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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 ♀ ♂ ♀ ♂
아.
포기, 몰라. 이젠 나도 몰라.
이렇게까지 벙어리가 될 줄은 몰랐다. 밥을 먹는 내내 대답을 해도 한두마디만 하고 말을 안한다.
이렇게까지 긴장할만한 상대인가? 지금 내가?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다. 실제 나도 지금 내 모습…그러니까 태수가 희연이를 만난다면 긴장해서 두근두근 거릴테니까.
웬만한 남자들은 단숨에 순정 모드로 돌아가게 할만한 힘이 있다.
뭔가 음탕한 천사라고 해야할까,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생각만 드는게 아니라 조금 감탄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드니까….
너무 예쁘다고 해야할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지금 나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성현이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흐음….'
모르겠다.
나 야 지금 본인이 되어있는데다가 얼마간 여자로 지내봐서 그런지 조금씩 이것도 내 몸이라는 자각이 든다고 할까, 익숙해지고 있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남자인 내가 지금 나와 만나면 같이 게임 얘기나 만화 얘기 하면서 하하호호 놀다가 섹스하게 될 것 같다.
뭐, 둘다 내용물은 똑같으니까 서로 취향도 완전히 맞아떨어지는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가.
그 취향이나 취미같은건 성현이도 비슷한데, 일부러 그런 오타쿠같은 얘기도 몇개 꺼내봤지만 여전히 짧게 대답하고는 말을 하지를 않는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하고 나올때 내가 케잌을 손에 들고 같이 나왔는데도 잘 먹었냐는 말 한마디도 없다….
뭐지 이거.
마치 공기랑 식사하고 나온 기분이야.
"저기…성현씨."
"에, 네, 네?"
"와악!"
"으엇!"
내가 갑자기 케잌을 바닥에 내려놓고 박수를 짝 치며 달려들자 성현이는 깜짝 놀라며 비틀거렸다.
"무, 뭐에요?!"
"자, 국민체조~시작! 하나, 둘, 셋, 넷!"
그대로 뒤에서 성현이의 두 팔을 잡고 로보트를 가지고 놀듯 내 멋대로 위 아래로 흔들게 했다.
가슴이 등에 잔뜩 닿는 것 같지만 상관없어!
"뒤에껀 나도 기억이 안나니까 여기서 심호흡!"
"네, 네?"
"심호흡 몰라요? 후…후…."
나는 성현이의 두 팔을 잡아 하늘 위로 당겼다가, 아래로 내렸다가 하며 호흡을 했다.
그러자 성현이는 대체 이게 뭔지 모르겠는건지 따라하지 않은 채 있더니 내 손에서 벗어났다.
"무, 뭐에요 갑자기!"
"…쳇."
내가 큰 맘 먹고 서비스해줬더니 도망가다니.
이 동정남 자식.
"생일인데 왜 그렇게 굳어있어! 여자랑 생일에 데이트 하게 됬으면 신나가지고 당구장가자, 노래방가자하고 방방 뛰어야지! 늙은이냐! 아이구 할멈…날씨가 맑구려…이러는 것도 아니고."
말해놓고 보니 당구장하고 노래방은 조금 아닌 것 같았다.
"…당구장하고 노래방은 좀 그런가?"
나는 어딜 가면 될까 싶어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야 여자랑 데이트 할 때에는 그냥 같이 아이쇼핑이나 하고 DVD방이라던가…그러고는 박물관이나 가고 멀티방이라던가….
…아, 섹스밖에 생각하고 있질 않았지 참.
아무리 그래도 그런곳을 찾아서 가자고 하는건 좀 아닌 것 같다.
"자, 걸어 걸어! 고기먹고 왜이리 힘이 없어! 케잌을 안 먹고 가지고 나와서 힘이 없는거야 지금?"
"무, 뭐야. 어디 가려고?"
손을 잡고 잡아끄니 어딜 가냐고 묻기만 한다.
내가 어딜가는지 어떻게 알아!
"나도 몰라! 그냥 우선 걸어!"
♀ ♂ ♀ ♂ ♀ ♂
"긴장 풀어, 이 형님이 재밌는데 데려가 준다고 하잖아."
"아, 아까부터 대체 어딜 가는건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20분 가까이 거리를 걸어다니기만 하고있자 슬슬 지치고있는건지 성현이도 순순히 따라오고있었다. 그래도 팔을 잡은 손을 놓으면 도통 따라오지를 않으니 아까부터 계속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손에 땀 엄청 난다.
내 손이 무슨 난로냐. 땀 때문에 손이 축축해져서 바람이 불 때마다 차가워질 정도다.
"근데 참 지금은 반말 잘하네? 반말 한번 더 해봐."
"…무, 뭐야 갑자기."
"아이구 잘했어요 성현 어린이. 뽀뽀해줄까요?"
"되, 됬거든요!"
응, 나도 해줄 생각은 없었어.
