인 나 또한 나고.
여기까지는 괜찮다. 변화하는건 성별과 외모에 국한된다고 볼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육체적인 반응도.
그 렇다면 여자에서 남자로 변한다는건 내가 완전히 타인으로 변하는 것일까. 단지 내가 영혼적인 걸로 몸을 지배하고 있을 뿐은 아닐까…이대로 계속 여자가 되어 살다 보면 어느순간 내가 사라지고 몸만 남아 내 여자인 몸의 원 주인에게 내 몸을 TS스톤에 가둬지는 건 아닐까?
그럴리야 없겠다고 생각하지만서도 약간 무서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도 없지만….
저런 고민은 그냥 바로 싹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여자로 변하는게 너무 재미있다.
사실 어찌보면 그냥 메신저로 넷카마 짓을 하기위한 핑계다. 데이빗의 일이 있은 뒤 한달간 집에서 혼자 변해보며 남자와의 일이 아니면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것은 이미 확인했다.
위에서 한 말은 단지 정말 최악의 경우를 망상해 본 것 뿐이고. 정말로 저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필요 이상의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교체에 가깝지만, 지금까지의 일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경우'와 맞아떨어질법한 증세라던가 증상, 증거같은건 하나도 없다.
어 쩌면 정말로 내가 이렇게 TS스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실험을 해 보겠다며 이런저런 일을 해 보려고 하는건 그냥 여자가 되어서 즐기고 싶은데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런짓을 하면 내가 변태같아 보여서 나 나름 자기회피하려고 이러는 걸지도….
…내가 워낙에 망상을 좋아해서 그런지 자꾸만 생각이 이어지고 이어져 이상할 지경까지 가 버린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성현이는 내 핸드폰이 진동하는걸 보고는 물었다.
"전화야?"
"아니, 그냥 메신저."
"뭐 그렇게 많이와?"
"내가 좀 인기가 많잖아…."
"놀고있네…."
…사실 나 인기 없다.
되려 교 내에서 기생충같이 달라붙는 과제기생충년들한테 도움 안되는척 하면서 나 할거 혼자 다하고 그냥 먼저 가버린다고 인간관계에 문제있는 놈 취급받고 있다.
뒷담의 대상으로 자주 입에 오른다던가, 욕을 마구 먹는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도 크게 없다.
내가 여자였으면 맨날 자지 세우면서 헥헥댔을 것들이!
우우웅…우우웅…우우웅….
내 핸드폰이…야동에서밖에 본 적은 없지만 꼭 바이브레이터처럼 쉬지 않고 진동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용이 들키면 넷카마짓 하는 변태로밖에는 오해받을 수 밖에 없는 대화내용이니 이곳에서 보기는 좀 그렇다.
성현이도 상태가 영 이상한 것 같고, 오늘은 돌아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뭐. 나 먼저 갈께. 오늘은 점심 따로 먹자."
"아, 태, 태수야!"
"응?"
근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니 성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를 불렀다.
뭐지.
뭔 일일까 하고 보고있으니 성현이는 다시 말을 하려는지 말려는지 입을 열었다 닫더니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랬다가 다시 일어난다.
"태수 너 혹시…여친 있냐?"
"온 세상 여자가 나의 연인이니라."
"아 됐고, 여친 있어 없어?"
"그건 왜…헉! 성현아! 안돼! 난 그런…! 내몸은 순결해! 처남이란 말야! 이런 날 노리다니…짐승! 다가오지 말아줘!"
"아나 씨발, 니가 순결하면 난 뭐냐."
"흑마법사."
내 말에 성현이는 낄낄 웃더니 굳어있던 얼굴을 풀었다.
"말하는거 보니까 여친 없네."
"아 있다니까. 혜림이 사실 내 여친이야."
"권성민 그새끼는 그럼 뭔데."
"…내가 꼬추가 작아서…크흑…."
성현이는 갑자기 기분이 풀린 듯 평소처럼 낄낄대며 웃고는 나에게 빨리 꺼지라며 집 가서 야동이나 쳐 보라는 말로인사했다.
…갑자기 왜 평소처럼 돌아온거지?
왜 저런건지 짐작이 영 안가는건 아니지만….
으음…에이, 설마….
♀ ♂ ♀ ♂ ♀ ♂
[아 누나 진짜 누나 보고싶어요. 같이 영화봐요 제가 표 살께요.]
[나 해외라니까?]
[비행기표도 사서 보내드릴께요 주소 말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찾아갈까요 누나?]
17살이면 고등학생 아닌가? 고등학생이 대체 어디에 돈이 이렇게 많은걸까.
난 저 나이때 모든 돈을 다 여친이 충당하게 했었는데. 아, 가끔씩 내가 밥을 사기도 하긴 했다. 그 외에는 대부분 더치페이.
메신저에 넣어놓고 대화를 한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참 열심히다.
…역시 인증사진을 찍어달라길래 찍어줬던게 문제였나.
별 건 아니고, 내가 올린 사진에 역시 여자인걸 증명하려면 가슴이 보여야겠지 해서 가슴이 보이게 사진을 올렸더니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서 '몸매 완전 모델이던데 진짜 누나에요? 낚시 아니죠?' 라는 말을 자꾸 하길래 나도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으니까 그냥 종이에다가 상대의 아이디를 적어서 옷은 당연히 입은 채 가슴 위에 대고 다시 한번 사진을 보내줬더니 그 후로 메세지가 시도때도없이 온다.
[너 좀 무섭다….]
[싫어요?]
[응.]
[아, 누나 너무 보고싶은데….]
보고싶어서 나더러 뭘 어쩌라고.
나도 보고싶어잉~17살 연하남 보고싶어잉~아이잉 하고 아양이라도 떨란거냐.
뭐, 요즘 얼마간은 성현이도 아무 일 없고, 나도 별일이 없어서 언제나처럼 대학을 다니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하나, 내가 원할때 굉장히 미인이고 섹시한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단 풍잎도 대학 내에 잔뜩 떨어지고, 왠지 운치있길래 수업이 끝나고 방에 돌아가던 나는 문득 '오, 지금 거리가 되게 예쁜데 저기에 미녀 한명만 있으면 진짜 끝내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녀가 없으면 내가 미녀가 되서 가주지 하는 발상으로 은행잎에 금색으로 물들어 버린 잔디밭 위에 앉아있었다.
사실 오늘 날씨가 오랫만에 너무 좋아서 바람좀 쐬고 싶기도 했다.
대학을 다니고 2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각하는게, 내가 다니는 대학은 너무 크다.
뭐, 교내에 축구장만해도 네개가 넘으니까…게다가 농구장도 그 이상으로 많고, 교내식당도 8개던가 9개던가…. 아, 수영장도 두개인가 있다. 실내랑 실외.
…아무튼 넒다.
이만큼 넒다보니 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산책삼아 오거나 놀러오기도 한다. 그 점을 생각해봤을때 여자인 내가 교내를 돌아다녀도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오늘도 옷은 흰색 카디건에 청바지다. 성현이의 생일날 입고 같던 옷에, 머리모양도 그대로다.
사실 이거 말고 딱히 입을 옷도 없다.
돈이 아까워서 안 샀으니까…당연한 일이다.
머리모양은 새로 연습해 본 것도 있긴 하지만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머리가 길어지니 바람에 휘날리거나 움직일때마다 너무 찰랑찰랑거린다 해야할까. 흔들리는게 신경쓰였는데 이렇게 올려서 묶어버리면 그럴 일은 없다.
[아 누나…나 누나 사진 보고싶어요….]
[두장이나 봤잖아.]
[두장밖에 못본거죠! 아 누나 한장만….]
꽤 끈질기다.
역시 가슴 때문인가. 가슴때문에 이렇게 끈질기게 보내는건가.
잔디밭 위에 한쪽 발을 접고 다른 한쪽은 핀 채 앉아있으니 자꾸만 바로 앞의 도로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 쪽을 쳐다본다.
처음에는 내 자의식 과잉인가 싶었지만 이제와서는 정말로 나를 보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 내 쪽을 본 사람은 두번이고 세번이고 뒤돌아보고 지나간다.
'섹시하건, 청초하건…예쁜 애들은 좀 좋기도 하겠지만 되게 피곤하겠다….'
나야 가끔 마음에 내킬때나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니 피곤하기보다는 아, 보는구나 싶지만 매일같이 주변 사람들이 저러면 정신적으로 피로해 질 것만 같다.
[아 누나 두시간이나 부탁했는데 사진 한장만 주면 안돼요?]
[두시간이나 부탁 안하면 안돼니?]
[누나 너무하다…나 고등학생인데. 아 누나 진짜 자꾸 이러면 연락 끊을꺼에요.]
[끊던가…니가 아쉽지 내가 아쉽겠냐.]
[누나 진짜 차갑다…아 농담이에요, 제가 누나랑 연락을 왜 끊어요….]
하이고, 이름모를 고등학생아. 내가 차가운게 아니라 네가 너무 달려드는거야….
여자한테 그렇게 달려들면 처음부터 섹스할 생각으로 대화하는 여자 빼고는 다 도망간다….
[사진 주면 뭐하게.]
[원래 예쁜건 나누는거에요. 누나.]
[넌 니 마누라 예쁘면 마누라도 나눌래?]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죠.]
[아냐, 잘 나눠. 난 상관 안해.]
[누나가 제 애인이면 절대 안나누죠. 왜 나눠요.]
…이거 자기 나름대로는 꼬신다고 대시한 건가?
음…5점!
참고로 만점은 100점이다.
[사진 주면 그럼 너 혼자볼꺼야?]
[와! 누나 줄꺼에요? 앗싸!]
[준다고 한 적 없다.]
[에이….]
흐음….
그 래도 꽤 재미있다. 언제 답장을 보내도 바로바로 답하고. 뭐, 저런 성욕이야 나이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고. 되려 대화해보면서 너무 날라리 같지도 않고 그냥 섹스가 너무 하고싶은 조금 성욕이 많은 정상적인 고등학생 남자같은 느낌이다.