해달라고 했으면 놀렸을꺼야.
"당구장 갈래?"
"…."
"노래방?"
"노래 못불러요."
"왜 또 존댓말로 돌아왔어. 그러면 어디 갈래? 피씨방?"
남자랑 여자가 갈 곳은 아닌것 같지만 정말로 갈 곳이 생각이 안난다.
"술 마시러 가?"
"해, 해도 안떨어졌는데?"
"…영화 보러 갈래?"
"여, 영화관 여기서 머, 멀리 있는데."
"…뭐 할래?"
"…."
얘 진짜 나중에 여자랑 데이트는 어떻게 할까.
걱정된다.
나랑 놀 때를 생각해보면 나름 유머도 있고 괜찮은데 왜 처음 보는 사람하고 대화하면 이렇게 긴장을 하지.
대체 이런애가 어떻게 과대가 됬는지….
"저기 있잖아…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닌데 난 나름 내가 되게 미인이라고 생각하거든?"
"네? 아, 네."
"그런데 보통 여자가 노래방 가자고 하면 바로 가고싶어지는게 정상 아냐? 까놓고 말해서 야한 생각 들지 않아?"
"…."
아, 또 벙어리다 벙어리.
아무 말도 안한다. 음소거다.
"하아…긴장좀 풀라니까? 심호흡 해봐 심호흡."
"가, 갑자기 하라고 해, 해도 좀…."
"…."
이놈 긴장을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걸까.
내가 다 갑갑하다. 평소 같이 놀때는 이렇게까지 긴장하지도 않고 남자대 남자로 얘기하다보니 음담패설도 마구 하니까 서로 할말 다 하고 놀았는데 이렇게까지 하니 숨이 막히는 것만 같다.
"하아…."
나도 쉬지 않고 걸었더니 좀 지친다. 다리가 아프다거나 숨이 찬다거나 하지는 않는데 역시 가슴이 조금 무겁다. 가슴가슴 타령하니 엄살부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로 이거 무겁다.
그것보다 진짜 갑갑하다. 원래 이렇게까지 갑갑한 애였나? 직접 체험해 보니 꽤 괜찮은 애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 대화하는걸 생각해서는 지금 속으로는 나름 야한 생각도 꽤 하고있을텐데….
…나같으면 지금 어떤식의 야한 생각을 할까?
음…우선 안 그런 척 하면서 인적이 드문곳으로 간다음 갑자기 끌어안아서 가만히 서있다가 그대로 분위기 타면 키스한다던가….
대충 그런 상상을 할 것 같다. 끌어안으면 가슴도 잔뜩 닿을테고.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이놈을 데리고 인적 어두운 곳으로 끌고가 끌어안는건 좀….
아까부터 계속 주뼛거리는걸 보니 자신감 불어넣어 주겠다고 여자로써 온건데 자신감 다 떨구게 생겼다.
"야, 봤냐?"
"우와…씨발, 이렇게, 이렇게…."
"존나 크다…얼굴 봤냐? 완전 엘프던데."
근처를 지나가던 놈들이 한국인이였는지 저 멀리에서 날 뒤돌아보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성현이에게 물었다.
"들었어?"
"…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니까 무, 뭐가?"
"하이고오…."
진짜 갑갑하다….
"이보세요…김성현씨, 꼬추는 제대로 자알 달려 있으세요?"
"…."
내 말에 성현이는 깜짝 놀란 듯 흠칫하고는 아무 말도 안했다.
꼬추 없냐, 왜 대답이 없어.
"내가 뭔 말을 하는건지…."
침착하자.
지금 난 여자다, 꼬추같은 말을 하는건 좀 아니야.
하도 갑갑하다보니 별 말이 다 나온다. 그래도 그냥 내버려두고 가려니 그것도 그렇고. 갈 곳도 없고 있을만한 곳도 없고….
이대로 집에 가기도 좀 그렇고, 그냥 이대로 가면 진짜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성현이가 되려 나한테 뭐라고 욕하고 얘기도 하지 않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대로 돌아가버리면 당분간 귀찮아 질 것 같다.
잔뜩 기운이 빠져서 한동안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등교하고 하교하고만 반복할 모습이 눈에 훤하다.
으으, 상상만 해도 꼴보기 싫다.
"솔직하게 말해봐. 어디 가고싶어?"
"…별로 가고싶은데 없는데…."
"알았어, 그럼 모텔 가자."
이놈은 꼭 가고싶은곳은 말하지 않고 정말 좀 아니다 싶은곳을 가자고 하고 있으면 꼭 나중에 어쩔수없이 말한다는 듯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한다.
어디가 됬던 우선은 가고싶은곳이 어딘지 알아내서 거기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술말 마시러 가건, 노래방을 가건 당구장을 가건….
…그런데 모텔을 가자고 하고 진짜 어디 가고싶은지 제대로 말좀 해봐라 하며 잡아끌고 있었더니…반항을 안한다.