남자대 남자로서 대화해도 좋을 것 같은데. 뭐, 처음부터 여자대 남자로 대화하기로 찾은 대화상대였으니까 어쩔 수 없나.
[니가 네 알몸 사진 찍어서 보내면 생각해볼께.]
[누나 내 몸 보고싶어요? 보여줘요?]
[너 변태구나….]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말해요, 어디 보고싶어요? 나 누나한테 보여줘도 괜찮은데.]
[괜찮은게 아니라 그냥 니가 보여주고 싶어하는것 같다?]
[아 어디든지 다 보여줄께요. 그러니까 누나도 쌤쌤이로 옷 벗은 사진 콜?]
음…조금 너무 밝히는 것 같기도 한데….
뭐, 이정도면 정상적인 정도지. 정상이야 정상.
[너 먼저 학교에서 알몸으로 옷 다 벗고 몸에 네 이름하고 집주소랑 학교 이름 적고 사람들 있는데에서 찍어서 보내.]
[누나 그건 좀 아닌듯.]
[먼저 보내면 나도 옷 다벗고 보내줄께.]
[아….]
이정도까지 하면 그냥 안 보여준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정말로 보냈다가 퍼지기라도 하면 인생이 구렁텅이로 빠질테니까….
그렇게 오늘은 이제 사진 보내달라고 안 이러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답장이 왔다.
[…누나, 사람 한명만 있는데서 찍어도 괜찮아요?]
진짜 할 생각이냐?!
바보냐!
[미쳤니….]
[아 누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한장만 서비스로 주시지.]
[야동봐.]
[헐…누나가 야동에 나오는 여자보다 훨씬 이뻐서 안봐요.]
얼굴도 안 봤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확신하는 걸까….
입에 발린 말이겠지만 뭐.
근데 나도 그렇지만 남자들은 왜 이렇게 메신저 상대 여자의 사진에 환장하는걸까….
얘 설마 내 사진으로 딸치거나 하는건 아니겠지.
"성현아, 너 여자친구 없다고 하지 않았냐."
"아 그러니까 됐다니까요."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니 내가 앉아있는 잔디밭 옆의 수풀 울타리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늘이 좋아서 울타리 근처 나무 밑에 앉아있었기에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민우 형과 성현이였다. 성현이 녀석…돈 못 돌려받아서 민우형이 싫다싫다 돈 돌려받으면 안만난다 하더니, 못받은 돈이 남아있기라도 했었던 건가…?
왜 두 사람이 같이 있는건지는 모르지만 울타리 너머로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걸어가는듯 위치가 달라지던 목소리는 어느순간 한 자리에 딱 서더니 그 자리에서 대화를 계속했다.
"아 그러니까, 한번 그냥 오라니까. 형이 자리는 다 잡아 줄테니까 넌 그냥 오기만 해. 베이스 형이 일생겨서 못온다니까."
"그거랑 제가 그 소개팅 가는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 그냥 와서 같이 술 마시고, 대화좀 하고, 그러고 가는거라니까. 소개팅이 아니야."
"그게 소, 소개팅이지 그럼 뭔데요."
듣자하니 또 뭔가 여자들하고 술자리 약속같은게 잡혔는데 민우형이 성현이를 끌고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성현이는 그걸 또 싫다고 하고.
워낙에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하는 놈이니까 뭐.
민우형은 민우형 나름대로 성현이 자신감 붙혀준다고 저러는 거라고 나한테 단 둘이 있을때 말하긴 했는데, 난 솔직히 저렇게 억지로 이리끌고 저리끌고 하는 방법이 마음에 안든다.
뒤에서 살짝 밀어주면서 천천히 바꿔주면 될 걸, 왜그리 급하게 홱 하고 바꾸려 드는걸까. 룸싸롱 건도 그렇고.
"하아…성현아, 얼마전에 네 생일이였는데…형이 룸싸롱 가자고 해도 안가고…올해는 여친도 사귀고…동정도 떼야 하지 않겠니?"
아, 이건 성현이 좀 속상할텐데.
속 상하다기보다는 화나지 않을까. 워낙 조금 소심해서 민우형한테 대들거나 뭐라 하진 않았지만…나중에 나랑 둘이 대화할때는 '지가 왜 내 여자친구같은걸 신경쓰는데?' '혜림이처럼 남친있는 여자 따먹는 패티시 있어서 여친으로 사귀게 해놓고 뺏어먹으려 드나.' '존나 깔보는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 라고 뒷담을 마구 해댄다.
내가 듣기에도 민우형이 쓰는 화법은 좀 상대를 깔보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자기는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그러면서 묘하게 상대를 슬슬 자극한다는점이 더 질이 안좋다.
그게 또 확실히 딱 자극하지 않고 슬슬 자극해대서 그거가지고 화를내면 또 장난이였다, 뭐 그거가지고 그러냐 하고 넘어가려고 들고….
게다가 상대가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이면 '넌 생각이 잘못됬어. 생각을 바꿔야돼.' 하면서 더한다.
상대가 증거를 가져오면 자기 증거는 다 맞다고 하고 상대 증거는 조작되었다고 하는 격이랄까.
"아…씨…민우형, 진짜 자꾸 그러지 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