…어라?
'얘가 진짜 모텔 가고싶어하나?'
생각해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야한걸 하고싶어하지 않는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런 생각은 하는데도 말은 못하겠지. 그런데 거기에서 내가 가자고 하면서 끌어당기니까 뭔 상황이지 하고 망설이면서도 싫지는 않아서 순순히 따라오고….
'…어떡하지.'
별로 정말로 모텔 갈 생각은 없었는데…이거 아무리 봐도 내 실수다.
게다가 아까부터 내가 일방적으로 손을 잡고 잡아끌고 있었는데, 지금은 성현이 쪽에서도 내 손을 잡고있다는 미묘한 변화가 있다.
뭐야, 대체 이거 무슨 의미야.
"…저기, 잠깐만. 왜 안말려…?"
"무,뭐?"
"…너 진짜 모텔 가고싶어?"
"…."
입을 다문다.
진짜구나. 가고싶구나….
으아아아아아아.
"…꼬, 꼬추는 잘 달려 있나보네!"
이 농담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발탄인것 같다.
그 증거로 성현이 이놈도 굳었다.
아, 어떡하지. 이거 아무리 봐도 일이 커진 것 같은데….
여자로 오는게 아니였나….
…그치만 평소에 민우형이 하도 성현이 이놈을 동정, 동정하고 놀려서 나도 언제 한번 기회되면 이놈 동정좀 떼버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와서 그런지 그리 크게 거부감 들지는 않는다.
되려 차라리 한번 꾹 참고 떼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얘 성격 봐서는 홍등가 같은데 가서 여자를 사는것도 힘들테고, 자신감 가지기 전에는 여자친구 사귀기도 힘들텐데….
데이빗한테 이미 첫경험도 줘 버렸고. 그때 기분좋았던 것 때문에 자위하다가 가끔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그런지 섹스하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게다가 정말로 만에 하나 성현이가 여자인 나랑 섹스하고싶어서 덮쳐버리면 그냥 당해주자 하고 각오하고 오기도 했고. 정말 그럴때 거부하는것도 미안하니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한 것 같지만 정말로 어째서인지 성현이가 덮치면 가만히 있어 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긴 했다.
가만 보면 얘 치고는 모텔로 가자고 했는데 아니라고 말을 안하는 이정도까지 와도 진짜 용기낸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아, 그건 그렇고 섹스인가…. 얘랑 섹스를 꼭 해야할까?
모텔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할텐데 나는 우선 없다. 투숙객중 한명만 있으면 되니 얘만 있으면 갈렴 갈 수야 있긴 한데…그럼 우선 정말 하려고 한다면 할 수는 있다는 거고….
으으, 그보다 역시 알고지내던 애랑 섹스한다고 생각하니 좀….
머리가 아프다.
그치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자초한 일인데, 여기에서 무책임하게 장난이였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도망가 버리면 그거 너무 심하지 않을까.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진다.
"으으으…."
갑자기 정신이 든다.
대체 왜 또 이렇게 된거지. 그럴 생각은 아니였는데 또 일이 섹스랑 이어져 버렸다.
해야되는걸까? 진짜 해야하는걸까?
'안 하고 끝내는 방법 없을까? 얘랑 섹스하라니, 좀 그런데….'
싫어서 토할것 같다 정도는 아니였지만, 먼저 하자고 덮치면 눈 딱감고 당해줄지 몰라도 내가 하자고 덮치기는 싫었다.
남자인 나도, 여자인 나도 싫어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입 밖으로 농담이였다, 할 생각 없고 장난친거니 그냥 가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정 때문인지 여자인 지금은 남자였다면 절대로 상상하지 않았을 법한 생각까지 들어서 한번 눈 딱감고 해줄까 싶기까지 하다.
친구 좋다는게 이런건가?
제기랄.
…분명 남자로 돌아가면 후회하겠지만…지금이 여자인 상태라서 이런 기분이 드는거겠지만….
"너…여권 없지?"
"어? 으, 응…."
역시나 집에 두고 온 모양이다. 보통 여권같이 중요한걸 들고 다니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경찰들은 신분조사하는거 불편하다고 들고다니라고 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그러면 모텔은 갈 수 없나…아아, 벌써 하는 것 자체는 결정해 버린 것 처럼 생각하는 내가 진짜 싫다. 이해가 안간다.
"아 진짜…일루 와봐!"
신경질적이게 성현이의 팔을 잡아 끌어 근처의 인적 없는 곳으로 데려간다.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다가 이런 장소를 찾아서 섹스한 적이 꽤 있으니 이런 인적드문 장소를 찾는데에는 이골이 나있다.
그치만…이번엔 내가 섹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해주기 위해서 찾고있다니….
'너 진짜 운 좋은줄 알아!'
진짜로 나도 내가 하는 행동에 미칠 것 같다.
왜 이럴까.